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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 (고전 15:12-20)

  https://youtu.be/aGt9hEV6LvE?si=rwEe20LoVNX9W9De

우리는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입니다.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스가랴 9 12절 상반절).

 

 

          어제 월요일 밤에 잠들기 전에 성경을 읽다가 스가랴 9 12절 상반절인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 …”라는 말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잠시나마 이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했을 때 갇혀 있으나란 말씀에 관하여 두 성경 말씀이 생각났고 오늘 다시금 묵상을 했을 때 또 하나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1)  첫 번째 생각난 성경 말씀은 출애굽기 14 3절입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애굽 왕 바로의 이성적인 생각대로 그가 자기 전차를 갖추어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 자손을추격했을 때(6현대인의 성경이스라엘 자손은 광야에 갇힌 바 되었습니다(3).  그 때 이스라엘 자손은 바로 왕과 그의 애굽 군대가 접근해 오고 있는 것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도와 달라고 부르짖다가(10현대인의 성경모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11).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갇힌 바 되었으므로 그들은 이 광야에서 죽게” 될 줄로 알고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었습니다(10-11).

 

(2)  두 번째 생각난 성경 말씀은 요나 2 6절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내가 해저의 산 밑바닥까지 내려가 죽음의 땅에 갇혀 있었으나 나의 하나님 여호와여주께서 내 생명을 죽음에서 구해 내셨습니다.”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요나 선지자는 죽음의 땅에 갇혀 있으므로(6현대인의 성경고통 중에 주님께 부르짖되 그 무덤과 같은 곳에서 주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2현대인의 성경).   

 

(3)  세 번째 생각난 성경 말씀은 사도행전 16 23-24절입니다: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명하여 든든히 지키라 하니 그가 이러한 명령을 받아 그들을 깊은 옥에 가두고 그 발을 차꼬에 든든히 채웠더니.”

 

사도 바울과 실라는 감옥에 갇힌바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25).    

 

저는 이 세 성경 구절 말씀을 다시금 묵상하면서 왜 하나님께서는 (1)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자손들을 홍해 앞에서 갇힌 바 되게 하셨고 (2) 요나 선지자를 큰 물고기 뱃속에 갇힌 바 되게 하셨으며 또한 (3) 사도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 갇힌 바 되게 하셨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과연 하나님의 뜻이 무엇이었을까요?  저는 이렇게 생각합니다:

 

(1)  왜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자손을 홍해 앞에서 애굽 왕 바로가 이성적으로 생각한 대로 갇힌 바 되게 하셨을까요?

 

성경 출애굽기 14 13-14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이 두 성경 구절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뜻을 조금이나마 알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홍해 앞에서 갇힌 바 되게 하신 것은  애굽 왕 바로와 그의 애굽 군대를 심판하시므로[“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13)(참고: 23-28, 30)]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13)(참고: 19-22, 29-30)].  하나님의 뜻은 심판을 통한 구원이었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홍해에서 갇힌 반 된 이스라엘 자손을 구원해 내시고 바로 왕과 애굽 군대를 심판하시므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신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이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들에게 행하신 그 큰 능력을 보았으므로 백성이 여호와를 경외하며 여호와와 그의 종 모세를 믿었습니다(31).

 

(2)  왜 하나님께서는 요나 선지자를 큰 물고기 뱃속에 갇힌 바 되게 하셨을까요?

 

성경 요나 2 9절을 보십시오: “나는 감사하는 목소리로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 하니라.”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한 요나 선지자는 자신의 요청대로 바다에 던진바 되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미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요나를 삼키게 하셨습니다(1:12, 15, 17)[이것은 요나 선지자가 경험한 첫 번째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는 그 큰 물고기 뱃속에 갇힌 바 되어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리면서(2:1, 9) 결국에 가서는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라고 기도를 드렸습니다(9).  저는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요나로 하여금 큰 물고기 뱃속에 갇힌바 되게 하신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 선지자를 큰 물고기 뱃속에 갇힌 바 되게 하신 뜻은 그로 하여금 구원은 여호와께 속하였나이다라고 고백케 하시기 위해서입니다[이 고백 후 하나님께서는 그 큰 물고기를 명령하사 그 큰 물고기를 요나를 육지(해변)에 토해 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요나 선지가가 경험한 두 번째 하나님의 구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두 번이나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요나 선지자는 자신이 선포한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금식을 선포하고(3:1-5) 악한 길에서 돌이켜 진정으로 회개한 니느웨 백성들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시니까(10매우 싫어하고 성내되 "사는 것보다 차리라 죽는 편이 낫겠습니다"라고 말할 정도로 성냈습니다(4:1, 3, 현대인이 성경).  어떻게 자신의 불순종으로 육신의 생사의 갈림길에서 두 번이나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종 요나 선지자는 불순종의 삶을 살면서 악을 행하던 니느웨 백성들이 회개하므로 구원을 받았는데 그리도 싫어하고 성냈을까요?  그는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사람"을 아끼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본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11현대인의 성경)].

 

(3)  왜 하나님께서는 사도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 갇힌 바 되게 하셨을까요?

 

성경 사도행전 16장 30-31절을 보십시오: “그들을 데리고 나가 이르되 선생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 하거늘 이르되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하고.”  감옥에 갇힌 바 된 바울과 실라는 한 밤중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25).  “그 때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 집터가 흔들리고 감방문이 모두 열리며 죄수들을 묶었던 쇠고랑이 다 풀어졌고 졸던 간수가 깨어나 감방 문이 다 열린 것을 보고 죄수들이 도망친 줄로 생각하고 칼을 빼어 자살하려고” 했습니다(26-27현대인의 성경).  그 순간 바울이 크게 소리 질러 네 몸을 상하지 말라 우리가 다 여기 있노라고 말하므로 그 간수의 육신의 생명을 자살로부터 건졌습니다(28).  그 간수는 등불을 구해 가지고 뛰어 들어가 무서워 떨며 바울과 실라 앞에 엎드리고 그들을 데리고 나가 선생님들이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받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29-30).  그 때 그들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고 말했습니다(31).  그리고 결국 그 간수와 온 가족은  하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33-34).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과 실라를 감옥에 갇힌 바 되게 하신 하나님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뜻은 그 간수와 그의 온 가족의 구원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갇힌 바 되었던 홍해 앞에의 이스라엘 자손이나큰 물고기 뱃속의 요나 선지자나 감옥의 바울과 실라를 통해 하나님의 구원의 뜻을 이루셨습니다.  이 구원의 뜻을 이미 이루셨고지금도 이루어 나가시며 앞으로도 이루실 구원의 하나님께서는 스가랴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라고 말씀하셨습니다(9:12).  여기서 저는 이젠 소망을 품은 자들에 대해서도 좀더 묵상하고자 합니다

 

저는 어제 밤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이러한 짧은 묵상 글을 써서 나눴습니다: “동서남북 갇혀있다 할지라도 우리는 소망을 품은 자들입니다(스가랴 9:12; 참고출애굽기 14요나 2).”  저는 소망을 생각할 때 생각나는 찬송가는 바로 이 몸의 소망 무언가” 3절 가사입니다: “세상에 믿던 모든 것 끊어질 그 날 되어도 구주의 언약 믿사와 내 소망 더욱 크리라.”  개인적으로 이 3절 가사를 좋아합니다.  그 이유는 제가 세상에 믿던 모든 것 하나씩 하나씩 점진적으로 다 끊어져 갈 때 제 자신의 무기력함과 무능력함을 점진적으로 더 깨달아 가므로 제가 믿음으로 붙잡을 수 밖에 없는 것은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약속의 말씀뿐이기 때문입니다.  개인적으로는 제가 받은 주님의 약속의 말씀은 요한복음 6 1-15절이고교회적으로 받은 주님의 약속의 말씀은 마태복음 16 18절입니다.  저는 제 자신의 연약함 속에서 더욱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의 능력에 붙잡힌바 되어 믿음으로 기도하며믿음으로 기대하며 소망가운데 인내하면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본받고 싶은 사람은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입니다.  성경 로마서 4 18절 상반절을 보십시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현대인의 성경) “아브라함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믿었으므로 …”].  아브라함은 그의 나이 75세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았고(12:1-4), 그 약속의 말씀의 성취는 그가 100세 때 받았습니다(21:5).   25년 동안 인간적으로(의학적으로아브라함은 세상에 믿던 모든 것이 점진적으로 끊어졌고그의 나이 100세가 되어서는 자기 몸은 죽은 것과 다름이 없었고 그의 아내 사라도 나이가 많아(90도저히 출산할 수 없는 것을 알고도 믿음이 약해지지 않았습니다(19현대인의 성경).  그는 믿음이 없어(불신앙으로하나님의 약속의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20).  더 나아가서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했습니다(21).  한 마디로아브라함은 도저히 불가능한 것을 바라고 믿었습니다(18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소망을 품은 자는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믿음으로 더욱더 불가능해져 가는 갇힌 상황 속에서 오히려 주님을 향한 소망이 더욱더 커져 갑니다.  저는 이러한 소망을 품은 자가 되고 싶습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저는 성경 스가랴 9 12절의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란 말씀을 월요일 밤에 접한 후 묵상하다가 어제 화요일에도 다시 묵상하고 이 말씀 묵상의 글을 쓰다가 화요일 가족 기도 모임 때 이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수요일 이렇게 어제 이어서 이 말씀 묵상의 글을 다시금 써내려 가면서 다시금 갇혀 있으나란 말씀과 소망을 품은 자들아란 말씀을 나눠서 묵상하면서 이 글을 수정 및 마무리를 짓고자 합니다.  개인적으로 제 자신이 죄 가운데 허덕이면서 제 마음의 어두운 방에 오랜 기간 동안 갇혀 있었던 어두운 경험이 있었고가정적으로도 제 죄로 인해 자녀들의 고통과 심지어 첫째 아기의 죽음의 과정을 통해서도 죽음의 땅에 갇혀 있었던 경험이 있었습니다(2:6, 현대인의 성경).  교회적으로는 여러 성도님들이 양로원이나 양로병원이나 병원 중환자실 및 호스피스에 갇혀 있으신 모습을 본 경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장례 및 하관 예배를 인도하면서 그 분들이 관 안에 갇혀 있으신 모습과 무덤 속에 갇혀 있으신 것을 보았습니다.  인터넷 사역적으로는 지금 여러 지체들이  질병으로 인해 심한 고통과 가정의 문제로 인하 고통에 갇혀 있는 형제자매들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믿던 사람(예를 들어의사 선생님이든 배우자든 부모님이든 자녀이든 등등)과 믿던 것(예를 들어재정보험내 건강내 힘내 지식/지혜 등등)이 하나씩 하나씩 끊어져 나갈 때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무기력함과 무능력함을 뼈저리게 느끼므로 낙심되고 낙망할 수가 충분히 있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우리가 이 세상에 믿던 것이 끊어져 생사의 갈림길에 놓을 때 우리는 두려움 속에서 절망까지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죽음의 공포에 갇히게 될 때더 이상 사랑하는 식구를 이 땅에서 볼 수가 없고 헤어질 수도 있다는 생각 속에 갇히게 될 때절망 속에 갇힌 바 되어 자포자기하고 싶은 마음에 갇히게 될 때 우리는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9:12)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길 기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소망되신 주님만을 바라보면서 아빠 아버지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에 마치 시편 기자가 자기 영혼에게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 42:5, 11; 43:5)고 선포하면서 하나님께 간구했던 것처럼 우리도 우리 자신의 영혼에게 나는 소망을 품은 자다라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선포하면서 간구할 수 있길 기원합니다.  비록 지금 우리가 갇혀 있다 할지라도그래서 지금 우리의 이성적인 생각은 불가능하다고 생각되고 우리의 마음은 절망적이라 할지라도우리는 주님을 갈망하면서 믿음으로 우리 자신에게 나는 소망되신 주님을 마음에 모신 자로서 나는 소망을 품은 자다라고 외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으십시다.  그리할 때 소망되신 주님께서 우리가 갇힌 바 되었을 때 당한 고통에 대해서 두 배의 축복으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9:12, 현대인의 성경).

 

 

 

갇혀 있으나 소망을 품은 자들아”(9:12)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21 9 8,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께서믿음에서 오는 모든 기쁨과 평화를 여러분에게 충만하게 주셔서성령의 능력으로소망이 여러분에게 차고 넘치기를 바랍니다”(15:13, 새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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