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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Then one of those standing near drew his sword and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ear.” ( Mark 14:47, Today's Korean Version ) 1. Identifying the People Involved: The person who stood beside Jesus and drew the sword was Simon Peter .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was named Malchus . “Then Simon Peter, who had a sword, drew it and struck the high priest’s servant, cutting off his right ear. The servant’s name was Malchus.” ( John 18:10 ) 2. Jesus' Response to Peter's Action: (a) Jesus said: “Permit even this.” ( Luke 22:51, KJV: “Suffer ye thus far”; RSV: “No more of this” ) The Greek words clarify this: “ἕως τούτου” (“heōs toutou”) = “up to this point” or “even this” “ἐᾶτε” (“eate”) = “allow it,” “let it be,” “leave it alone” Therefore, Jesus is essentially saying: “Let them do what they are doing. Do not resist any further.” “If ...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인도하심?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 (출애굽기 14 13-14).

 


 

            이젠 지도가 필요가 없는 시대를 맞이한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스마트폰(smartphone)으로 GPS(Global positioning system: 범지구 위치 결정 시스템)을 사용해서 가고자 하는 목적지를 될 수 있는데로 속히 찾아가는게 수월하고 편리해졌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특히 저 같이 지도를 잘 못보는 길치에게 있이선 제 smartphone으로 GPS를 사용하는게 편리하고 좋습니다.  그러다 보니 잘 모르는 곳을 갈 때마다 GPS를 사용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그만큼 저는 GPS를 많이 의존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차를 운전하고 가다 보면 길이 막힐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GPS는 지름길을 가르쳐줍니다.  물론 선택은 제가 하는것이지요.  제가 지름길을 선택해서 갈 수도 있지만 그냥 차가 막혀고 그냥 가던 길로 계속 가기로 선택할 수가 있습니다.  저는 급한 상황이 아니면 왠만하면 계속 가던 길을 갑니다.  그러나 목적지에 몇시까지 가야 하는데 시간이 촉박하면 GPS가 가르쳐 주는 지름길을 선택해서 가곤 합니다.  이렇게 운전해서 목적지에 가는 것은 smartphone에 있는 GPS를 사용하면 되겠지만 우리의 삶은 그렇게 간단한 것 같지는 않습니다.  물론 우리 인생의 GPS는 하나님의 말씀이요 우리의 목적지는 새하늘과 새땅새예루살렘인 천국이지만 우리가 그 영적 GPS인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잘 모르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그런게 간단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충분히 알 수가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계속해서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배워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난 주까지 새벽기도회 때 창세기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설교하며 또 다시 묵상의 글을 쓰는 가운데에서 특히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아브라함의 이야기부터이삭야곱그리고 50장에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대해서도 조금이나마 배우게 되었습니다.  그 배움 중에 특히 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12:1)는 명령에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순종하여 나아갈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현대인의 성경) “가야 할 곳이 어딘지도 모르는 채”] 떠났다는 말씀(11:8)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결국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셨고(12:5)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그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7).  하나님께서는 그 약속을 430년이 끝나는 그 날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땅에서 건져내시사(12:41) 40년 동안 광야에서 인도하시고(29:5) 그들을 멩세하신 땅인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6:23;여호수아).  저는 그 과정에서 창세기 37장부터 50장까지 나오는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하나님께서 요셉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 엿보면서 관심을 더 많이 갖게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요셉의 입장에 서서 그 말씀을 묵상할 때에 요셉은 17살 때 꿈을 꿨고(37:2, 5-11) 그 후로 형들의 미움을 더 받아 결국에는 애굽에 보디발의 집에 노예로 팔려서 그의 주인 보디발을 섬기다가 억울한 누명까지 써서 옥에 갇히게 되는데(39저는 요셉이 그 때에도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왜 꿈을 꾸게하셨는지왜 자기가 노예로 팔리고 옥에까지 갇히게 되었는지 등등 왜 하나님께서 자기를 이렇게 저렇게 인도하시고 계셨는지 그 목적을 몰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요셉이 옥에서 애굽 왕 바로를 섬기는 술 맡은 관원장을 만나 그의 꿈을 해석했을 때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목적을 몰랐고(40심지어 바로 왕의 꿈을 해석하여 그의 나이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을 때에도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목적을 몰랐다고 생각합니다(41).  그러다가 2년 동안 흉년이 들었을 때인(45:6, 11) 요셉의 나이 39살 때에서야 요셉은 그의 형들에게 왜 하나님께서 자기를 그들보다 먼저 애굽의 보내신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목적을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5),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7-8).  결국 요셉은 17살 때 꿈을 꾸고 39살에 그 꿈을 이루신 하나님께서 왜 자기를 그의 형들보다 먼저 애굽으로 인도하셨는지 약 22년 만에 그 하나님의 인도하심의 목적을 깨닫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인도하심은 우리의 지성과 이성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신비스럽고 놀라운 일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저는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시는(139:24) 영원히 우리 하나님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죽을 때까지 인도하실 줄 믿습니다(48:14).  

 

저는 어제 오늘 새벽기도회 때 읽을 출애굽기 13장에서 15장까지 읽으면서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열 번째 재앙을 내리신 후 애굽 왕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낸 후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떻게 인도하셨는지에 대해 출애굽기 13 17-18절과 14 3-4절 및 오늘 본문 14 13-14절을 다시 묵상했습니다.  그런 후 오늘 새벽기도회 때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한 후 이렇게 다시금 그 말씀들을 묵상하면서 글을 적어 내려갈 때에 저는 그 세 성경구절을 연관해서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첫째 교훈은하나님께서는 가까운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멀리 돌려 인도하실 때도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성경 출애굽기 13 17-18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백성을 보낸 후에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은 가까울지라도 하나님이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백성이 전쟁을 하게 되면 마음을 돌이켜 애굽으로 돌아갈까 하셨음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이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백성을 인도하시매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대열을 지어 나올 때에”[(현대인의 성경) “바로가 백성들을 보냈을 때 하나님은 블레셋 사람의 땅을 거쳐가는 것이 가까운데도 그들을 그 길로 인도하지 않으셨다이것은 그들이 전쟁을 보면 마음이 변해 이집트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백성들을 홍해의 광야 길로 돌아가게 하셨다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집트에서 나올 때 군 대열로 지어 나왔다”].  저는 이 말씀을 다시금 묵상할 때 간략하게 두 가지로 나눠서 생각해보았습니다. 

 

그 두 가지란 먼저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까운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로 인도하시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17).  왜 이 사실을 구분에서 묵상한 이유는 우리의 본능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초점을 맞춰져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우리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인도해 주시던지 저렇게 인도해주실꺼라는 기대를 갖고 있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 길로는 인도하시지는 않으신다는 것을 잘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저는 하나님께서는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까운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로 인도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이 흥미로왔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우리가 기도하고 기대하는 가까운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는 것일까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하신 이유는 그들이 전쟁을 보면 마음이 변해 이집트로 되돌아갈 것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17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우리에게 적용한다면하나님께서 우리를 가까운 지름길로 인도하시지 않으시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이 변질되어 세상으로 돌아가 세상 사람들처럼 살까봐 그리하신다고 말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두 번째로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인도하신 것일까요?(18)  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불레셋 사람의 땅의 가까운 길로 인도하시지 않으시고 멀리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인도하신 것일까요?  저는 그 이유는 적어도 세 가지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1) 하나님께서는 홍해 바다에서 (바로 왕)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시고자(14:4), (2) 하나님께서는 시내 산에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언약의 말씀인(34:28) 십게명을 주시고자(20), 그리고 (3)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8:2-3).   저는 이 세 가지 이유를 생각할 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만 아니라 하나님의 교회인 예수님을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멀리 돌려 인도하시는 이유에게도 적용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적용되는 이유를 하나로 간략하게 요약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예수님의 이중계명인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와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22:36-40)는 명령을 주시고 우리를 겸손케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그 말씀대로 순종하며 살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멀리 돌려 인도하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정한 약속의 땅인 천국으로 인도하시면서 광야와 같은 이 세상으로 돌려 인도하실 때에 예수님의 이중 계명을 순종하며 살게 하시려는 것일까요?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는 하늘에 시민권(3:20)이 있는 우리를 천국인으로 만드시사 천국에 들어가게 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영광을 얻으시려고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둘째 교훈은하나님께서는 우리는 갇힌 바 되게 하시사 영광을 얻으실 때도 있다는 것입니다.

 

            성경 출애굽기 14 3-4절을 보십시오: “바로가 이스라엘 자손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들이 그 땅에서 멀리 떠나 광야에 갇힌 바 되었다 하리라 내가 바로의 마음을 완악하게 한즉 바로가 그들의 뒤를 따르리니 내가 그와 그의 온 군대로 말미암아 영광을 얻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 하시매 무리가 그대로 행하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고 나온 모세에게 하신 말씀으로써 애굽 왕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갇힌 바 되었다고 생각하여 그들을 추격할 것이지만 하나님께서는 바로와 그의 군대로 통해서 영광을 얻으므로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리라는 내용의 말씀이었습니다.  그 말씀대로 애굽 왕 바로와 그의 신하들의 마음은 변하여(5병거를 갖추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했지만(6-8하나님께서는 바로와 그의 군대와 그의 병거와 마병을 통해서 영광을 얻으시사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셨습니다(17-18).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바다 가운데 뒤집어 엎으시되 이스라엘 백성을 뒤쫓아 홍해 바다에 들어간 전차와 마병과 바로의 모든 군대를 덮어 버렸으므로 그들 가운데 한사람도 살아 남은 자가 없게하시므로(27-28현대인의 성경) “그 큰 능력을” 나타내시므로(31영광을 얻으셨습니다. 

 

            우리의 삶에도 갇힌 바 되었다는 생각이 들정도로 아무리 동서남북을 보아도 문제의 해결점이 안보일 때가 있습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걱정과 불안과 극심한 스트레스 가운데서 계속해서 그 갇힌 바 된 상황에서 스스로 빠져 나오려고 노력하지만 그리하면 할 수록 마치 늪에 빠진 사람처럼 우리는 더욱더 깊은 늪에 빠져 절망적인 상황에 빠질 때도 있습니다.  그 때에 우리는 우리의 무능력함과 무기력감을 뼈저리게 느끼는 절망 가운데서 오히려 주님만을 갈망하며 주님 만을 바라보며(참고2:4) 간구하게 됩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는 그 위기 가운데 있는 우리에게 확성기(megaphone)로 크게 말씀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믿음으로 인내하며 견디게 하십니다.  그리고 마침내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사(8:28) 우리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시므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찬양케 하십니다.  저는 하나님의 돌려 인도하심에는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 앞에서  갇힌 바 된 것처럼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를 갇힌 바 되게 하시사 우리를 막으시는 경우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성령님께서 사도 바울로 하여금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썼을 때에도 예수님의 영이 허락하시지 않았던 것처럼(16:6, 7)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삶에서도 우리의 길을 막으시는 경우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성령 하나님께서 바울을 아시아로 가는 길을 막으시기도 하셨지만 마게도냐로 인도하셨던 것처럼(10동일하신 성령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의 문을 닫으실 때도 있지만 저는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때에 우리에게 분명히 열어주시는 문이 있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문이 닫히고 열리는 경우도 많치만 종종 우리의 삶에는 동서남북으로 갇힌 바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갇힌 바 된 사람을 생각할 때 지난 주에 묵상한 창세기 39장에 나오는 옥에 갇히 요셉이 생각났습니다(:39:20).  요셉은 자신의 주인인 애굽 사람 보디발의 아내(1)의 모함으로 말미암아 억울한 누명을 쓰고(7-18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갇혔지만(20하나님께서는 요셉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셨을 뿐만 아니라(21결국에는 같은 옥에 갇힌 바 된 애굽 왕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하므로(40바로 왕의 꿈까지 해석하여 옥에서 건짐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애굽의 총리까지 되었습니다(41).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옥에 갇힌 바 된 노예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형통케 하시되(39:2, 3, 21, 23) 그를 높이시사 애굽의 총리고 세우셨습니다(41:41).  저는 갇힌 반 된 사람을 생각할 때 또 생각나는 사람은 바울과 실라입니다.  그들 또한 요셉처럼 억울하게 감옥에 가둔바 되었지만 바울과 실라는 한밤중에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했습니다(16:23-25).  그들이 하나님께 기도한 것은 좀 이해가 되지만 어떻게 그들은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을 찬송할 수가 있었을까요?  특히 찬송이란 만일 예수전도단의 홍성건 목사님의 말대로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행하신 일을 찬양하는 것이라면 아직 감옥에서 기적적으로 건짐을 받지 못한 상황에서 어떻게 바울과 실라는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 있었을까요?  저는 바울과 실라가 갇힌  바 된 감옥에서 하나님을 찬양했다는 말씀을 생각할 때 찬양의 능력(power of praise)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으로 찬양의 능력을 믿습니다.  결국 그들이 감옥에서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을 때 홀연히 큰 지진이 나서 옥터가 움직이고 문이 곧 다 열리며 모든 사람의 매인 것이 다 벗어지고(26그들을 지키던 간수가 죄수들이 다 도망한 줄 생각하고 자결하려다가(27바울을 통하여 주 예수님을 믿어 그와 그의 온 가족 식구들이 다 하나님을 믿어 크게 기뻐했습니다(31-34).  결과적으로 구원의 하나님께서는 기도하며 찬양하던 바울과 실라만 감옥에서 건져내신게 아니라 그들을 지키던 간수와 그의 가정의 영혼도 구원해 주시사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과 영광을 나타냈습니다.  그러므로 저는 우리가 바울과 실라나 요셉이나 출애굽 당시 홍해 바다 앞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인간적으로 보고 생각할 때 갇힌 바 되었다 할지라도 구원의 하나님께 기도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가운데 우리의 건짐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큰 구원의 능력을 보므로 하나님께 영광 돌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마지막 셋번째 교훈은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만히 서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출애굽기 14 13-14절을 보십시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모세가 백성들에게 대답하였다. '여러분은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오늘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구하기 위해 행하시는 일을 보십시오여러분이 오늘 보는 이 이집트 사람들을 다시는 보지 못할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여러분을 위해 싸우실 것입니다그러니 여러분은 가만히 계십시오'”].  이 말씀은 모세가 홍해 바다 앞에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말입니다.  애굽 왕 바로가 담대히[“당당하게”(현대인의 성경)] 나아가고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여(8) “이스라엘 백성이 천막을 치고 있는 바알-스본 맞은편 비-하히롯 근처의 바닷가에 이르(9현대인의 성경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로와 그 군대가 자기들 뒤에 이른 것을 보고 심히 두려워하여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10).  그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애굽에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느냐 어찌하여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같이 하느냐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11-12).  그 때 모세가 그들에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말한 것입니다(13-14).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담대히” 나아갔던 이스라엘 백성들이(8바로 왕과 애굽 군대를 보고 심히 두려워했다는 말씀(10)을 통해 이것이 내 모습이요 우리의 모습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멘주님을 믿습니다라고 말하고 믿음으로 걷다가도 우리는 인생의 파도와 풍랑을 보면 베드로 처럼 두려워서 물에 빠지면서 주님살려 주십시오!”라고 하나님께 부르짖지 않나 생각합니다(14:30, 현대인의 성경).  분명히 우리는 성경에서 우리는 보이는 것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고후5:7)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 인생의 크나큰 역경과 어려움을 당하게 되면 불안해 하고 걱정하며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어쩔 줄 몰라할 때가 참 수 없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우리 각자 나름대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서 그 역경와 어려움을 헤쳐 나아가려고 많은 노력을 하지만 그러면 그럴 수록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무능력함과 무기력함을 느낄 수 밖에 없을 때가 있습니다.  저는 그 때마다 자주 생각나는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시편 42 5, 11절과 43 5절 말씀입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  낙망과 절망 속에서 내주하시는 성령님께서 오직 주님만을 갈망하게 하시사 주님에게만 제 소망을 두게하시는 역사를 경험하곤 합니다.  그런 때에 참으로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오늘 본문 출애굽기 14 13-14절에서 모세가 심히 두려워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한 말 가만히 서서”(13), “가만히 있을지니라”(14)입니다.  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만히 서서”, “가만히 있을지니라고 말했습니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하여 싸우시고(14그들을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이스라엘 백성들이 보길 원했기 때문입니다(13).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 위해서 싸우시고 구원하시는데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만일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감히 우리를 대항할 수 있겠습니까?”(8:31, 현대인의 성경). 

 

저는 지금도 가만히 서서”(14:13), “가만히 있을지니라는 말씀의 중요성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실제로 저는 그 말씀에 순종을 못할 때가 대부분입니다.  지금 저는 교회 사역에 관하여 무슨 일로 인하여서도 제 생각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주님의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하셨음에도 불구하고(16:18) 저는 그 말씀을 주신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주님을 마음을 다하여 신뢰하지 못하고 있기에 마음의 평강과 생각의 잠잠함이 자꾸만 흐트러지고 있습니다.  이렇게 저는 연악함 가운데서 출애굽기 14장에 나오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생각할 때 애굽 왕 바로와 그의 군대가 가까이 와 있는 것을 보고 어떻게 심히 두려워하지 않을 수가 있으면 또한 어떻게 모세의 말대로 심히 두려운데서 가만히 있을 수 있을까 의문이 듭니다.  대부분 우리는 심히 두려운 상황에 놓여 있으면 우리 자신이 뭔가라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가만히 있지 못할 때가 참 많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저는 언젠가 성경을 읽다가 이사야 30 15절 말씀에 은혜를 받았는데 그 말씀이 다시 생각이 납니다: “…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  저는 이 말씀대로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하므로 힘을 얻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저는 기도 시간에 새찬송가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를 종종 부릅니다: (1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모든 짐 내려놓고 주 십자가 사랑을 믿어 죄 사함을 너 받으라 (후렴주 예수께 조용히 나가 네 마음을 쏟아노라 늘 은밀히 보시는 주님 큰 은혜를 베푸시리.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제가 대학교 때 어느 목사님에게서 제자 훈련을 받으면서 배운 말씀 중에 인도의 확신’ 성경 구절이 있습니다.  바로 잠언 3 5-6절 말씀입니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저는 그 때 이 말씀을 배운후로 지금까지 뒤돌아 보면 저로 하여금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바로 제 명철을 의지하는 것이라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제 명철을 의지하는 것은 바로 제 자신이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고 있다는 것임을 부족하나마 인정할 수 밖에 없게 되었습니다(7).  그래서 저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까운 블레셋 사람의 땅의 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홍해의 광야 길로 돌려 인도하신 것(13:17, 18)처럼 저를 제가 생각하고 기도하며 기대하는 지름길로 인도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멀리 돌려서 홍행의 광야와 같은 길로 인도하시사 저를 낮추시고 계십니다(8:2, 3).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3).  또한 하나님께서는 저로 하여금 생명의 떡이 되시는 오직 예수님(6:48)만 나의 기쁨 나의 소망 나의 생명이 되심을 믿고 인정하면서(새찬송가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예수님만 바라보게 하시고 계십니다(12:2).  그러한 가운데서 주님이 저에게 주시는 기쁨과 즐거움은 예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1:2) 그 말씀 묵상을 이웃들과 나누게 하시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오게 하신 주님은 1987 5월 저희 교회 대학부 수련회 때 저를 부르시고 저에게 약속하신 오병이어의 말씀인 요한복음 6 1-15절을 지금까지 약 33년 동안 그 말씀을 이루고 계셨던 것입니다.  이렇게 주님은 지름길이 아닌 멀리 돌려서 저를 여기까지 인도해 주신 것입니다.  그러한 하나님의 인도하심에 있어서 저는 가끔 홍해 바다 앞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갇힌 바 되었던 것처럼(14:3) 저 또한 여러번 갇힌 바 된 경험이 있었습니다.  아무리 동서남북을 보아도 문제의 해결점이 보이지 않아 인간의 노력이 아무 의미가 없고 오히려 제 자신의 무기력감과 무능력감을 좀 뼈저리게 느끼므로 낙심할 때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그 때마다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께서는 시편 42 5, 11절과 43 5절인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는 말씀을 생각나게 하시사 제 영혼을 소성케 해주셨습니다.  또한 성령님께서는 주님께서 저에게 주신 요한복음 6 1-15절의 약속의 말씀으로 힘주시사 낙망의 구덩이에서 건져주시고 소망을 주시사 제 자신과의 싸움에서  견뎌내며 이겨 나아가게 하셨고 지금도 또한 앞으로도 그리하실 줄 믿습니다.  이러한 저의 믿음은 제 자신에게 근거한 것이 결코 아니요 오직 신실하신 하나님께 근거한 것입니다(딤후2:13).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인 믿음으로 저는 가만히 서서”(14:13) 또한 가만히 있을지니라”(14)는 말씀에 순종하길 원합니다.  시편 46 10절 상반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  너희는 가만히 있어 내가 하나님 됨을 알지어다 ….”  그리고 저는 영어 복음성가 “Still”이란 노래의 가사가 생각나서 새벽기도회 때 하나님께 찬양을 드렸습니다: “…  I will be still and know you are God  …”(…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  [(전체 가사) “주 품에 품으소서 능력의 팔로 덮으소서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주님 안에 나 거하리 주 능력 나 잠잠히 믿네 거친 파도 날 향해 와도 주와 함께 날아오르리 폭풍 가운데 나의 영혼 잠잠하게 주를 보리라”] (https://youtu.be/z3wwWFsSlNQ).  조용히잠잠히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므로(3:5; 30:15)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길 기원합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내 명철로 이해하려고 하기보다 믿음으로 순종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20 1 22멀리 돌려 인도하시는 하나님께서 저로 하여금 갇힌 바 되게하는 상황으로 몰아가신다 할지라도 하나님을 잠잠히 신뢰하므로 가만히 있길 기원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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