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Then one of those standing near drew his sword and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ear.” ( Mark 14:47, Today's Korean Version ) 1. Identifying the People Involved: The person who stood beside Jesus and drew the sword was Simon Peter .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was named Malchus . “Then Simon Peter, who had a sword, drew it and struck the high priest’s servant, cutting off his right ear. The servant’s name was Malchus.” ( John 18:10 ) 2. Jesus' Response to Peter's Action: (a) Jesus said: “Permit even this.” ( Luke 22:51, KJV: “Suffer ye thus far”; RSV: “No more of this” ) The Greek words clarify this: “ἕως τούτου” (“heōs toutou”) = “up to this point” or “even this” “ἐᾶτε” (“eate”) = “allow it,” “let it be,” “leave it alone” Therefore, Jesus is essentially saying: “Let them do what they are doing. Do not resist any further.” “If ...
제목이 좀 충격적(?)이래서 무슨 기사 내용인가 좀 읽어보면서 "김진세 박사"라는 사람과 "김은주"라는 사람의 상당 내용 속에서 생각해 볼만한 내용(배울점들)이 여러점들이 있다고 생각되어서 다시 읽어 내려가면서 한점, 한점 좀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 제가 이렇게 무너질 줄은 몰랐어요"(김은주)
이 기사에 나오는 "김은주"씨, "온갖 힘든 상황도 혼자 힘으로 다 이겨낸 사람인데" 자기 자신이 "이렇게 무너질 줄은 몰랐"다고 한 말, 저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이 중요한가 하면 우리는 우리 자신이 무너짐을 통해서 인간이라는 나 자신의 존재가 얼마나 연약하고 깨지기 쉬운질을 인식하고 인정할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때서야 우리는 전적으로 주님만을 의지하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희안한 것은 우리는 왠만하면 잘 깨지지 않습니다. 왠만하여 우리는 무너지지 않으려고 부단히 애쓰고 최선을 다하여 노력하지만 우리가 주로 깨지고 부서지고 무너지는 부분은 사랑하는 가족입니다. 다시 말하면, 우리의 제일 취약점이 사랑하는 가족이기에 이 기사에 나오는 김은주씨처럼 남편(배우자)이든 자녀를 통해 우리는 충분히 무너질 수가 있습니다.
(2) "가장 신뢰를 줘야 할 남편이 그랬다니 배신감이 들어겠습니다"(김박사)
부부 관계에서 신뢰이 깨질 때 드는 배신감, 또한 아버지/어머니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신뢰가 깨짐으로 드는 배신감, 충분히 있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신뢰의 깨짐에는 거짓(말)과 속임수 등이 있습니다. 왜 사랑하는 배우자나 부모나 자녀를 속이는 것일까요? 왜 거짓말을 하는 것일까요?
(3) "내가 못났다보다 .. 지금은 그냥 제가 큰 잘못을 저지른 것 같아요" (김은주)
제가 한국어가 짧고 등등해서 제대로 제 생각을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시도를 한다면 김은주 씨의 "내가 못났다보다"라는 말 속에서 저는 생각나는 단어가 바로 "자아학대"였습니다. 잘못은 남편이 동성애라는 사실을 숨기고, 김은주 씨하고 결혼을 해서 부인이 배신감을 들었는데 ... 그러면서도 "내가 못났다보다"라는 생각을 상담을 받으면서 말한 것을 생각할 때 가정의 큰 어려움과 위기 때 나 자신을 학대하는 것을 매우 경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는 첫째 아기 주영이가 죽었을 때 1년이 넘도록 제 자신을 매우 학대했습니다. 그 자아학대란 제 죄로 인해서 제 자녀가 죽었다는 극심한 죄책감으로 제 자신을 학대한 것입니다.
(4) "결혼할 상대라면 당연히 미리 이야기를 했어야만 하고요."(김박사)
제가 얼마 전에도 어느 지체에게 결혼 하기 전에 당신의 성적으로 범한 죄를 미래 배우자에게 고백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권면한 적이 있습니다. 제가 그리 권면한 이유는 우리가 우리의 죄를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 자백하고 회개했다고 하면서 보이는 결혼할 미래 배우자에게는 숨기고 결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요즘같이 결혼전에 성관계를 맺고, 임신하고, 아기를 지우고 등등 ... 이런 일들이 문란한 이 세상에서 죄를 죄로 여기는 능력이 상실되었고 죄를 가볍게 여기면서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결혼할 상대라면 당연히 미리 이야기를 했어야만" 했는데도 불구하고 숨기고 결혼하는 경우... 그래서 김은주 씨처럼 나중에 알게되었을 때, 여러분 같으면 어떻게 반응할 것 같습니까? (생각보다 우리는 우리 배우자도 그렇지만 우리 자녀들을 너무나 모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나중에 알게 되었을 때 충격을 감당 못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아서 그럽니다).
(5) "당사자에게는 감옥 같은 곳이었나봐요. 그래서 가족들과 떨어지고 심은데, 유일한 방법이 결혼이었을 거에요"(김은주)
여기 미국에선 자녀들 중 일부러 대학교를 멀리 떠나는 젊은이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제가 보기엔 그 이유 중 하나는 도피입니다. 즉, 부모님과 일부러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도피하고자 대학교를 일부러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갑니다. 그 뿐만 아니라 결혼을 해서도 부모님과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삽니다. 등등. 이러한 현상들을 보면 제가 보기에 그 원인은 부모님과의 관계에 문제/상처 등등이 많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결혼도 그렇게 하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 기사에서 김은주 씨가 자기 남편을 볼 때에 자기 남편이 어머니하고의 관계가 "주종관계", "상호의존적 관계" ... 부인이 볼 때에 자기 남편이 그런 관계를 어머니하고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그 관계는 건강한 관계가 아닐 확률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사람들 보기에도 "이상적"인 관계처럼 보일찌라도 속사정을 알게 되면 얼마나 심각한 심리적, 정신적 등 문제가 많은지 모릅니다. 그 심각한 심리적, 정신적 문제 중 제가 매우 심각하게 여기는 것을 이 기사에 나오는 김은주 씨는 "감옥 같은 곳이었나봐요"라고 표현했는데 저는 부모가 사랑하는 자녀를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감옥에 가두는 것을 매우 심각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 자신도 제 자녀들과의 관계에서 그 자녀들을 심리적으로나 정신적으로 감옥에 가두는 죄를 범할까봐 하나님 앞에서 제 자신을 뒤돌아보고 자아성찰/반영하면서 부단히 자신과 싸우고 있습니다. 저는 제 아내나 제 자녀들이 주님 안에서 자유인이 되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제가 주님 안에서 먼저 자유인으로 살고 싶구요. 제가 이점을 심각하게 여기는 이유는 보편적으로 자식을 심리적/정신적으로 본이 아니게 감옥에 가두어 심리적/정신적 쇠사슬에 매이게 하는 이 일이 부모님이 죽어서 끊나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우리 부모들이 죽어서도 우리 자녀들은 우리로 인해 심리적/정신적으로 '감옥' 생활을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좋아하는 말씀, 붙잡는 말씀은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입니다(요8:32). 지금 너무나 많은 지체들이 여러모로 "감옥"에 갇혀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표면적으로 볼 때에는 매우 자유스럽게 보이지만 심리적/정신적으로 '감옥 생활'하는 사람들이 참 많아 보입니다[심리적/정신적도 그런데 만일 영적으로 감옥 생활을 하고 있다면.. ㅠㅠ]
이 기사에 김은주 씨는 자기 남편만 도피성 결혼을 한 것 같다고 말하면서 자기 자신도 "저 역시 가족에 대해 고민과 갈등이 많았어요. 집을 떠나고 싶어서 결혼을 서둘렀다는 걸 부정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한 점입니다. "두 사람(남편과 아내) 모두 가족을 떠나고 싶었고, 그 때는 서로 사랑한다고 믿었고요"라는 말... 귀한 고백이라고 전 생각합니다. 중요하구요. 그 이유는 우리는 우리 자신에게 솔직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하면, 결혼 전에 왜 내가 지금 이 상대방하고 결혼을 하려고 하는지 자신의 마음에 동기 등을 직시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김은주씨처럼 내가 이 형제/자매하고 결혼하는 이유가 내 가족에 대한 많은 고민과 갈등 속에서 좀 집을 떠나고 싶어서 결혼을 서둘루는 것이라면 위험합니다. 지금 현재는 집을 떠날 수 있다는 기대에 부풀러서 ... 그리고 이 형제/자매하고 둘이만 살면 행복할 것 같고 등등 생각이 많이 들겠지만 그러한 이유로도 결혼을 한다면(서두룬다면) 김은주 씨처럼 나중에 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꼭 그 어려움이 내 배우자로 인한 것이 아닐 수도 있고 내 자녀로도 그렇지 않을 수 있겠지만 자기 자신으로 인해 내 배우자나 자녀에게 끼치는 않좋은 영향들로 인해 극심한 자책감/죄책감/괴로움 등으로 고통을 당할 수 있습니다. 결혼은 도피성이 아닙니다.
"결혼의 목적이 결혼 자체가 아닌, 다른 것이라면 불행해지기 쉬워요. 물론 사람마다 결혼의 또 다른 목적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그 부가적인 목적의 가치가 과장되면 안 됩니다. 지긋지긋한 현실을 탈출하기 위해 결혼했다면, 처음에는 목적을 이루었으니 만족스럽겠죠. 하지만 어떤 선택이든 대가가 따르게 마련이죠. 흔히 생기는 남편 또는 시댁과의 갈등으로 인한 심적 고통 같은 것 말이에요." (김박사)
(6) "개인적으로 요즘은 서로 존중하고 신뢰할 수 있는, 그래서 가장 친밀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관계가 행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김박사)
저는 이 말에 동의합니다. "서로 존중하고 신뢰할 수 있는" 부부 관계(부자 관계도 마찬가지고 다른 인간관계도 ..), "그래서 가장 친밀한 관계를 지속할 수 있는 관계가" 행복의 중요한 조건이라 저 또한 생각합니다. 특히 저는 이 문장에서 "가장 친밀한 관계를 지속할 수"있는 능력이 어디서 오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 이유는 그러한 능력이 우리 안에는 없기 때문이라 저는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 능력이 우리 사람 안에 있다고 믿고, 나 중심적인 능력으로 부부 관계 등을 친민한 관계를 지속하려고 한다면, 그러한 관계는 언젠가는 깨질 수 밖에 없다고 전 생각합니다. 그 정도로 저는 제 아내하고의 관계부터 해서 제 3자녀들 각자와의 관계에 있어서 매우 중요시여기는 것은 주님과 저하고의 관계, 주님과 제 아내하고의 관계, 주님과 각각 자녀와의 관계를 매우 중요시여기고 노력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사랑하는 식구와의 친밀한 관계를 지속하기 위해선 주님과 나와의 친밀한 관계가 지속될 때만이 온전히 가능하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저는 집이란 공동체 뿐만 아니라 교회란 공동체 안에서도 (수평적인) 친밀한 교제를 가지기 위해선 먼저 (수직적인)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사귐)가 없이는 온전한 교제가 불가능하다고 믿습니다. 특히 가족이란 공동체 안에서 집안의 가장인 저같은 남편/아빠가 주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게을리하게되면 그 결과(consequences)는 저와 제 아내와의 관계/교제 뿐만 아니라 제 세 자녀들과의 관계/교제 및 교회 식구들 등등 모든 인간관계에 큰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배우고 있는 중요한 교훈 중에 하나가 주님이 저를 사랑하시듯이 제가 주님의 사랑으로 저 자신을 사랑하여 주님이 저를 보배롭고 존귀히 여기고 계시듯이 저 또한 자신을 그리 대하므로(사랑하므로) 제 아내과 자녀들 등을 사랑하고 대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고 실천에 옮기려고 부족하나마 애쓰고 있습니다.
(7) "섹스란 단순한 본능의 산물만이 아니에요. 아이를 낳는 생물학적인 목적도 있지만, 감정을 나누고 친밀감을 유지하는 중요한 소통의 수단이거든요." (김박사)
저는 이 말에 동의합니다. 섹스의 이 두 가지 목적 중 저는 우선순위를 "아이를 낳는" 것에 두고 있습니다. 그리 생각하는 근거는 말라기 2장 15절입니다(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1322162543).
그리고 부부 관계에 있어서 섹스란 "친밀감을 유지하는 중요한 소통의 수단"이란 말도 중요다가고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결혼의 목적 중 하나가 '성적 부도덕 행위의 회피'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고전7:2-3)
부부관계에 있어서 섹스란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요즘 "섹스리스부부"(1년에 10회 미만, 한들에 1회 미만 잠자리)가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위험한 신호라 생각합니다. 부부가 섹스를 즐겨야 하며, 서로에게 성족 만족감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나아가서, 부부는 서로 섹스를 즐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귀한 선물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부부가 섹스에 대한 대화도 즐겨야 하며 더 나아가서 (나이가 어느 정도 된) 자녀들에게도 섹스에 대한 대화를 부모가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8) "그럼, 이혼하라는 말씀인가요?"(김은주) "선택은 은주씨의 몫이에요"(김 박사)
제가 대학교 때 심리학 전공을 한 이유는 앞으로 목사가 되면 성도님들을 카운슬링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들었기 때문입니다. 대학 졸업후 신학교에 들어가서 성경적인 카운슬링(biblical counseling)을 공부하면서 제가 대학교 때 공부한 심리학이 얼마나 인본주의적인 것인지, 사람 중심된 카운슬링인지 좀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성경적인 카운슬링을 공부하면서 성경적인 카운슬링에 관심을 가지고 신학교의 과목 외에 따로 책들을 사서 읽기 시작했습니다. 지금도 관심을 가지고 배우고 있는 중에 이 (8)번의 글을 연관해서 생각나는 점은 상담을 요청한 사람[성도님이든, 아는 지체이든 client(?)]이 상담자에게(이 경우 "김 박사") "이혼라하는 말씀인가요?"라고 저렇게 물어볼 때에 "예, 이혼하세요"라고 말해서는 안된다고 배웠습니다. 좀 달리 말한다면, 김 박사의 말처럼 "선택은 은주씨의 몫이에요"라고 답해야 한다고 저 또한 생각합니다. 이것을 이렇게 짦게 언급하는 이유는 주로 부부 관계가 힘들어서 여러분에게도 속 마음을 터놓고 얘기할 때 여러분은 그 상대방 지체를 사랑하기에 그 지체의 감정 등에 개입에 대서 함께 그 지체의 배우자를 함께 불평하던지 등등 하는 것, 과연 그것이 주님이 원하실까 의문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 지체가 여러분에게 '나 그이와 이혼하려고 하는데 이혼라까 말까?' 등등 그런 질문을 받을 때 우리는 '그래, 나 같으면 이혼해' .. .등등 ... 상대방이 선택할 것은 우리가 그들에게 그리 선택하라고 말하는 것을 삼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9) "제가 장녀지만, 그냥 어쩌다보니 먼저 태어난 것일 뿐이잖아요. 제가 원한 것이 아니라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양보하고 책임지고 희생해야 하나요? 그래야 착한 딸인가요?"(김은주)
"장녀"로서 김은주 씨는 "양보하고 책임지고 희생해야 하나요?" 라고 "김 박사"에게 말했는데 저는 이 말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그 이유는 제 아내가 장녀로서 "양보하고 책임지고 희생"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양보"라는 단어... 휴... 전에도 나눴지만 한국에서 살았을 때 아내랑 큰 갈등을 통해서 아내를 더 알게된 점은 아내는 자기가 양보하면 살았던 것처럼 자기 장남 아들이 그렇게 양보하며 (희생하며) 살기를 원치 않은 어미의 심정을 알게 되었습니다. 강조할 수 없는 거지요. 신앙의 성숙에서 양보하며 예수님처럼 희생의 기쁨을 맛보야겠지요.
소히 말하는 "착한 남자"를 싫어한다고들 그러는데 아마 "착한 딸"로 산다는 것, 부부 관계와 자녀와의 관계에도 충분히 영향을 끼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10) "은주씨의 결정 이해합니다. 문제는 그런 결혼의 불행한 결과도 오롯이 은주씨가 짊어져야 한다는 데 있죠."(김 박사)
왜 김은주 씨가 그 남자하고 결혼했는제 그 여자의 말을 듣고 "김 박사"는 "이해"는 한다고 말은 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런 결혼의 불행한 결과도" 김은주 씨가 짊어져야 한다는 것을 말해줬다는 것입니다. 이 점을 통해 생각난 것은 결혼의 선택 외에 결혼을 하고 나서도 수 많은 선택들을 하면서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데 그 선택들의 "결과"(consequences)를 늦게나마라도 깨닫고 "아직 기회가 있다면" 그 기회(opportunity)를 포착하여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부르짖는 가운데 회개(repentance)가운데 회복(restoration)을 추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더 좋은 것은 물로 우리의 선택의 결과를 늦게 말고 미리 알고 지혜롭게 선택을 하는 것이겠지요. 그만한 지혜를 가지고 결혼하는 젊은 남녀가 몇명이나 될까 하는 생각도 들지만 결혼을 하나님 앞에서 겸손히 믿음으로 잘 준비하고 있는 지체들은 지혜롭게 잘 선택하겠지요. 그런 지혜의 선택을 제 자녀들이 하길 기원하고 있습니다. 그 뿐만 아니라 저는 제 자녀들에게 미래의 배우자에 대한 진실한 사람, 성품의 초점을 맞춰야 함을 여러번 권면했습니다. 그 이유는 믿음이 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도 성품이 예수님을 닮아가지 못하고 진실하지 못하고 거짓말을 하고 속이고 등등, 그런 배우자를 만날까봐 전 염려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결혼 전에 한번의 잘못된 선택이 얼마나 큰 고통스러운 결과를 가지고 오는지 제가 직접 경험하고 또한 가까운 사랑하는 지체들이 고통당하는 것을 엿보았기에 저는 선택의 결과에 대해 자녀들하고 가끔 나눴습니다.
(11) "가장 오랜 시간을 나눈 부모·형제가 가장 편안한 관계가 되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김은주)
그런데 실제로는 "화목한 가족"이 우리 주위에 그리 많치 않다는 것입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에는 화목한 가족처럼 충분히 보일 수 있지요. 그런데 "가족끼지 화목하지 않은 집들이 적지 않"은게 아니라 많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가족에 어떻게 갈등이 없을 수 있겠습니까? 의견 충돌과 다툼과 상처와 아픔과 눈물 등... 두 죄인이 모여 한 부부가 되었으니 얼마나 두, 네 배로 서로에게도 죄를 짓겠습니까? 하하. 그렇지만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믿고, 죄 사함/용서를 믿고, 유대인과 이방인 사이에 담을 허물고 화목케 하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으심을 믿기에 그 모든 죄악들이 가족에서 들춰짐에 있어서 복음의 합당한 삶을 살아가는데 헌신하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고자 자신과의 싸움을 부지런히 하는 가운데서 화목한 가족을 세우는데 헌신한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가장 오랜 시간을 나눈 부모.형제가 가장 편안한 관계가 되어야" 합니다. 피하고 싶고, 멀리하고 싶을 정도로 불편한 관계라면 .. 글쎄요. 과연 주님 보시기에 예수님을 믿는 화목한 가정으로서 예수님의 빛을 발하고 소금 역활을 하는 증인 공동체인가 심각하게 생각하고 기도하며 돌이켜야 겠지요..
(12) "세상이 많이 바뀌고 있지만, 아직까지 가족이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은 변함이 없어요. ....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그래서 더 많이 이해할 수 있어야 행복한 가족이 될 수 있어요. ‘아는 것이 많을수록 행복한 가족이 됩니다.’ 그러니 정말 가족의 행복을 원한다면, 더 많이 이해하고 소통하고 사랑해야 합니다. 가족의 행복은 어쩌다 얻게 되는 선물이 아니랍니다. 행복해지고 싶다면 노력해야죠" (김박사)
마지막 한 가지만 더 생각하고 싶습니다. "가족이 모두에게 가장 중요한 가치인 것은 변함이 없"지요. 이렇게 가장 중요한 가정.... "서로에 더 많이 알고, 그래서 더 많이 이해"해야 한다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물론 어떻게 100% 알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저는 죽을 때가지 제 아내를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한 제 자녀들을 알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 알아감에 있어서 저는 '마음과 마음이 이어지는 대화'를 매우 중요시 여기고 있습니다. 그리고 실천에 옮기고자 노력함에 있어서 저는 3가지 원리가 있습니다 [이 원리는 저의 개인적인 모든 인간관계에 적용해서 실천에 옮기고자 노력하는 것임]. 그 3가지 원리란 (1) 정직 (honesty or integrity), (2) 투명성 (transparency), (3) 상처 받기 쉬움 (vulnerability). 그래서 저는 이 원리대로 제가 먼저 마음 문을 열고 제 마음의 이야기들을 정직하게 그리고 투명하게 나누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제 자신의 마음의 나눔은 부부 대화 뿐만 아니라 저는 세 자녀하고의 대화 속에서도 이 세가지 원리에 따라 실천에 옮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리할 때 주님의 역사를 많이 경험합니다. 서로를 주님 안에서 알아가므로 서로를 이해하며 그 모습 그대로 사랑하되 소망을 가지고 이해하며 용납하며 인내하며 등등 사랑케 하시는 역사를 경험합니다. 그리고 더 많이 주님의 사랑으로 사랑하고 싶어서 더 많이 이해하고 소통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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