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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이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라며 영적 파산을 선언할 때, 하나님은 낙타 같은 죄인을 바늘귀로 통과시키시는 구원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인간이 "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 라며 영적 파산을 선언할 때 ,  하나님은 낙타 같은 죄인을 바늘귀로 통과시키시는 구원의 기적을 행하십니다 .       “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 누가복음 18:24-27).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8 장 24-27 절 말씀을 한국어 성경으로 읽은 후 헬라어 성경으로 읽을 때 제일 먼저 한국어 성경으로는 번역되지 않은 “ ὁ Ἰ ησο ῦ ς [περίλυπον γενόμενον]”( 호 이에수스 [ 페릴뤼폰 게노메논 ]) 라는 문장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이 문자의 의미는 무엇이고 왜 한국어 성경책에는 번역되지 않은 것일까요 ?   1.       문장의 의미 분석   이 문장은 두 단어로 나뉘어 문자 그대로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집니다 .   “ ὁ Ἰ ησο ῦ ς”( 호 이에수스 ): ' 예수께서 ' ( 주어 )   “περίλυπον γενόμενον”( 페릴뤼폰 게노메논 ): ' 매우 슬퍼하시며 ' 또는 ' 근심에 싸이신 채 ' ( 분사구문 )   “περίλυπος”( 페릴뤼포스 ) 는 ' 주위에 ' 를 뜻하는 ' 페리 (περί)' 와 ...

비록 우리가 겪는 괴로움은 면하지 못할지라도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괴로움을 ...

비록 우리가 겪는 괴로움은 면하지 못할지라도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괴로움을 ... 큰 물고기를 예비하사 바다에 빠진 요나를 삼키게 하신 하나님께서는 ( 요나 1:17) 박 넝쿨을 예비하사 (4:6) 요나의 머리 위에 그늘을 만들어 주시사 그로 하여금 더위를 피하게 하심으로 그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   그 결과 요나는 그 박 넝쿨 때문에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4:6).   자기의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지 않고 죽고 싶을 정도로 하나님께 분노하고 있는 요나의 괴로움을 면하게 해주신 하나님께서는 예비하신 박 넝쿨로 괴로움을 면하게 된 요나가 그 박 넝쿨로 말미암아 크게 기뻐하는 모습을 보시고 무슨 생각을 하셨을까요 ?   요나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 “  네가 수고도 아니하였고 재배도 아니하였고 하룻밤에 났다가 하룻밤에 말라 버린 이 박 넝쿨을 아꼈거든 하물며 이 큰 성읍 니느웨에는 좌우를 분변하지 못하는 자가 십이만여 명이요 가축도 많이 있나니 내가 어찌 아끼지 아니하겠느냐 ”(10-11 절 ).   자신의 괴로움을 면하게 해준 박 넝쿨을 아낀 요나와 니느웨 사람들을 아끼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사람들을 하나님 아버지의 마음으로 아끼고 있는지를 뒤돌아봐야 할 것입니다 .   비록 우리가 겪는 괴로움은 면하지 못할지라도 죽어가는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공감하여 그 영혼들의 구원을 위하여 힘쓰고 애써야 합니다 .   그리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의 역사 ( 일 ) 을 목격하게 될 때 우리는 크게 기뻐할 것입니다 .

그 "박넝쿨" 같은 것을 아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그 "박넝쿨" 같은 것을 아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더럽힌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아끼시고 ( 에스겔 36:21)  또한 선악을 분별하지 못하는 수 많은 사람들을 아끼시고 계신데 ( 요나 4:11, 현대인의 성경 ),  지금 우리는  우리의 괴로움을 면하게 해주는  우리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났다가 그 다음 날 아침에 말라 죽 " 는  그 " 박넝쿨 " 같은 것을 아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  ( 요나 4:6, 10)

내가 그리도 아끼는 그 "박넝쿨"이 없어졌을 때 ...

내가 그리도 아끼는 그 "박넝쿨"이 없어졌을 때 ...   나의 괴로움을 면하게해주므로  나를 크게 기쁘게 해주는 내 인생의 " 박넝쿨 ",  그래서 비록 내가 수고하지도 않았고 키우지도 않았으며  하룻밤 사이에 났다가 그 다음 날 아침에 말라 죽는 " 박넝쿨 " 이지만  내가 그리도 아끼는 그 " 박넝쿨 " 이 없어졌을 때  과연 나는 그 " 박넝쿨 " 로 인해 하나님 앞에서  " 내가 죽고 싶을 정도로 화낼 만한 이유가 있 " 는 것인가 ?  ( 요나 4:6-10)

그 "박넝쿨"은 무엇인가?

그 "박넝쿨"은 무엇인가?  혹시 나는 내 인생의 괴로움을 면하게 해주는 " 박넝쿨 " 로 인하여 크게 기뻐하였다가도  그 " 박넝쿨 " 이 없어졌을 때에는  죽고 싶을 정도로 분노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   그 정도로 지금 나는  그 " 박넝쿨 " 을 아끼고 있는 것은 아닌지 ...?   그 " 박넝쿨 " 을 예비하사 나에게 주신 하나님은  내가 그리도 아끼는 " 박넝쿨 " 의 교훈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끼고 계신 영혼들을  나도 아끼길 원하시고 계신데 ...  ( 요나 4:6-11)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시는 것일까요?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시는 것일까요?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 박넝쿨 " 을 예비하시사  우리의 괴로움을 면하게 하시므로  우리가 크게 기뻐하게 하십니다 .   그러시다가 하나님께서는 " 벌레 " 을 예비하시사  우리가 크게 기뻐하는 것을 갉아 먹게도 하십니다 .   그러신 후 하나님께서는 " 뜨거운 동풍 " 을 예비하시사  우리로 하여금 혼미케 하시고 심지어 우리 스스로 죽기를 구하게 만드실 정도까지 가게 두십니다 .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러시는 것일까요 ?   하나님의 뜻은 무엇일까요 ?   어쩌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크게 기뻐하고 매우 아끼는 것을 가지고 가시므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아끼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시고자 하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 요나 4:6-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