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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아들을 내주신 이 (롬8:32)

  https://youtu.be/9tJxsCkB1dc?si=yoecT3l2ALBPh1Wa

세상의 모든 민족이 통곡할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민족이   통곡할   것입니다 .      그 고난의 기간이 지나면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을 것이며 별들이 떨어지고 천체가 뒤흔들릴 것입니다 .   그때에 예수님께서 온다는 징조가 하늘에 나타날 것이니 세상의 모든 민족이 통곡할 것입니다 .   그들은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입니다 .   예수님께서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낼 것이며 그들은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선택된 사람들을 모을 것입니다 ( 마태복음 24:29-31, 현대인의 성경 ).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으로 징계하신 후에 그 징계의 고난의 기간이 끝나면 우리를 돌아보시고 하나님의 선한 약속을 이행하시사 우리를 회복시켜 주십니다 .   이것이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   그 계획은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재앙을 주시려는 것이 아니라 번영을 주시고 우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시려는 계획입니다 ( 참고 : 예레미야 29:10-11, 현대인의 성경 ).

탐욕으로 인해 어리석게 된 지혜로운 사람은 ...

탐욕으로 인해 어리석게 된 지혜로운 사람은 ... 탐욕으로 인해 어리석게 된 지혜로운 사람은 일의 끝보다 시작을 중요시하고 , 인내하지 못하고 교만하며 , 성급하게 화를 내는 바보들이나 하는 짓을 합니다 .   또한 그는 “ 어째서 지금이 옛날보다 못한가 ?” 하고 과거에 자신의 전성기를 그리워합니다 ( 참고 : 전도서 7:7-10, 현대인의 성경 ).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때에 따라 아름답게 만드시고 우리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 전도서 3:11, 현대인의 성경 ).

우리가 태어난 때는 알지만 죽을 때는 모릅니다.

우리가 태어난 때는 알지만 죽을 때는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다 정한 때와 기한이 있습니다 .   우리가 태어난 때는 알지만 죽을 때는 모릅니다 ( 전도서 3:1-2, 현대인의 성경 ).   지혜로운 사람은 모든 사람의 끝이 죽음일뿐만 아니라 죽는 날이 출생한 날보다 낫다는 사실을 살아있을 때 명심합니다 .   그리고 그는 죽음에 대해서 많이 생각합니다 (7:1-2, 4, 현대인의 성경 ).

"끝을 마음에 두고 사는 삶"

  https://tgckorea.org/articles/1984?sca= "끝을 마음에 두고 사는 삶 by 정현구 2023-05-16 Image by Bruno /Germany from Pixabay 현대의 특징 중 하나는 죽음을 일상의 삶에서 격리하는 것입니다. 현대사회의 장례문화는 죽음을 눈앞에서 치워버렸습니다. 사람들은 가족들의 눈물 어린 눈길 가운데서 숨을 거두기보다, 병원 중환자실이나 특수병동의 낯선 공간에서 죽음을 맞습니다. 도회지는 무덤을 외곽으로 옮겨 놓고, 병원은 영안실을 잘 안 보이는 뒷부분에다 둡니다. 모든 공간을 가능한 한 살아있는 사람들의 공간만으로 채색하려 합니다. 그래야 생명으로 충일한 생동하는 삶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분명히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삶은 죽음과 결코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죽음이라는 현실을 잊으려 하면 할수록 삶의 의미도 함께 잃어가는 것입니다. 성경은 오히려 죽음을 기억하면서 살라고 가르칩니다.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칫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끝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는 이것을 그의 마음에 둘지어다”( 전도서 7:2 ). 이렇게 권고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잔칫집은 현재의 즐거움으로 인생의 마지막을 망각하게 하지만, 초상집은 인생의 마지막을 깊이 생각하게 하여 현재를 더욱 의미 있게 살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호스티스와 호스피스 ‘호스티스’와 ‘호스피스’란 두 직종이 있습니다. 호스티스는 밤의 화려하고 달콤한 쾌락 속에 사람들을 취하게 해서 인생의 밤, 인생의 마지막을 잊어버리도록 유혹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호스피스는 투병하는 사람의 병상 곁에서 죽음이라는 엄연한 현실에 분명히 눈뜨게 함으로써, 인생의 마지막이 지닌 참된 의미를 깊이 깨닫도록 도와주는 사람입니다. 잔칫집과 초상집, 호스티스와 호스피스, 죽음의 망각과 죽음의 기억, 어떤 것이 우리의 삶을 보다 나은 삶으로 만들까요? 호스피스 봉사자 교육을 받을 때 먼저 두 가지 질문을...

시작보다 끝이!

시작보다 끝이!  어떻게 시작하느냐 보다 어떻게 끝을 내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 ( 끝이 시작보다 더 중요합니다 .)   It is more important 'how to end' than 'how to start'. (Ending is more important than beginning.)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죽음이 끝은 아닙니다 .   “ 그러므로 너희가 일깨어 내가 삼년이나 밤낮 쉬지 않고 눈물로 각 사람을 훈계하던 것을 기억하라    …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찌니라 ” ( 사도행전  20 장  31, 35 절 ).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면서 성령 하나님께서 제 마음에 심어주시고 계시는 인생관이 있습니다 .   그 인생관 중 하나는 바로 사람은 흙으로 왔다가 흙으로 돌아간다는 것입니다 .   다시 말하면 ,  성령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여금 제 마음에 심어주시는 관점은 죽음의 관점입니다 .   전도서  7 장  2 절을 보십시오 : “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   그래서 저는 비록 지금 저는 살아 있지만 장차 다가 올 죽음을 생각하면서 죽음의 관점으로 주어진 이 땅에서의 삶을 어떻게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한 삶을 살아드려야 하는지 기도하며 ,  고민하며 ,  노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   그러한 가운데서 저는 사도행전  20 장  17-38 절 말씀을 새벽기도회 때 전파한 후 기도하는 가운데  “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 라는 생각이 자꾸만 들었습니다 .   물론 우리가 죽으면 죽음 후의 세계가 있음을 믿기에 죽음이 끝이 아닌 것은 저 또한 알고 있습니다 .   저는 그 사후의 세계를 생각하면서  “ 죽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