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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아들을 내주신 이 (롬8:32)

  https://youtu.be/9tJxsCkB1dc?si=yoecT3l2ALBPh1Wa

우리가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

우리가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거짓된 신들을 의지하는 악을 행하는 데 익숙한 우리가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는 사막의 바람에 날아가는 지푸라기처럼 흩어버린 바 되며 우리의 수치가 드러낸 바 되는 것입니다 ( 참고 : 예레미야 13:23-25, 현대인의 성경 ).

익숙함

익숙함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하심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범죄하는 것도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    (2011. 5. 6.)

진리를 거짓으로 여기는 오만한 사람들

진리를 거짓으로 여기는 오만한 사람들  거짓 목사를 통해서  계속해서 거짓 복음과 거짓 가르침을 들으므로  그 거짓말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그 거짓말이 진리라고 믿고 확신까지 가진 오만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참된 종인 진실된 목사님을 통해서  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거짓으로 여기고 ( 여길 수 밖에 )  그 목사님이 거짓을 말했다고 말합니다 ( 예레미야 43:1-2).

그릇된 가치관

그릇된 가치관 우리는 그릇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 그릇된 가치관이란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 사 53:3).   예수님을 귀하에 여기지 않는 이유는  우리는 슬픔과 질고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3 절 ).   예수님은 간고를 많이 겪으셨습니다 (3 절 ).   즉 , 예수님은 슬픔 ( 비애 ) 의 사람이셨습니다 (3 절 ).   또한 예수님은 질고를 아는 분이셨습니다 .   즉 , 예수님은 질고에 익숙하신 분이셨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슬픔도 그리고 질고도 싫어하므로  얼굴을 그것들로부터 돌립니다 .   그 이유는 우리는 기쁨과 행복 ,  그리고 안락함과 평안함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귀히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싫어하며 멸시까지 하는 것입니다 .   그 이유는 우리의 그릇된 가치관은  육신의 정욕에 이끌림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 요일 2:16).   마치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보암직했을 뿐만 아니라 먹음직도 했던 것처럼 ( 창 3:6)  우리의 그릇된 관점에서 세상에 많은 것들을 바라보면서 보암직 할 뿐만 아니라  먹음직 한 이유는 육신의 정욕 때문입니다 .   육신의 정욕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가치관을 버리게 하고  오히려 순간적인 가치관을 택하게 만듭니다 .   육신의 정욕은 무엇이 참으로 귀하고 무엇이 하잖은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   그 결과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헛된 것들을 먹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입니다 .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우리는 늘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항상 곁에 있기에 소중함을 당연함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금방 찾을 수 있기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것인지도 잊어버리곤 합니다.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필요할때면 무조건 나의 편이 되어주기에       가끔은 힘들고 지치고 투정을 부려도 모든것을 받아주기에       우리는 항상 멀어지고 난 후에야 알게 된다.       친구의 소중함은 혼자있을때 연인의 소중함은 헤어졌을때    부모의 소중함은 돌아가셨을때 느낀다.       가장 소중하고 나에게 필요한 존재는    왜 가장 극단적인 상황이와야 그 소중함을 느끼는가?      곁에 있다하여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직도 어린아이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카톡으로 받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