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의 기회
[시편 86편 말씀 묵상]
오늘 대학교 후배의 어머님의 장례식에 다녀왔습니다. 그 후배의 어머님은 한국 연세로 팔순이신데 갑자기 쓰러지셔서 돌아가셨습니다. 심장마비였다고 합니다. 심장마비로 너무나 갑자가 돌아가셔서 유일한 친딸인 그 후배는 아직도 충격 속에 있는 것 같습니다. 그 후배의 말로는 “지금이 내 생애 아직까지 살면서 가장 힘든 것 같아요”라고 합니다. 그 후배의 인생에 “가장 힘든” 위기를 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가장 힘든 위기는 우리 모두가 이미 겪지 않았다면 앞으로 다 겪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우리 모두는 언젠가는 “죽을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전7:2,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이 사실을 알면서도 사랑하는 가족의 죽음은 참으로 힘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 시편 86편을 보면 시편 기자 다윗은 그의 인생에 매우 힘든 위기의 상황을 접하고 있었습니다. 그 위기의 상황을 다윗은 몇 마디로 묘사를 하였습니다: “내가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습니다”(1절, 현대인의 성경), “내가 환난 날에 주께 부르짖습니다”(7절, 현대인의 성경),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13절), “교만한 자들이 와서 나를 치고 잔인한 무리들이 나를 죽이려고 하며”(14절, 현대인의 성경), “나를 미워하는 그들이”(17절). 이러한 매우 힘든 위기의 상황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으므로(3, 5, 7절) 그의 인생의 이 위기가 큰 기회가 되었습니다. 무슨 기회가 되었는지 한 3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첫째로, 다윗의 인생의 위기는 주님의 크신 인자하심을 경험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성경 시편 86편 13절을 보십시오: “이는 내게 향하신 주의 인자하심이 크사 내 영혼을 깊은 스올에서 건지셨음이니이다”[(현대인의 성경) “주는 나에게 크신 사랑을 베푸셔서 네 영혼을 무덤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다윗은 환난 날에 주님께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3, 16절). 그리고 그는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을 때 주님께 “나에게 귀를 기울이시고 응답하소서”라고 간구했습니다(1절,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우리 인생의 큰 어려움과 환난은 우리로 하여금 아빠 아버지 하나님께 부르짖게 만들뿐만 아니라 동시에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부르짖는 기도에 귀를 기울이시사 기도 응답을 받을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다윗은 주님께 기도 응답을 받았습니다. 그 기도 응답이란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받는 것이었는데 그 주님의 은혜란 그에게 향하신 주님의 크신 인자하심을 다윗으로 하여금 경험케 하시는 것이었습니다(3, 7, 13, 16절). 이해가 되십니까? 어떻게 큰 위기가 주님의 크신 인자하심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수 있는 것일까요?
저는 이 질문을 생각할 때 제 셋째 삼촌 목사님이 생각났습니다. 암투병 중이셨던 삼촌 목사님이 거하고 계셨던 첫째 아드님(제 사촌동생)의 집에 제 아버님과 큰 고모부님과 아버님의 형제분들과 찾아뵙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었는데 그 때 저는 사회를 보면서 축도를 그 셋째 삼촌 목사님에게 부탁을 드렸었습니다. 그 때 몸이 많이 통증으로 인해 힘드셨을 텐데도 불구하고 앉아계시던 소파에서 일어나셔서 두 손을 드시고 축도를 하시는데 엉엉 우시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제 기억으로는 그 때 축도 전에 새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하나님께 찬양 드렸는데 그 삼촌 목사님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으로 인해 감사하셔서 감격 속에서 엉엉 우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어떻게 생사의 갈림길에서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요? 어떻게 질병으로 인해 고통 중에서도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찬양하며 그 크신 사랑으로 인해 감사와 감격 속에서 엉엉 우시면서 축도를 하실 수 있으셨을까요? 믿음이 없이는 이해할 수 없고 받아드릴 수 없는 일이라 생각합니다. 또 한 가지 생각난 것은 저희 부부의 첫째 아기 주영(이름 뜻: ‘주님의 영광’)이가 제 품에서 죽은 후 화장하여 그녀의 뼛가루가 든 작은 박스를 들고 배를 타고 나아가 물에 뿌리고 다시 육지로 돌아오는데 제 안에 거하시는 성령님께서 주님의 놀랍고 굉장한 구원의 사랑을 찬양케 하셨습니다(복음성가 제목이 “My Savior’s Love”임). 어떻게 신혼부부의 첫째 아기가 질병으로 약 2달 중환자실에서 고통을 당하다가 죽었는데 주님의 굉장하고 놀라운 구원의 사랑을 찬양할 수 있을까요? 어떻게 자녀가 죽었는데 주님의 사랑을 느낄 수 있는 것일까요? 믿음이 없이는 이해할 수도 없고 받아드릴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저는 제 셋째 삼촌 목사님의 생사의 갈림길에서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을 눈물로 찬양하는 모습 속에서 그 주님의 크신 사랑을 조금이나마 엿보았고 또한 제 첫째 아기의 죽음을 통해 주님의 굉장하고 놀라우신 구원의 사랑을 경험했습니다. 이렇게 우리 인생의 큰 위기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은혜, 즉 주님의 크신 사랑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믿습니다.
둘째로, 다윗의 인생의 위기는 주님께서 자기의 영혼을 기쁘게 하시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성경 시편 86편 4절을 보십시오: “주여 내 영혼이 주를 우러러보오니 주여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 다윗은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었을 때(1절, 현대인의 성경) 주님을 의지하면서(2절) 그의 영혼이 주님을 우러러보았습니다(4절). 저는 이 자체도 위기의 기회라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의 영혼은 웬만해서는 주님을 우러러 보지 않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큰 어려움과 위기를 당할 때에서야 우리의 영혼은 주님을 우러러 본다고 생각합니다. 그 이전까지 우리의 영혼은 주님을 우러러보지 않고 오히려 우리의 육신이 주님 외에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을 바라본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기에 인생의 위기를 통해서라도 더 이상 우리의 육신이 주님 외에 다른 사람이나 다른 것을 더 이상 바라보기를 거부하고 오직 우리의 영혼이 주님만을 우러러 볼 수만 있다면 그 위기는 우리에게 영적으로 큰 기회가 된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 좋은 예가, 요나 선지자라고 생각합니다. 요나가 당면한 큰 위기는 큰 물고기 뱃속에서 있으면서(욘1:17; 2:1) “깊음 속 바다 가운데에”까지 내려가 “큰물이” 그를 둘렀고 주님의 파도와 “큰 물결”이 다 그의 위에 넘쳤었지만(2:3) 그 때 요나 선지자는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았기에(4절) 그의 이 큰 위기는 그에게 영적으로 주님의 성전을 다시 바라보는 큰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다윗이 큰 어려움을 당하고 있는 환난 날에(시86:1, 7) 그의 영혼이 주님을 우러러보았고 그는 주님께 “내 영혼을 기쁘게 하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4절). 왜 다윗은 이러한 기도를 하나님께 드린 것일까요? 저 같으면 주님께 나의 큰 어려움과 환난에서 나를 건져주시길 더 속히 그리고 더 간절히 먼저 하나님께 간구할 텐데 왜 다윗은 그렇게 간구하지 않고 자기의 영혼을 기쁘게 해주시길 주님께 간구한 것일까요? 제 생각엔 다윗은 그가 당하고 있었던 큰 어려움이나 환난에서 육체적으로 건짐을 받아 더 이상 큰 어려움이 없고 환난이 없는 것보다 주님께서 자기의 영혼을 기쁘게 해주시는 것이 더 시급한 기도요 더 중요한 기도, 그가 더 원했던 기도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다윗은 그가 당하고 있었던 큰 어려움과 환난은 그의 죄의 문제와 연관이 있었고, 그 죄의 문제로 말미암아 그의 영혼이 기쁘지 못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86편 4절에서 그의 영혼이 주님을 우러러보면서 주님께 자기의 영혼을 기쁘게 해주시길 간구하였고 5절에 와서는 “주는 선하사 사죄하기를 즐거워하시며 주께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심이니이다”라고 기도했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다윗은 인생의 위기 때 그의 영혼이 주님을 우러러 보면서 주님께 자기의 영혼을 기쁘게 해주시길 간구한 이유는 그의 죄가 선하신 주님께 사함을 받기를 간절히 원했기 때문입니다. 즉, 다윗은 인생의 위기 때 주님께 부르짖으면서 주님께서는 부르짖는 자에게 인자함이 후하신 줄 믿었고 그가 간구했던 주님의 후하신 인자하심은 그가 죄사함을 받아 그의 영혼이 기쁘게 되길 간절히 원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윗은 신들 중에 주님과 같은 자 없고 주님의 행하심과 같은 일도 없을 깨닫고(8절) 주님은 위대하시고 놀라운 일을 행하시는 분이시므로 주님만 하나님이십니다 라고 고백했습니다(10절). 그 이유는 “오직 하나님 외에”는 어느 누구도 죄를 사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눅5;21).
큰 어려움이 해결되는 게 급선무가 아니라 우리의 큰 죄가 사함을 받는 게 더 급선무입니다. 인생의 위기란 우리의 죄를 깨닫는데 주님의 좋은 방법이되 우리의 죄가 얼마나 큰 지를 보여주는 좋은 주님의 도구입니다. 다시 말하면,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의 위기를 통해 우리의 죄를 들춰내시고 또한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실 뿐만 아니라 그 죄가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큰지 또한 깨닫게 하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의 죄를 고백케 하시므로(시32:3-5) 결국에 가서는 우리의 죄를 사하여주시사 우리의 영혼을 기쁘시게 하십니다(86:4-5). 다윗은 이 은혜를 위기 가운데 사모하였고 주님께 부르짖으므로 주님께 죄사함을 받으므로 그의 영혼이 기쁨을 맛보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위기는 주님께 죄사함을 받아 주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기쁘시게 하는 좋은 기회가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셋째로, 다윗의 인생의 위기는 주님의 도(길)을 배우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성경 시편 86편 11절을 보십시오: “여호와여 주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에 행하오리니 일심으로 주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소서”[(현대인의 성경) “여호와여, 주의 길을 나에게 가르치소서. 내가 주의 진리 가운데 걸어가겠습니다. 나에게 한결같은 마음을 주셔서 내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게 하소서”]. 다윗은 주님께 부르짖으면서 자신이 당하고 있는 큰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서 건져주시길 간구하기보다 주님의 도(길)을 가르쳐 달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분명히 우리의 본능은 우리가 위기에서 벗어나길 간구하는 것일 텐데 다윗은 그 위기 가운데서 주님의 도(길)을 가르쳐 주시길 주님께 간구했습니다. 이러한 간구는 큰 어려운 환경을 벗어나는데 초점을 맞춘 기도가 아니라 주님의 도(말씀 또는 길)에서 벗어나지 않는데 초점을 맞춘 기도입니다. 왜 다윗은 이러한 기도를 주님께 드린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는 주님의 진리 가운데 걸어가길 원했기 때문입니다(11절, 현대인의 성경). 이것이 바로 진정으로 회개하는 자의 마음 자세요 헌신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께 회개하는 자의 마음 자세와 헌신은 계속해서 죄악의 길을 걸어가면서 그저 큰 어려움과 환난에서 벗어나길 주님께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비록 계속해서 큰 어려움과 환난이 있다 할지라도 그 큰 어려움과 환난을 통해 주님의 도(길)을 배워 죄악의 길에서 회개하고 돌이켜 주님의 도를 행하고 주님의 길을 걷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다윗은 이렇게 고백을 한 것입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119:71);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67절). 이렇게 다윗은 그의 인생의 위기를 통해 주님의 말씀을 배우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는 기회가 되길 간구하는 가운데 “일심으로 주의 이름으로 경외하게 하소서”[(현대인의 성경) “나에게 한결같은 마음을 주셔서 내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게 하소서”]라고 부르짖었습니다(86:11). 다윗은 큰 어려움과 환난 가운데서 주님의 도를 배우고 그 진리의 길로 걸어가는 가운데 환경에 우왕좌왕 하지 않는 한 마음, 견고한 목표를 간구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사람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길 간구했습니다.
인생의 위기는 배움의 기회입니다. 위기란 인간의 연약함과 깨지기 쉬움과 인간의 무능력과 무기력함 등 우리 자신을 배우는 기회이기도 하지만 주님의 말씀과 주님의 길을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비록 위기 가운데 우리가 겪는 고난은 크지만 그 고난이 크면 클수록 주님의 말씀의 소리도 우리 마음에 더 크게 울려 퍼지고 또한 주님의 길도 더 분명하게 보고 배우는 귀한 기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인생의 위기를 통해 고난의 유익을 배우고 깨달으므로 주님의 말씀과 길을 배워 그 말씀에 순종하며 그 주님의 길을 걷게 되는 것입니다. 순종하여 걷되 우리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그리고 주님을 경외하므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주님이 걸어가신 십자가의 좁은 길을 걷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시는 주님께서 우리 인생의 위기를 돌이켜 은혜를 받고 누리는 기회로 만들어 주시는 은혜입니다.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여기 저기 여러 종류의 위기를 겪고 있는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이 있습니다. 사랑하는 가족의 여러 종류의 위가가 참 마음을 아프게 하며 하나님을 의지하여 하나님께 마음으로 간구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간구할 때에 주님께서 그 사랑하는 형제, 자매들을 위기 가운데 빚으시사 믿음과 영적으로 성장케 하시며 성숙케 하심을 엿봅니다. 그만큼 주님께서 그들을 사랑하고 계심을 엿봅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위기를 통해 주님의 크신 사랑을 더 분명하게 나타내주시사 그 크신 주님의 사랑으로 인해 일심으로 주님을 경외하며 전심으로 주님을 찬송하고 영원토록 주님께 영광 돌리는 형제, 자매들이 되길 기원합니다(11-12절). 주님께서 그들을 경건한 자로 세우시사(2절) 한결같은 마음으로 주님의 이름을 경외하게 하시길 기원합니다(11절). 특히, 그들의 위기를 통해 죄사함을 받아 주님께서 그들의 영혼을 기쁘시게 하는 크신 사랑과 풍성한 은혜를 누리길 기원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그 위기를 통해 주님의 말씀과 길을 그들에게 가르쳐 주시사 그들 모두가 주님의 진리를 행하므로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게 하시길 기원합니다. 주님께서 그들을 돕고 위로해 주시길 기원합니다(17절).
위기의 기회를 누리게 하시는 주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21년 4월 24일, 장인 어르신인 고 오덕겸 장로님과 함께 “우리에게 향하신 여호와의 인자하심이”를 오늘 토요 새벽기도회 때 성도님들 앞에서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찬양을 드린 것을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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