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은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 입니 다 .   지혜의 하나님이시요 능력의 하나님이신 예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 자체가 지혜요 능력 입 니다 .   그 말씀 , 그분의 가르치심을 듣고 감탄한 회당 안에 모였던 사람들처럼 지금도 교회당에 모여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이요 능력의 말씀인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말씀을 듣고 은혜를 받아 새찬송가 200 장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 을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찬양드릴 수 있길 기원합니다 : (1 절 ) 달고 오묘한 그 말씀 생명의 말씀은 귀한 그 말씀 진실로 생명의 말씀이 나의 길과 믿음 밝히 보여주니 , ( 후렴 )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아름답고 귀한 말씀 생명 샘이로다 .    

짧은 말씀 묵상 (2022년 8월 23일)

짧은 말씀 묵상

 

 

 

아버지 야곱은 자기가 특별히 사랑하였던 노년에 얻은 요셉(창세기 37:3, 현대인의 성경)의 피에 적신 옷을 보고 "내 아들 요셉은 찢겨 죽은 것이 틀림없다"라고 통곡하며 오랫동안 아들의 죽음을 슬퍼하였었기에(31-35, 현대인의 성경) 극심한 가뭄으로 인해 굶어 죽지 않으려고(41:54, 57; 42:2, 현대인의 성경) 그의 10명의 형들을 이집트(애굽)에 곡식을 사오라고 보낼 때 요셉의 동생 베냐민은 그들과 함께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베냐민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42:4, 현대인의 성경).  자식을 이미 잃어본 부모의 마음은 또 다른 자식까지 잃어버릴 까봐 충분히 두려워할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두 번째 아들들을 이집트(애굽)으로 보낼 때에 야곱은 베냐민을 함께 보내면서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라고 말합니다(43:14). 

 

요셉은 그의 나이가 적어도 37살이 지나서[30세에 총리(창세기 41:46) + 7년 풍년(29) + ?년째 흉년 = 적어도 37] 그의 10명의 형들이 이집트(애굽)까지 내려와서 총리인 자기 앞에 와서 땅에 엎드려 절했을 때(창세기 42:6, 현대인의 성경) 과연 자기가 17살 때(37:2) 두 번이나 꿈을 꾼 내용(5-10, 현대인의 성경)대로 자기 형들이 자기에게 절하는구나 라고 생각을 하였었을까요?  적어도 20년 만에 만난 형들이 자기 앞에 와서 땅에 엎드려 절했을 때 과연 요셉은 20년 전에 꾼 두 번의 꿈이 성취되고 있었다고 생각하였었을까요?  창세기 429절 상반절 말씀입니다: “요셉은 오래 전에 그들에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며 ….”  새 찬송가 490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1절과 후렴 가사가 생각납니다: (1) 주여 지난 밤 내 꿈에 뵈었으니 그 꿈이 이루어 주옵소서 밤과 아침에 계시로 보여주사 항상 은혜를 주옵소서, (후렴) 나의 놀라운 꿈 정년 나 믿기는 장차 큰 은혜 받을 표니 나의 놀라운 꿈 정녕 이루어져 주님 얼굴을 뵈오리라.

 

요셉의 10명의 형들은 애굽의 총리인 요셉 앞에서"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라고 말했는데(창세기 42:11) 과연 그들은 "확실한 자들" 또는 정직한 자들["honest men"(NASB)]이었나요?  물론 그들은 "정탐꾼"(spies)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그들은 정직한 자들도 아니었습니다.  그 이유는 그들은 약 20년 전인 자기들의 동생인 요셉의 나이 17살 때  요셉을 죽여 구덩이에 던져 넣고 맹수가 잡아먹었다고 하려 다가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은화 20개를 받고 팔아 놓고서 그의 옷에 염소의 피를 적셔서 아버지 야곱에게 갖다 드렸기 때문입니다(37:20, 28, 31-32, 현대인의 성경).  가정 안에서도 정직의 위기를 맞이한 것입니다.  그들의 아버지 야곱은 전에 그들의 할아버지인 이삭과 그들의 큰 아버지인 에서를 속였던 자요, 그들 또한 아버지 야곱을 속인 자들입니다.  결코 그들은 자신들이 말한대로 정직한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정직한 사람들이 돼야 합니다.

 

요셉의 10명의 형들은 자기들 앞에 있는 애굽 총리가 자기들의 동생인 요셉 인줄 모르고 "우리는 모두 열 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에 사는 한 사람의 아들들입니다 막내 아들은 지금 아버지와 함께 있고 하나는 없어졌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창세기 42:8, 13, 현대인의 성경).  진정 그 "하나"인 요셉은 없어진 것입니까?  그 형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판 것이 아닌가요?  그러면 요셉은 없어진 것이 아니라 그들이 없애 버린 것이 아닌가요? "가나안 땅에 사는 한 사람"인 야곱의 아들들로서 "모두 열 두 형제"인데 어떻게 그들은 자신들의 형제 중 한 사람인 요셉을 없애 버린 건가요?  혹시 그 이유가 요셉이 17살 때 형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일일이 일러바쳤기 때문이었을까요? (37:2, 현대인의 성경)  아버지 야곱이 자기들보다 요셉을 특별히 사랑하였기 때문이었을까요? (3, 현대인의 성경)  혹시 요셉이 꿈을 꾸고 자기들에게 이야기한 내용을 듣고 "네가 우리의 왕이 될 작정이냐? 네가 정말 우리를 지배하겠느냐?"하고 조소하며 그 꿈 이야기 때문이 요셉을 더욱 미워하였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혹시 그들이 요셉을 시기해서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요? (11)

 

우리는 진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우리의 진실함을 증명할 수 있어야 합니다(참고: 창세기 42:15).

 

간첩(창세기 42:9, 14, 현대인의 성경)과 같은 사탄과 그의 종들은 우리의 틈을 엿보다가(42:12) 우리에게 어떠한 갈라진 틈["무너질 것이다!"라는 도비야의 조롱에서 '무너지리라'는 히브리어 단어의 의미는 '()의 터진 곳, 갈라진 틈'(느헤미야 4:3)]이나 허물이나 그릇함을 보게 되면(다니엘 6:4, 개역한글) 그 틈을 타서 우리를 공격합니다(창세기 14:15,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우리는 사탄과 그의 종들에게 빈 틈을 보여서는 아니 됩니다.  그 이유는 사탄과 그의 종들은 그 빈틈을 노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저는 제 자신을 봐도 빈 틈이 너무 많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보호하심이 없이는 여기까지 올 수가 없는 사람임을 고백합니다.

 

요셉이 그의 형들의 말을 시험하여 그들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본 것처럼 만일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주님께서 우리의 말을 시험하여 우리 중에 진실이 있는지 시험하신다면 ...? (참고: 창세기 42:16)

 

요셉은 그의 10명의 형들로 하여금 정탐꾼들이 아니라는 그들의 말의 진실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서 막내 동생을 애굽에 있는 자기에 게로 데리고 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한 말이 입증되어 그들이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때 요셉의 형들은 그대로 했습니다(창세기 42:20, 33-34).  우리는 진실한 사람이 돼야 할 뿐만 아니라 진실한 말을 하며 또한 우리 말의 진실함을 삶으로 증명해야 합니다.

 

요셉의 그의 10명의 형들에게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의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고 말했다가 그들을 3일 동안 가둬 두었다가 3일 만에 그들에게 "...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창세기 42:16-20).  왜 요셉은 말을 바꾼 것일까요?  왜 그는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라고 말했다가(16)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19)라고 말을 바꿨을까요?  원래는 1명만 돌아가고 9명은 그 감옥에 갇혀 있었어야 했는데 결국에 가서는 1명만 옥에 갇히고 나머지 9명은 가나안 땅으로 돌아가게 한 것입니다.  10명의 형들이 3일 동안 옥에 갇혀 있었을 때 요셉의 마음에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1명만 돌려보내려 다가 1명만 남기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어쩌면 그 이유는 아버지 야곱을 생각해서 그럴 수도 있었을 것이고 또한 형들을 용서하는 마음으로 변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애굽 왕 바로가 꿈을 꾸고 그 꿈을 하나님께서 요셉을 통해 해석하신 대로 7년 동안 풍년이 끝나고 7년 흉년이 시작되었을 때 다른 나라에 기근이 들어 굶주렸으므로 말미암아 다른 나라 사람들도 이집트(애굽) 총리인 요셉에게 곡식을 사려고 이집트로 몰려들었습니다(창세기 41:53-57, 현대인의 성경).  그 때 요셉의 아버지 야곱은 이집트에 곡식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자기의 10명의 아들들에게 "굶어 죽지 않으려면" 이집트로 가서 곡식을 사오라고 말했습니다(42:1-2, 현대인의 성경).  요셉은 그의 형들을 정탐꾼들이라고 말했고 그들은 곡물을 사러 왔다고 말했지만(10) 요셉은 그들의 진실함을 증명하기 위해서 결국에 가서는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고 말했습니다(19-20).  그 이유는 요셉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기에 이집트에 온 형들의 생명뿐만 아니라 가나안 땅에 있는 그들의 아버지 야곱과 온 식구들의 생명을 보전하길 원했기 때문입니다(18).  이렇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요셉은 아버지 야곱과 10명의 형들과 동생 베냐민 등 온 식구들의 생명을 보전하는데 도구로 쓰임 받습니다.  그리고 나중에 형들이 베냐민을 데리고 두 번째 이집트로 내려왔을 때 요셉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큰 구원으로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 당신들의 후손을 세상에 두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니 그런 즉 나를 이리로 보낸 이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45:7-8).  영원한 생명이신 하나님의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아버지께 보내심을 받아 이 이집트와 같은 땅에 오셔서 큰 구원으로 우리의 생명을 보전하 시되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셨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자기들이 동생 요셉에게 한 일로 말미암아 벌을 받고 있다고 서로 말했습니다.  요셉이 살려 달라고 애걸했을 때 그들은 요셉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이젠 자신들이 이런 괴로움을 당하게 되었다고 서로 말했습니다(창세기 42:21, 현대인의 성경).  그때 맏형인 르우벤은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 값을 치르게 되었도다"라고 말했습니다(22).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셨을 때(마태복음 27:46)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아들의 괴로움을 보시고 들으셨으면서도 외면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괴로움을 당하게 되지 않았습니다(참고: 이사야 53:5).  죄를 우리가 지었는데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시므로 그 분의 핏 값으로 우리고 죄사함을 받았습니다(골로새서 1:14).

 

요셉은 형들이 애굽 총리 요셉이 통역관을 통해 말했으므로 자신들이 서로 말하는 내용을 알아듣는 줄 모르고 서로 "우리가 동생에게 한 일로 지금 벌을 받고 있다. 그가 살려 달라고 애걸할 때 우리가 그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않았으니 우리가 이런 괴로움을 당하게 되었다"는 말과 맏형인 르우벤이 "내가 그 아이를 해하지 말라고 하지 않았느냐? 그러나 너희는 내 말을 듣지 않았다. 그러므로 우리가 지금 그 대가를 치르고 있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 말을 다 들은 요셉은 잠시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서 다시 돌아왔습니다(창세기 42:21-24, 현대인의 성경).  나중에 그들이 막내 동생 베냐민을 데리고 다시 애굽으로 왔을 때 요셉은 자기 동생을 보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서 급히 밖으로 뛰쳐나가 울 곳을 찾다가 자기 안방으로 들어가서 실컷 울었습니다(43:30,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또 나중에 요셉은 그의 형 유다의 말을 듣고(44:18-34) 하인들 앞에서 더 이상 정을 억제할 수가 없어 큰 소리로 명령하여 모든 하인들을 물러가게 하고 형제들에게 자기가 누구라는 것을 알렸습니다.  그리고서 요셉이 큰 소리로 울자 이집트 사람들은 그가 우는 소리를 들었으며 또 그 소문은 바로의 궁전에까지 전해졌습니다(45:1-2, 현대인의 성경).  슬픔이 많은 세상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를 대신하여 슬픔을 당하신(이사야 53:4,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 믿음으로 바라봅니다(히브리서 12:2).  그리할 때 주님께서는 우리의 슬픔이 변하여 기쁨이 되게 하시며 우리에게서 슬픔의 옷을 벗겨 주시고 기쁨의 띠를 띠워 주실 것입니다(시편 30:11, 현대인의 성경).

 

아마도 요셉은 형들을 이미 마음으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들의 자루에 곡식만 채우게 한 것이 아니라 각 사람의 돈도 그 자루에 도로 넣게 하였을 텐데 그들은 나중에 자신들의 돈을 도로 돌려받았다는 사실을 알고 "두려워 떨며 서로 쳐다보고 '어째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런 일을 하셨는가?"하고 한탄했습니다(창세기 42:25-28,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이미 우리를 용서하시고 사랑으로 넘치는 축복을 베풀어 주시는데도 불구하고 혹시 우리는 요셉의 형들처럼 두려워 떨며 "하나님이 어찌하여 이런 일을 우리에게 행하셨는가"라고 하는 것은 아닌지 ... (28).

 

아버지 야곱은 10명의 아들들 중 9명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있었던 모든 일을 들은 후 자루 속에 들어있었던 돈 주머리를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그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너희가 내 자식들을 잃게 하는구나!  요셉도 없어지고 시므온도 없어졌는데 너희가 이제 베냐민마저 빼앗아 가려고 하니 모든 일이 다 나를 괴롭게만 하는구나."  그러자 맏아들 르우벤은 아버지 야곱에게 "내가 만일 베냐민을 아버지에게 데려오지 않으면 나의 두 아들을 죽여도 좋습니다.  그를 나에게 맡기십시오.  내가 책임지고 데리고 돌아오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한다.  그의 형은 죽었고 그만 남았는데 만일 너희가 그를 데리고 가는 도중에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너희는 백발이 된 나를 슬픔 가운데서 무덤으로 내려 보내는 자들이 될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창세기 42:35-38, 현대인의 성경).  아버지 야곱의 심정은 9명의 아들들이 요셉과 시므온을 잃게 하였는데 베냐민마저 잃을까봐 애굽으로 데려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 이유는 그는 베냐민마저 잃으면 슬픔 가운데서 무덤으로 내려가게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 이유는 아버지 야곱의 생명과 아들 베냐민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44:30).  부모의 생명이 사랑하는 자녀의 생명과 서로 하나로 묶였 있었는데 그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그 부모님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