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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 입니 다 .   지혜의 하나님이시요 능력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 자체가 지혜요 능력 입 니다 .   그 말씀 , 그분의 가르치심을 듣고 감탄한 회당 안에 모였던 사람들처럼 지금도 교회당에 모여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인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 새찬송가 200 장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 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찬양드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 (1 절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주니 , ( 후렴 )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    

짧은 말씀 묵상 (2022년 8월 19일)

짧은 말씀 묵상

 

 

 

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창세기 39:1)은 요셉을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가뒀을까요? (20)  분명히 요셉은 애굽 왕 바로의 죄수도 아니고 그저 히브리 사람으로서 보디발의 종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 옥이 보디발의 집 안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40:3).  흥미로운 점은 "얼마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애굽 왕에게 범죄하여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뒀는데 그 곳은 요셉이 갇혀 있는 곳이었다는 사실입니다(1-3).  요셉이 갇힌 바 되었을 때 결국 하나님께서는 요셉으로 하여금 함께 갇혀 있었던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케 하시므로 그를 건져 내셨습니다(9-13, 31).  우리가 동서남북으로 갇힌 바 되었을 때 오직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요나 2:9,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갇힌 바 되었을 때 비신자와의 만남을 통해서도 우리를 건져 내십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갇혀 있었을 때에도(창세기 39:6-20)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수종 들었습니다(40:1-4).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주님을 수종 드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수종 들듯이 우리 이웃을 수종 들어야 합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혀서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수종 들었는데 "그들이 갇힌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 두 관원장들이 같은 날 밤에 서로 다른 꿈을 꾸었고 하나님께서 요셉으로 하여금 그들의 꿈을 해석하게 하시사 요셉의 해석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했지만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고 있다가 만 2년이 지난 후에 바로 왕이 꿈을 꾸므로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고 바로 왕에게 말하므로 요셉이 바로 왕의 꿈마저 해석하여 결국에 가서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창세기 39:6-41:41, 현대인의 성경).  17살의 소년 요셉(37:2, 현대인의 성경)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4-5, 8) 애굽의 노예로 팔려서(28, 36)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상당한 시간" 동안 갇혀 있다가(40:4, 현대인의 성경) 결국 30세였을 때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41:46, 현대인의 성경).  13년이란 세월이 흘러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종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높이시사 하나님의 구원의 뜻(45:5, 7)을 이루십니다.

 

서로 다른 꿈을 꾼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본 요셉은 그들이 수심에 잠겨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오늘은 어째서 그처럼 수심에 잠겨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꿈을 꾸었으나 해몽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창세기 40:5-8, 현대인의 성경).  한나도 너무 마음이 괴로워서 수심에 싸여 있었고(사무엘 상 1:15, 18, 현대인의 성경), 암논도 이복 동생 다말을 몹시 사랑하여 날마다 수심에 잠겨 있었으며(사무엘 하13:1-4, 현대인의 성경) 느헤미야 또한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고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수심이 가득했었습니다.  그 때 아닥사스다 왕은 병이 없는 느헤미야에게 수심이 가득한 이유가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느헤미야 1:2-3, 2:1-2, 현대인의 성경).  우리 마음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할 수 있습니다(시편 55:2, 현대인의 성경).  또한 우리는 근심으로 시력이 약해지고 우리 몸과 영혼이 쇠약해질 수 있습니다(시편 31:9, 현대인의 성경).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며(잠언15:13) 또한 뼈를 마르게 합니다(17:22,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위로 받지 못하는 근심은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예레미야 8:18).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우리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닙니다(예레미야 애가 3:33).  그리고 비록 주님께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셔도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32, 새 번역).  이 주님께서 오늘 근심하고 있는 우리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요한복음 14:1).  우리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주님의 위로가 우리 영혼을 즐겁게 하시는 은혜가 있길 기원합니다(시편 94:19).  

 

요셉은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에게 "지금부터 3일 안에 왕이 당신을 석방하여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전에 하던 것처럼 왕에게 다시 술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라고 그의 꿈을 좋게 해석한 후 "당신의 모든 일이 잘되거든 나를 기억하셔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내 사정을 왕에게 말씀드리고 나를 이 감옥에서 나가도록 해 주십시오.  나는 히브리 땅에서 강제로 끌려왔으며 여기서도 감옥에 갇힐 만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부탁했습니다(창세기 40:12-16, 현대인의 성경).   왜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에게 범죄한(1) 술 맡은 관원장은 꿈을 꾼 후로부터 3일 안에 전직을 회복시켜 주신 반면에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옥에 갇혀 있었던 요셉은 그로부터 만2년이 지난 후에 서야 옥에서 건져주셨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죄 없으신 예수님을 3일 동안 무덤에 두시고 하나님과 원수 된 죄 많은 우리는 화목케 하시고 회복시켜 주신 것일까요?

 

분명히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그들의 주인인 애굽 왕에게 범죄를 했건만 그들이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요셉이 해석한 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3일째가 되던 날 바로 왕의 생일에 바로가 그의 전직을 회복시켜 다시 술을 따르게 한 반면 떡 굽는 관원장은 나무에 매달아 처형을 당한 것일까요? (창세기 40:1, 5-22, 현대인의 성경)  왜 우리 모두가 다 왕 중의 왕이신 주님께 죄를 범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인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화목케) 되었고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주의 나무(신명기 21:23; 갈라디아서 3:13)에 못 박혀 처형을 당하신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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