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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Then one of those standing near drew his sword and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ear.” ( Mark 14:47, Today's Korean Version ) 1. Identifying the People Involved: The person who stood beside Jesus and drew the sword was Simon Peter .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was named Malchus . “Then Simon Peter, who had a sword, drew it and struck the high priest’s servant, cutting off his right ear. The servant’s name was Malchus.” ( John 18:10 ) 2. Jesus' Response to Peter's Action: (a) Jesus said: “Permit even this.” ( Luke 22:51, KJV: “Suffer ye thus far”; RSV: “No more of this” ) The Greek words clarify this: “ἕως τούτου” (“heōs toutou”) = “up to this point” or “even this” “ἐᾶτε” (“eate”) = “allow it,” “let it be,” “leave it alone” Therefore, Jesus is essentially saying: “Let them do what they are doing. Do not resist any further.” “If ...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현대인의 성경)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오늘날 내가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창세기 50 20).

 

 

            새해 2020 1월을 맞이하여 저는 성경 창세기 1장부터 마지막 장 50장까지 읽고 묵상하면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은혜를 많이 받아 누리고 있습니다.  비록 매년 새해 1월달 마다 읽고 묵상하는 창세기 말씀이지만 유난히도 금년에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의 깨달음이 있어 저는 여러 말씀 묵상의 글을 적어서 나눴습니다: “너는 죄를 이겨야 한다”(4:7),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그리스도인”(12:1-4; 11:8), “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인도하시는 것일까요?”(12:4-5, 10; 11:8), “우리는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 것일까요?”( 12:13), “’여호와의 동산’ 같으면 뭐합니까?” (13:10; 벧후2:7-8), “풍부함보다 심한 기근이 훨씬 낫습니다?”(12:5, 10, 13:3), “하나님의 시험과 시가”(21:1-2, 22:1), “그치지 아니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성실”(24:26-2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을 다 이행하실 때까지 …”(27:26, 41-45, 28:15), “그치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복”(28:3-4), “그치지 않는 인간의 갈등”(30:1-2), “왜 사람이 변질되는 것일까요?”(7, 14-16, 27, 30, 41-43), “재산으로 인한 갈등”(31:1-9), “꿈 꾸는 자”(37:19-20), “내가 자식을 잃으면 읽으리로다”(43:14, 44:30a), “목적에 이끌림을 받는 삶”(45:5, 7-8), “미워한 사람들이 이젠 미움을 당할까봐 …”(37:2-4, 50:15-19), “…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30:2, 50:19), “생각(기대)하지도 못햇는데”(45:28, 46:30, 48:11; 3;20).  오늘 저는 창세기의 마지막 장인 창세기 50 20절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란 제목 아래 금년 창세기의 마지막 말씀 묵상의 글을 적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50 20절을 보면 요셉은 그의 형들에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현대인의 성경) “형님들은 나를 해치려고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셔서 오늘날 내가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가 그들에게 그리말한 이유는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왜 요셉의 형들은 두려워하고 있었습니까?  그 이유는 그들의 아버지 야곱이 죽은 후에 혹시나 요셉이 자기들을 미워하여 자기들이 요셉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않을까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15).  그래서 그들은 요셉에게 전갈을 보내어 당신의 아버지는 돌아가시기 전에 당신에게 이런 말을 전하라고 우리에게 지시하셨습니다네 형들이 너에게 악한 짓을 했을지라도 이제 너는 그들의 잘못을 용서해 주어라그러니 이제 당신도 당신 아버지의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를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16-17현대인의 성경).  그 말을 전해 들을 때 요셉은 울었습니다(Joseph wept)(17)[비교: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Jesus wept)(11:35)].  그리고 요셉의 형들은 직접 와서 요셉 앞에 엎드려 우리는 당신의 종들입니다라고 말했습니다(18현대인의 성경).  그 때 요셉은 그들에게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19)[비교야곱이 자기 부인 라헬에게 “…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겠느냐”(30:2)]라고 말한 후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하고 간곡한 말로 위로했습니다(50:20-21). 

 

저는 이 말씀을 금년에 다시금 묵상하면서 먼저 창세기 12장에서 50장까지 나오는 요셉의 증조 할아버지인 아브라함부터 그의 할아버지인 이삭그의 아버지인 야곱 그리고 요셉까지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어떻게 선으로 바꾸셨는지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그러면서 저는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꾸시사 이루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무엇이었는지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첫째로요셉의 증조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새해 창세기 12장부터 나오는 아브라함에 관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12:1)고 명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되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믿음으로 나아갔다는 사실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받은 은혜의 교훈은 나도 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가는 그리스도인이 되야 한다는 교훈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제 명철로는 이해가 안되는 점은(참고3:5) 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풍부한 땅으로 인도해 주시지 않으시고 기근이 심한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신 것인가 입니다(12:5, 10).  그런데 더 이해가 안되는 점은 왜 하나님께서는 자기 아내 사라가 아름다운 여자이기에 그녀로 말미암아 애굽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자기 목숨을 보존하고자 그녀로 하여금 거짓말을 하게 만들었던 아브라함(11-13)으로 하여금 애굽 왕 바로에게 후하게 대접을 받고 양과 소와 노비와 암수 나귀와 낙타를 얻게 하시고(16가축과 은과 금을 풍부하게(13:2) 하셨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조카 룻이 아브라함을 떠난 후에 아브라함에게 너는 눈을 들어 너 있는 곳에서 북쪽과 남쪽 그리고 동쪽과 서쪽을 바라보라 보이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영원히 이르리라 내가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 사람이 땅의 티끌을 능히 셀 수 있을진대 네 자손도 세리라 너는 일어나 그 땅을 종과 횡으로 두루 다녀 보라 내가 그것을 네게 주리라고 축복의 약속을 하신 것일까요?(14-17)  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이끌고 밖으로 나가시사 하늘을 쳐다보고 별을 세어 보아라네 후손도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 (15:5, 현대인의 성경)  왜 하나님께서는 보라 내 언약이 너와 함께 있으니 너는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를 여러 민족의 아버지가 되게 함이니라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내가 너와 네 후손에게 네가 거류하는 이 땅 곧 가나안 온 땅을 주어 영원한 기업이 되게 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하신 것일까요?(17:4-8)  저는 금년에 창세기 나오는 아브라함에 관한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특히 창세기 22장에 나오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는 시험에 대한 말씀과 창세기 24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이 자기 집 모든 소유를 맡은 늙은 종에게 멩세케하여 아들 이삭의 신부감을 구하는 말씀에서 귀한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 귀한 은혜 중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한 말씀을 통해서는 아브라함은 시험을 받을 때에 믿음으로 이삭을 받치되 그는 하나님이 능히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 믿었으므로 이삭을 죽은 자 가운데서 도로 빋았지만(11:17-10)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무 죄도 없으신 독생자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에 죽게하시므로 예수님은 악인들처럼 죽임을 당하여 부자의 묘실에 묻히셨습니다(53:9, 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사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에게 구원과 영원한 생명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귀한 은혜는 아브라함이 자기의 늙은 종을 통해 이삭의 신부감인 리브가를 구하는 말씀을 통해서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이 땅을 네 씨(후손)에게 주리라”(24:7)는 약속의 말씀에 근거해서 “이 곳 가나안 여자와 결혼시키지 않겠다”는 것과 “내 고향의 친척들에게 가서 내 아들 이삭의 신부감을 구하여라”고 맹세케하여(24:3-4) 그의 늙은 종을 자기의 고향의 친척들에게 보냈을 때 결국에는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늙은 종으로 하여금 맡은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게 하”시사 아브라함에게 은혜를 베푸시므로(12현대인의 성경그의 늙은 종으로 평탄한 길을 주셨고(40) “바른 길로 인도”해 주시사 아브라함의 동생인 나홀의 집으로 인도해주셔서 이삭을 위해 신부감을 구하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48현대인의 성경).  결국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맺으신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12:2)는 언약의 말씀대로 그에게 약속하신 인 이삭을 인간적으로는 바랄 수 없는 중인(4:18) 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때(그의 아내 사라는 90)에 주셨습니다(17:17).

 

저는 아브라함을 다시금 묵상할 때 애굽 땅에서 아름다운 아내 사라로 인해 거짓말을 했으면서도 하나님께서는 그의 소유를 더 많게 하셨다는 것아브라함의 나이 100세 때에 약속의 씨로 받은 선물인 하나 밖에 없는 그의 아들 이삭을 하나님께 번제물로 받치라는 시험을 통해 오히려 이삭을 죽은 가 가운데서 도로 받았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축복까지 받은 것그리고 아브라함이 아들 이삭의 신부감을 구하는 과정에서 나타내신 그치지 아니하시는 주님의 사랑과 성실을 생각할 때 아브라함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은 그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라 생각합니다.  선하신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의 말씀을 아브라함에게 이루어 나아가심에 있어서 아브라함의 거짓말과 그와 그의 아내 사라의 웃음(17:17, 18:12)과 이삭을 받치라는 시험과 이삭의 신부감을 구하는 과정에서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습니다(8:28).  그 이유는 하나님은 선하시고(136:1) 아브라함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선하셨기 때문입니다(12:2).    

 

둘째로요셉의 할아버지인 이삭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새해 창세기 28장에 나와있는 이삭이 그의 둘째 아들 야곱을 축복하는 말씀과 너의 외삼촌 라반의 딸 둥 하나와 결혼하여라”(2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묵상하면서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했던 이삭편애했던 이삭(과 리브가), 무분별하게 야곱을 축복한 이삭에게도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26:3-4)고 축복하셨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삭도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가 그랄에 살고 있었을 때 그곳 사람들이 자기의 아름다운 아내 리브가를 탐내서 자기를 죽일까봐 이삭은 리브가에게 자기 아내를 누이 동생이라고” 말하라고 했습니다(6-7).  그렇게 아내로 하여금 거짓말을 히라고 시켰던 이삭은 그 땅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를 축복하시므로 이삭은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12-13).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거짓말하였던 이삭에게도 그의 아버지 아브라함처럼 축복하신 것일까요?  브엘세바에서 밤에 나타나 이삭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십시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하지 말라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이 번성하게 하리라”(24).  하나님께서는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하여” 이삭과 함께 하시사 그에게 복을 주신 것입니다.  이렇게 진실하신 하나님께서는 비록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거짓말을 했지만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에 성실하게 이행하고 계셨던 것입니다.  성경 디모데후서 2 13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우리는 신실성이 없지만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셔서 약속하신 것을 어기실 수 없습니다”(현대인의 성경).  이삭의 신실성이 없음은 그과 그의 자녀인 에서와 야곱과의 관계에서도 좀 엿볼 수가 있습니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를 좋아하였으므로 그를 사랑하였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25:28, 현대인의 성경).  이삭이 에서를 사랑했던 이유는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건적인 사랑으로 자식을 사랑했던 이삭은 그가 사랑하는 에서가 40세에 헷 족속 유딧과 바스맛을 아내로 맞이하여 그 두 며느리로 말미암아 자기 뿐만 아니라 자기의 아내 리브가의 마음에도 근심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26:34-35) 이삭은 맏아들 에서를 죽기 전에 마음껏 축복하려고 했습니다(27:1-4).  그런데 리브가는 무조건적으로 둘째 아들 야곱을 사랑했던 것 같습니다(25:28).  그래서 리브가는 자기의 남편인 이삭을 속여서 야곱으로 하여금 그의 형 에서 대신 이삭의 축복을 받게 했습니다(27:6-29).  이러한 과정 속에서 이삭은 야곱을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했습니다(23).  제가 보기엔 이삭은 적어도 다섯 번이나 야곱이 에서인지 확인하려고 시도했지만(18, 20, 21, 24, 26-27그는 제대로 확인을 하지 못하고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내 아들의 향취는 여호와께서 복 주신 밭의 향취로다 하나님은 하늘의 이슬과 땅의 기름짐이며 풍성한 곡식과 포도주를 네게 주시기를 원하노라 만민이 너를 섬기고 열국이 네게 굴복하리니 네가 형제들의 주가 되고 네 어머니의 아들들이 네게 굴복하며 너를 저주하는 자는 저주를 받고 너를 축복하는 자는 복을 받기를 원하노라고 마음껏”(4축복했습니다(27-29).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창세기 25 23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 하셨더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하신 말씀으로 하나님께서는 결국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되 이삭과 리브가의 편애도 사용하시고 또한 리브가와 야곱의 속임수도 사용하셔서 하나님께서는 이삭에게 하신 그 말씀대로(25:23) 이삭으로 하여금 에서가 아닌 야곱을 축복케 하셨습니다.  

 

저는 이삭을 다시금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하실 때에 아브라함과 함께 모리아 땅으로 가면서(22:2)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한 말이 생각납니다: “내 아버지여  …  불과 나무는 있거니와 번제할 어린 양은 어더 있나이까”[(현대인의 성경) “불과 나무는 여기 있는데 제물로 바칠 어린 양은 어디 있습니까?'”](7).  그 질문을 받은 아버지 아브라함은 이삭에게 내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8)고 말했는데 그 때 이삭은 더 이상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질문하지 않고 성경은 두 사람이 함께 나아가서 하나님이 그에게 일러 주신 곳에 이른지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8-9).  이 말씀을 생각할 때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의 말씀대로 번제할 어린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실 줄 믿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아버지 아브라함과 함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에 이르로 아브라함이 그곳에 단을 쌓고 나무를 벌여 놓은 다음 이삭을 묶어 단의 나무 위에 올려 놓았을 때 성경은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질문했다든지 소리를 질렀다든지 그런 말씀이 없습니다(9현대인의 성경).  충분히 아들 이삭의 입장에서는 아버지분명히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나요?’라고 질문을 던질 수 있었을텐데 말입니다.  그런데 더 놀랍고 흥미로운 점은 아브라함이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자기 아들 이삭을 치려고 하는 순간에도 성경은 이삭이 무슨 말을 했다는 말씀이 없습니다.  성경은 이삭의 반응에 대해 침묵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자기 아버지가 친히 자기를 번제물로 삼아 칼로 자기를 잡으려고 하는 순간에도 성경은 이삭의 반응에 대해 침묵하고 있는 것일까요?  물론 결과만 본다면 이삭은 죽을 뻔하다가 살아났습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 아브라함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친히 번제할 숫양을 준비하신 것을 목격했기 때문입니다(13).  그리고 이삭은 자기 아버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되 독자인 자기까지도 하나님에게 아끼지 않으셨다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달았을 것입니다(12).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아버지 아브라함의 손에 죽임을 당할뻔했던 아들 이삭의 삶에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자신의 하나님은 여호와 이레”(“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라는 진리를 조금이나마 배웠다고 생각합니다(14).  그래서 이삭은 자기의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지 못하고 있었을 때에도 하나님께 믿음으로 간구하므로 하나님께서 그의 간구를 들으시사 리브가가 임신하여 쌍둥이인 에서와 야곱을 기도 응답으로 받았다고 생각합니다(25:21-24).  그런데 아버지 이삭은 맏아들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를 좋아하였으므로 그를 사랑하였고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했습니다(28).  이러한 부모의 편애가운데서 결국 이삭은 에서를 축복하려고 하다가 리브가의 도움을 받아 야곱이 대신 그 축복을 가로채서 받았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편애와 속임수 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는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고 말씀하신대로(23큰 자인 에서가 어린 자인 야곱을 섬기게 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습니다(8:28).  그 이유는 하나님은 선하시고(136:1) 이삭을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선하셨기 때문입니다(12:2).   

 

셋째로요셉의 아버지인 야곱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새해 창세기 29장에 나오는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두 딸인 레아와 라헬(16)을 아내로 삼는(21, 28과정과 그 두 자매 사이의 갈등(31-30:24) 및 야곱과 라반 사이의 소유로 인한 갈등을 묵상하면서 안그래도 형 에서를 두 번이나 속여서 장자의 명분과 자기 복을 빼앗았던 야곱(27:36)을 어떻게 하나님께서는 두 아내 중 라헬을 더 사랑(편애)하였던 야곱에게 아버지 이삭이 축복한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시고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신 복을 네게 주시되 너와 너와 함께 네 자손에게도 주사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 곧 네가 거류하는 땅을 네가 차지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28:3-4)는 말씀을 성취에 나아가셨는지가 흥미로왔습니다.  특히 속이고 속임을 당했던 야곱이요 시력이 약한 레아보다 아름다운 라헬을 더 사랑(편애)했던 야곱을 순식간에 부자가 되어 많은 남녀 종들을 거느리고 수많은 양과 낙타와 나귀를 소유하게하신 하나님의 역사가 놀랍습니다(30:43, 현대인의 성경).  그 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라반이 야곱에게 레아와 라헬 뿐만 아니라 레아에게는 자기의 여종인 실바를 레아의 시녀로 주었고(29:24) 라헬에게는 자기의 여종인 빌하를 라헬의 시녀로 주는 것(29)을 허락하시므로레아와 라헬간에 관계에서 시기와 갈등을 통해서도 결국에 가서는 야곱은 그 네 여인들을 통해 아들 12명과 딸 한명을 얻게하셨다는 사실이 흥미로왔습니다(31-30:24, 35:18).  그 이유는 결국 야곱은 그 네 명의 여인들을 통해 12지파의 조상들을 낳게 되는 그것은 결국에 가서는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한대로 전능하신 하나님이 네게 복을 주시어 네가 생육하고 번성하게 하여 네가 여러 족속을 이루게 하셨기 때문입니다(28:3).  물론 이것은 하나님께서 야곱의 아버지인 이삭에게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시겠다는 축복의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26:4). 더 나아가서이것은 하나님께서 이삭의 아버지요 야곱의 할아버지인 아브라함에게 이미 하신 축복으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12:3), “… 네 후손도 저 별들처럼 많을 것이다”(15:5, 현대인의 성경),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17:6)라는 말씀을 이루신 것입니다

 

저는 야곱을 다시금 묵상할 때 그가 라헬을 더 사랑하는 그의 편애는 그의 부모님인 이삭과 리브가의 영향이 있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야곱은 아름다웠던 어머니 리브가의 사랑을 받았기에 시력이 약했던 레아보다 아름다운 라헬을 더 사랑했다고 생각합니다.  남편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레아는 하나님께서 그녀의 태를 여시고 아이를 가질 수 있겠하셨지만(29:31, 현대인의 성경라헬은 남편 야곱에게 아들을 낳지 못했습니다(30:1).  그 결과 라헬은 언니 레아를 시기하였고 남편 야곱과도 갈등이 있었습니다(1-2).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라헬도 기억하시고 그녀의 기도를 들으셔서 그녀로 하여금 임신하여 요셉을 낳게 하셨습니다(22-23현대인의 성경).  그러한 과정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소유가 적었던 라반으로 하여금 야곱의 발이 이르는 곳마다 복을 주시므로 라반의 가축이 번성하여 떼를 이루게하셨습니다(29-30).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집을 세우길 원했던 야곱(30)을 매우 번창하게 하셔서 남녀 종들과 수 많은 가축들을 소유하게 하셨습니다(43현대인의 성경).  그 결과 라반의 가정과 야곱의 가정이 소유(재산)로 인해 갈등이 생겼습니다(31).  그리고 그 갈등으로 인해 결국 야곱은 자기 가족와 모든 가축과 모든 소유물을 이끌고 라반의 집을 떠나 가나안 땅에 있는 자기의 아버지 이삭에게로 돌아가려고 했습니다(17-18).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저는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의 편애와 야곱과 함께 이삭을 속이면서 장자의 축복을 다 받게 허락하신 것도 창세기 25 23절의 말씀을 부분적으로 성취하셨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결과 야곱은 에서에게 미움과 이삭의 임종 후 죽임을 당할 수 있는 위험으로 인해 결국 어머니 리브가의 말대로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가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그것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되 그곳에서 야곱은 여자 네 명을 통해 열두 아들과 딸 한명을 자녀로 얻게 되므로 번성케하시겠다는 축복의 말씀을 성취해 나아가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야곱의 삶에도 선을 이루시사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축복이삭에게 약속하신 축복을 야곱의 삶 속에 이루어 나아가셨습니다.

 

마지막 넷째로요셉을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저는 새해 창세기 37장부터 나오는 꿈 꾸는 자” 요셉(19)에 대한 말씀을 다시금 묵상하면서 편애를 받은 아버지 야곱이 요셉을 다른 열 명의 아들들보다 편애하므로 17세 소년인 요셉은 그의 형들에게 미움을 받았고(3-4또한 하나님께서 꾸게 하신 꿈으로 인해 그들에 더욱 미움과 시기를 받았습니다(5, 8, 11).  그 결과 요셉은 죽임을 당할 뻔하다가(21구덩이에 던진바 되지만(22결국에는 미디안 상인들을 통해(28애굽에서 바로의 신한 친위대장 보디발에게 팔리게 됩니다(36).  그렇지만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요셉은 형통한 자가 되어(39:2) 그의 주인인 보디발에게 은혜를 입게 되었고(4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치므로 모함을 받아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갇히지만(6-20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도 은혜를 받게 하셨습니다(21).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억울하게 옥에 갇힌 요셉에게 인자를 더하셨습니다.  흥미롭지 않습니까?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더욱 미움을 받았던 요셉에게 하나님께서는 인자를 더하셨다는 사실이요.  하나님께서는 요셉으로 하여금 보디발에게만 은혜를 입게하신 것이 아니라 간구장에게도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형들에게 죽임을 당할뻔 하다가 구덩이에 있다가(37:22) 애굽에서 보디발의 노예가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므로 그의 주인 보디발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39:4), 옥에서는 간수장이 감옥 안에 제반 업무를 다 요셉에게 맡겼습니다(22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낮아졌던 요셉을 높이기 시작하셨던 하나님께서는 결국 그 감옥에서 애굽 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케 하시므로(40그로부터 만 2년이 지난 후에 바로 왕의 꿈까지 해석케 하시므로(41:1-36) 요셉의 나이 30세에(46그에게 애굽 온 땅의 총리”(41)[“애굽 온 땅의 통치자”(45:8)]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요셉을 높이신 하나님의 목적은 요셉으로 하여금 그의 형들을 구원하고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세상에 두시려고[살아 남도록 하기 위해서”(현대인의 성경)] 였습니다(5, 7).  요셉은 그 하나님의 목적을 “2년 동안 흉년이 들었지만 앞으로도 5년 동안” 흉년이 더 남은 그의 나이 39(30살 때 애굽의 총리 + 7년 풍년 + 2년째 흉년때 그의 형제들에게 말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 하나님의 목적에 이끌림을 받아 약 71년 동안 세까지 자기를 해아려고 했던 형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보살펴 주다가(50:19-20, 현대인의 성경그의 나이 110세 때 애굽에서 죽습니다(22, 26).

 

저는 요셉을 다시금 묵상할 때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요셉이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요셉은 자기를 더 사랑했던 아버지 야곱하고 17년 동안 가나안 땅에서 함께 살다가 애굽에서도 야곱이 147(47:28)에 죽을 때까지 17년 밖[야곱이 130세 때 애굽으로 내려왔기에(9)에 함께하지 못합니다.  요셉은 자기를 더 사랑해준 아버지 야곱하고 다 합쳐서 34년 밖에 함께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형들에게 미움과 더욱 미움을 받은 이유도 자기가 아버지 야곱에게 더 사랑해 달라고 부탁드린 것도 아니고 아버지 야곱이 자기를 더 사랑해준 것이고두 번 꿈을 꾼것도 자기가 꾸고 싶어서 꾼 것도 아니고 하나님께서 꿈을 꾸게하신 것인데 그 결과로 형들에게 미움과 시기를 받아 죽임을 당할 뻔하고 애굽인 보디발의 집에 팔린 것도 생각하면 인간적으로 요셉의 입장에 서서 생각하면 불쌍하다고 생각합니다.  또한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날마다 유혹한 것도 생각해보면 요셉의 용모가 잘생긴 미남자였다”(39:6, 현대인의 성경)는 것도 자기 잘못도 아니고그녀의 모함으로 누명을 써서 옥에 갇힌 것도 생각해보면 얼마나 억울합니까.  그리고 감옥에서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해주면서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40:14-15)라고 말했지만 그 관원장은 요셉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기억하지 않았습니다(23현대인의 성경).  그것도 만 2년이나요(41:1, 현대인의 성경).  그럼에도 불구하고 좋으신 하나님은 요셉을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12:2)을 이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셨습니다(8:28).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편애로 인해 형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던 요셉으로 하여금 꿈을 꾸게 하시사 더욱 미움을 받는 것을 허락하셨지만 꿈 꾸는 자”(37:19) 요셉을 죽을 뻔한 상황에서 건져주셨을 뿐만 아니라 구덩이에서도 건져주셨습니다.  그리고 비록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노예로 낮아졌지만 하나님께서는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꿈 꾸는 자를 형통한 자”(39:2)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보디발의 아내의 모함으로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혔지만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요셉과 함께하셨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시사 바로 왕의 궁이 아니 그 감옥에서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게 하시고 그의 꿈을 해석케 하시므로 결국에 가서는 하나님의 때에 바로 왕의 꿈까지도 해석케 하시사 요셉을 높이시되 애굽의 총리까지 되게 하셨습니다.  이렇게 사람들에게 낮아짐 속에서 하나님께 높임을 받는 것이 사람들에게 높임을 받고 하나님께 낮아짐을 받는 것보다 훨씬 낫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통해 우리 가족을 구하시고(45:5, 현대인의 성경) “큰 구원으로” 그의 형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그들의 후손들 세상에 두셨습니다(7).  이렇게 그의 형들은 요셉을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50:20).  그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본(34:8) 요셉은 그의 형들과 그들의 자녀들을 그의 아니 110세에 죽을 때까지 보살펴 주었습니다(20, 22, 26현대인의 성경).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선하십니다(136:1).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은 선하십니다(12;2).  하나님은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우리들에게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8:28).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압니다(34:8).  “꿈 꾸는 자” 요셉(37:19)은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 본자였습니다.  그의 형들은 요셉을 해하려 했지만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셨습니다(50:20).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형 에서를 두 번이나 속여서 에서의 장자의 명분과 에서의 복을 빼앗으므로(27:36) 에서의 미움을 받아 아버지 야곱이 임종하면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어머니 리브가가 듣고(41-42야곱을 그의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피시시켰지만(43-44결국 하나님께서는 라반의 집에서 야곱의 편애와 그의 두 아내인 레아와 라헬의 갈등 속에서도 선을 이루시사 야곱에게 12명의 아들과 한 명의 딸을 주시므로 그의 자손을 번성시키셨으면(29-30그에게 물질의 축복도 주셔서 부자가 되게하셨습니다(30:43, 현대인의 성경참고: 32:10).  요셉의 할아버지 이삭은 하나님께서 이삭의 아버지 아브라함을 시험하셨을 때 번제할 어린 양”(22:7) 대신 제단 나무 위에서 아버지 아브라함의 손에 칼로 죽임을 당할 뻔하다가 하나님께서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8) “한 숫양이 대신하여 번제로 드려졌습니다(13).  이삭은 아버지 아브라함에 죽임을 당할 뻔하다가 하나님께서 대신 준비해 놓으신 한 숫양으로 인해 죽지 않았지만 우리 대신 성부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죽게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요셉의 증조 할아버지 아브라함은 자신과 언약의 맺으신 하나님의 말씀(12:1)을 따라가되(4믿음으로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가므로[가야 할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 떠나므로(현대인의 성경)](11:8) 가나안 땅에 들어갔습니다(12:5).  그 때 그의 나이 75(4), 25년 후이 그의 나이 100세 때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되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않고 오히려 믿음이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되 약속하신 그것을 하나님께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여(4:18-21) 약속의 아들인 이삭을 얻습니다(21:5).  그 독자 이삭을 받치라는 하나님의 시험도 하나님의 약속을 받은 아브라함은 자신의 하나밖에 없는 외아들을 믿음으로 바치되(11:17) “하나님께서 죽은 사람들까지도 다시 살리실 수 있다고 믿음으로 받쳤습니다(19현대인의 성경).  아브라함은 독자 이삭을 제단 나무 위에 놓고 손을 내밀어 칼을 잡고 이삭을 치려고 하는 순간 하나님의 천사가 아브라함아아브라함아하고 불러 그 아이(이삭)에게 네 손을 대지 말라고 칼로 이삭을 치지 못하게 했습니다(22:9-12,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독생자 예수님이 십자가 상에서 나의 하나님나의 하나님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셨으면서도(27:46)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는 것을 멈추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 상함을 받게 하시기를 원하사 질고를 당하게 하셨습니다(53:10).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는 자기 영혼의 수고(11)를 하시되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십자가에 달려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2:6-8).  “예수는 우리가 범죄한 것 때문에 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시기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4:25).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습니다(2:1, 5).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5, 8). 

 

 

 

아브라함이삭야곱요셉의 하나님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선하심을 더욱더 맛보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20 1 19선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이루심에 있어서 우리가 당하는 모든 것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사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게 하심을 믿음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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