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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od’s love, which is stronger than death, is causing me to continue walking the path of the mission the Lord has given me (John 6:1–15).

God’s love, which is stronger than death, is causing me to continue walking the path of the mission the Lord has given me (John 6:1–15).             “At that very time some Pharisees came and said to Him, ‘Leave this place and go somewhere else. Herod wants to kill You.’   He replied, ‘Go tell that fox, “I will keep driving out demons and healing people today and tomorrow, and on the third day I will reach My goal.”   In any case, I must press on today and tomorrow and the next day—for surely no prophet can die outside Jerusalem!   Jerusalem, Jerusalem, you who kill the prophets and stone those sent to you, how often I have longed to gather your children together, as a hen gathers her chicks under her wings, and you were not willing.   Look, your house is left to you desolate.   I tell you, you will not see Me again until you say, “Blessed is He who comes in the name of the Lord” (Luke 13:31–35).     ...

짧은 말씀 묵상 (2022년 8월 19일)

짧은 말씀 묵상

 

 

 

왜 바로의 신하 친위대장 애굽 사람 보디발(창세기 39:1)은 요셉을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가뒀을까요? (20)  분명히 요셉은 애굽 왕 바로의 죄수도 아니고 그저 히브리 사람으로서 보디발의 종에 불과한데 말입니다.  아마도 그 이유는 그 옥이 보디발의 집 안에 있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40:3).  흥미로운 점은 "얼마 후에" 애굽 왕의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가 애굽 왕에게 범죄하여 친위대장 보디발의 집 안에 있는 옥에 가뒀는데 그 곳은 요셉이 갇혀 있는 곳이었다는 사실입니다(1-3).  요셉이 갇힌 바 되었을 때 결국 하나님께서는 요셉으로 하여금 함께 갇혀 있었던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석케 하시므로 그를 건져 내셨습니다(9-13, 31).  우리가 동서남북으로 갇힌 바 되었을 때 오직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요나 2:9,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갇힌 바 되었을 때 비신자와의 만남을 통해서도 우리를 건져 내십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왕의 죄수를 가두는 옥에 갇혀 있었을 때에도(창세기 39:6-20) 바로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수종 들었습니다(40:1-4).  우리는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주님을 수종 드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주님을 수종 들듯이 우리 이웃을 수종 들어야 합니다. 

 

요셉은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옥에 갇혀서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수종 들었는데 "그들이 갇힌 지 상당한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 두 관원장들이 같은 날 밤에 서로 다른 꿈을 꾸었고 하나님께서 요셉으로 하여금 그들의 꿈을 해석하게 하시사 요셉의 해석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했지만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잊고 있다가 만 2년이 지난 후에 바로 왕이 꿈을 꾸므로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고 바로 왕에게 말하므로 요셉이 바로 왕의 꿈마저 해석하여 결국에 가서는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창세기 39:6-41:41, 현대인의 성경).  17살의 소년 요셉(37:2, 현대인의 성경)이 형들에게 미움을 받아(4-5, 8) 애굽의 노예로 팔려서(28, 36)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서 "상당한 시간" 동안 갇혀 있다가(40:4, 현대인의 성경) 결국 30세였을 때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41:46, 현대인의 성경).  13년이란 세월이 흘러서 요셉은 애굽의 총리가 된 것입니다.  우리는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의 때까지 인내하며 기다릴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종을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높이시사 하나님의 구원의 뜻(45:5, 7)을 이루십니다.

 

서로 다른 꿈을 꾼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을 본 요셉은 그들이 수심에 잠겨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오늘은 어째서 그처럼 수심에 잠겨 있습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꿈을 꾸었으나 해몽해 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창세기 40:5-8, 현대인의 성경).  한나도 너무 마음이 괴로워서 수심에 싸여 있었고(사무엘 상 1:15, 18, 현대인의 성경), 암논도 이복 동생 다말을 몹시 사랑하여 날마다 수심에 잠겨 있었으며(사무엘 하13:1-4, 현대인의 성경) 느헤미야 또한 예루살렘의 형편을 듣고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수심이 가득했었습니다.  그 때 아닥사스다 왕은 병이 없는 느헤미야에게 수심이 가득한 이유가 "이는 필연 네 마음에 근심이 있음이로다"라고 말했습니다(느헤미야 1:2-3, 2:1-2, 현대인의 성경).  우리 마음은 근심으로 편치 못하여 탄식할 수 있습니다(시편 55:2, 현대인의 성경).  또한 우리는 근심으로 시력이 약해지고 우리 몸과 영혼이 쇠약해질 수 있습니다(시편 31:9, 현대인의 성경).  마음의 근심은 심령을 상하게 하며(잠언15:13) 또한 뼈를 마르게 합니다(17:22,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위로 받지 못하는 근심은 우리 마음을 병들게 합니다(예레미야 8:18).  그러나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주님께서 우리 인생으로 고생하게 하시며 근심하게 하심은 본심이 아닙니다(예레미야 애가 3:33).  그리고 비록 주님께서 우리를 근심하게 하셔도 그 크신 사랑으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32, 새 번역).  이 주님께서 오늘 근심하고 있는 우리에게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요한복음 14:1).  우리 속에 근심이 많을 때에 우리가 주님을 믿음으로 주님의 위로가 우리 영혼을 즐겁게 하시는 은혜가 있길 기원합니다(시편 94:19).  

 

요셉은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에게 "지금부터 3일 안에 왕이 당신을 석방하여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당신은 전에 하던 것처럼 왕에게 다시 술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라고 그의 꿈을 좋게 해석한 후 "당신의 모든 일이 잘되거든 나를 기억하셔서, 나에게 은혜를 베풀어 내 사정을 왕에게 말씀드리고 나를 이 감옥에서 나가도록 해 주십시오.  나는 히브리 땅에서 강제로 끌려왔으며 여기서도 감옥에 갇힐 만한 일은 하지 않았습니다"라고 부탁했습니다(창세기 40:12-16, 현대인의 성경).   왜 하나님께서는 애굽 왕에게 범죄한(1) 술 맡은 관원장은 꿈을 꾼 후로부터 3일 안에 전직을 회복시켜 주신 반면에 아무 죄도 없이 억울하게 옥에 갇혀 있었던 요셉은 그로부터 만2년이 지난 후에 서야 옥에서 건져주셨을까요?  왜 하나님께서는 죄 없으신 예수님을 3일 동안 무덤에 두시고 하나님과 원수 된 죄 많은 우리는 화목케 하시고 회복시켜 주신 것일까요?

 

분명히 애굽 왕의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그들의 주인인 애굽 왕에게 범죄를 했건만 그들이 서로 다른 꿈을 꾸고 요셉이 해석한 대로 술 맡은 관원장은 3일째가 되던 날 바로 왕의 생일에 바로가 그의 전직을 회복시켜 다시 술을 따르게 한 반면 떡 굽는 관원장은 나무에 매달아 처형을 당한 것일까요? (창세기 40:1, 5-22, 현대인의 성경)  왜 우리 모두가 다 왕 중의 왕이신 주님께 죄를 범한 하나님과 원수 된 자들인데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이(화목케) 되었고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저주의 나무(신명기 21:23; 갈라디아서 3:13)에 못 박혀 처형을 당하신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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