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
“아브람이 롯에게 이르되 우리는 한 친족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창세기 13장
8절, 현대인의 성경).
한 2주전 화요일 온라인 가족 기도 모임 때 에베소서 5장 31-33절과 제가 쓴 2개의 글 중심으로 “주님, 우리 온 가정 친척 식구를 사랑의 가정으로 세워주소서”란 제목 아래 7가지 생각을 나눴었습니다: (1) 가정은
참 중요합니다, (2) 가정의 가장인 남편의 영적 건강이 참 중요합니다, (3) 가정의 가장인 남편의 영적 성숙과 지도력이 참 중요합니다, (4) 영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남편은 아내를 우선으로 사랑합니다, (5) 영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남편은 건강한 경계선을 분명하게 급니다,
(6) 부부 관계의 위기나 고비가 올 수 있습니다, (7) 부부 관계는 그리스도와
교회와의 관계와 일치해야 합니다. 이
7가지 생각 중 “영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남편은 건강한 경계선을 분명하게 급니다”라는 5번째 생각을 하면서 저는 에베소서 5장
31절 말씀을 인용했습니다: “그래서 성경에는 '사람이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두 사람이 한 몸이 될 것이다.' 라고 했습니다”(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저는 이 말씀을 인용해서 5번째 생각을 나눴을 때 고부갈등을 예로 들었습니다. 저는 시어머니와 며느리의 갈등에서 남편이 에베소서
5장 31절 말씀대로 “부모를 떠나”지 못한 경우를 예로 들었습니다. 만일 남편이 부모(특히 어머니?)를 떠나지 못하면 자신의
어머니와 자신의 아내와의 관계에서 고부갈등은 끊임이 없을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영적으로
건강하지 못하고 미성숙한 남편은 자기 어머니를 (정신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떠나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자기 아내와 자기 어머니와의 관계 사이에 건강한 경계선을 분명히 긋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는 자기 아내와 자기 어머니와의 갈등 관계 속에서
자기 아내를 보호하지 못하기에 그 아내를 시어머니에게 계속해서 상처를 입고 아픔 속에서 눈물을 흘리게 됩니다. 그러나 영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남편은 부모님을 떠나 자기
아내와 합하여 한 몸이 되었기에 자신의 어머님조차도 제 3자로 여길 뿐만 아니라 자기의 자녀나 형제들이나
친척들 등도 다 제3자로 여기고 그들로 하여금 자신의 부부 관계에 침투하여 부부 관계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는
것을 허락하지 않고 지혜롭게 잘 차단합니다.
오늘 본문 창세기 13장 8절을 보면 영적으로 건강하고
성숙한 아브람이 나옵니다. 그는 그의
조카 롯과의 관계에서 존재하고 있는 갈등을 해소하고자 롯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친척이다.
나와 너, 그리고 내 목자와 네 목자끼리 서로 다투지 말자”(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보면 아브람은 자신과 롯과의 관계에서 존재하고 있는 갈등을 전제로 2가지를 말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2가지란 “우리는 한 친척이다”라는 말과 “서로 다투지 말자”[(개역개정)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입니다. 저는 이 2가지 말씀이
우리의 친척들과 관계뿐만 아니라 식구 관계, 특히 부부 관계에도 다 적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부부 관계를
생각할 때 부부 갈등이 있는 경우 남편이 아내에게 ‘우리는 한 몸이다’(엡5:31, 현대인의 성경), ‘서로 다투지 말자’(창13:8,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와의 갈등을 주님 안에서 해소하고자 노력을
해야 합니다. 이렇게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습니다(마5:9).
오늘 본문 창세기 13장 8절에
나오는 아브람은 화평케 하는 자였습니다. 그는 사랑하는 조카 롯과의 관계에서 서로 다투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롯에게 “우리는 한 친척이다. 나와 너, 그리고 내 목자와 네
목자끼리 서로 다투지 말자”라고 말한 것입니다(8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면
제가 첫 번째로 던지게 된 질문은 왜 아브람과 롯, 그리고 아브람의 목자와 롯의 목자끼리 서로 다투게 되었느냐는
것입니다. 이 질문을 생각할 때 첫째로
저는 아브람과 롯이 직접 서로 다퉜다기보다 아브람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다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둘째로 그 다툼의 원인은 “아브람과 롯에게 가축이 너무 많아 그들이 함께 살기에는 그 땅에는 목초지가 부족”했기 때문입니다(6절, 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그 땅”이란 어느 곳을 말하는 것일까요? “그 땅”은 “아브람은 자기 아내와 조카 롯과 함께 모든
소유를 이끌고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남쪽 네겝 지방으로 올라”가(1절,
현대인의 성경) “거기서 그는 계속 북쪽으로 올라가 벧엘과 아이 사이,
곧 전에 그가 천막을 치고 단을 쌓은 곳”입니다(3절, 현대인의 성경). 여기서 “전에”란 창세기 12장 5-8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그리고 하란에서 얻은 모든 재산과 종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5절, 현대인의 성경) “그 땅을 지나 세겜 땅 모레 상수리나무”에서(6절) 아브람이 하나님께 약속의 말씀을 받고 “그가 그곳에서 제단을 쌓고”(7절) “그 곳을 떠나 남쪽으로
내려가서 벧엘과 아이 사이에 천막을 쳤는데 벧엘은 서쪽에 위치해 있었고 아이는 동쪽에 위치해 있었다. 거기서도
그는 단을 쌓고 여호와께 경배”했던 곳입니다(8절, 현대인의 성경). 첫째로
흥미로운 점은 아브람은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함께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대로 믿음으로 하란을 떠나(4절,
현대인의 성경)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5절)
벧엘과 아이 사이에 천막을 치고 있다가(8절, 현대인의 성경) 그런 다음 점점 가나안 남쪽 지방으로 옮겨갔다가(9절, 현대인의 성경) 가나안 땅에 심한 흉년이 들어 이집트까지
내려가서 살다가(10절, 현대인의 성경) 아름다운 자기 아내 사래와 이집트 왕 바로와의 사건으로 말미암아 이집트 나라 밖으로 나가게 되어(11-20절, 현대인의 성경) 결국에는 자기 아내와 조카 롯과
함께 모든 소유를 이끌고 이집트를 떠나 가나안 남쪽 네겝 지방으로 올라갔다가(13:1, 현대인의 성경)
다시금 전에 그가 천막을 치고 단을 쌓은 곳인 벧엘과 아이 사이로 돌아왔다는 것입니다(3절). 둘째로 생각하게
된 점은 아브람은 그 벧엘과 아이 사이에 천막을 치고 있으면서 단을 쌓고 하나님께 경배를 했는데(3절,
현대인의 성경; 참고: 12:8) 아브람과
롯에게 가축이 너무 많아 그들이 함께 살기에는 그 땅의 목초지가 부족하여 결국 아브람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었다는 것입니다(6-7절, 현대인의 성경). 이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 후에도
부부가 다툴 수 있고, 식구끼리 뿐만 아니라 친척끼리도 다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다투되 아브람과 롯처럼 풍부한 물질로 인해 식구나 친척 등끼리도
다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잠언
17장 1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마른 빵
한 조각을 먹어도 화목 하는 것이 집 안에 먹을 것이 많으면서 다투는 것보다 낫다”(현대인의 성경).
물질이 좀 부족하여도 식구끼리 화목한 것이 집 안에
물질이 풍부해서 다투는 것보다 낫습니다. 중요한 것은 집 안에 물질이 많은 게 아니라 집 안이 화목한 것입니다. 그러나 식구 중에 욕심이 많은 자는 다툼을 일으킵니다(28:25).
저는 창세기 13장 8-10절 말씀을 묵상하다가 아브람의
목자들과 롯의 목자들이 다투게 된 원인인 그들에게 가축이 너무 많아 그들이 함께 살기에는 벨엘과 아이 사이의 땅의 목초지가 부족하였기 때문이라는
것(2, 6-7절)을 생각할 때 어떻게 그들의 가축이 이렇게 많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원래 처음부터
가축이 많았던 것인지 아니면 나중에 가축이 많이진 것인지 등등 이런 저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12장을
읽어보니까 5절 현대인의 성경에 “아브람이 그의 아내 사래와 조카 롯과
그리고 하란에서 얻은 모든 재산과 종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라는 말씀을 보고 원래부터 아브람은
“모든 재산”이 있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그렇지만 그의 “모든
재산”(12:5, 현대인의 성경)이 그 때부터 “너무” 많았을까(13:6, 현대인의 성경)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창세기 12장 10절을 보면
아브람과 그의 아내 사래와 그의 조카 롯이 머물렀던 가나안 땅에 “심한 흉년”이 들어을 때 아브람은 이집트에 가서 살려고 내려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제가
살고 있는 남가주, California는 물가가 너무 올랐고 아파트 렌트비도 그렇고 여러모로 재정적으로 살기가
힘들기에 듣기로는 많은 사람들이 Texas나 다른 주로 이미 이주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타주에서 여기 Los Angeles로 이사를 오고 싶어도 여기서 사는 비용이 너무 비싸서 오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지만 아무리 물가가 비싸고 해도 부촌이 Beverly
Hills에 사는 사람들은 재산이 많기에 타주로 이사 갈 생각도 나지 않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런 것처럼 만일 아브람이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을 때 그의
“모든 재산”(5절, 현대인의
성경)이 충분했다면 그는 심한 흉년이 들었을 때 이집트에 가서 살려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만일 이러한 제 생각이 맞는다면 또 다른 질문은 ‘그러면 아브람은 어떻게 자신의 “모든 재산”이 “너무 많아”(13:6, 현대인의 성경)졌을까?’라는 것입니다. 제 생각엔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맺으신 대로 아브람을 “축복”하셨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12:2, 3, 현대인의 성경). 어떻게 언약의 하나님께서 신실하게 아브람을 축복하셨냐면 아브람이
거주하고 있었던 가나안 땅에 심한 흉년이 들게 하시므로 아브람으로 하여금 이집트에 내려가게 하시사(10절,
현대인의 성경) 그곳에서 아름다운 아브람의 아내 사래 덕분에 이집트 왕 바로로 하여금
아브람을 후하게 대접하고 그에게 양과 소와 나귀와 남녀 종들과 낙타를 주게 하셨습니다(16절,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이 과정에서 아브람은 신실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언약의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름다운 아내 사래 때문에 자기가 이집트
사람들에게 죽임을 당할까봐서 사래에게 “당신은 그들에게 내 누이라고 말하시오”라고 말했습니다(12-13절,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아내 때문에 죽임을 당할까봐 두려워서 아내에게
거짓말을 하게 한 아브람을 언약의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축복하시되 바로 왕을 통해 그에게 많은 가축을 주게 하신 것입니다(16절). 어느 정도로 많았을까
생각할 때 창세기 13장 2절 현대인의 성경은 “그에게는 가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씀을 묵상할 때 출애굽기 12장 36절과 38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현대인의 성경입니다: “여호와께서는 이집트 사람들이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하여 호감을 갖게 하셔서 그들이 요구한 대로 주게 하셨으므로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
사람들의 물건은 거의 빼앗다시피 하였다. … 그 밖에도 여러 혼합 민족들이 그들을 따라 나왔고 양과 소와
수많은 가축이 그들과 함께 나왔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건져내실 때 이집트 사람들로 하여금 이스라엘 사람들에 대하여 호감을 갖게 하셔서
그들이 요구한 대로 주게 하시사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집트 사람들의 물건인 양과 소와 수많은 가축을 가지고 이집트에서 나왔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아브람이나 그의 후손이 이스라엘 사람들을 축복하시사
수많은 가축을 주셨습니다. 그러면 드는
질문은 아브람의 조카 롯은 어떻게 가축이 많아졌을까 라는 것입니다. 물론 창세기 13장
5절에서 성경은 “롯에게도 소와 양과 종들이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지만 6절에 와서는 “아브람과 롯에게 가축이
너무 많아”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어떻게 롯은 그리 가축이 너무 많았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성경은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지 않기에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제 생각엔 아브람이 하나님께 받은 물질의 축복을 그의 조카인 롯에게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아브람을 축복하여서 아브람에게는 “가축과 은금이 풍부”하였기에(2절, 현대인의 성경) 아브람은 그 풍부한 가축과 은금
중에서 어느 정도를 사랑하는 조카 롯에게 주었기에 “롯에게도 소와 양과 종들이” 있었지 않았나 생각합니다(6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 묵상을 맺고자 합니다. 풍부한 소유로 말미암아 아브람과 그의 조카 롯, 즉 그들의 목자들이 서로 다투고 있었을 때
아브람은 롯에게 “우리는 한 친척이다. 나와 너, 그리고 내
목자와 네 목자끼리 서로 다투지 말자”(창13:8,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했습니다. 비록
아브람과 조카 롯은 서로 다투지 않아 보이지만 그들의 목자들은 아브람과 롯의 가축이 너무 많아 그들이 함께 살기에는 벧엘과 아이 사이의 땅의 목초지가
부족하여 서로 다투고 있었을 때 아브람은 롯에게 그 목자들로 하여금 “서로 다투게 하지 말자”(8절)라고 말한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서로 다투는 자들도 아니요
또한 서로 다투게 하는 자들도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들이요 화평을 지키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왜 이렇게 우리 사이에는 서로 다툼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일까요? 왜 교회 안에서 이렇게
서로 다툼이 많은 것일까요? 소유가
풍부해서 그런 것일까요? 아니면 뭔가가
부족해서 그런 것일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물질의 축복을 서로 다투는 원인이 되게 해서는 아니 됩니다. 오히려 우리는 그 물질의 축복을 지혜롭게 사용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서로 다투지 말고 서로 화목하게 하길 기원하고 있는,
제임스 김 나눔
[2022년 7월 23일, “여러분 가운데 싸움과 다툼이 일어나는 원인이 무엇입니까? 여러분 속에서 싸우는 쾌락에 대한 욕망 때문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해서 살인하며 탐을
내어도 얻지 못해서 다투고 싸웁니다”(약4:1-2, 현대인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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