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애하는 부모도 사용하시는 신실하신 하나님
“그 아이들이 자라 에서는 능숙한 사냥꾼이 되어 들을
좋아하였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어서 집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였다.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를 좋아하였으므로 그를 사랑하였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다”(창세기 25장 27-28절, 현대인의 성경).
왜 자식을 편애하는 것일까요?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 캠퍼스(UCD)
연구진은 768명(384쌍)의 형제자매와 그들의 부모를 면접 조사한 결과, 아버지의 70%, 어머니의 65%가 자녀 중 한 명을 선호한다고 답했으며 그 대부분이 맏이였다고 밝혔습니다(인터넷). 그리고 부모의
편애로 심각한 정서적 손상을 입은 자녀는 자기 자신을 독립적인 한 인격으로 인정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게 될 뿐만 아니라 이성관계 및 결혼생활에도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도 높다고 합니다. 이성을 통해 부족했던 부모의 사랑을 대신 채우려고 관계에 대해 지나치게 집착할 수 있고 또한 상대방으로부터 버림받을 것 같은 불안과
두려움을 안고 살아갈 수도 있다고 합니다. 편애로 상처받은 자녀들은 정서적인 부분에서도 큰 문제를 겪을 수 있다고 합니다(인터넷).
오늘 본문 창세기 25장 28절을 보면 현대인의 성경은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를 좋아하였으므로 그를 사랑하였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아버지 이삭과 어머니 리브가는 자식을 편애한 것일까요?
아버지 이삭은 능숙한 사냥꾼인(28절, 현대인의 성경) 맏아들 에서를 사랑하였는데 그 이유는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를 좋아했기
때문입니다(28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면 어머니 리브가는 왜 작은 아들 야곱을 사랑한 것일까요? 제 생각엔 그 이유는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어서 집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그래서 29절 현대인의 성경에 “하루는 야곱이 죽을 쑤고 있었다”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는 집에서 조용히 음식을 만들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러면 아무래도 집에서 살림을 하시는 어머니 리브가와 시간을 많이 보냈을 것이고 또한 어머님에게 음식을 만드는 법도 배워서 죽을
쑤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그런데
29절 하반절부터 보면 에서가 사냥을 하고 집으로 돌아와서 배가 고파 죽을 지경 이래서(30, 32절, 현대인의 성경) 죽을 쑤고 있는 동생 야곱에게 “그
붉은 죽을 좀 다오”라고 말했습니다(30절, 현대인의 성경). 그 때 야곱은 “먼저 형의 장자권을 나에게 파시오”하자 에서가
“내가 죽게 되었는데 이 장자권이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하고 대답했습니다(31-32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자 야곱은 “장자권을 다시 주장하지 않겠다고 나에게 맹세하시오”라고
말했고 에서는 야곱에게 맹세하고 자기의 장자권을 그에게 팔았습니다(33절, 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에서는 자신의 장자권을 가볍게 여겼기 때문입니다(34절). 이렇게 자신의 장자권을 가볍게 여겨 동생 야곱에게 팥죽 한그릇에
판 형 에서는 창세기 27장에 가서 보면 자기가 받아야 할 아버지 이삭의 축복도 야곱에게 빼앗깁니다:
“… 그가
나를 속인 것이 이번이 두 번째입니다. 전에는 내 장자권을 빼앗아 갔고 이번에는 내 복을 빼앗아 갔습니다. …”(27:36, 현대인의
성경). 저는 오늘 창세기
27장 말씀 중심으로 어떻게 작은 아들 야곱이 형 에서가 아버지 이삭에게 받아야 할 축복을 빼앗아 갔는지 그 과정을 생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특히
저는 맏아들 에서를 편애했던 아버지 이삭을 먼저 오늘 생각하고 다음 주 토요일에는 작은 아들 야곱을 편애했던 어머니 리브가를 생각하고자 합니다.
먼저 맏아들 에서를 편애했던 아버지 이삭을 생각할 때 저는 이삭이 분별하지 못하고 작은 아들 야곱을 축복했다고
생각합니다.
창세기 27장 23절을 보십시오: “그의 손이 형 에서의 손과 같이
털이 있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축복하였더라.” 아버지 이삭은 분별력이 없었습니다. 즉, 그는 자기를 속이는
작은 아들 야곱을 자기가 사랑하는 맏아들 에서 인줄 알고 그를 축복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사랑하는 맏아들 에서와 그의 동생 야곱을 분별하지
못했습니다. 어쩌면 그 이유는 이삭은
나이가 많아서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되었기 때문일 것입니다(1절, 현대인의 성경). 뿐만
아니라 그의 두 아들인 에서와 야곱은 “쌍둥이”었기 때문에(25:24) 더 분별할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제 생각에 이삭이 편애하는 에서를 야곱과 분별하지 못했던 이유는 그 정도로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의 전적 도움을 받아 이삭을 잘 속였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그리도 자기가
사랑하는 맏아들 에서를 자기가 늙어 언제 죽을지 모르기에(27:2, 현대인의 성경) 자기가 좋아하는 별미를 에서가 마지막으로 준비하여 그것을 먹고 죽기 전에 에서를 마지막으로 축복해 주고 싶었는데(2-3절, 현대인의 성경) 결과적으로는 분별하지 못하고 자기를
속이는 자(12절, 현대인의 성경)인 야곱을 축복해주고 말았습니다(23절). 그래도 이삭은 야곱이 자기를 속일 때 제가 볼 땐 적어도
7번이나 야곱이 진정 자기가 사랑하는 맏아들 에서인지 확인을 시도했습니다:
(1)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18절)
이삭은 야곱이 별미와 빵을 가지고 자기에게
와서 “아버지”하고 불렀을 때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라고 물었습니다(18절). 이삭은 야곱이 누구인지를 물었던 것입니다. 분명히 이삭은 에서가 자기가 좋아하는 별미를 가지고 자기에게
올 줄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야곱이 “아버지”라고 불렀을 때 그 음성이 에서의 음성이었다면 이삭은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라고 묻지 않았을 것입니다.
(2)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20절)
이삭이 야곱에게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18절)고 물었을 때 야곱은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 아버지께서 내게 명하신 대로 내가 하였사오니 원하건대 일어나 앉아서 내가
사냥한 고기를 잡수시고 아버지 마음껏 내게 축복하소서”라고 대답했습니다(19절). 그러자 이삭은 그의 아들에게 “내 아들아 네가 어떻게 이같이
속히 잡았느냐”?라고 물었습니다(20절). 그 이유는 분명히 이삭은 에서에게 “너는 활을 가지고 들로
나가서 사냥하여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오너라. 내가 그것을 먹고 죽기 전에 너에게 마지막으로 축복해
주겠다”고 말했는데(3-4절, 현대인의 성경) 에서가 사냥하러 들로 나간 사이에(5절, 현대인의 성경)
어머니 리브가가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말을 엿듣고(5절, 현대인의 성경) 그녀가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그로 하여금 에서 대신 이삭에게 축복을
받게 하고자 이삭이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줘서(9절, 현대인의 성경)
빵과 함께 야곱의 손에 들려 주어서(17절, 현대인의 성경) 야곱이 이삭에게 왔기에 이삭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에서가 사냥감을 빨리 잡아서
별미를 만들어 자기에게 가지고 올 줄을 몰랐기 때문입니다. 그 질문을 받은 야곱은 아버지 이삭에게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도와 주셨기 때문에 사냥감을 빨리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라고
답했습니다(20절, 현대인의 성경). 어떻게 야곱은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까지 말하면서 자기
아버지 이삭을 속일 수 있었을까요?
(3)
"내 아들아 가까이 오라 네가 과연 내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내가 너를 만져보려 하노라"(21절).
이삭은 “나는 아버지의 맏아들 에서로소이다”(19절)라고
말한 야곱에게 “가까이 오라”(21절)고 한 이유는 야곱이 과연 자기
아들 에서인지 아닌지 그를 만져 보기 위해서였습니다(21절). 그만큼 이삭은 야곱이 에서라고 못 믿었기에 확인하려고 그리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야곱이 에서인지
아닌지 확인하고자 그에게 가까이 오라고 하여 그의 손을 만져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에서는 털이 많았고 야곱은 털이 없이 매끈했기
때문입니다(11절, 현대인의 성경).
(4)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22절).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말 대로 가까이
가자 이삭은 그를 만져 보고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22절)고 말했습니다.
즉, 이삭은 야곱의 음성이 에서의 음성이 아닌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나이가 많아서 눈이 어두워 잘 볼 수가 없었기에(1절, 현대인의 성경) 그가 야곱인지를 알아볼 수가 없었기에
그의 손을 만져보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 이유는 에서의 손은 털이 많았기 때문입니다(11절). 그런데 그가 야곱의 손을 만진 결과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22절)라고 말했습니다.
분명히 야곱의 손은 털이 없어 매끈했는데(11절, 현대인의 성경) 어떻게 이삭은 그의 손을 만져보고 “손은 에서의 손이로다”라고 말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어머니 리브가가 집 안에 보관해 둔 맏아들 에서의
제일 좋은 옷을 가져 다가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혔기 때문입니다(15절, 현대인의 성경).
(5)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24절).
“내 아들아 네가 누구냐”?(18절)고 에서 인척 한 야곱에게 질문한 이삭은 야곱을 만져보고 “음성은 야곱의 음성이나 손은 에서의 손”처럼 털이 많으므로 분별하지 못하고
야곱을 축복하려고 했습니다(23절). 그 이 전에 이삭은 야곱에게 “네가 참 내 아들 에서냐”?라고 물었습니다(24절). 그만큼 이삭은 야곱이 자기가 사랑하는 에서인지 확신을 갖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 때 야곱은 “예,
그렇습니다”하고 대답했습니다(24절, 현대인의
성경).
(6)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26절).
이삭은 야곱에게 “내 아들이 사냥한 고기를
먹고 내 마음껏 네게 축복하리라”고 말했고 야곱은 이삭에게로 음식을 가져가매(25절) 이삭이 먹고 포도주를 마신 후 “내 아들아 가까이 와서 내게 입맞추라”고 말했습니다(26절). 그 이유는 야곱이
이삭을 입맞출 때 이삭은 야곱이 진짜 에서인지 아닌지 더 확실하게 알 수가 있을 꺼라 생각하고 그리했던 것 같습니다.
(7)
"그가 가까이 가서 입을 맞추자 이삭이 그 옷의 냄새를 맡아 보고 ..."(27절,
현대인의 성경).
야곱은 아버지 이삭의 말 대로 가까이
가서 입을 맞췄는데 이삭은 그 때 야곱이 입은 옷의 냄새를 맡아 보았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야곱이 진정 자기가 사랑하는 맏아들
에서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가 집 안에 보관해 둔 에서의 제일 좋은 옷을 가져다가 자기에게 입혔기에 이삭은 에서의 옷의 냄새를
맡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이삭은 분별하지 못하고 야곱이 에서인 줄 알고 그를 축복했습니다(23,
28-29절).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우리가 아무리 확인하려고 이것저것 시도해도 왠만한 성숙한 영적 분별력이 없이는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이유는 영적으로 미성숙하면 우리는 영안이 어둡고 영적 분별력이 없어서 간교한 사탄의 속임수에 속아 넘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참고: 엡4:14, 현대인의 성경). 누가 영적으로 미성숙한 그리스도인 입니까? 바로 진리를 사랑하지 않은 사람들입니다(살후2:10,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으로 미성숙하고
영적 분별력이 없어서 “광명의 천사로 가장”한 사탄(고후11:14)을
알아보지 못하고 또한 사탄의 종들이 의의 종으로 가장한 것(15절, 현대인의 성경)도 알아보지 못하여 사탄과 그의 종들의 간교한 거짓됨과 속임수에 넘어갈 위험이
참 많습니다. 그 좋은 예가 바로 창세가
3장에 나오는 여자입니다. 그 여자는 하나님이 지으신 들짐승 중에 가장 간교한 뱀이 다가와 미혹하고 유혹했을 때(창3:1-5)
그의 간교한 거짓됨과 속임수에 넘어가 결국 하나님의 명령(2:17)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 있었던 남편 아담에게도 주어 그도 그것을 먹었습니다(3:6). 이 때 남편인 아담이라도 영적으로 성숙하여 영적 분별력이
있었다면 자기 아내가 따먹고 준 선악과를 자기도 먹진 않았을 것입니다.
더 나아가서, 만일 그가 영적으로 성숙하여 영적 분별력이 있었더라면
자기 아내가 간교한 뱀의 미혹과 유혹에 넘어가서 선악과를 따먹으려고 했을 때 따 먹지 못하도록 조치를 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녀와 함께 있었던 아담(6절)은 자기 아내가 선악과를 따먹을 때도 아무 조치도 취하지 않았고 더 나아가서 그녀가 선악과를
자기에게 줬을 때 자기도 그것을 먹었습니다. 이렇게 영적 분별력이 없는 아담을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진리를 사랑하므로 영적 분별력을 길러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잘 살펴 선한 것과 악한 것을 분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모든 것을 잘 살펴 선한 것을 취하고 악한 것은 어떤 모양이라도 다 버려야 합니다(참고: 살전5:21-22). 우리는 성령의 검인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인드를 날카롭게
하여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사탄의 전략을 파악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께 기도하는 가운데 날마다 순간 순간마다 사탄과 싸워 승리해야 합니다.
이번주 월요일에 대학교 후배들과 함께 주님 안에서
교제를 나누고 있었을 때(특히 작년 12월에 심장 마비로 죽을 뻔했던
후배의 간증을 듣고 있었을 때) 다른 대학 후배로부터 카카오톡 메시지를 받았습니다. 그 카카오톡 메시지에는 그 후배의 어머님께서 평화롭게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팔에 평화롭게 안기셨다는 소식이었습니다. 그 메시지 중에 한 부분만 나눕니다: ‘어머님이 지상 생활을 하는 동안 그랬던 것처럼 주님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어머님을 공경하도록 주님의 축복을 빕니다. 그녀는 일상 생활을 통해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사랑(authentic love)과 믿음을 보여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어머님을
떠나 보내면서 자신도 어머님처럼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진정한 사랑으로 주님과 다른 사람들을 사랑함으로써 어머님을 공경하기를
기원하는 어머님을 향한 자녀의 귀한 사랑을 엿보았습니다. 새 찬송가 579장 “어머니의 넓은 사랑”이 생각납니다: (1절) 어머니의 넓은 사랑 귀하고도 귀하다 그 사랑이 언제든지 나를 감싸줍니다 내가 울 때 어머니는
주께 기도 드리고 내가 기뻐 웃을 때에 찬송 부르십니다, (2절) 아침저녁
읽으시던 어머니의 성경책 손때남은 구절마다 모습 본 듯합니다 믿는 자는 누구든지 영생함을 얻으리 들려주신 귀한말씀 이제 힘이 됩니다,
(3절) 홀로 누워 괴로울 때 헤매다가 지칠 때 부르시던 찬송소리 귀에 살아옵니다
반석에서 샘물나도 황무지에 꽃피니 예수님과 동행하면 두려울 것 없어라, (4절) 온유하고 겸손하며 올바르게 굳세게 어머니의 뜻 받들어 보람 있게 살리라 풍파 많은 세상에서 선한 싸움 싸우다 생명시내 흐르는 곳
길이 함께 살리라.
마지막으로 작은
아들 야곱을 편애했던 어머니 리브가를 생각할 때 저는 리브가가 야곱으로 하여금 이삭의 축복을 받도록 모든 일에 배후 조정자였다고 생각합니다.
창세기
25장 28절 하반절을 보면 성경은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왜 어머니 리브가는 맏아들 에서가 아닌 작은 아들 야곱을
사랑하였을까요? 제 생각엔 그 이유는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어서 집에 머물러 있기를 좋아하였”기 때문입니다(27절, 현대인의 성경). 형
에서는 능숙한 사냥꾼이기에 들을 좋아하여 집 밖에 나아가기를 좋아했겠지만 동생 야곱은 조용한 사람 이래서 집에 있기를 좋아하였기에 아무래도 어머니
리브가랑 시간을 더 많이 보냈을 것이요 또한 죽을 쓰고 한 것을 보면(29절)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에게서 음식 하는 것도 배우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리브가는 맏아들 에서가 헷 족속의 두
여자와 결혼했는데 그 두 며느리로 인해 마음에 근심이 되었고(26:35, 현대인의 성경) 또한 그 두 며느리 때문에 “사는 것이 지긋지긋할 지경”이었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27:46, 현대인의 성경). 오죽했으면
리브가는 자기 남편 이삭에게 “내가 이 헷 여자들 때문에 사는 것이 지긋지긋할 지경인데 만일 야곱이 이 땅의 헷 여자와 결혼한다면 내가 무슨 낙으로
살겠습니까?”라고까지 말했겠습니까(46절, 현대인의 성경). 제
생각엔 고부갈등이 있었을 것입니다. 시어머니 리브가와 헷 족속 두 며느리와의 관계에서 갈등이 있었기에 리브가가 “내가 이 헷 여자들 때문에 사는 것이 지긋지긋할 지경”이라고
남편 이삭에게 말했을 것입니다(46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어머니 리브가는 맏아들 에서 말고 작은 아들 야곱을
사랑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지금 며느리와 갈등이 있는 시어머니들은 리브가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맏며느리하고 갈등이 있다면 아직 결혼하지 않은 둘째
아들을 더 사랑할 확률도 충분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그 맏며느리하고 갈등으로 인해 리브가처럼 사는 것이 지긋지긋할 지경이면 그 시어머니는 무슨 낙으로 살겠습니까?
(46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면 아무래도 맏아들보다 둘째 아들을 더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요? 특히 그 둘째 아들이 야곱처럼
조용한 성격에 집에 있기를 좋아한다면 어머님의 입장에서는 집 밖으로 돌아다니는 맏아들보다 애호하지 않을까요? 특히 나랑 별로 관계가 썩 좋지 않는 남편이 맏아들을 노골적으로
사랑하는 모습을 계속 본다면 어머니의 입장에서 둘째 아들을 더 사랑하지 않을까요?
어머니 리브가는 둘째 아들 야곱을 사랑하므로 그로 하여금 남편 이삭이 사랑하는
맏아들 에서에게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축복해 주려는 것(27:4,
현대인의 성경)을 가로채서[빼앗아서(36절)] 야곱으로 하여금 축복을 받게 만들었습니다. 이 일에 배후 조종자가 어머니 리브가라고 생각하는 이유는
야곱은 자기 아버지를 “속이는 자”가 되는 것을 두려워했고 속이다가 걸리면 “축복은 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을”까봐 두려워했기 때문입니다(12절,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가 “저주는 내가 받을 테니”(13절, 현대인의 성경) “너는 내 말을 잘 듣고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8절, 현대인의 성경)고 말씀하시니까 그저 어머님을 믿고 어머님의 말씀대로 행한 것입니다. 요즘 말로 좀 심하게 말한다면 야곱은 마마보이였던 것 같습니다. 야곱은 주체적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어머니 리브가에게 의존하는
작은 아들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리브가에 입장에서도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야곱으로 하여금 에서 대신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게 하는데 조종하기가 쉬웠으리라 생각합니다. 야곱을 조정하기에 앞서 리브가가 제일 먼저 행했던 것은 남편
이삭이 그가 사랑하는 맏아들 에서에게 하는 말을 엿들은 것입니다.
창세기 27장 5-6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이때 리브가는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말을 엿듣고 에서가 사냥하러 들로 나간 사이에 야곱을
불러 말하였다. '네 아버지가 너의
형 에서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이때”란 이삭이 나이가 많아서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었을
때 자기가 늙어 언제 죽을지도 모르기에(1, 2절, 현대인의 성경)
자기가 사랑하는 맏아들 에서를 불러 “너는 활을 가지고 들로 나가서 사냥하여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오너라. 내가 그것을 먹고 죽기 전에 너에게 마지막으로 축복해 주겠다”(3-4절, 현대인의 성경)는 말을 했었을 때입니다. 바로 “이 때” 리브가는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말을 엿들은
것입니다.
언젠가 제 아내가 저에게 ‘당신이 목양실에서 장로님과 대화하는 내용을 바로
옆방에서 다 들리니까 소리를 좀 작게 하면 좋을 것 같아요’라고 말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마 그
때 제 아내가 목양실 옆방에서 복사기도 있고 하니까 무슨 일을 좀 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만일 그 때 제 아내가 교제실에서 다른 성도님들처럼 주일
예배 후 점심 식사를 하고 있었다면 저와 장로님과의 대화를 들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 아내는 저와 장로님과의 대화를 듣고 싶어서 들은
것이 아니라 바로 목양실 옆방에 있었기에 들리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제가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요점은 리브가가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말을 엿들었다는 것은 그녀가 그들이 있었던 곳에서 매우 가까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지 않고 서는 엿들을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드는 의문은 리브가가 이삭이 에서에게 말하고 있었을
때 우연히 그 장소에게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말하는 내용을 들었을까 아니면 그녀는 의도적으로 그들이 있는 장소에 접근해서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말을 들었을까 라는 것입니다. “엿듣고”(5절, 현대인의 성경)라는 단어가 암시적으로 말하고 있듯이
리브가는 의도적으로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말을 엿듣고자 그들이 있는 장소에 접근한 것입니다. 그래야 가까이서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말을 엿들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제 아내가 제가 목양실에서 장로님과 대화하는 내용을 엿듣고 싶어서 교제실에서 있다가 목양실 옆방으로 의도적으로 왔다면
당회(목사와 장로)가 대화하는 내용을 엿들 수 있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리브가는 의도적으로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말을 엿듣고자
가까이 갔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는
자기 남편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말을 다 듣고 야곱을 불러 그에게 “네 아버지가 너의 형 에서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네 형이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 오면 그것을 먹고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그를 축복해 주겠다고 하였다”라고 말해주었습니다(6-7절,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남편이 맏아들에게 한 말을 엿들었던 리브가는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에게 축복을 받고 떠나자 곧 그의 형 에서가 사냥을 하고
돌아와서는(30절, 현대인의 성경) 자기 동생 야곱이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자기가 받을 복을 빼앗아 간 사실을 알고 나서는(35-36절, 현대인의 성경) 야곱을 미워하고(41절) 분노하여(44절) “아버지의 임종이 가까 왔으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야곱을 죽여 버리겠다” 하고 혼자 중얼거렸습니다(41절, 현대인의 성경). 그런데 에서가 이렇게 혼자 중얼거린 말을 리브가에게 “들리매”(현대인의 성경에는 “전해 듣고”라고 번역을 했음)(42절) 그녀는 작은 아들 야곱을 불러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형 에서가 너를 죽여 분풀이하려고 한다. 얘야, 이제 너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너는 즉시
하란에 있는 내 오빠 라반에게 가서 네 형의 분이 풀릴 때까지 당분간 그 곳에 피신해 있거라. 형의 분이 누그러져서 네가 한 일을 잊어버리면 내가 사람을
보내 너를 거기서 데려오도록 하겠다. 내가 무엇 때문에 너희 둘을 한날에 잃어야 하겠느냐?”(42-45절, 현대인의 성경). 어떻게 에서가 혼자 중얼거린 말을 리브가의 귀에 들렸을까요? 처음에 저는 리브가가 에서와 가까이 있었기에 그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을 들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었는데 아마도 그녀는 다른 사람(예를 들어, 리브가를 따르는 종?)을 통해 전해 듣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중요한 것은 리브가의 귀는 이삭과 에서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는
것입니다. 남편 이삭이 맏아들 에서에게
한 말을 엿들었던 리브가는 에서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도 전해 들은 것을 보면 그녀의 관심은 자기가 사랑하는 둘째 아들 야곱을 위하여서는 남편이
맏아들에게 하는 말이나 심지어 에서가 자기 혼자 중얼거리는 말까지도 다 들었다는 것입니다.
작은 아들 야곱을 편애했던 어머니 리브가를 생각할 때 저는 리브가가 야곱으로 하여금 이삭의 축복을 받도록 모든 일에 배후 조종자였다고
생각합니다. 그 과정에 첫 번째는 리브가가
듣고 또 들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녀는
남편 이삭이 그가 사랑하는 맏아들 에서에게 하는 말을 엿들었고 또한 에서가 혼자 중얼거리는 말까지도 전해 들었습니다. 그녀의 귀는 남편 이삭과 맏아들 에서의 말에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귀 기울임은 자기가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야곱을 위해서
였습니다. 그녀는 에서보다 야곱이 이삭의
축복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므로
그녀는 이삭이 에서를 불러 다가 말하는 내용을 엿들었습니다.
그리고 그녀는 사랑하는 둘째 아들 야곱을 불러 야곱의 아버지가 야곱의 형 에서에게 한 말을 다 알려줘서 그로
하여금 에서가 받아야 할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대신 받도록 야곱을 아버지를 속이는 자로 만들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셨을텐데 왜 하나님께서는 리브가가
편애하는 작은 아들 야곱으로 하여금 형 에서의 축복을 뺏도록 허락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이 무엇이었기에 리브가로 하여금 야곱의
뒤에서 배후 조종하여 이삭의 축복을 받도록 내버려 두신 것일까요?
저는 그 이유가 창세기 25장 23절에서 말씀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두 국민이 네 뱃속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태중에서 나누어질 것이니 한 민족이 다른 민족보다
강할 것이며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현대인의 성경). 언약의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인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섬기는
것이었기에 하나님께서는 리브가가 편애하는 야곱으로 하여금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빼앗는 것을 다 알고 계셨으면서도 내버려두셨다고 생각합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후손을 통하여 메시야,
그리스도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도록 내버려두시기 위해서 입니다. 왜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27:46)라고 부르짖으셨을 때 다 들으시고도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 예수님이 죽도록
내버려 두신 것일까요? 그 이유는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번주 화요일에 대학교 후배 자매의 어머님의 장례식에 참여하여 하나님께 입관 예배를 드렸습니다. 살아생전에 어머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짜 사랑(authentic love)을 받은 그 자매는
비록 어머님은 잠드셨지만 어머님이 보여주신 그 하나님의 진짜 사랑으로 자기도 이웃을 사랑하므로 어머님을 공경하고 싶다는 기도 부탁을 생각할 때
참 귀한 어머님의 사랑이라 생각합니다[그 날 오후부터 시작해서 어제 금요일까지 입관 예배 때 집례하신 목사님이
설교하신 본문을 좀 제가 수정해서 고린도후서 4장 18절에서 5장 2절까지의 말씀 중심으로 “하나님의 몸을 입게 될
날을 고대하고 있습니다”라는 제목 아래 긴 말씀 묵상의 글을 적었습니다(https://blog.naver.com/kdicaprio74/222852521394)].
오늘 본문 창세기 25장 27-28절을 보면 우리는 아버지 이삭은 맏아들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를 좋아하였으므로
그를 사랑하였고 어머니 리브가는 작은 아들 야곱을 사랑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에서를 사랑했던 아버지 이삭은 에서가 40세에 헷 족속의 두 여자와 결혼하므로(제 생각엔 에서가 부모님에게 허락도 받지 않고 이방 여인들과
결혼한 듯) 그 며느리들이 자기의 마음에도 근심이 되었는데도 불구하고(26:35) 나이가 많아서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되었을 때 죽기 전에 에서에게 마지막으로 축복해 주길 원했습니다(27:1-4,
현대인의 성경). 그렇지만 어머니 리브가는 남편 이삭이 그가 사랑하는 에서에게 하는 말을 “엿듣고”
에서가 사냥하러 들고 나간 사이에(5절, 현대인의
성경) 자기가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야곱(25:28, 현대인의 성경)으로 하여금 이삭의 축복을 받도록 배후 조종을 하였습니다.
(1)
그
과정에 첫 번째는 리브가는 듣고 또 들었습니다.
그녀는 이삭이 그가 사랑하는 에서에게
하는 말만 엿들은 것이 아니라(27:5, 현대인의 성경) 나중에 에서가 아버지 이삭이 야곱을 축복했다는 이유로 야곱을 미워하여 “아버지의 임종이 가까왔으니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나면 야곱을 죽여 버리겠다” 하고 혼자 중얼거린
말까지 전해 들었습니다(41-42절,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리브가의 귀는 남편 이삭과 맏아들 에서의 말에 기울이고
있었습니다. 이 모든 귀 기울임은 자기가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야곱을 위해서 였습니다. 그녀는 에서보다 자기가 사랑하는 야곱이 이삭의 축복을 받기를 원했습니다.
(2) 자기가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야곱으로 하여금 이삭의 축복을 받도록
배후 조종을 하는 과정에서 두 번째로 리브가는 야곱으로 하여금 자기 말을 잘 듣고 자기가 시키는 대로 행하게 하였습니다.
창세기 27장 8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얘야, 그러니 너는 내 말을 잘 듣고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리브가는
이삭이 에서에게 하는 말을 엿듣고 에서가 사냥하러 들로 나가 사이에 야곱을 불러 다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 아버지가 너의 형 에서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니 네 형이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 오면 그것을 먹고 죽기 전에 여호와 앞에서 그를
축복해 주겠다고 하였다”(5-7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면서 그녀는 야곱에게 자기 말을 잘 듣고 자기가 시키는
대로 하라고 말한 것입니다(8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과연 자녀가 모든 일에 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다 행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이 듭니다. 그 이유는 마치 리브가가 야곱으로 하여금 아버지를 속여서
형의 축복을 빼앗게 하려고 시키는 대로 다 행하라고 했듯이 우리 어머니가 우리에게도 그런 식으로 사람을 속이라고 한다면 우리가 그리 행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엡6:1)고 말씀했지 주님 밖에서 남을 속이면서까지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말씀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만일 우리
부모님이 보이지 않는 영원한 것에 주목하기보다 잠깐 있다가 보이지 않는(고후4:18)(없어지는) 안개와 같은 속여서 얻는 재물을 주목하고 계시면서(잠21:6, 현대인의 성경) 우리에게도 보이는 재물을
위해 세상에서 성공하라고 계속해서 말씀하신다면 우리를 그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일 우리가 부모님의 그 말씀을 순종하면 우리는 분명히 두
주신을 섬기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 그렇게 되면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든가 아니면
한편에게는 충성을 다하고 다른 편은 무시하게 될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6:24, 현대인의 성경). 사사기
17장에 나오는 미가의 어머니가 생각납니다. 미가의 어머니는 자기의 소견대로 아들 미가가 자기의 은
1,100을 도둑질했다가 어머니에게 저주를 받을까봐 다시 그녀에게 돌려주었는데도 불구하고 그 어머니는 미가가 복받기를
원했습니다(17:2). 아니, 어떻게 도둑질한 아들을 면책하지
않고 하나님께 복받기를 원한다고 축복을 빌어줍니까. 이해가 안 되는 어머니입니다. 더 이해가 안 되는 것은 미가의 어머니는 자기의 아들에게 돌려받은 은 1,100을 하나님께
거룩히 드린다고 하면서 아들을 위하여(3절) 은 200을 은장색에게 주어서 한 신상을 새기며 한 신상을 만들게 하여(4절) 아들에게 줍니다(3-4절). 참 어이가
없는 어미의 행동입니다. 그 결과 아들 미가는 어머니로부터 받은 그 신상을 자기의 집에
두었습니다(4절). 놀라운 것은 어머니로부터 “내
아들아 여호와께 복 받기를 원하노라”는 축복을 받은 미가에게는 신당(a
shrine or house of gods)까지 있었습니다(5절). 세상적인 어머님의 세상적인 어미의 사랑을 받으면서 그 어머니의 말씀대로
살았던 아들 미가라 생각합니다.
(3)
자기가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야곱으로 하여금 이삭의 축복을 받도록 배후 조종을 하는 과정에서 세 번째로 리브가는 야곱으로 이삭을 “속이는 자”가 되게 했습니다.
창세기 27장 12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만일 아버지께서 나를 만져 보시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아버지를 속이는 자가 되어 축복은 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자.”
야곱은 자신의 어머니 리브가가 “너는 내 말을 잘 듣고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너는 나가서 살진 염소 새끼 두 마리를 가져오너라. 내가 그것으로 네 아버지가 좋아하시는
별미를 만들어 줄 테니 너는 그것을 아버지에게 갖다 드려 잡수시게 하라. 그러면 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너를 축복해 주실 것이다”(8-10절, 현대인의 성경)라는 말을 듣고 어머니 리브가에게 “내 형 에서는 털이 많은데 나는 털이 없이 매끈합니다. 만일 아버지께서 나를 만져 보시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아버지를 속이는 자가 되어 축복은 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을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습니다(11-12절,
현대인의 성경). 이 야곱의 말을 보면 만일 야곱이 어머니 리브가가 시키는 대로 하면 그는 자기가 아버지 이삭을 “속이는 자”가 되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저는 이 말씀 묵상할 때 진정으로 “속이는 자”는 사탄이라 생각합니다. 사탄은 전 세계를 속이는 자요 참소자입니다(계12:9-10). 요한복음
8장 44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니니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 사탄은 자신의 속성에 따라 거짓을 말합니다.
그는 거짓말쟁이고 거짓의 아비이기 때문입니다(인터넷). 그는 자신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고(고후11:14) 그의 종들은 마치 양의 탈을
쓴 늑대(마7:15)와 같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악한 자요 사탄의 능력으로 나타나서 온갖 거짓된
기적과 놀라운 일을 보이며 멸망할 사람들에게 갖은 속임수를 다 쓰고 있습니다(살후2:9-10,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이 사탄과 사탄의 종들의 간사한 거짓말에 속아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고후11:3,
현대인의 성경). 그들의 입은 삐뚤어져서(perverted) 진리를 삐뚤게(왜곡)하여 거짓과 속임을 말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삐뚤게 하여 우리로 하여금 혼동하게
만듭니다. 그들의 무서운 역사 중 하나는
바로 우리에게 ‘섞인 진리’를 믿게 만들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사탄과 그의 종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에 거짓을 더하므로
말미암아 우리로 하여금 그 섞인 진리를 믿게 만들려고 부지런히 애쓴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명심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거짓이요 속이는 말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잠6:12, Walvoord). 그 이유는 그들의 마음이 삐뚤어져(perverted)있기 때문입니다. 삐뚤어진
마음에서 삐뚤어진 말이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만일 우리가 속아 넘어가면 우리 마음이 부패해져서 그리스도에 대한 진실과 순결을 저버리게 될 것입니다(3절,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영적 분별력을 가지고 사탄과 그의 종들의 간사한 거짓말과
속임수를 분별하여 넘어가지 말아야 합니다.
(4)
자기가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야곱으로 하여금 이삭의 축복을 받도록 배후 조종을 하는 과정에서 네 번째로 리브가는 자기가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야곱 대신 저주까지
받으려고 했습니다.
창세기 27장 12-13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만일 아버지께서 나를 만져 보시면 어떻게 합니까?
내가 아버지를 속이는 자가 되어 축복은 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을지도 모릅니다' 하자
그의 어머니가 이렇게 대답하였다. ‘얘야, 저주는 내가 받을 테니 너는
가서 염소나 안고 오너라.’” 야곱은
자기 어머니 리브가가 시키는 대로 자기 아버지 이삭을 속이다가 걸릴 까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 리브가에게 “내가 아버지를 속이는 자가 되어 축복은 커녕 오히려 저주를
받을지도 모릅니다”라고 말했습니다(12절, 현대인의 성경). 그 때 그의 어머니 리브가는 “얘야, 저는 내가 받을 테니 …”라고 말했습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어머니 리브가는 자기가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야곱이 이삭에게
축복만 받을 수 있다면 자기가 야곱 대신 저주를 받을 의향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그 정도로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과연 이러한 어머니의 사랑이 건강한 사랑일까요? 저는 병든 어머니의 사랑이요 자녀를 병들게 만드는 사랑이라
생각합니다. 이러한 어머니의 병든 자식
사랑은 마치 리브가가 야곱에게 “너는 내 말을 잘 듣고 지금부터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8절, 현대인의 성경), “이제 저는 내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43절, 현대인의 성경)고 말한 것처럼 자녀를 사랑한답시고 그 자녀를 조종(manipulation)합니다. 조종을 당하는 자녀는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여러모로(특히 심리적으로나 감정적으로) 떠나지 못하므로 말미암아 자신의 마음과 감정과 생각 등이 병들어
고통을 당할 수밖에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일 그 자녀가 이미 결혼을 했다면 그 자녀의 부부 관계에도 병적 영향을 끼치므로 말미암아 그 부부 관계도 병들게 됩니다. 이렇게 어머니의 병든 자식 사랑은 파장이 큽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식 대신 저주까지 받겠다는 어머니는 자신의
병든 자식 사랑이 얼마나 큰 파장을 일으키는지도 모릅니다. 이런 어머니는 저주의 나무(신21:23; 갈3:13)인 십자가에 우리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대속 죽으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하여 자신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므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엡1:7; 골1:14; 요일1:9). 그리고
그녀는 자식을 하나님의 진짜 사랑으로 사랑하여 믿음으로 자녀를 떠나 보내야 합니다. 그녀는 자녀와의 관계에서 건강한 경계선(healthy
boundary)을 분명하게 그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녀는 그녀의 자녀를 진실되게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그녀 자신이 먼저 하나님 앞에서 진실된 삶을
살면서 진리를 행해야 합니다. 그녀는
거짓과 속임수를 미워해야 합니다. 그녀는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자기에게 큰 축복임을 알아야 합니다(시119:56, 현대인의 성경). 그러면서
그녀는 그녀의 자녀를 축복 기도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축복하시고 지키시기 원하노라”(민6:24, 현대인의 성경).
(5)
자기가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야곱으로 하여금 이삭의 축복을 받도록 배후 조종을 하는 과정에서 다섯 번째로 리브가는 자기가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야곱에게 맏아들
에서의 제일 좋은 옷을 가져 다가 야곱에게 입혔습니다.
창세기 27장 15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리고서 리브가는 집 안에 보관해 둔 맏아들 에서의 제일 좋은
옷을 가져 다가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히고.” 야곱은 자기 형 에서가 털이 많은데 자기는 털이 없이 매끈하기에 자기 아버지 이삭이 자기를 만져 보시면 어떻게 해야 할지 염려했습니다(11-12절, 현대인의 성경). 그 때 그의 어머니 리브가는 집 안에 보관해 둔 맏아들 에서의
제일 좋은 옷을 가져 다가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혔습니다(15절, 현대인의
성경). 왜 리브가는 맏아들 에서의
제일 좋은 옷을 집 안에 보관해 둔 것일까요? 제일 좋은 옷이라면 에서가 아끼고 즐겨 입지 않았을까요?
그러면 분명히 그 옷은 리브가가 집 안에 보관해 둘 것이 아니라 에서가 잘 보관해 뒀 어야 하지 않나요? 혹시 리브가가 에서의 제일 좋은 옷을 자기가 집 안에 보관해
둔 이유가 자기가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야곱을 위해서 그리한 것이 아닐까요? 그리고 마침내 그 옷을 야곱을 위해 사용할 때가 와서 그
에서의 제일 좋은 옷을 가져 다가 작은 아들 야곱에게 입힌 것이 아닐까요? 결국 리브가는 야곱이 가지고 온 염소 새끼 가죽으로 야곱의
손과 목의 매끈한 곳을 감 쌓습니다(16절, 현대인의 성경). 그 결과 나중에 야곱이 에서의 제일 좋은 옷을 입고 아버지
이삭에게 들어가 이삭이 “얘야, 가까이 와서 나에게 입을 맞춰라”고 해서 가까이 가서 입을 맞췄을 때 “이삭이 그 옷의 냄새를 맡아 보고” 야곱에게 이렇게 축복했습니다: “내 아들의 냄새는 여호와께서 축복하신 밭의 냄새와 같구나!”(26-27절,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보면 나이가 많아서 눈이 어두워 잘 볼 수 없게
된 이삭(1절, 현대인의 성경)은 일부러 야곱으로 하여금 자기에게 가까이 와서 입을 맞추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26절,
현대인의 성경). 그 이유는 과여 야곱이 자기가 사랑하는 맏아들 에서인지를 그의 옷의 냄새를 맡아서 알아보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 이것을 리브가는 예상하고 작은 아들 야곱에게 에서의 제일
좋은 옷을 가져 다가 입힌 것 같습니다. 이정도로 어머니 리브가는 야곱을 철저하게 맏아들 에서로 위장 시켜서 결국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게 한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여 무조건
‘제일 좋은 것’(참고: 15절,
현대인의 성경)으로만 주려고 하는게 진정 그 자식에게 제일 좋은 일을 행하는 것인지
의문이 듭니다. 비록 어머니가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과 자식이 잘 되라고 제일 좋은 것을 주려고 할 수 있겠지만 그 결과는 그녀의 기대대로 안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전혀 기대의 반대로 자녀에게 주는 제일 좋은 것이
그 자녀에게는 제일 안 좋은 것이 될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는 제일 사랑하시고(요3:16;
롬8:32) 제일 잘 아시기에(시139:1-4)
우리에게 때에 따라 돕는 은혜로(히4:16) 제일 좋은 것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주십니다.
로마서 8장 32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자기 아들까지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해 내어주신 하나님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다른 모든 것도 우리에게 아낌없이 주시지 않겠습니까?”
(6)
자기가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야곱으로 하여금 이삭의 축복을 받도록 배후 조종을 하는 과정에서 마지막 다섯 번째로 리브가는 자기가 사랑하는 작은 아들 야곱을
위하여 자기 남편 이삭이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서 야곱의 손에 들려줬습니다.
창세기 27장 14절과 17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래서 야곱이
염소를 어머니에게 끌어다 주자 그의 어머니는 남편이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었다. … 만들어 둔 별미와 빵을 야곱의 손에 들려주었다.”
아버지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를 좋아하였으므로(25:27, 현대인의
성경) 자기가 사랑하는 에서에게 “너는 활을 가지고 들로 나가서 사냥하여
내가 좋아하는 별미를 만들어 오너라. 내가 그것을 먹고 죽기 전에 너에게 마지막으로 축복해 주겠다”고 말했습니다(27:3-4, 현대인의 성경). 그 말을 엿들은 리브가는 에서가 사냥하러 들로 나간 사이에(5절, 현대인의 성경) 야곱을 조종하여 자기가 시키는 대로
행하게 하되(8절, 현대인의 성경) 자기가 직접 별미를 만들어서 야곱의 손에 들려줘 그것을 아버지 이삭에게 갖다 드려 잡수시게 하라고 했습니다(10,
17절,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저는 맏아들 에서가 이삭이 좋아하는
별미를 더 잘 만들었을까 아니면 아내인 리브가가 별미를 더 잘 만들었을까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 생각엔 아무래도 에서보다 리브가가 이삭이 좋아하는 별미를
더 잘 만들었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에서보다 리브가가 이삭의 입맛을 더 잘 알고 있었을 것이고 또한 이삭이 좋아하는 별미를 에서보다 리브가가
더 오랜 기간 동안 만들어서 대접을 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어머니 리브가가 만들어준 음식을 가지고 가서 아버지를 불렀을 때 이삭은 “네가 누구냐?”고 물었습니다. 왜 이삭은 그리 물었을까요? 저는 그 이유를 20절 상반절에서 좀 찾아보았습니다: “얘야, 네가 어떻게
그처럼 빨리 잡아왔느냐?” 이 질문을
보면 이삭의 입장에서는 맏아들 에서가 사냥하러 들로 나간(5절, 현대인의
성경) 시간이 그리 오래되지도 않았는데 야곱이 에서 인척 가장을 해서 들어왔기 때문이라 생각합니다. 분명히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서 잡은 짐승으로 별미를 만들어줘서
여러 번 그 별미를 먹었을 것입니다. 그 말은 이삭은 에서가 사냥해서 별미를 만들어준 시간이 어느 정도 걸리는지를 대충 짐작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보다 더 빨리 야곱이 별미를 가지고 자기에게
왔으니 “얘야, 네가 어떻게 그처럼 빨리 잡아왔느냐?”(20절, 현대인의 성경)라고 물은 것이 아닐까요? 그 때 야곱의 답변을 보십시오: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도와 주셨기 때문에 사냥감을 빨리 찾을 수가 있었습니다”(20절, 현대인의 성경). 아니 어떻게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의 성호까지 들먹이면서 거짓말을 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실제로 자기 어머니 리브가가 도와준 것이지 “아버지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도와 주신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게 야곱은 그렇게 까지 아버지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결국 아버지 이삭은 야곱에게 속아 넘어가서 그를 축복했습니다(27-30절,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리브가는 자기가 편애하는 작은 아들 야곱으로 하여금
자기 남편 이삭으로부터 축복을 받게 하기까지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여 이삭을 속였고 또한 야곱을 속이는 자로 만들어서 결국에 가서 그녀가 원하는
대로 야곱이 이삭의 축복을 받게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저는 리브가의 방법은 옳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결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리브가에게 “…
형이 동생을 섬기리라”(25:23, 현대인의 성경)는 약속대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셨다고 믿습니다.
어떻게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리브가의 거짓된 속이는 방법까지도 사용하시사 그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이루셨는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제가 알고 믿는 말씀은 디모데후서 2장 13절입니다:
“’우리는 진실하지 못해도 그분은 언제나 진실하시니 약속을 어길 줄 모르시는 분이시다.’ 이것은 믿을 만한 말씀입니다”(공동번역)[(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신실성이 없지만
주님은 언제나 신실하셔서 약속하신 것을 어기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맏아들 에서를 사랑하는 분별없는 아버지 이삭과 작은 아들 야곱을 사랑하는 진실하지 못한 어머니
리브가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인 형 에서가 동생 야곱을 섬기게 하시고자 역사하셨습니다. 이렇게 편애하는 부모도 사용하셔서 하나님의 주권적인 뜻을
이뤄 나가시는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생각할 때 새 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 1절 가사가 생각납니다: “오 신실
하신 주 내 아버지여 늘 함께 계시니 두렴없네 그 사랑 변찮고 날 지키시며 어제나 오늘이 한결같네.” “약속하신 분은 신실하신 분이십니다”(히10:23상, 현대인의 성경).
“Like the sun that rises every day O You are so faithful,
dear Lord You are so faithful
매일 떠오르는 태양과 같이 오 당신은 신실하십니다. 사랑하는 주님 당신은 신실하십니다.
Like the rain that You bring and every breath that I
breathe
당신이 가져다 주시는 비와 같이 그리고 매일 쉬는 그 숨과 같이
You are so faithful Lord.
Like a rose that comes alive every spring
당신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매년 봄마다 풍성히 피어나는 장미와 같이
O You are so faithful, dear Lord You are so faithful
오 당신은 신실하십니다. 사랑하는 주님 당신은 신실하십니다.
Like the life that You give to every beat of, my heart
내 심장이 뛰게 하기 위해 당신이 주신 삶과 같이
You are so faithful, Lord.
I see a cross and the price You had to pay
당신은 신실한 하나님 이십니다.
나는 당신이 죄값을 지불하신 그 십자가를 압니다.
I see the brood that washed my sins away
나는 내 죄를 씻으신 그 피를 압니다.
In the midst of the storm through the wind and the waves
비바람과 거센 파도를 지나 폭풍우의 중간에 있을 때에도
You'll still be faithful O You'll still be faithful
당신은 여전히 신실하실 것입니다. 오 당신은 여전히 신실하실 것입니다.
When the stars refuse to shine and time is no more
별이 그 빛을 잃고 시간이 더 이상 가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You'll still be faithful O You'll still be faithful. O Lord
당신은 여전히 신실하실 것입니다. 오 당신은 여전히 신실하실 것입니다.
Great is thy faithfulness.
Lord unto me
오,
신실하신 주님. 주님 내 안에~~”
[복음 성가, “You are so faithful”]
신실하신
주님을 찬양하는,
제임스
김 나눔
[2022년 8월 20일, 비록 나는 매우 불성실하지만 진실하시고 신실하신 주님께서는 나에게 주신 오병이어의 약속의 말씀(요6:1-15)과 “… 내가 … 내 교회를 세우리니 …”(마1:18)의 약속의 말씀을
신실하게 성취해 나아가고 계심을 믿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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