구원
[로마서 1장 16-17절]
로마서 1장 16-17절 말씀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이 말씀은 로마서 책의 주제 구절입니다. 여기서 “구원”이란 영원한 멸망[둘째 사망(계2:11;
20:6), 불못(19:20;
20:10)]에서 건짐을 받아서 영생(영원한 천국)으로 인도함을 받은 것을 말합니다. 이 “구원”은 (a) 과거 구원(칭의), (b) 현재 구원(성화), (c) 미래 구원(영화)를 다 포함합니다. 지난 주 수요 예배 때 우리는 이미 과거 구원(칭의)에 대해서 묵상했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여인의 후손(창3:15)인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죄인들을 구원하십니다. 지난 주에 말씀을 잘못 전했습니다.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롬1:17)는 말씀은 과거 구원(칭의)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는 말씀은 단지 과거에 끝난 구원(단회적 칭의)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이 구절은 신자가 믿음으로 의롭게 된 이후,
삶의 모든 과정에서 하나님의 의를 경험하고 나타내야 하는 현재진행형적 삶과 구원의 역동성을 포괄합니다[“진행형적 구원:
과거의 법정적 선언(칭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삶 속에서 날마다 실제화되는 현재적 구원을 의미합니다”](인터넷). 오늘은 현재 구원(성화)와 미래 구원(영화)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현재 구원(성화)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현재 구원(성화)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죄인에서 의인으로 신분이 바뀐 신자가(과거 구원/칭의),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실제 삶 속에서 죄를 멀리하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전인격적 변화의 과정을 뜻합니다(인터넷). 성화의 핵심 개념입니다(인터넷): (1) 점진적 변화:
단번에 완성되지 않으며,
지상 명령을 따르는 평생의 과정을 통해 인격과 행실이 자라납니다. (2) 성령과 인간의 협력:
신자 안에 거하시는 성령의 주도적인 역사와,
이에 반응하여 피땀 흘려 순종하는 신자의 의지적 노력이 결합합니다. (3) 신분과 상태의 일치:
칭의를 통해 얻은
'의인'이라는 법정적 신분에 걸맞게,
실제 삶의
'영적 상태'를 거룩하게 일치시켜 가는 과정입니다. 현재 구원으로서의 특징입니다(인터넷): (1) 죄의 권세로부터의 해방:
과거 구원이 죄의
'형벌'에서 벗어난 것이라면,
현재 구원은 일상에 도사린 죄의
'지배력(권세)'과 싸워 이기는 것입니다. (2) 두렵고 떨리는 구원:
바울이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했을 때의 구원이 바로 이 현재적 성화를 가리킵니다. (3) 행함으로 증명되는 믿음:
야고보서가 강조하는
'행함이 있는 산 믿음'의 무대이며,
삶의 열매(성령의 9가지 열매)를 통해 구원의 증거가 겉으로 드러납니다.
이 현재 구원(성화)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그 예로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 예수님께서 “오늘 네가 나와 함게 낙원에 이르리라”(눅23:43)고 말씀하신 한 강도입니다. 이 강도는 구원을 확증받은 직후 성화를 이루어 나아가는 것이 없이 육체적 죽음을 맞이했습니다[현재 구원(성화)의 물리적 시간 부재(시간적으로 성화의 과정은 불가능했음)](인터넷): (1) 구원의 즉각성:
성화의 전형적인 과정(성화 à 영화)을 건너뛰고,
회개와 동시에 즉각적으로 완성된 미래 구원(낙원/영화) 단계로 진입했습니다. 예외적 상황을 통한 구원의 본질 계시:
(1) 오직 은혜(Sola
Gratia): 행위나 성화의 성숙도가 구원의
'조건'이 될 수 없음을 단적으로 증명합니다. (2) 구원의 마지노선:
아무리 흉악한 죄인이라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에 참된 회개를 하면 구원받을 수 있다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자비를 보여줍니다. (3) 강도의 참된 영적 변화:
비록 삶으로 살아낼 시간은 없었지만,
그는 죽기 직전 예수님을
'주(Lord)'로 인정하고 자신의 죄를 자복하는 짧고 강력한 내부적 변화(회심의 본질)를 경험했습니다.
이 현재 구원(성황)에 있어서 믿음이 꾸준히 점진적으로 성장함에 있어서 믿음이 자라나다가도 떨어질 때고 있고,
그러다가도 다시 믿음이 자라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예로 아브라함을 들 수가 있습니다. 창세기
12장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창12:1)고 명하셨을 때 그는 “여호와의 말씀을 따라갔”습니다(4절):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으로 가라는 명령을 받고 그대로 순종하였습니다.
그는 가야 할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 떠났던 것입니다”(히11:8, 현대인의 성경). 그리했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창세기
16장에 가서 보면 믿음이 떨어져 하나님의 약속인 하늘에 있는 별처럼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15:5)는 말씀을 믿지 않고 아내 사라의 말을 듣고 그녀의 몸종인 하갈과 동침했습니다(16:1-4). 창세가 20장에 가서도 아브라함은 네게브 땅 네겝(그랄) 사람들을 두려워하여 자기 아내 사라를 누이라고 거짓말했습니다(그의 믿음이 떨어졌음). 그랬던 아브라함이 창세기
22장에 가서는 하나님의 시험(1절)인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2절)는 말씀에 믿음으로 순종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 이에 아브라함이 그 곳에 제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고 그의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그 아들을 잡으려”고까지 했습니다(9-10절). “여호와의 사자가 하늘에서부터 그를 불러 이르시되 아브라함아 아브라함아 하시는지라 아브라함이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매 사자가 이르시되 그 아이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 그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말라 네가 네 아들 네 독자까지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11-12절).
과거 구원(칭의)을 받은 우리는 현재 구원을 이루어 나아가야 합니다 빌립보서
2장 12-13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바울은 “구원을 이루라”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였는데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구원은 사람들이 이룰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것이다 라는것입니다.
예를 들어 요나
2장 9절 하반절을 보면 성경은 “…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현대인의 성경)
“구원은 여호와께서 주시는 것입니다”](Salvation
is from the Lord)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또한 요한계시록
7장 10절 보면 성경은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하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들을 보면 구원은 하나님께서 이루시는(주시는) 것이지 죄인된 우리 인간이 노력(선행)을 하므로 우리 자신을 스스로 구원할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닌 것을 우리는 명백히 알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빌립보서
2장 12절에서 사도 바울은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 성경 말씀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 것입니까? 분명히 성경은 구원은 하나님께서 이루시(주시)는 것인데 왜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까? 너희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힘(노력)으로 구원을 이루라는 뜻입니까? 그것은 말이 안되잖습니까. 분명히 구원은 사람이 이루는게 아니라 하나님이 이루시는 것인데 말입니다. 실제로 바울은 빌립보서
1장 6절에서 “너희 안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 우리는 확신하노라”고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 말하지 않았습니까.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빌립보 교회 성도들 안에 시작하신 구원의 일을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인 예수님의 재림 때까지 이루신다는 확신을 말하고 있는 것이잖습니까[참고: “너희 구원을 이루라”
(1) (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0248147170)].
미래 구원(영화)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미래 구원(영화)이란 기독교 구원론에서 개인이 받게 되는 구원의 최종 단계이자 종착점을 뜻합니다.
기독교 신학은 구원을 과거(칭의), 현재(성화), 미래(영화)의 유기적인 과정으로 설명하며,
영화는 죽음 이후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완성되는
'미래적 구원'에 해당합니다”(인터넷). 영화의 핵심 특징입니다(인터넷): (1) 존재의 완전한 변화:
그리스도인의 영혼과 육체가 죄의 유혹과 오염에서 완전히 벗어나 거룩한 상태로 변화합니다. (2) 그리스도의 형상 회복:
죄로 인해 변질되었던 하나님의 형상이 완전하게 회복되어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게 됩니다. (3) 육체의 부활과 영생:
시공간의 제약과 질병,
죽음의 지배를 받지 않는 신령한 몸으로 부활하여 천국에서 영원한 삶을 누립니다. 구원 여정의 완성이란 하나님이 예정하신 구원의 전 과정이 마침내 마침표를 찍는 단계입니다(인터넷).
에베소서 2장 6절(“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과 로마서
8장 29-30절(“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은 미래에 일어날 성도의 최종 구원인
'영화(Glorification)'를 하나님의 시점과 작정 속에서 이미 완료된 사건으로 확증하는 결정적인 본문입니다(인터넷):
(1)
로마서
8장 29-30절:
구원의 황금 사슬
시제의 독특성
(과거시제 사용):
영화는 분명히 주님 재림 때 일어날
'미래의 사건'입니다. 하지만 헬라어 원문은 이 단어를 부정과거시제(Aorist,
에독사산)로 기록하여
'이미 영화롭게 하셨다'라고 표현합니다.
신학적 의미
(구원의 확실성):
시간의 제약을 받지 않으시는 하나님 편에서는 예정-소명-칭의-성화-영화가 분리되지 않는 하나의 패키지입니다.
칭의를 받은 성도는 하나님의 주권과 신실하심 안에서 이미 영화가 보장되어 있음을 뜻합니다.
사슬의 한 고리도 끊어지지 않으므로 구원의 탈락은 있을 수 없다는 성도의 견인 교리로 연결됩니다.
(2)
에베소서
2장 6절: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공간적 선취
시제의 독특성
(현재 완료적 상태):
우리가 장차 부활하여 천국에 들어갈 미래의 사건을,
성경은 지금
'이미 예수님과 함께 하늘에 앉아 있는 상태'로 묘사합니다.
신학적 의미
(신비적 연합):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하늘)에 앉으셨기 때문에,
그분의 몸 된 교회와 성도 역시 영적으로 이미 그 자리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화와의 연결:
미래에 물리적으로 완성될 영화의 상태를,
성도는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 영적으로 이미 선취(Anticipation)하여 누리고 있습니다.
성도가 누리는 미래 구원의 태도:
인간의 시간 속에서 영화는 아직 오지 않은 미래(Not
Yet)의 일입니다.
그러나 이 두 본문은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그것이 이미 성취된(Already)
확실한 현실임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성도는 이 땅에서 현재의 구원(성화)을 이루어 갈 때,
'혹시 탈락하면 어쩌지?'라는 불안감이 아니라,
'이미 하늘에 자리가 마련되었고 영화가 보장되었다'는 종말론적 확신과 승리 의식을 가지고 살아가야 합니다”(인터넷).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 이미 죽은 성도들은 몸이 부활하여 천국에 있는 그들의 영과 연합되어 영광스러운 영적인 몸을 입고 영원한 나라인 새 하늘과 새 땅,
거룩한 새 예루살렘에 들어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때까지 살아있는 성도들은 홀연히 영광스러운 영적인 몸으로 변화되어 영원한 나라에 들어갈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1-52절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 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고 우리도 변화되리라.” 마지막 나팔이 울려퍼질 때 과거 구원(칭의, 단번에 의롭다함을 입음)
받은 사람들은 부활 또는 변화되어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영원히 살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감사하며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힘써 전해야 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견실하며 흔들리지 말고 항상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 이는 너희 수고가 주 안에서 헛되지 않은 줄 앎이라”(고전15:5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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