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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Then one of those standing near drew his sword and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ear.” ( Mark 14:47, Today's Korean Version ) 1. Identifying the People Involved: The person who stood beside Jesus and drew the sword was Simon Peter .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was named Malchus . “Then Simon Peter, who had a sword, drew it and struck the high priest’s servant, cutting off his right ear. The servant’s name was Malchus.” ( John 18:10 ) 2. Jesus' Response to Peter's Action: (a) Jesus said: “Permit even this.” ( Luke 22:51, KJV: “Suffer ye thus far”; RSV: “No more of this” ) The Greek words clarify this: “ἕως τούτου” (“heōs toutou”) = “up to this point” or “even this” “ἐᾶτε” (“eate”) = “allow it,” “let it be,” “leave it alone” Therefore, Jesus is essentially saying: “Let them do what they are doing. Do not resist any further.” “If ...

"나무의 말: 일곱 개 키워드로 읽는 나무의 말"

http://topclass.chosun.com/board/view.asp?catecode=R&tnu=202205100001   " 나무의 말 일곱 개 키워드로 읽는 나무의 말 글 : 김민희 기자 살다 보면 인생의 비의(秘意)를 깨친 어른의 말이 간절할 때 있다. 어느 길로 들어서야 할지 막막해 미아가 된 것 같을 때, 감당해야 하는 책임의 무게가 버거워 내려놓고 싶을 때, 한없이 외로움을 느낄 때…. 이럴 때 나무는 고귀한 생명의 얼굴로 삶의 지혜를 보여준다. 품고 있는 지혜는 나무마다 다르다. 느릅나무는 모든 걸 혼자 해내려 애쓸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단풍나무는 인내란 기다림 자체에 있는 게 아니라 기다려야 한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때 비로소 피어난다는 것을, 서어나무는 높게 자라지도, 꽃을 피우지도, 열매를 맺지 않아도 그저 자기 자신이면 충분하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준다. 현기증 나는 문명의 속도전을 쉼 없이 따라가면 생의 속살을 볼 수 없다. 잠깐 멈춰서 보자. 그리고 한발 물러나 나무 한 그루를 물끄러미 바라보자. 달릴 때는 보이지 않던 나무들의 의젓한 몸짓이 현자의 음성으로 다가올지 모르니. 1. 유연함 : 흔들리면서도 꺾이지 않는다는 것 흔들리지 않는 삶이 어디 있으랴. 삶이란 모진 비바람이 예고 없이 불어닥치는 촌극의 연속이다. 꺾이지 않으려면 유연해야 한다. 비바람이 몰아치면 나무는 적당히 흔들리고 휘면서 버텨낸다. 완강하게 버티려 애쓸수록 힘은 힘대로 들고 결국 부러질 위험성이 크다. 유연함은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자 성장을 위한 조건이다. 자신의 능력을 펼치며 살아가려면 굳건한 심지도 필요하지만 때로는 바람의 방향대로 적당히 흔들릴 줄 알아야 한다. 겉으로 단단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아니 단단해 보이는 사람일수록 숱한 흔들림을 겪으며 그 자리에까지 도달했음이 틀림없다. 자신만의 질문을 품고 흔들리면서도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사람만이 성장할 수 있다. 우리는 모두 흔들리며 앞으로 조금씩 나아간다. 2. 공생 : 서로 다름이 어...

"코로나 이후, 새로운 공동체를 준비하라"

  코로나 이후, 새로운 공동체를 준비하라 by 김선일  /   2022-03-26 Photo by krakenimages on Unsplash “  코로나 이후의 교회는 기독교적 공동체의 진정한 가치를 깊이 탐색해야 한다  ” Share this story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매년 가입 국가들을 대상으로 조사해서 발표하는 ‘더 나은 삶 지표’(Better Life Index)는 11개 항목을 기준으로 삶의 질과 만족도를 평가한다. 우리나라는 시민참여·안전·주택·교육에서는 높은 점수를 얻은데 반해, 환경·건강·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 “워라밸”)·수입에서는 평균을 훨씬 밑도는 점수를 얻었다. 이중 우리나라가 수년째 최하위권에 속하는 항목은 놀랍게도 공동체 지표다. 2015년부터 지속적으로 조사 대상 국가들 중에서 그야말로 꼴찌를 차지하다가 가장 최근의 조사에서는 세 나라를 제치고 부상(?)했으나 여전히 최하위권이다(41개국 중 38위). 도움이 필요할 때 의지할 사람이 있느냐는 질문에 우리나라 사람들의 80퍼센트가 그렇다고 답했는데, 이는 OECD 평균인 91퍼센트보다 낮은  수치 다. 사회적 연대의 약화는 경제적 위기와 관계적 고립을 불러일으켜 삶의 만족도를 저하시킨다고 이 조사는 말한다. 전통적으로 두레, 향약, 품앗이 같은 이웃 공동체가 강했던 이 나라에서 사회적 관계의 급속한 와해는 큰 숙제가 된 것이다.    이제 정점을 지나고 있긴 하지만 코로나로 인해 고립된 생활은 기본값이 되었고, 온라인 공간은 개인으로부터 출발하는 새로운 관계를 만들어 간다. 메타버스는 현실적인 가상공간에 나와 또 다른 이들이 아바타라는 유사한 수평적 관계로 참여하는 커뮤니티를 형성한다. 같은 신념과 취향을 공유하는 연대감이 집단에 대한 의무적 소속감을 빠르게 대체해 간다. 연대감을 위해서는 물리적으로 같은 장소에 모여서 친소관계를 쌓을 필요도 없다. 서...

"이제 더 이상 불평 금지!"

  이제 더 이상 불평 금지! by Larry Osborne  /   2019-11-12 Photo by Jelleke Vanooteghem on Unsplash 나는 결코 잊을 수 없는 당회 모임 하나를 기억한다.  리더십 컨퍼런스에서 한 대형 교회 목회자의 강연을 들은 후에 내가 섬기고 있는 교회로 막 돌아왔을 때였다. 그 목회자는 목회 사역에 동반되는 고유한 도전과 어려움에 대해 열변을 토했었다. 그 강연을 요약하자면, 목회 사역은 가장 힘든 일이며, 위태로운 일이 끝없이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의 적은 악의 전형이며, 음흉하고, 사나우며, 궁극적으로 속이는 자이다. 우리는 오해받기 쉽고, 우리의 메시지는 인기가 없다. 우리의 보상은 대부분 나중에 온다. 그리고 우리는 얻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베풀기를 요구받는다. 그때 나는 목회의 아주 힘든 시기를 겪고 있었기에, 그의 말은 내 관심을 끌었다. 시편 73편의 아삽처럼, 목회 사역 자체가 가치 있는지에 대해 의문이 들기 시작했을 때였기 때문이다. 그 다음의 당회에서, 나는 그 강연자가 한 말을 당회원들과 나누기 시작했다. 나는 그것을 기도를 요청하는 말로 에둘러 표현했다. 실제로 나는 그저 약간의 공감과 이해를 원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내가 연민을 구하는 부분에 이르기도 전에, 당회원들 중의 한 명이 내게 이야기를 그만하라고 했다.  나는 곧바로 입을 다물었다. 그 장로는 베트남 전쟁이 있을 때 세 번이나 복무하고 은퇴한 해병이었다. 그는 용맹스럽게 싸웠고 전쟁의 공포와 대학살을 직접 경험했다. 더군다나 그는 고국으로 돌아와서 비웃음과 조롱을 당했다. 영웅에 대한 환영은 없었다. 그런 그에게 내 말은 연민을 일으킬 수 없었을 것이다.   그가 내 말을 멈추게 한 것은 옳았다. 나는 상황 파악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불평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나는 목회의 난관과 중압감에 대하여 불평할 권리도 없었다. 물론 목회 사역에 나름의 도전과 어려...

"팀 켈러: 후기 기독교 시대,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팀 켈러: 후기 기독교 시대, 어떻게 복음을 전할 것인가? by 고상섭  /   2022-03-28 “  이렇게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문화 속에서 교회는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까?  ” Share this story   팀 켈러는 소책자  How to research the west against 에서 기독교에 적대적인 세상에서 어떻게 교회가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할 수 있을지를 이야기한다. (이 소책자는  redeemercitytocity.com 에서 무료로 받아볼 수 있다. 또 오는 4월에 ‘후기 기독교 사회를 말하다’(가제, 두란노)로 역간될 예정이다.)  오늘날 복음전도가 어려운 이유 먼저, 팀 켈러는 오늘날 복음전도가 어려운 이유에 대해 절대 진리에 대해 믿지 않는 문화 내러티브의 영향이라 진단한다, 그리고 이러한 문화 내러티브가 디지털 문화 속에서 더욱 확장되었다고 지적한다. 셰리 터클은 ‘ 대화를 잃어버린 사람들 ’에서 소셜미디어를 하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현실과 타인을 이해하는 공감능력이 떨어진다고 진단했고, 이런 디지털 문화는 오늘날 우리의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요소가 된다. 또한 정치적 양극화 현상의 심화 역시 세속화의 과정이라 분석한다. 과거에는 하나의 미국이 공유하던 도덕이나 신앙관이 있었지만 오늘날에는 함께 공유하는 도덕관이 없이 결집력만 갖춘 사회를 건설하려는 시도가 곳곳에 일어나고 있다. 이런 극단적 양극화 시대에 교회가 휩쓸려 진보와 보수로 나뉘는 것도 복음전도에 큰 방해물이 되었다.   “선교적 만남”을 위한 여섯 가지 요소  이렇게 기독교에 대해 적대적인 문화 속에서 교회는 어떻게 복음을 전해야 할까? 팀 켈러는 오늘날과 비슷하게 기독교가 적대적이었지만 효과적으로 복음을 전파했던 1세기 기독교 공동체를 통해 이 시대에 “선교적 만남”(Missionary Encounter)을 배워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

“’서울대 몇 명 보냈냐는 질문은 이제 그만!’ … 강남 8학군 교장의 이유 있는 외침”이란 기사를 다시 읽으면서 …

“’ 서울대 몇 명 보냈냐는 질문은 이제 그만 !’ …   강남 8 학군 교장의 이유 있는 외침 ” 이란 기사를 다시 읽으면서 …     https://www.chosun.com/national/weekend/2022/03/26/FRIHAX7I6VEHTDZDNTKKOE3QWY/ 저는 이 기사를 읽고나서 저녁 식사 후 다시금 천천히 이 기사를 읽으면서 “ 서울 중동고의 이명학 교장 ” 이란 분이 인터뷰를 하면서 질문에 답변한 말들에 대한 제 개인 생각을 좀 적어 내려가고자 합니다 .   그 이유는 이 분의 말에 동의하고 공감하는 부분들이 많이 있어서이기 때문입니다 ( 참고로 저는 12 살 때 부모님을 따라 미국에 이민을 온 사람이기에 제 개인적인 생각이 여러분과 다를 수 있음을 말씀 드립니다 ).     1.     " 학교라는 곳은 원래 인류의 축적된 지식과 사람됨을 배우는 곳이다 . 그런데 우리 사회는 오래전부터 서울대에 몇 명 보냈느냐로 순위를 매기기 시작했다 .”    제가 1996 년도인가 미국에 온지 약 16 년 만에 한국을 방문에서 같은 교회에서 유치원 때부터 함께 자라한 친구 목사를 만나 그 친구가 졸업을한 총신대학교 양지캠퍼스를 방문했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   지금까지 제 기억에 남은 것은 그 때 저는 그 학교에서 비석에 쓰여 있는 글인데 바로 “ 신자가 되라 .   학자가 되라 .   성자가 되라 .   전도자가 되라 .   목자가 되라 ” 는 글입니다 .   그런데 저는 이 다섯 가지 “… 되라 ” 는 귀한 글에   부끄럽지만 저부터해서 “ 사람이 되라 ” 는 글을 써야한다는 생각입니다 .   그 이유는 제 생각엔 우리 목사님들의 사람됨됨이 평신도 분들보다 못한 목사님들이 너무나 많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   이 기사에서 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