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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 입니 다 .   지혜의 하나님이시요 능력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 자체가 지혜요 능력 입 니다 .   그 말씀 , 그분의 가르치심을 듣고 감탄한 회당 안에 모였던 사람들처럼 지금도 교회당에 모여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인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 새찬송가 200 장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 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찬양드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 (1 절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주니 , ( 후렴 )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    

짧은 말씀 묵상 (2022년 8월 24일)

짧은 말씀 묵상

 

 

 

가나안 땅에 기근은 더욱 심각해지고 이집트에서 가져온 식량도 다 떨어졌을 때에 서야 아버지 야곱은 베냐민을 다른 아들들과 함께 이집트로 보냅니다(창세기 43:1-2, 13, 현대인의 성경).  떠나 보내면서 야곱은 이렇게 말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14).  이미 특별히 사랑하던 자식 요셉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야곱에게 있어서 또 다른 사랑하는 부인 라헬의 소생인 베냐민마저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는 마음 자세로 이집트로 보낸 것을 생각할 때 에스더가 한 말인 "죽으면 죽으리이다"가 생각납니다(에스더 4:16).  그런데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죄악 된 세상에 보내실 때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죽으면 죽으리이다"가 아니라 실제로 잃으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자 보내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목적은 불순종과 죄 때문에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들을(에베소서 2:1, 현대인의 성경) 살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요한일서 4:9).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태복음 16:25).

 

처음에 곡식을 사러 이집트에 내려갔다가 돌아와서 르우벤이 아버지 야곱에게 "내가 만일 베냐민을 아버지에게 데려오지 않으면 나의 두 아들을 죽여도 좋습니다.  그를 나에게 맡기십시오.  내가 책임지고 데리고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말했을 때에 야곱은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한다 ..."라고 말했었는데(창세기 42:37-38, 현대인의 성경) "지체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두 번이나 (이집트에) 갔다 왔을 것" 같은 때에 유다가 아버지 야곱에게 "저 아이(베냐민)를 나와 함께 보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즉시 떠나겠습니다.  그렇게 해야만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자녀들이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내가 목숨을 걸고 그의 안전을 보장합니다.  그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겠습니다.  내가 만일 무사히 그를 데리고 와서 아버지 앞에 두지 않으면 내가 평생 동안 그 피의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라고 말했을 때에는(43:8-10, 현대인의 성경) 야곱은 "정 그렇다면 이렇게 하여라 ...  너희 동생도 그 사람에게 즉시 데리고 가거라 ..."(11-14, 현대인의 성경)고 말했습니다.  왜 야곱의 마음이 변한 것일까요?  분명히 그는 "그의 형은 죽었고 그만 남았는데 만일 너희가 그를 데리고 가는 도중에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너희는 백발이 된 나를 슬픔 가운데서 무덤으로 내려 보내는 자들이 될 것이다"(42:38,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할 정도였었는데, 어떻게 야곱은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43:14)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그 정도로 그와 가족이 살던 가나안 땅에 기근이 매우 심각하고 이집트에서 가져온 식량도 다 떨어져서 온 식구가 굶어 죽느냐 아니면 이집트에 또 다시 아들들을 베냐민과 함께 내려 보내서 곡식을 사오느냐는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요?

 

야곱의 9명의 아들들이 막내 동생 베냐민과 함께 이집트에 내려가 요셉 앞에 섰을 때에 요셉은 집안 일을 맡은 하인에게 "이 사람들을 내 집으로 안내하고 짐승을 잡아 식사를 준비하라. 이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식사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 하인은 요셉이 시키는 대로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형들은 두려워하여 "지난번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그 돈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끌려왔다. 그가 우리를 치고 달려들어 우리 나귀들을 빼앗고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라고 했습니다(창세기 43:15-18, 현대인의 성경).  흥미로운 점은 요셉의 집안 일을 맡은 하인이 요셉의 형제들에게 한 말입니다: “안심하시오.  두려워하지 마시오 …”(23,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예수님께서 배 타고 육지를 떠나 상당히 멀리까지 갔는데 바람이 휘몰아치므로 배가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을 때 새벽 4시쯤 되어 예수님께서 바다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는데 제자들은 보고 무서워하여 유령이다!’하고 소리쳤을 때 예수님께서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마태복음 14:24-27).  그리고 그 요셉의 하인이 요셉의 형제들에게 당신들의 하나님, 곧 당신들 아버지의 하나님이 그 돈을 당신들의 자루에 넣어 주신 것입니다”(창세기 43:23, 현대인의 성경)라는 말씀도 흥미롭습니다.  그 하인은 이집트 사람이었을텐데 어떻게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혹시 그는 요셉을 통하여 요셉의 하나님을 믿게 되어서 그리말했을까요? 

 

요셉은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서 급히 밖으로 뛰쳐나가 울 곳을 찾다가 자기 안방으로 들어가서 실컷 울었습니다.  그는 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어쩌면 그 이유는 베냐민은 요셉에게 있어서 같은 어머니인 라헬의 소생이요 유일한 동생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이유는 그러한 동생 베냐민을 22년 만에[17살 때 헤어짐(37:2) + 30세 때 애굽 총리가 됨(41:46) + 7년 풍년(47) + 흉년 2년 째(45:11)] 만나서 그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특별히" 사랑을 받아 화려하게 장식한 긴 겉옷을 야곱으로부터 받아 입었던 요셉(창세기 37:3, 현대인의 성경) "특별히" 자기 동생 베냐민에게는 다른 형들보다 다섯 배나 음식을 더 주었습니다(43:34,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특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통하여 조명되어 있고 성령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구원자를 위한 특별한 은혜의 계시"(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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