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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s love, which is stronger than death, is causing me to continue walking the path of the mission the Lord has given me (John 6:1–15).

God’s love, which is stronger than death, is causing me to continue walking the path of the mission the Lord has given me (John 6:1–15).             “At that very time some Pharisees came and said to Him, ‘Leave this place and go somewhere else. Herod wants to kill You.’   He replied, ‘Go tell that fox, “I will keep driving out demons and healing people today and tomorrow, and on the third day I will reach My goal.”   In any case, I must press on today and tomorrow and the next day—for surely no prophet can die outside Jerusalem!   Jerusalem, Jerusalem, you who kill the prophets and stone those sent to you, how often I have longed to gather your children together, as a hen gathers her chicks under her wings, and you were not willing.   Look, your house is left to you desolate.   I tell you, you will not see Me again until you say,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Luke 13:31–35).     ...

우리가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

우리가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거짓된 신들을 의지하는 악을 행하는 데 익숙한 우리가 반드시 치러야 할 대가는 사막의 바람에 날아가는 지푸라기처럼 흩어버린 바 되며 우리의 수치가 드러낸 바 되는 것입니다 ( 참고 : 예레미야 13:23-25, 현대인의 성경 ).

익숙함

익숙함 우리는 하나님의 용서하심에 너무 익숙해져 있다 .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범죄하는 것도 익숙해져 있는 것이다 .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하는데 ...    (2011. 5. 6.)

진리를 거짓으로 여기는 오만한 사람들

진리를 거짓으로 여기는 오만한 사람들  거짓 목사를 통해서  계속해서 거짓 복음과 거짓 가르침을 들으므로  그 거짓말에 너무나도 익숙해져  그 거짓말이 진리라고 믿고 확신까지 가진 오만한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참된 종인 진실된 목사님을 통해서  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거짓으로 여기고 ( 여길 수 밖에 )  그 목사님이 거짓을 말했다고 말합니다 ( 예레미야 43:1-2).

그릇된 가치관

그릇된 가치관 우리는 그릇된 가치관을 가지고 있습니다 .    그 그릇된 가치관이란  예수님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입니다 ( 사 53:3).   예수님을 귀하에 여기지 않는 이유는  우리는 슬픔과 질고를 싫어하기 때문입니다 (3 절 ).   예수님은 간고를 많이 겪으셨습니다 (3 절 ).   즉 , 예수님은 슬픔 ( 비애 ) 의 사람이셨습니다 (3 절 ).   또한 예수님은 질고를 아는 분이셨습니다 .   즉 , 예수님은 질고에 익숙하신 분이셨습니다 .   그러나 우리는 슬픔도 그리고 질고도 싫어하므로  얼굴을 그것들로부터 돌립니다 .   그 이유는 우리는 기쁨과 행복 ,  그리고 안락함과 평안함에 익숙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   그러기에 우리는 예수님을 귀히 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싫어하며 멸시까지 하는 것입니다 .   그 이유는 우리의 그릇된 가치관은  육신의 정욕에 이끌림을 받고 있기 때문입니다 ( 요일 2:16).   마치 하와가 선악과를 보고 보암직했을 뿐만 아니라 먹음직도 했던 것처럼 ( 창 3:6)  우리의 그릇된 관점에서 세상에 많은 것들을 바라보면서 보암직 할 뿐만 아니라  먹음직 한 이유는 육신의 정욕 때문입니다 .   육신의 정욕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가치관을 버리게 하고  오히려 순간적인 가치관을 택하게 만듭니다 .   육신의 정욕은 무엇이 참으로 귀하고 무엇이 하잖은 것인지를  구분하지 못하게 만듭니다 .   그 결과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헛된 것들을 먹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입니다 .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잃지 말자]  우리는 늘 익숙함에 속아 소중함을 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제나 항상 곁에 있기에 소중함을 당연함으로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필요하면 언제든지 금방 찾을 수 있기에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것인지도 잊어버리곤 합니다.       소중하다고 생각하지만 언제나 필요할때면 무조건 나의 편이 되어주기에       가끔은 힘들고 지치고 투정을 부려도 모든것을 받아주기에       우리는 항상 멀어지고 난 후에야 알게 된다.       친구의 소중함은 혼자있을때 연인의 소중함은 헤어졌을때    부모의 소중함은 돌아가셨을때 느낀다.       가장 소중하고 나에게 필요한 존재는    왜 가장 극단적인 상황이와야 그 소중함을 느끼는가?      곁에 있다하여 소중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당신은 아직도 어린아이다." [사랑하는 친구에게 카톡으로 받은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