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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 are taught that we must become upright people who, in God’s sight, are blameless and fully keep His commandments.  

We are taught that we must become upright people who, in God’s sight, are blameless and fully keep His commandments.       “In the time of Herod king of Judea there was a priest named Zechariah, who belonged to the priestly division of Abijah; his wife Elizabeth was also a descendant of Aaron. Both of them were righteous in the sight of God, observing all the Lord’s commands and decrees blamelessly” [(Modern Translation: “When Herod was king of Judea, there was a priest named Zechariah of the division of Abijah, and his wife Elizabeth also came from the family of Aaron. They were righteous before God and faithfully kept all the Lord’s commandments and regulations without fault”)] (Luke 1:5–6).   While meditating on this passage, I would like to draw out the lessons given to us:   (1)    The author of Luke’s Gospel, Luke, first wrote to Theophilus about John the Baptist’s parents. The father’s name was “Zechariah” (meaning, “The LORD remembers...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사도행전 13장 42-52절 말씀 묵상]


 

루이 14 시대  퐁텐가 풍자한 우화가 있습니다(인터넷).  '늑대와 어린 '이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목이 말랐던 어린   마리가 골짜기에서 물을 마시려는데 늑대가 나타나서 "내가 마실 물을 감히 더럽히는 무례한 이라고  소리로 꾸짖었습니다.    없이 어린양은 스무 발짝쯤 아래서 물을 마시겠다고 통사정을 했습니다.  그런데도 늑대는 막무가내였습니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한다는 소리가 " 이놈지난해 나한테 욕을 했겠다?"였습니다.  어린양은 "지난해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는 걸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렇다면  형이나 아비어쨌든  식구가 틀림없어라고 늑대는 억지를 부렸습니다.  그리고는 어린양을  속으로 끌고  냉큼 잡아 먹고 말았습니다.”   작품은 "강한 자의 주장이 언제나 정의"라는 사고가 통용된 우화입니다.

 

            어느 시대나 강자들이 지배해 왔습니다.  힘있는 권력있는 지식있는 돈있는 자들이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지배해 왔습니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신분제도에 의해 종속되기도 하고 부에 의해권력에 의해 사람들은 종속되어 살았습니다.  교회는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공동체가 아닙니다세상을 닮은 교회들은 자신도 모르게 힘의 원리에 지배받아 자기 만족과신오만에 사로잡힙니다.  교회는 결코 힘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이 되어서는 아니 됩니다.  은혜의 원리가 지배하는 곳이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은혜로 섬기는 곳이 합니다.  인간의 옷을 입고 오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구원을 완성하였습니다 힘의 원리가 아닌 은혜의 원리에 의한 구속의 방법입니다.  힘으로 자랑하는 곳이 아니라 은혜로 섬기는 곳이 교회입니다 은혜로 섬겨야 합니다(인터넷).

 

오늘 본문 사도행전 1343절을 보면 이런 말씀이 나옵니다: “...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으라 권하니라.   말씀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는 삶의 방식을 표현합니다.   구절과 유사한 표현은 사도행전 1123절에 등장하는 “주께 붙어 있으라(머무르다) 말씀입니다.  믿음의 삶은 계속해서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머무는 삶입니다.  믿음의 삶은 처음에는 하나님의 은혜로 시작했다가 중간에는 인간의 노력이나 힘으로 나가는 삶이 결코 아닙니다(유상섭).  우리는 참다운 믿음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시작도 하나님의 은혜로중간도 하나님의 은혜로또한 끝도 하나님의 은혜로 끝마쳐야 합니다.  결코 우리는 갈라디아 교인들처럼 믿음으로 시작했다가 인간의 행위로 마쳐서는 아니됩니다.  이러한 어리석고 그릇된 신앙의 병폐를 우리를 방지해야 합니다.

 

오늘  말씀 중심으로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한 3가지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 또한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길 기원합니다.

 

첫째로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여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3장 44절을 보십시오 다음 안식일에는  성이 거의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안디옥에 이르로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서 유대인들과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에게(16) “ 구원의 말씀(26) 전파하였던 바울과 바나바는 회당에서 나갈새 사람들이 다음 안식일에도  말씀을 전해달라고 청하였습니다(42).  그래서  다음 안식일에는  성이 거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였습니다(44).  아마도  전주 안식일에 바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들은 구원의 말씀의 은혜를 많이 받았던  같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하여 듣고자 다시 모이되 전주보더  많이 모였던  같습니다.  저자 누가는  성이 거의  모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는 가뭄의 현상이 있습니다.  아모스811을 보십시오: “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절대 진리의 존재를 부인하는 시대사실인 하나님의 말씀보다 심리적 조작 (manipulation) 통한 감정 유발이 주목을 받는 시대말씀의 행함보다 말많은 시대귀가있어도 하나님의 말씀(음성) 듣지 못하는 시대등등.  오늘 본문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환영하지 않고 오히려 반대하는 무리들을  수가 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들로서 많은 사람들이 바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모이는 것을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하였습니다(45).   유대인들이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하고 비방한 이유는 무엇이였습니까?  물론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들릴리가 만무할 것입니다.  자기들의 귀에 거슬렸기 때문에 바울의 말한 것을 변박했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귀에 바울의 말한 것이 거슬렸겠습니까?  유상섭 교수님에 의하면 아마도 바울이 전파한 말씀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는 내용이였기에(38-39유대인들이 반박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유는 바울의 말한 것을 반박하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세 율법을 준수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기 위해서는 항상 하나님을 말씀을 듣고자 모이기를 힘써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모이기를 폐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는 이렇게 우리에게 권면하고 있습니다모이기를 폐하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하지 말고 오직 권하여  날이 가까움을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10:25).  우리는 이러한 습관을 벗어버리고 모이기를 힘써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8장 14절을 보십시오: “가시떨기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은 자니 지내는  이생의 염려와 재리와 일락에 기운이 막혀 온전히 결실치 못하는 자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 방해가 되는 요소를  3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이생의 염려(life's worries), 재리(riches그리고 일락(pleasures).  걱정근심하며 (물질) 하나님과 같은 위치에 놓을 정도로 우상화하여 좇고 또한 섬기며 세상 쾌락으로 자기 자신을 만족케하려고  때에는 말씀을 들었어도 신앙의 성숙을 가지고   없습니다.  이러한 신앙 생활을 가리켜 "가시떨기신앙 생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 생각합니다.  그러면  위에 3가지  무엇이 나로 하여금 나의 신앙 성숙을 막고 있는가   질문을 던져 봅니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해야 합니다.  느헤미야 81-5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갈망하였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나옵니다.  이들은 학자 에스라에게 모세의 율법책을 강론해 주기를 청한  수문 광장에서 새벽부터 오정까지(이동원 목사님은  여섯 시간 정도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음)서서  율법책을 에스라가 봉독하는 것을 듣었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것도 하루만 그런 것이 아니라 7일동안 매일 6시간씩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입니다(8:18).

      

          둘째로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기 위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3장 48절을 보십시오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믿더라.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한다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영화롭게 하였다는 뜻입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영화롭게 하였다는 말씀입니까?   칼빈은  두가지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1) 첫째로바울의 말한   오늘 본문 47절의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49:6인용) 진실이라고 고백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영화롭게 하였다는 것입니다[(47) “주께서 이같이 우리를 명하시되 내가 너를 이방의 빛을 삼아 너로  끝까지 구원하게 하리라 하셨느니라 하니].  사도 바울은 이방전도의 당연함의 이유로 첫째는 46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유대인들이 복음 듣기를 거절한 까닭이요 또한 4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이사야 선지자의 예언처럼 성경적 근거로 보아서도 당연한 까닭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박윤선).  둘째로바울의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방인들은  말씀의 교리(교훈) 믿음으로 받아들이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영화롭게 하였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존경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존경하는 자는  말씀을 아멘으로 받고  말씀에 믿음으로 복종하는 것입니다(칼빈).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므로 말미암아 말씀 인격화하는 삶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영화롭게 한다고 말할  있을 것입니다.   좋은 예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을 통하여 선포된 말씀을 사람의 말로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습니다(살전2:13).  그리고  말씀을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받아(살전1:6-7) 결국  말씀이 믿는  속에서 역사하여(2:13) 주님을 본받는 자들이  것입니다(1:6).   나아가서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것입니다(1:7).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데서 끝나면 아니됩니다.  우리는  말씀을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실(true)임을 고백해야 하며 또한  말씀을 믿음으로 받으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영화롭게 해야 합니다.  특히 우리는 핍박과 환난 가운데서(13:50)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기쁨으로 받아  말씀으로 하여금 우리 믿는자 속에 역사케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말씀 인격화  삶을 살아가면서 예수님을 더욱더 본받는 자가 되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마지막 셋째로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기 위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사도행전 13장 48절을 보십시오이방인들이 듣고 기뻐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찬송하며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믿더라.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는 하나님의 전적으로 은혜로  사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주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익히 들어 아는 ‘예정론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신 주권적 은혜로 하나님께서 선택한 자들은 믿음을 선물로 받아 예수님을 나의 구세주로 영접하게 된 것입니다.   나아가서 바울과 바나바의 말씀을 듣고 주님을 영접한 결과그들을 통하여 주님의 말씀이 비시디아 안디옥 전역에 두루 퍼지는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49).

 

            우리는 예수님을 열심히 믿어야 합니다.  요한복음 62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라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최고로 열심히 해야할 하나님의 일은 바로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을 보십시오: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가 항상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있을  우리는 기쁨과 성령이 충만한 것입니다 (52).  바울과 바나바를 통하여 구원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작정된 비시디아 안디옥 신자들은(14핍박 중에서도 오히려 기쁨 충만성령충만하였습니다.   이유는 무엇이였습니까?   이유는 그들은 오직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 만족하였기 때문입니다 (박윤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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