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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진정성은, 눈에 보이는 대상을 대하는 실제적인 태도로만 증명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진정성은 , 눈에 보이는 대상을 대하는 실제적인 태도로만 증명됩니다 .         “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이는 모든 사람으로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도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또 인자됨으로 말미암아 심판하는 권한을 주셨느니라 이를 놀랍게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 요한복음 5:22-29).     (1) 저는 오늘 요한복음 5 장 19-29 절 [ 주제 : “ 아들의 권한 ”( 개역개정 성경 )] 말씀의 마지막 두 번째 부분인 22-29 절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   저는 22-29 절 말씀을 한국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으로 읽었을 때 제일 첫째로 “ 심판 ”[κρίσις ( 크리스시 )] 관련 단어가 총 5 번 나오는 것 [22( 두번 ), 24, 27( 두번 ), 29 절 ] 을 주목하게 되었습니다 .   동시에 저는 “ 아버지께서 아무도 심판하지 아니하시고 심판을 다 아들에게 맡기셨으니 ”[ο ὐ δ ὲ γ ὰ ρ ὁ πατ ὴ ρ κρίνει ο ὐ δένα, ἀ λλ ὰ τ ὴ ν κρίσιν π ᾶ σαν δέδωκεν τ ῷ υ ἱῷ ( 우데 가르 호 파테르 크리네이 우데나...

봉사자가 아니라 우선 예배자로 세움을 받아야 합니다.

봉사자가 아니라 우선 예배자로 세움을 받아야 합니다 . 하나님께서 모세를 이집트 바로 왕에게 보내시사 하나님의 백성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내신 목적은 " 너희가 이 산에서 나를 섬길 것이다 " 였습니다 ( 출애굽기 3:12, 현대인의 성경 ).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   하나님께서 진정한 모세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사 십자가에 죽으시고 무덤에서 부활하시므로 우리를 구원해 내신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예배케 하기 위해서 입니다 .   이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인 예배를 생각할 때 우리는 봉사자가 아니라 우선 예배자로 세움을 받아야 합니다 .

이러한 예배자가 되고 싶습니다.

이러한 예배자가 되고 싶습니다 .    1. 주님의 발치에 앉아 주님의 말씀을 듣는 예배자 ( 눅 10:39) 2. 지극히 비싼 향유를 주님의 발에 붓고 머리털로 주님의 발을 닦는 예배자 ( 요 12:3) 3. 주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는 자 ( 마 28:9) 4. 주님의 신발끈을 풀어드릴 자격도 없음을 아는 예배자 ( 요 1:27) 5. 주님의 재림의 길을 곧게하는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는 예배자 (23 절 )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는 예배자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는 예배자 무덤을 살펴보려고 갔던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는 "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고 전에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다 .   여기 와서 그분이 누우셨던 곳을 보아라 ..." 는 천사의 말을 듣고 " 두려우면서도 기쁨에 넘쳐 " 예수님의 빈무덤을 보지도 않고 " 급히 떠나 제자들에게 알리려고 뛰어갔 " 습니다 .   " 그 때 갑자기 예수님이 그 ( 녀 ) 들 앞에 나타나 " 셨고 , 그녀들은 예수님께 " 가까이 가서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 " 했습니다 ( 마태복음 28:1-9).    참된 예배자는 예수님의 발을 붙잡고 경배하는 자로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믿고 기쁨에 넘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자입니다 .

헌당식의 예배자들

  헌당식의 예배자들   [ 느헤미야  12 장  27-30, 43 절 말씀 묵상 ]   여러분은 헌당식과 입당식의 유래를 아십니까 ?    “ 초막이나 궁궐이나 주 예수 모신 곳이 그 어디나 하늘나라이기 때문에 초대교회는 교회당 ( 예배당 ) 이 없었습니다 .    집에서 들에서 산에서 자유롭게 모였습니다 .    교회란  ‘ 에클레시아 ( Ekklesia )’  곧  ‘ 불러낸 무리 ’ 인 것입니다 .    건물이 결코 성전이나 성당이 아니라 구원얻은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성전입니다 .    교회가 변질되기 시작한  2 세기 이후부터 교회당 건물은 짖기 시작하여 콘스탄틴이 등장하면서 교회당이 고급스러워지더니 로마 카톨릭 전성기에 소위 성당 ( 聖堂 ) 이 출현하기 시작했습니다 .    그리고 부패는 더욱 속도가 빨라지더니 바티칸 베드로 성당을 위해 속죄권 ( 면죄부 )  판매라는 중세 암흑 시대의 절정을 이루었던 것입니다 .    오늘날 한국의 개신교 교회당마다 중세 성당을 뺨치는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 인터넷 ).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 교회당 헌당식 ’ 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과정에서  ‘ 일하는 자들 ’( workers ) 과  ‘ 파숫군들 ’( watchers ) 이 있었지만 이젠 성벽이 완공된 후에는  ‘ 예배자들 ’( worshipers ) 이 세워지고 있음을 오늘 본문에서 볼 수가있습니다 .    이 예배자들은 얼마나 열심히 봉헌식 / 헌당식 예배를 드렸는가 하면  12 장 43 절에 보면  “ 예루살렘에의 즐거워하는 소리가 멀리 들렸는니라 ” 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