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먼저 보내신 이유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세기 45장 4-5절).
저는 종종 새벽기도회 때 기도하면서 제 인생을 뒤돌아 보곤 합니다. 그리할 때 저는 제 인생을 한 6 단계로 나눠서 생각하곤 합니다. 첫째 단계는 태어나서 12살까지 한국에서의 삶입니다. 둘째 단계는 미국에 부모님 따라 이민와서 19살까지 사춘기의 삶입니다. 셋째 단계는 19살 대학교 1학년 때 교회 대학부 수련회 때 약속의 말씀인 요한복음 6장 1-15절 말씀으로 하나님의 구원의 확신과 부르심을 받아 목사가 되겠다고 결심하여 준비하는 삶입니다. 넷째 단계는 30살 때 아내와 결혼한 후 첫째 아기의 고통과 죽음까지 겪었을 때의 삶입니다. 다섯째 단계는 33살 때 가족을 데리고 한국에 나가서 약 2년 9월 살았던 때의 삶입니다. 여섯째 단계는 36살 때 약속의 말씀인 마태복음 16장 18절 말씀으로 부르심을 받아 다시 승리장로교회로 돌아와서 담임 목사가 되어 섬기게 된 때부터의 삶입니다. 이렇게 저는 기도하면서 제 인생을 한 여섯 단계로 나눠서 뒤돌아보며 생각할 때 그 때 그 때마다 잊지못할 추억들이 생각납니다. 그 추억들을 간략하게 두 개로 나눈다면 안좋은 추억과 좋은 추억입니다. 안좋은 추억들이란 주로 저의 연약함과 부족함과 범한 죄들과 그의 결과로 겪은 고통과 힘든 일들입니다. 좋은 추억들이란 그 와중에 하나님께서는 저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들입니다. 그 은혜들 가운데 특히 제 마음에 깊이 새겨진 큰 은혜의 추억은 바로 첫째 아기 주영(뜻: 주님의 영광)의 고통과 죽음을 통하여 경험한 하나님의 놀랍고 굉장한 구원의 사랑입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45장 4-5절에 나오는 요셉이란 인물을 생각할 때 저는 그의 인생을 한 몇 단계로 나눠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단계는 요셉에 태어나서(30:22-25) 아버지 야곱의 사랑을 그의 형들보다 더 받으면서 17년간 살았던 때까지의 삶입니다(37:1-3). 둘째 단계는 요셉이 17살 때 2 개의 꿈을 꾼 후 그의 형들에게 더욱 미움을 받아 죽임을 당할 뻔 하다가 팔려 애굽의 보디발 장군의 노예로 섬기다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들을 뿌리치다가 억울하게 감옥 생활까지 살던 때의 삶입니다(37:4-36, 39장). 셋째 단계는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하므로 그의 나이 30살 때 애굽의 총리가 되어 39살 그의 형제들이 애굽에 내려왔을 때 자기 자신이 요셉임을 알리고 하나님께서 왜 자기를 그의 형제들보다 앞서 애굽에 보내셨는지를 말했을 때까지의 삶입니다. 넷째 단계는 요셉의 아버지인 야곱과 요셉의 모든 형제들 및 식구들이 애굽에 내려와 다 함께 살다가 17년 후 야곱이 죽었을 때까지의 삶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다섯째 단계는 야곱이 죽은 후 요셉이 그의 형제들과 그의 모든 식구들을 보살피다가 그의 나이 110세에 죽었을 때까지의 삶입니다. 요셉의 이 다섯 단계의 삶 가운데 오늘 본문 창세기 45장 4-5절 말씀은 요셉의 셋째 단계에 있었던 일입니다. 그 일이란 요셉이 음식을 구하러 다시 애굽으로 내려온 그의 형제들에게 자기가 요셉임을 밝히고 그들을 안심시킨 후 왜 하나님께서 자신을 그의 형제들보다 먼저 애굽으로 보내신 그 이유를 말한 것입니다. 그 이유는 다름 아닌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고"(5절), 즉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그)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그)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7절)입니다. 부인할 수 없는 분명한 사실(fact)은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애굽에 판 것입니다(4절, 37:27-28). 그런데 요셉은 자신의 형제들에게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45:5),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7-8절). 어떻게 요셉은 그의 형제들에게 이렇게 고백을 할 수 있었을까요? 분명한 사실은 형들이 자기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미워해서 애굽에 팔았는데 어떻게 요셉은 자기를 애굽으로 보내신 분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저는 그 대답을 “믿음으로”(by faith)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시 말하면, 요셉은 믿음(faith)이 있었기에 형들이 자기를 애굽에 판 사실(fact)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아 알아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8절)고 고백할 수 있었다는 말입니다. 그것도 17살 때 형들에게 애굽으로 팔려서 그의 나이 39살 때 그의 형제들에게 이렇게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그는 그 22년 기간 동안의 삶을 뒤돌아 볼 때 그 때 그 때 자기의 명철로는 이해할 수 없는 그가 겪었던 모든 일들이지만 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시므로 여기까지 오게하신 이유가 자신의 형제들의 생명을 보존하시고 그들의 후손들을 세상에 두시려고 하신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자기가 아버지 야곱에게 형들보다 자기를 더 사랑해 달라고 부탁한 것도 아닌데 아버지의 편애를 받아 형들에게 미움을 받은 것도 그렇고(37:2-4), 자기가 꾸고 싶어서 꾼 것도 아닌데 꿈을 두 번이나 꿔서 결국에는 형들에게 더욱 미움을 받고 시긴도 받은 것도 그렇고(5-11절), 그 형들에게 죽임을 당할 뻔 하다가 결국에는 애굽에 팔린 것도 그렇고(11-36절),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의 집에서 보디발의 아내에게 억울한 누명을 받고 옥에 갇힌바 된 것도 그렇고(39장), 그 옥에서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를 만난 것도 그렇고(40장), 그 결과 만 2년 후에 애굽 왕 바로의 꿈을 해석케 되므로 애굽의 총리가 된 것도 그렇고(41장), 바로의 꿈대로 큰 풍년이 7년, 흉년이 7년이 있었던 것도 그렇고(41장ff.), 이 모든 일들이 그냥 우연이었을까요? 결코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 속에 일어난 일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저는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었을 때 애굽 왕 바로의 신하였던 술 맡은 자를 만나게 된 이야기를 생각할 때 이러한 글을 써 보았습니다: “만남은 우연이 아닙니다. 요셉은 죄도 짓지 않았는데 억울한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혔습니다(창39:19-23). 그리고 그는 거기서 애굽 왕 바로에게 범죄한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만났습니다(1-4절). 이렇게 죄지은 사람들과 죄짓지 않은 요셉이 옥에서 만난게 우연이었을까요? 결코 아닙니다. 주권적인 하나님의 뜻안에 그 때 그 곳에서 그들을 서로 만나게 하신 것입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는 요셉으로 하여금 그들의 꿈을 해석하게 하시사(40:12-15) 술 맡은 관원장이 전직을 회복케 하시므로(21절) 결국에는 요셉을 옥에서 건지셨을 뿐만 아니라 요셉으로 하여금 바로 왕의 꿈도 옳게 해석케 하시므로 요셉을 애굽의 총리로 세우셨습니다(41장). 우리의 만남은 우리가 보기에 않좋은 상황에서 이루어 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않좋은 상황에서도 우리가 원치않고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도 이루실 수가 있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않좋은 상황에서도 좋은 만남을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사 구원의 뜻을 이루실 것입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요셉의 삶의 주관자가 되셔서 그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 가운데서도 역사하시고 섭리하셔서 애굽의 노예를 애굽의 총리까지 되도록 높이사사 결국 요셉을 통하여 야곱과 그의 자녀들 및 후손들의 생명을 건져주셨습니다. 그리하신 목적은 야곱의 후손인 유다의 후손을 통하여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사 우리에게 큰 구원을 베풀어 주시기 위해서였습니다. 결국 요셉을 애굽으로 먼저 보내신 하나님께서는 이 땅에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먼저 보내시사 예수님을 믿는 저와 여러분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먼저 보내신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의 구원!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뒤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삶 속에 있었던 충격적인 일들과 괴롭고 고통스러운 일들, 힘든 일들을 기억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와중에서도 역사하시고 섭리하시사 우리에게 큰 은혜와 사랑을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그 하나님은 우리를 그 때 그 때 위기 가운데서 건져주시사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시고 보존해 주시사 오늘까지 오게 하신 구원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구원의 하나님은 우리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통하여 예수님을 모르고 믿지 않는 사람들을 구원하시길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그 구원의 뜻을 이루시고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먼저 보내셨습니다. 우리의 가정으로 뿐만 아니라 우리의 학교나 직장과 사업하는 곳으로 말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금 있는 곳으로 먼저 보내신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여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을 깨달아 알아 그 뜻을 이루어 드리는 저와 여러분이 되길 기원합니다.
이 땅에 보내심을 받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8년 1월 16일, 주님께 보냄을 받은 자로서 보내신 주님의 구원의 뜻을 이루어 드리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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