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 속에 근심이 많을 때
“여호와여 나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주의 인자하심이 나를 붙드셨사오며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시편 94편 18-19절).
근심된 일이 많은 세상입니다. 걱정을 하지 않을래야 않할 수 없는 일들이 많은 세상입니다. 근심, 걱정, 염려가 많은 이 세상에서 하루 하루 살아가면서 우리 마음에는 평안함을 갖기가 매우 힘듭니다. 오히려 우리 마음에 있는 근심은 우리로 하여금 번뇌케 만들고 있습니다(잠12:25). 그러므로 우리는 근심 중에 하나님께 부르짖을 수 밖에 없습니다(시107:6). 우리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께 기도로 우리의 염려를 다 맡길 수 밖에 없습니다(벧전5:7). 그 이유는 우리는 주님의 말씀을 붙잡을 수 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요14:1). 새찬송가 486장 1절 가사가 생각납니다: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내 주 예수 날 오라 부르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오늘 본문 시편 94편 19절을 보면 성경은 시편 기자도 근심이 많았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19절). 그 이유는 교만하고 오만하고 자만한 악인들이 주님의 백성을 짓밟으며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괴롭히고 있었기 때문입니다(2-5절). 그 악인들 중에는 악한 재판장들도 있었는데 그들은 법을 구실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고 선한 사람들을 해할 음모를 꾸미며 죄 없는 사람을 재판하여 죽이기까지 했습니다(20-21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면서도 악인들은 오히려 자신들의 죄를 자랑하였습니다(4절, 현대인의 성경). 그들은 자기들이 과부와 나그네를 죽이며 고아들을 살해하면서도 하나님께서 보지 못하시고 알아차라지 못한다고 말하였습니다(6-7절). 그래서 이리도 어리석고 무지한 자들(8절)로 인하여 근심이 많았던(19절) 시편 기자는 “복수하시는 하나님”이시요 “세상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주여 일어나사 교만한 자들에게 마땅한 벌을 주소서”라고 간구하였습니다(1-2절). 그가 그리 기도한 이유는 귀를 만드신 하나님께서(9절) 그 악인들의 지껄이는 거만한 말이나 죄를 자랑하는 자만한 말도 듣고 계셨을 뿐만 아니라(4절) 눈을 만드신 하나님께서(9절)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짓밟으며 곤고하게 하는 것(5절)을 다 보고 계시사(9절) 반드시 징벌하실 줄 믿었기 때문입니다(10절). 그리고 그는 하나님의 징벌을 기다렸습니다. 그 기다림 속에서 시편 기자는 그의 발이 미끄러진다고 말하였고 그 때에 그는 주님의 인자하심이 자기를 붙으시는 경험을 하였습니다(18절).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시편 기자 아삽이 생각났습니다. 성경 시편 73편을 보면 아삽은 “나는 거의 넘어질 뻔하였고 나의 걸음이 미끄러질 뻔하였”다고 말하였습니다(2절). 그 이유는 그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질투하였기 때문입니다(3절). 우리도 충분히 아삽처럼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질투하여 우리의 신앙의 걸음이 미끄러질 수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고통을 당하는데 교만한 악인들은 잘먹고 잘살면서 고난 및 고통도 없고(4, 5절) “항상 평안하고 재물이 더욱 불어나”는 모습을 보면(12절) 우리의 신앙의 발은 미끄러질 수가 있습니다. 그렇게 미끄러진다고 말할 때에 우리는 주님의 인자하심이 우리를 붙들어주시고 계심을 깨달을(경험할) 수 있는 기회입니다. 만일 주님의 사랑을 우리를 붙잡아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신앙의 미끄럼틀에서 미끄러질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신앙의 퇴보의 쓴 경험을 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우리를 붙들어주시사 우리로 하여금 미끄러지지 않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소유인 우리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버리지 않으시사(94:14) 우리를 도와주십니다(17절).
오늘 본문 시편 94편 19절을 보면 시편 기자는 “내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주의 위안이 내 영혼을 즐겁게 하시나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교만하고 오만하고 자만한 악인들로 인하여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상황에서 시편 기자는 충분히 마음 속에 근심이 많을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 때에 그는 주님의 위안이 그의 영혼을 즐겁게 하심을 경험하였습니다. 어떻게 주님께서는 시편 기자의 근심된 마음을 위로하사 그의 영혼을 즐겁게 하셨을까요? 저는 그 대답을 시편 94편 12-13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여호와여 주로부터 징벌을 받으며 주의 법으로 교훈하심을 받는 자가 복이 있나니 이런 사람에게는 환난의 날을 피하게 하사 악인을 위하여 구덩이를 팔 때까지 평안을 주시리이다.” 주님께서는 주님의 징계과 주님의 법으로 시편 기자를 교훈하심으로 그의 근심된 마음을 위로하사 그의 영혼을 즐겁게 하셨습니다. 또한 주님께서는 시편 기자를 환난의 날에 피하게 하사 그에게 평안을 주시므로 그를 위로하시고 그의 영혼을 즐겁게 하셨습니다. 그를 사랑하시기에 징계하시는 주님, 그에게 복주시길 원하셔서 주님의 법으로 교훈하시는 주님, 구원의 하나님께서 그를 환난 날에 피하게 하실 뿐만 아니라 평강의 주님이 그에게 평안을 주시므로 시편 기자를 위안하시사 그의 영혼을 즐겁게 하신 것입니다.
이 얼마나 우리가 사모하는 하나님의 큰 은혜입니까. 마음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그 근심을 돌이켜 우리의 영혼을 즐겁게 하시는 하나님의 위로가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합니까. 너무나 많은 때에 우리는 많은 근심으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무겁고 우울하기까지 합니다. 그러한 때에 우리는 어느 누구에게 다가가도 마음에 위로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마음이 괴롭고 힘들 때가 있습니다. 그 때에는 오직 사랑의 주님만이 우리 마음을 위로해주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께 울부짖기까지 합니다: “주의 종에게 약속하신 대로 주의 한결같은 사랑이 나의 위로가 되게 하소서”(119:76). 그 때에 우리 주님께서는 변함이 없으신 한결같은 사랑으로 우리를 위로해 주십니다. 그 때에 우리의 근심은 사라지고 우리 영혼에 즐거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은혜와 축복이 여러분과 저에게 있길 기원합니다.
1.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슬픈 마음 있을때에라도 주 예수께 아뢰라
<후렴>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주 우리의 친구니
무엇이나 근심하지 말고 주 예수께 아뢰라.
<새찬송가 365장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주님의 사랑의 불들린바 되어 주님의 위로로 말미암아 내 영혼을 즐겁게 주님을 찬양하길 원하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6년 6월 28일, “(1절) 이 세상에 근심된 일이 많고 참 평안을 몰랐구나 내 주 예수 날 오라 부르시니 곧 평안히 쉬리로다 (후렴) 주 예수의 구원의 은혜로다 참 기쁘고 즐겁구나 그 은혜를 영원히 누리겠네 곧 평안히 쉬리로다”(새찬송가 486장)]
댓글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