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짧은 말씀 묵상
오고 가는 “사람이 너무 많아” 식사할 겨를도 없으셨던 예수님은 사도들에게 “외딴 곳[“한적한 곳”(개역개정)]으로 같이 가서 잠시 쉬도록 하자”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일행은 배를 타고 “조용한 곳”[“한적한 곳”(개역개정)]으로 떠났는데 그들이 떠나는 것을 본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일행인 줄 알고 여러 마을에서 나와 육로로 달려가 “그곳”에 먼저 도착하였습니다.
예수님은 배에서 내려 “많은 군중들”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아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 “많은 것”을 가르치셨습니다(마가복음 6:30-34,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4가지 중요성을 생각하게 됩니다:
(1)
쉼의 중요성:
식사할 겨를도 없으셨던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외딴 곳’(‘한적한 곳’)으로 같이 가서 잠시 쉬도록 하자”하고 말씀하신 것을 생각할 때 우리 사역자들도 예수님의 말씀대로 “외딴 곳”[“한적한 곳” 또는 “조용한 곳”]으로 가서 잠시라도 쉬어야 합니다.
성도님들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천지창조하신 하나님도 엿새 동안 천지를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에는 일을 마치시고 쉬셨는데(출 31:17) 지금 우리는 6일 동안 일하고 7일째 되는 날인 안식일에 쉴 줄을 모르는 것 같습니다.
쉬어야 할 때 쉬어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겐 "쉼"이 필요합니다.
비록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수고할 때에 하나님께 우리에게 지워주신 무거운 짐이 있지만(전도서 3:10,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예수님께서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사람들아, 다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를 쉬게하겠다”(마태복음 11:28,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씀하신 초청에 겸손히 믿음으로 응하여 주님 안에서 쉼을 누려야 합니다.
(2)
한적한 곳의 중요성:
예수님께서 홀로 조용한 시간에 조용한 곳에서 기도하시면서 하나님 아버지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신 것이 예수님의 모든 사역(공생애)의 가장 중요한 중추(backbone)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우리 각자만의 조용한 곳, 즉 기도하는 장소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조용한 시간에 조용한 곳에서 조용한 마음으로 홀로 있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홀로 하나님 앞에 잠잠히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사역도 좀 내려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마르다처럼 너무나 일하기에 분주해서는 아니 됩니다. 우리는 좀 복잡한 생활 환경을 떠나 한적한 곳으로 갈 필요가 있습니다. 나 홀로만의 시간과 공간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다 멈추고 주님 앞에 조용히 나아가 잠잠히 하나님의 말씀 묵상하는 시간과 기도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경험하므로 외로운 광야를 고독의 동산으로 바꾸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3)
불쌍히 여김의 중요성:
예수님은 배에서 내려 많은 군중들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아서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말씀을 묵상할 때 그 이유를 마태복음 9장 36절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또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같이 흩어져 고생하는 군중들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현대인의 성경).
실제로 이 말씀처럼 지금 우리 주위에 예수님을 닮아가는 참 목자(목사)가 없어서 고생하는 성도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왜 그들이 고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참 목자인 목사님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 복음을 듣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요 또한 예수님의 참 사랑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그러므로 마치 하나님의 사랑 결핍증과 참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먹지 못해서 영적으로 영양실조에 걸려있지 않나요?
그러한 방황하는 영혼들을 볼 때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 그 한 영혼 영혼을 향하여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들지 않나요?
(4)
가르치는 사역의 중요성:
예수님께서는 많은 군중들을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아서 그들을 불쌍히 여겨 많은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사도들도 예수님을 본받아 가르치는 사역에 전심전력했습니다(마가복음 6:30; 사도행전 6:4).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주님의 종들은 그리스도의 말씀이 우리들 가운데 풍성하게 하여 모든 지혜로 가르치되(골로새서3:16, 현대인의 성경) 잘 가르쳐야 합니다(디모데후서2:24,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바른 교훈(sound doctrine)과 일치하는 것을 가르쳐야 합니다(디도서2:1,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복음 28:19-20,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과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곳은 벌판인 데다가 날도 이미 저물었을 때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에게 “사람들을 가까운 마을로 보내 각자 음식을 사 먹에 하십시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가 저들에게 먹을 것을 주어라”하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우리가 가서 200데나리온이나 들여 빵을 사다가 먹이란 말씀입니까?”하고 질문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가진 빵이 몇 개나 되는지 가서 알아보고 오너라”하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알아본 결과 빵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모든 사람을 떼지어 풀밭에 앉히라고 지시하였고 제자들은 그 모든 사람을 100명씩, 50명씩 모여 앉혔습니다.
예수님은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사람들 앞에 갖다 놓게 하셨고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모두 실컷 먹고 남은 빵과 물고기 조각을 열 두 광주리나 거뒀으며 먹은 사람은 남자만 약 5,000명이었습니다(마가복음 6:35-44,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 생각이 듭니다:
(1)
예수님과 제자들과 많은 사람들이 있었던 곳은 벌판이라고 말씀하고 있는데(35절, 현대인의 성경) 요한복음 6장을 보면 “갈릴리 바다 건너편”(1절)에 있는 “산”(3절)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2)
그 때가 “날도 이미 저물었”을 때(마가복음6:35,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마태복음 14장을 보면 “저녁때”(15절, 현대인의 성경)라고 말씀하고 있고, 요한복음 6장을 보면 “마치 유대인의 명절인 유월절이 다가왔다”(4절, 현대인의 성경)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도 요한이 “유월절”을 언급한 것은 신학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유월절이 다가왔을 때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뿐만 아니라 특히 떡 다섯 덩어리를 남자만 약 5,000명을 먹이는 기적을 이루신 목적은 “생명의 떡”이시요(48절) “세상 죄를 지고 가는”(1:29) “유월절 양”(출애굽기12:21)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사 예수님을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요한복음3:16).
(3)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에게 “이 곳은 벌판인 데다가 날도 이미 저물었습니다.
사람들을 가까운 마을로 보내 각자 음식을 사 먹게 하십시오”(마가복음6:35-36,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했는데 마태복음 14장 15절과 누가복음9장12절을 보면 비슷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누가복음엔 “숙소도 찾고”라고 말씀하고 있기 하지만 서두요).
그런데 요한복음 6장을 보면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공관복음”이라고 부름)에 기록되어 있지 않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 말씀이란 (a) 예수님께서 빌립에게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5절)하고 시험하신 말씀(6절)과 빌립의 답변인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7절)란 말씀, (b) 안드레가 예수님께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9절)란 말씀입니다.
특히 이 두 번째 안드레가 한 말은 오늘 본문 마가복음 6장 38절인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 하시니 알아보고 이르되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가 있더이다 하거늘”의 구체적인 설명입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떡 몇 개나 있는지 가서 보라”(38절)하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 중에 안드레가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는 한 아이를 찾은 것입니다(요한복음6:9).
그래서 마태복음 14장 17절에서는 “제자들이 이르되 여기 우리에게 있는 것은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니이다”하고 말한 것이고, 누가복음 9장13절에서는 “우리에게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밖에 없으니 이 모든 사람을 위하여 먹을 것을 사지 아니하고서는 할 수 없사옵나이다”하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말씀들을 종합해보면,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시험한 문제는 “우리가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요한복음 6:5)였고, 그 시험 문제의 답안지를 써낸 빌립은 “각 사람으로 조금씩 받게 할지라도 이백 데나리온의 떡이 부족하리이다”(7절)였고[마가복음6장38절에는 “우리가 가서 이백 데나리온의 떡을 사다 먹이리이까”하고 말씀하고 있고,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은 그런 말씀이 없음], 안드레는 “여기 한 아이가 있어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있나이다 그러나 그것이 이 많은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사옵나이까”(9절)였습니다.
모든 제자들의 답안지는 “우리에게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인데 먹을 것을 사오지 않고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을 다 먹이란 말씀입니까?”(누가복음9:13, 현대인의 성경)였습니다.
즉, 예수님의 시험 문제의 제자들의 답안지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는 남자만 약 5,000을 먹이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었습니다.
마가복음 10장 27절 새번역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눈여겨보시고, 말씀하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나, 하나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는 모든 일이 가능하다.’”
누가복음 1장 37절 새번역 말씀입니다: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 제자들이 예수님의 시험 문제 말씀에서 놓친 것은 예수님께서 “우리가”하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란 불가능한 일이란 없고 모든 일이 가능한 하나님이신 예수님도 포함돼 있는데 제자들은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지 않았습니다(히브리서12:2). 시험 문제를 내신 예수님이 답안인 것을 몰랐던 것입니다.
(4)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 모든 사람으로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명하시자 그들은 100명씩 또는 50명씩 앉았다고 마가복음 6장 39-40절은 말씀하고 있는데, 누가복음 9장 14절은 “떼를 지어 한 오십 명씩 앉히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기록하였습니다[마태복음14장19절은 “무리를 명하여 잔디 위에 앉히시고”라고만 말씀하고 있고, 요한복음6장10절은 “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음].
여기서 다른 점은 마가복음만 “푸른 잔디 위에 앉게”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차이는 숫자입니다[마가복음은 100명씩 또는 50명씩 떼를 지어 푸른 잔디 위에 앉게 하였다고 말씀하고 있고,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떼를 지어 한 50명씩 앉히라고 말씀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음].
숫자의 차이는 그리 중요한 것 같지 않지만 마가복음에서 “푸른 잔디”를 언급한 것을 묵상할 때 저는 시편 23편 1-2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쉬게 하시고(현대인의 성경)]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5)
예수님께서 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사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시고[“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현대인의 성경)] 떡을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시고 또 물고기 두 마리도 모든 사람에게 나누셨다고 마가복음 6장41절은 말씀하고 있는데, 마태복음14장19절과 누가복음 9장16절과 요한복음6장11절도 비슷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한 가지, 요한복음 6장 11절 하반절에서 “…. 그들의 원대로 주시니라”고 기록하고 있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떡과 물고기를 떼어 제자들에게 주어 그들로 하여금 남자만 약 5,000명이나 되는 사람들에게 나눠줬을 때 제자들이 그 많은 사람들이 “원대로” 줬다는 것은 믿음이 없이는 불가능한 행동이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계산적인 사람인 빌립의 경우 “한 사람에게 조금씩 나누어 준다고 해도 200데나리온 어치의 빵으로도 부족할 것입니다”(요한복음6:7, 현대인의 성경)하고 대답했던 사람이 어떻게 남자만 약 5,000명이나 되는[여자와 아이들까지 포함한다면 약 10,000명이나 되지 않았을까요? (마태복음14:21)] 사람들에게 그들이 원하는데로 빵(떡)과 물고기를 나눠줄 수 있었겠습니까?
믿음이 없이는 도저히 불가능한 빌립의 행동입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현대인의 성경) “나에게 능력 주시는 분 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또 한가지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께서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받아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셨다는 말씀입니다(마가복음6:41, 현대인의 성경).
어떻게 그 상황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드리실 수 있으셨을까요?
저는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놓여있다 할지라도 상황에 이끌림을 받아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말고 “범사에 감사하라”는 하나님의 뜻대로(데살로니가전서 5:18)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그리할 때 놀라운 하나님의 기적이 일어납니다.
이미 죽은지 4일이나 되어서 무덤 안에 있는 나사로를 살리실 때에 예수님께서는 무덤에 돌을 옮겨 놓게 하신 후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내 말을 들어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항상 내 말을 들어주시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나는 둘러선 이들이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려고 이 말씀을 드립니다”하고 말씀하신 후 “나사로야, 나오너라”하고 크게 외치시자 죽었던 그가 손발이 베에 묶인 채 나왔습니다(요한복음11:41-44,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감사 기도는 매우 강력한 것입니다!
(6)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의 결과는 “다 배불리 먹고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를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두었”습니다(마가복음6:42-43). 이 결과에 관한 기록은 마태복음14장20절과 누가복음9장17절과 요한복음 6장 12절에 비슷하게 나오는데 요한복음 6장 12절에서만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남은 조각을 거두고 버리는 것이 없게 하라”고 기록하였습니다.
이 요한복음의 예수님의 말씀으로 인해 제자들이 남은 음식을 거둔 것이고 그 결과 남은 떡 조각과 물고기가(마가복음6:43)가 열두 바구니에 차게 거둔 것입니다[요한복음은 “물고기”에 대한 언급은 없고 “보리떡 다섯 개로 먹고 남은 조각이 열두 바구니에 찼더라”(요한복음6:13)하고 말씀하고 있음].
왜 예수님께서는 남은 조각을 버리는 것이 없게 하신 것일까요?
Lightfoot학자에 의하면 유대풍속에, 식사에 봉사하고 남은 음식은 그 봉사자들의 분깃이 되었다고 합니다.
호크마는 “예수님은 선물을 관대하게 주시지만 낭비하는 것을 금하신다.
물질이 헛되이 내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하고 말하고 있습니다(인터넷).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남자만 약 5,000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마가복음6:30-44; 마태복음14:15-21; 누가복음9:11-17; 요한복음6:1-15)을 목격한 군중들은 예수님을 강제로 잡아 그들의 왕을 삼으려 한다는 것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다 보내신 후에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가셔서 날이 저문데도 그곳에 홀로 계셨습니다(마가복음6:46; 마태복음14:23; 요한복음6:15, 현대인의 성경).
날이 저물자 제자들은 바닷가로 내려가 배를 타고 건너편 가버나움을 향해 떠났습니다.
날이 이미 어두워졌는데도 예수님은 아직 제자들에게 돌아오시지 않았습니다.
그 때 강한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기 시작했습니다(요한복음6:16-18, 현대인의 성경).
그 결과 제자들이 탄 배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으며 바람이 휘몰아치므로 배가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고 제자들은 노를 젓느라고 애쓰고 있었습니다(마가복음6:48; 마태복음14:24, 현대인의 성경).
그들이 배를 저어 4-5킬로미터쯤 갔을 때(요한복음6:19, 현대인의 성경) 노를 젓느라고 애쓰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을 보시고 혼자 육지에 계셨던 예수님께서는 새벽 4시쯤 바다 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다가 그대로 지나가시려하셨습니다(마가복음6:48, 현대인의 성경).
그때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고 모두 놀라 “유령이다!하고 소리를 질렀습니다(49절; 마태복음14:26,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태복음14:27). 그때 베드로가 예수님께 “주님, 주님이시거든 저를 물 위로 걸어오라고 하십시오”하였습니다.
예수님이 “오너라”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을 향해 갔습니다.
그러나 그가 파도를 보고 무서워하다가 물에 빠져들어가자 “주님, 살려주십시오!”하고 소리쳤습니다.
예수님은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느냐?”하시고 배에 함께 오르셨고(28-32절, 현대인의 성경) 제자들은 기뻐하며 예수님을 배에 모셔들였습니다(요한복음6:21, 현대인의 성경).
그러자 곧 바람이 그쳤습니다(마가복음6:51, 현대인의 성경).
제자들은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라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둔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마가복음 6:46-52, 현대인의 성경).
그때 배에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 절하며 “주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하였습니다(마태복음14:33,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오늘 본문 마가복음 6장 45-52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뿐만 아니라 마태복음 14장22-33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과 요한복음 6장 15-21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과 연관해서 묵상하면서 몇 가지를 좀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덩어리로 남자만 약 5,000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목격한 군중들이 예수님을 강제로 잡아 그들의 왕을 삼으려 한(요한복음6:15, 현대인의 성경) 이유는 그들의 입장에서 이렇게 놀라운 능력을 가지신 예수님을 자신의 왕으로 삼으면 그들을 지배하고 있는 로마 정부로부터 정치적으로 자유(political freedom)를 누리며, 경제적으로 풍족할 수 있으며(economic prosperity) 또한 사회적으로 공의(social justice)가 있을 것을 기대하였기 때문입니다(참고: 김세윤).
(2)
그것을 아신 예수님께서 그 군중을 다 보내신 후에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가셔서 날이 저문데도 그곳에 홀로 계셨다는 사실(마가복음6:46; 마태복음14:23; 요한복음6:15, 현대인의 성경)이 주는 교훈은 비록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의 세상적이고 육체적이고 사회적인 필요를 채우고자 우리를 높이려고 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예수님을 본받아 홀로 조용한 장소에서 하나님께 기도하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마가복음14:36, 현대인의 성경)하고 간구해야 합니다.
비록 우리의 뜻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고난의 잔”을 우리에게 거두어 주시고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데로 높임을 받길 원하는 것이겠지만 하나님의 뜻이 우리가 그 고난의 잔을 받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고자 홀로 하나님 앞에 나아가 예수님처럼 간구해야 합니다.
(3)
강한 바람이 불어 파도가 일기 시작한(요한복음6:16-18, 현대인의 성경) 결과 제자들이 탄 배는 바다 한가운데 있었으며 바람이 휘몰아치므로 배가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고 제자들은 노를 젓느라고 애쓰고 있었다(마가복음6:48; 마태복음14:24,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묵상할 때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여 하나님을 피해 도망하고 있었던 요나 선지자가 타고 있던 배가 거의 깨어지게 될 정도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심으로 바다 가운데 큰 폭풍이 일어나게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요나1:1-4). 결국 제비에 뽑힌 요나 선지자는 자기가 하나님을 피해 도망치고있음을 불신자 선장과 선원들에게 밝혔는데 그 때 폭풍이 점점 더 무섭게 휘몰아치자 선원들은 요나에게 “우리가 당신을 어떻게 해야 바다가 잔잔하겠소?”하고 물었고 요나는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시오”하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선원들은 최선을 다해 노를 저어 배를 육지에 대려고 하였으나 점점 더 사나운 파도가 밀어닥치므로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10-13절, 현대인의 성경).
지금 우리가 타고 있는 배는 이 세상 한 가운데 있습니다.
그런데 이 세상의 다양한 죄악된 바람이 휘몰아치고 있으므로 우리가 타고 있는 배가 죄악된 파도에 시달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최선을 다해 노를 젓느라고 애쓰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점점 더 사나운 이 세상의 파도가 밀어닥치므로 우리는 우리가 타고 있는 배를 지금 육지에 댈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노를 저을 힘도 없습니다.
그런데 사나운 폭풍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는 구원의 여망마저 없어졌습니다(사도행전27:20). 지금 우리는 살아 남으리라는 희망을 점점 잃어가고 있습니다(20절, 새번역).
(4)
이러한 우리의 모습을 예수님은 보고 계십니다(참고: 마가복음6:48, 현대인의 성경).
그리고 예수님은 우리에게 다가오십니다(참고: 마태복음14:25, 현대인의 성경).
바다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유령인 줄 알고 모두 놀라 “유령이다!하고 소리를 질렀던 제자들(49절; 마태복음14:26, 현대인의 성경)에게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예수님(마태복음14:27)은 두려워하는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하고 말씀하십니다(이사야41:10).
(5)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이사야 41장 10절의 약속 말씀대로 배에서 내려 물 위로 걸어서 예수님을 향해 가다가 파도를 보고 무서워하다가 물에 빠져들어가자 “주님, 살려주십시오!”하고 소리신 베드로에게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사 건져주셨습니다(구원해주셨습니다) (마태복음14:29-31, 현대인의 성경).
(6)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믿음이 적은 사람아!
왜 의심하느냐?”하고 말씀하셨는데(31절, 현대인의 성경) 의심 많은 도마에게는 “네 손가락을 내밀어 내 손바닥에 넣어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아라. 그리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어라”하셨습니다(요한복음20:27, 현대인의 성경).
(7)
예수님께서 믿음이 적어 의심한 베드로와 함께 배에 함께 오르시자 (마태복음14:31-32절, 현대인의 성경) 곧 바람이 그쳤다(마가복음6:51,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을 묵상할 때 선원들이 요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자 성난 바다가 즉시 잔잔해졌다는 말씀이 생각납니다(요나1:15, 현대인의 성경).
우리 인생에 부는 큰 바람으로 인해 큰 풍랑이 일어나 우리가 향해하는 바다가 성난 바다로 바뀌어서 우리가 타고 있는 배를 위협한다 할지라도 “이 바다에 노저어 향해하는 이 작은 배 사공은 주님”이시기에 우리는 “나 두렴 없네 두렴 없도다 주 예수님 늘 깨어 계시도다 이 흉흉한 바다를 다 지나면 저 소망의 나라에 이르리라”하고 찬양합니다(새 찬송가 432장,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2절과 후렴).
(8)
예수님의 제자들은 너무 놀라 어쩔 줄 몰라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오병이어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둔해졌기 때문이었습니다(마가복음 6:46-52, 현대인의 성경).
우리 마음이 둔해지는 원인은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 누가복음 21장 34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9)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함께 배에 오르시자 바람이 멎었을 때 배에 있던 제자들은 예수님께 절하며 “주님은 참으로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하였습니다(마태복음14:33, 현대인의 성경).
이 신앙 고백을 묵상할 때 요한복음에 나오는 나다니엘의 고백과 도마의 고백이 생각납니다: (나다니엘) “선생님은 정말 하나님의 아들이시며 이스라엘의 왕이십니다(요한복음1:49, 현대인의 성경), (도마) “나의 주님이시며 나의 하나님이십니다”(20:28, 현대인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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