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땅에서 아무런 대가나 보상을 기대할 수 없는 순수한 사랑과 구제를 실천할 때 비로소 참된 하늘의 복이 임합니다 . “ 또 자기를 청한 자에게 이르시되 네가 점심이나 저녁이나 베풀거든 벗이나 형제나 친척이나 부한 이웃을 청하지 말라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이 될까 하노라 잔치를 베풀거든 차라리 가난한 자들과 몸 불편한 자들과 저는 자들과 맹인들을 청하라 그리하면 그들이 갚을 것이 없으므로 네게 복이 되리니 이는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하시더라 ”( 누가복음 14:12-14).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4 장 12-14 절 말씀을 한국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 ‘ 갚는 것 ’ 에 대한 단어가 3 번이나 반복해서 나온다는 사실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a) 첫 번째 “ 갚음 ” 이란 헬라어 단어 “ ἀ νταπόδομά”( 안타포도마 ) 가 12 절에 나옵니다 : “… 두렵건대 그 사람들이 너를 도로 청하여 네게 갚음 [ 안타포도마 ( 명사 )] 이 될까 하노라 .” (i) 여기서 “ 갚음 ” 이란 세상적인 상부상조와 이해타산적인 보답을 뜻합니다 ( 순수한 선의가 아닌 , 철저한 계산과 필요에 의해 주고받는 인간관계를 뜻함 ). “ 당시 유대 사회와 로마 문화에...
나는 요나 선지자와 같은 주님의 종입니다. 주님의 종 요나 선지자는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함께 배에 타고 있었던 불신자 선장과 사공들을 위기에 몰아넣었던 반면에(요나 1:1-10), 주님의 종 바울 사도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결국 로마 황제의 법정에서 재판을 받고자(사도행전 25:10-21) 다른 죄수들과 함께 배를 타고 이탈리아로 가다가 배만 아니라 그 배 안에 있는 모든 사람들(276명)의 생명까지도 위험하여 살아날 가망이 완전히 없어졌을 때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받고 그 모든 사람들을 안심시키고 결국에 가서는 모두 다 건짐을 받았습니다(사도행전 27장). 과연 나는 바울 사도와 같은 주님의 종인지 아니면 요나 선지자와 같은 주님의 종인지 자아반영 및 자아성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