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빛이시라” (5)
[요한일서 1장 5-10절 말씀 묵상]
마지막 셋째로, 빛이 자녀들은 죄를 자백합니다.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9절을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우리 죄를 고백하면 신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은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모든 죄악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잊지 못합니다. 제가 이 말씀을 처음으로 외웠던 것은 대학교 때 어느 목사님이 제가 다니던 대학교 캠프스에 오셔서 제자 훈련 성경공부를 인도하셨을 때 입니다. 그 때 그 목사님께서는 저와 또한 제 선배님들하고 성경공부를 가르치시면서 제일 먼저 가르치셨던 것이 제 기억으로는 5가지 확신이었습니다. 그 다섯 가지 확신이란 바로 구원의 확신, 기도응답의 확신, 인도의 확신, 승리의 확신, 죄사함의 확신입니다. 저는 이 다섯 가지 확신 구절이 참 중요하다고 생각함. 그 때 대학교 때 처음으로 그 다섯 가지 확신 구절을 접하고 배운 후로부터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그 한 구절, 한 구절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실제로 삶 속에서 더욱더 느끼고 있습니다:
(1) 구원의 확신 (요일5:11-12):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없는 자에게는 생명이 없느니라.”
(2) 기도응답의 확신 (요16:24):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3) 승리의 확신 (고전10:13):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
(4) 인도의 확신 (잠 3:5-6):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5) 사죄의 확신 (요일1:9):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제가 이 5가지 확신 말씀 중에 근래에 와서 묵상하며 제일 고민했던 말씀은 바로 “인도의 확신”인 잠언 3장 5-6절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묵상과 고민 중에 깨닫게 된 것은 제가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는데 제일 큰 방해가 되는 것이 바로 제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제 명철을 의지하는 습관(본능)대로 살아가면 살아갈 수록 제 자신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위험이 충분히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7절). 예를 들어, 제가 제 생각과 계획과 방법대로 이런 저런 일들을 추구하다가 계획대로 잘 되면 저는 분명히 제 자신(의 명철)을 더욱더 의지하게 될 것이고(그 말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는다 는 것임) 또한 저는 제 자신이 스스로 지혜롭다는 교만한 생각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까지 되면 저는 결코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말씀과의 씨름 속에서 들었던 마음의 결심을 이렇게 적었습니다(2015. 7. 9.): “나는 오늘도 내 명철을 의지하지 않고 내 생각과 내 계획대로, 내 방법대로, 내 시간에 되어지지 않는 일들을 감사히 생각하며 받아들인다. 그 이유는 그러면 그럴 수록 나는 주님만 의지할 수 밖에 없어지기 때문이다. 주님만 의지하고 신뢰하며 주님의 생각과 주님의 계획과 방법대로 주님의 때에 주님께서 주님의 뜻을 이루시길 기원하는 바이다.” 이렇게 저는 근래에 “인도의 확신” 에 대한 고민과 씨름과 배움이 있었지만 이 5가지 확신 말씀을 대학교 때 배웠을 때 제일 큰 고민이 되었던 확신은 바로 “구원의 확신”이었습니다(요일5:11-12). 분명히 성경은 “아들이 있는 자에게는 생명이 있”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요일5:12) 저는 오랫동안 제 자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을 믿고 있는 것인지 아닌니 확신이 서지 않았음. 제일 큰 이유가 저는 계속해서 하나님께 같은 죄를 범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랬기에 저는 당연히 “승리의 확신” 성경 구절인 고린도전서 10장 13절을 수 없이 마음 속으로 외웠던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제 자신의 습관적인 죄와 싸움에 있어서 승리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제 자신의 죄와의 싸움에서 지고 또 지고 하니까 승리의 확신 성경 구절도 저에게는 큰 고민이 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랬기에 동시에 저는 “기도 응답의 확신”도 없었음. 그 이유는 그리고 수 없이 하나님께 그 습관적인 죄악된 삶에서 건져주시길 기도했는데 하나님의 기도 응답이 없다고 여겨졌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저에게는 “사죄의 확신”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저에게는 죄사함의 확신이 없었기에 항상 죄를 짓고나면 죄책감과 자괴감에 허덕이곤 했습니다. 그 “사죄의 확신”이 바로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9절 말씀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사도 요한이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이라고 말했는데 여기서 그가 말한 “우리 죄”는 무엇일까요? 물론 우리는 오늘 성경에서 “우리 죄”하면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는 모든 죄를 생각하겠지만 사도 요한이 요한일서란 편지를 써내려가면서 무슨 죄를 염두해 두고 “우리 죄”라고 편지를 쓴 것일까요? 저는 이것이 궁금해서 다시금 오늘 본문 요한일서 1장 5-10절을 읽고 읽으면서 사도 요한이 6절과 8절과 10절에서도 “만일”로 시작하는 것을 좀 묵상하게 되었습니다: (6절) “만일 우리가 하나님과 사귐이 있다 하고 어둠에 행하면 거짓말을 하고 진리를 행하지 아니함이거니와”, (8절) “만일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 (10절)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니라.” 저는 이 세 구절 말씀을 오늘 본문 9절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할 때 사도 요한이 말한 “우리 죄”란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어둠에 행하는 것입니다(6절). 이것은 거짓말을 하는 죄요 또한 진리를 행하지 않은 죄입니다(6절). 또한 사도 요한이 말한 “우리 죄”란 우리가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이나(10절) 또는 우리가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8절) 또한 “우리 죄”라는 것입니다. 자기의 죄를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부인(deny)하는 것도 “우리 죄”입니다.
여러분,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범한 죄를 인정하지 못하게 만들고 오히려 자꾸만 부인하게 만들고 있는 것일까요? 왜 우리는 우리의 죄를 “자백”하지 않는 것일까요? 저는 그 대답을 요한일서 2장 11절에서 찾아보았음: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지 않는 이유는 어두움이 우리의 눈을 멀게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예를 들어 성경은 형제를 사랑하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우리가 그 말씀을 어기고 불순종하면 우리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갈 곳을 알지 못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는 미움이라는 어두운 죄로 말미암아 눈이 멀었기 때문입니다. 마치 눈이 멀면 볼수 있는 능력이 상실한 것처럼 우리가 어두움에 행하고 있으면 죄를 죄라고 인정할 수 있는 능력이 상실합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죄를 범하고도 죄가 없다고 말하는 것이요, 죄가 없기에 자백할 필요성도 못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도 요한이 말하고 있는 “우리 죄”가 하나님과 교제한다고 하면서 어둠에 행하는 것이라고 말했는데(6절) 여기서 어둠에 행하는 것이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4절을 보십시오: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어둠에 행한다는 것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9, 11절을 보십시오: “빛 가운데 있다 하면서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지금까지 어둠에 있는 자요 … 그의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어둠에 있고 또 어둠에 행하며 갈 곳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그 어둠이 그의 눈을 멀게 하였음이라.” 이렇게 어둠에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면서 하나님께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죄를 자백하지 않지만 빛 가운데 행하는 자들은(7절) 자신의 죄를 자백합니다. 그 이유는 빛 가운데 행하는 자들은 어둠에 행하는 자들과 달리 빛에 들춰진 자신의 죄를 깨닫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깨달은 죄를 그들은 부인하지 않고 인정하며 자백하는 이유는 그들은 죄사함의 확신이 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피가 자기들을 모든 죄(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을 믿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죄를 자백합니다(7, 9절). 또한 빛 가운데 행하는 자들이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이유는 요한일서 1장 9절의 말씀을 믿고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빛 가운데 행하는 자들이 자신의 죄를 자백하는 이유는 하나님은 미쁘시고 의로우셔서 우리 죄를 사하실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9절). 왜 하나님께서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백하면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는 이유는 바로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되셨기 때문입니다(2:1, 2). 성경 요한일서 4장 10절을 보십시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사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우셨습니다(골1:22).
우리의 죄를 위한 화목 제물이 디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제임스 김 목사 나눔
[2019년 6월 30일, “허물의 사람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시 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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