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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일 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나지 못한다면 .. (고전 15:12-20)

  https://youtu.be/aGt9hEV6LvE?si=rwEe20LoVNX9W9De

주간 짧은 말씀 묵상 (2022년 8월 22-26일)

주간 짧은 말씀 묵상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 라는 마음 자세가 매우 중요합니다.  애굽 왕 바로가 요셉에게 "내가 꿈을 꾸었는데 그것을 해석해 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그러나 나는 네가 꿈을 잘 해석한다는 말을 들었다"고 말하니까 요셉은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이 왕에게 그 꿈의 뜻을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라고 답변을 했습니다(창세기 41:15-16,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바로 왕의 술을 따르는 신하와 빵 굽는 신하가 같은 날 밤에 서로 다른 꿈을 꾼 후 "우리가 꿈을 꾸었으니 해몽해 줄 사람이 없구나"라고 말했을 때 요셉의 답변이 생각납니다: "해몽은 하나님이 하시지 않습니까?" (40:8,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들을 함께 묵상할 때 요셉은 자기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확고히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습니다!'라는 믿음의 자세로 신앙 생활을 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만일 우리가 아직도 '나는 할 수 있다' 또는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다'라는 생각을 가지고 내 힘과 능력 등으로 문제들을 해결해 나아가려고 하고 있다면 아직도 전적으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아야 합니다.

 

삶의 기근이 너무 심하면 이전의 삶의 풍년을 기억하지 못할 것입니다.  이렇게 극심한 인생의 기근은 풍요롭던 시절을 다 잊히게 만듭니다(참고: 창세기 41:30-31, 현대인의 성경).  왜 하나님께서는 삶의 풍요롭던 시절을 다 잊히게 만드실 정도로 극심한 삶의 기근을 내려주(허락하)시는 것일까요?  혹시 탕자처럼 궁핍함 가운데서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로 돌아오게 하시기 위해서 일까요? (누가복음 15:13-20)  요셉의 때에 왜 하나님께서 젓과 꿀이 흐르는 풍족한 가나안 땅에도 기근이 들게 하셨을까요?  어쩌면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미워하여(창세기 37:8) 그들 죽이려 다가(20)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판(28) 그의 형들의 죄를 회개케 하시려고 했던 것일까요?  혹시 우리로 하여금 과거에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신 풍족한 은혜를 다시금 생각케 만들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appreciation)하게 만드시고 그러시는 것일까요?  어쩌면 삶의 기근으로 말미암은 우리가 경험하는 궁핍함은 하나님의 큰 구원을 경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요? (45:5, 7)

 

요셉의 형들은 요셉에게 선을 악으로 갚았다할지라도(창세기 44:4)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악을 선으로 바꾸셔서 요셉으로 하여금 많은 사람의 생명을 구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50:19,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로마서 8:28).

 

하나님은 우리 죄를 드러내십니다.  우리가 무슨 변명을 하며 어떻게 우리의 무죄를 입증할 수 있겠습니까?(창세기 44:16, 현대인의 성경)  오직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피 흘린 대가로 우리가 자유를 얻고 죄 용서받았습니다(골로새서 1:14, 현대인의 성경).

 

아버지 야곱은 특별히 사랑하였던 라헬이 낳은 요셉(창세기 37:3, 현대인의 성경)이 맹수에게 찢겨 죽은 것이 틀림없다(44:28, 현대인의 성경)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는데 라헬이 낳은 또 하나의 아들은 베냐민에게마저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면 백발이 된 자기를 슬픔 가운데서 무덤으로 내려보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42:38, 현대인의 성경, 참고: 44:29, 현대인의 성경).  그정도로 아버지 야곱의 생명과 야들 베냐민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었습니다(44:30).  그래서 야곱의 아들 유다는 이집트 총리(요셉)에게 "우리가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 만일 이 아이가 우리와 같이 가지 않으면 아이가 없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죽게 될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백발이 된 아버지를 우리가 죽이는 셈이 됩니다  ...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고 어떻게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아버지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는 것을 내가 차마 볼 수 없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30-31, 34,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제가 몇 년전 딸 아이에게 '아빠는 첫째 아기 주영이가 내 품에서 죽었는데 너까지 죽으면 아빠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을 것 같다'라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부모의 생명과 자식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다는 말씀(30)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형들에게 미움과 시기를 받아(창세기 37:4-5, 8, 11, 현대인의 성경) 이집트에 팔린 동생 요셉은 "하나님이 놀라운 방법으로 형님들을 구원하고 형님들과 형님들의 자손들이 살아 남도록 하기 위해서" 자기를 형님들보다 먼저 이집트로 보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이집트에 보내신 분은 그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45:4-5,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묵상할 때 (1)  미워하고 시기하는 형들도 사용하시되 (2) 비록 그들은 요셉을 돈 주고 이스마엘 상인들에게 팔았지만(37:28) (3) 하나님께서는 요셉을 그들보다 약 22[30살 때 애굽의 총리가 됨(41:46) + 7년 풍년(29) + 2년 동안 흉년(45:6) = 39 - 17(37:2) = 22] 먼저 이집트로 보내시사 (4) 그들과 그들의 자손들, "우리 가족을 구하시려고"(45:5, 현대인의 성경)하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하나님의 방법도 놀랍지만 하나님의 때(타이밍)도 흥미롭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요셉으로 하여금 약 22년만에 만난 형들에게 자기가 요셉이고 또한 하나님께서 요셉을 그들보다 앞서 이집트로 보내신 목적을 말하게 한 것일까요?   혹시 그 이유는 가나안 땅에 기근이 더욱 심각해지되 이집트에서 가져온 식량도 다 떨어져서(43:1-2, 현대인의 성경) 다시 이집트로 가서 양식을 사오지 않는 이상 야곱과 그의 아들들과 후손들이 다 굶주려 죽을 수밖에 없는(8, 현대인의 성경; 45:11, 현대인의 성경) 위기 상황이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그리고 아직도 극심한 흉년이 5년 동안이나 남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왠지 극적인 순간(타이밍)에 하나님께서 요셉으로 하여금 그의 형님들과 그들의 자손들과 아버지 야곱 등 온 식구를 살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적합한 때에 하나님의 놀라운 방법으로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이집트 왕 바로는 총리인 요셉의 아버지와 형들에게 "이집트에서 제일 좋은 땅" "가장 좋은 농산물" "이집트의 제일 좋은 것이 다 그들의 것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창세기 45:18, 20, 현대인의 성경).  마태복음 7 11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악한 사람이라도 자기 자녀에게는 좋은 선물을 줄줄 아는데 하물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지 않겠느냐?"(현대인의 성경)  이집트 왕 바로도 히브리인 야곱과 그의 자녀들과 후손들에게 이집트에서 제일 좋은 것을 줬다면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구하는 우리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시 않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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