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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 깊은 속에까지 내려가신 예수님 (마12:40)

  처음으로 이리 묵상해 보았습니다. 요나 선지자는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서 깊음 속 바다 가운데서도(into the very heart of the seas)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렸는데, 혹시 예수님께서도 밤낮 사흘 동안 땅 속에(in the heart of the earth) 계셨을 때 예수님의 영이신 성령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 기도를 드리시지 않았을까요? https://youtu.be/lKEkXpXcW8M?si=m0x3B37bcM4hEBnY

주간 짧은 말씀 묵상 (2025년 1월 27-31일)

주간 짧은 말씀 묵상

 

 

 

예루살렘에서 바리새파 사람들(바리새인들) 몇몇 율법학자들(서기관들) 예수님의 제자들 가운데 사람이 손을 씻지 않고 음식을 먹는 것을 보고 예수님께 “왜 당신의 제자들은 조상들의 전통을 어기고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먹습니까?”하고 물었습니다.  여기서 그들이 말한 “조상들의 전통”이란 “먼저 손을 씻지 않으면 음식을 먹지 않았고 시장에서 돌아왔을 때에도 몸을 깨끗이 하지 않으면 음식을 먹지 않았다.  밖에도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을 씻는 지켜야 일들이 많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바로 너희와 같은 위선자들을 두고 이사야가 다음과 같이 예언하였다.  '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그들은 사람이 만든 법을 마치 교훈인 것처럼 가르치고 있으니 나를 헛되이 예배하고 있다.'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만 내세우고 있다.    너희는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렸다.  모세는 '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고 '부모를 저주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하였다.  그런데 너희는 부모에게 드려야 것을 '고르반', '하나님께 예물로 드렸습니다.' 하고 말하기만 하면 그만이라고 하여 부모에게 아무것도 필요가 없다고 가르친다.  너희는 그런 전통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였으며 밖에도 그와 같은 짓을 많이 하고 있다”(마가복음 7:1-13, 현대인의 성경).  저는 말씀을 묵상할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1)   군중들이 예수님께 모여든 이유는 적어도 2가지가 있었습니다: (a) 예수님께서 문둥병자를 불쌍히 여겨 그의 문둥병을 고치셨을 그가 나가서 일을 마구 퍼뜨렸음으로 사람들은 계속해서 여기저기서 예수님께 모여들었습니다 (마가복음 1:40-45, 현대인의 성경).  (b) 예수님께서는 군중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나를 찾는 것은 표적을 까닭이 아니요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요한복음6:26).  그런데 바리새파 사람들(바리새인들)이나 율법학자들(서기관들) 예수님께 모여든 이유는 예수님께서 율법을 어기는지(누가복음14:1; 참고: 마가복음2:16) 전통을 어기는지 엿보기 위해서여든지(마가복음7:5; 누가복음5:33), 예수님을 고발할 증거를 찾으려 하여 안식일에 병을 고치시는가 엿보기 위해서든지(누가복음6:7), 예수님을 시험하든지(마태복음16:1, 19:3; 마가복음8:11, 10:2), 예수님의 말씀을 책잡으려 하든지(마가복음12:13), 예수님을 말로 함정에 빠뜨리려고 하기 위해서였습니다(마태복음22:15, 현대인의 성경).  그러면 우리가 예수님께 모여드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이유는 주님에게는 영원한 생명의 말씀이 있기 때문이 아닌가요? (참고: 요한복음 6:68, 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예수님으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듣고 깨달아야 합니다(참고: 마태복음15:10; 마가복음 7:14, 현대인의 성경 ).


(2)   바리새파 사람들과 유대인들은 원래 조상들이 지켜 전통에 따라 먼저 손을 씻지 않으면 음식을 먹지 않았고 시장에서 돌아왔을 때에도 몸을 깨끗이 하지 않으면 음식을 먹지 않았으며 밖에도 잔이나 단지나 놋그릇을 씻는 지켜야 일들이 많았었는데(마가복음7:3-4, 현대인의 성경) 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바로 너희와 같은 위선자들 ,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나 있다, “나를 헛되이 예배하고 있다, “너희는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렸다”(6-9, 현대인의 성경)였습니다.  지금 말로 한다면, 교회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자들은 주님 보시기에 위선자들이요, 입술로만 주님을 존경하고 마음은 주님에게서 멀리 떠나 있으면, 주님을 헛되이 예배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러한 위선자들은 겉은 깨끗하게 하지만 속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차 있으며(마태복음23:25, 현대인의 성경) 또한 회칠한 무덤과 같은 자들로서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속은 해골과 더러운 것으로 가득차 있습니다(27, 현대인의 성경).  그러기에 이러한 위선자들이 드리는 헛된 예배는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너희 수많은 제물이 나에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  나는 너희가 수양이나 짐승의 기름으로 드리는 제물에 이제 싫증이 났다.  나는 수송아지나 어린 양이나 수양의 피를 기뻐하지 않는다.  누가 너희에게 그런 것을 가져오라고 하였느냐? 너희는 마당만 밟을 뿐이다.  너희는 무가치한 제물을 이상 가져오지 말아라. 너희가 분향하는 것도 나는 싫어졌다.  너희가 초하루와 안식일과 밖의 명절을 지키고 종교적인 모임을 가지면서도 악을 행하는 것을 내가 차마 없구나.  너희가 지키는 초하루와 밖에 지정된 명절을 내가 싫어하는 것은 그것이 오히려 나에게 짐이 되어 내가 감당하기에도 지쳤기 때문이다.  너희가 하늘을 향해 손을 들어도 내가 보지 않을 것이며 너희가 아무리 많이 기도할지라도 내가 듣지 않을 것이다”(이사야1:11-15, 현대인의 성경).  이러한 위선자들에게는 반드시 불행이 닥칠 것입니다(13, 15, 23, 25, 27, 29).


(3)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위선자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만 내세우고 있다” “너희는 전통을 지키려고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렸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마가복음7:8-9, 현대인의 성경).  우리 목사님들이 교회의 전통(?)대로 아내와 자녀(가족) 돌보지 않고 그들을 희생해서라도 주님의 교회를 헌신적으로 섬기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헛되게 하는 것이요(13,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계명을 저버리는 것이며(9, 현대인의 성경) “믿음을 저버린 사람이며 불신자보다 나쁩니다”(디모데전서5:8,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 두로 지방에서 나와 갈릴리 호수로 돌아오셨을 사람들이 귀먹은 반벙어리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달라고 간청하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고 손가락에 침을 뱉어 그의 혀를 만지셨습니다.  그리고서 예수님은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에바다”(: “열리라”)하고 외치셨습니다.  그러자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제대로 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일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못하게 하셨으나 그럴수록 사람들은 소문을 널리 퍼뜨렸습니다.  사람들은 놀라 “참 굉장한 일이다.  귀머거리를 듣게 하시고 벙어리를 말하게 하다니!’하고 감탄하였습니다(마가복음 7:31-37, 현대인의 성경).  저는 말씀을 묵상할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1)    사람들이 귀먹은 반벙어리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달라고 간청한 사실(32, 현대인의 성경) 묵상할 3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a) “귀먹은 반벙어리 사람”은 양쪽 귀는 들리지 않았지만[그래서 예수님께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으셨음(33, 현대인의 성경) “반벙어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면 완전한 벙어리는 아니었고 “단지 언어에 장애가 있었”던 같습니다(호크마).  지금 말로 하면 사람은 농아로서 청각 장애도 있고 언어 장애도 있는 사람이었던 같습니다(인터넷).  청각 장애를 가진 사람이 언어 장애까지 있는 이유는 “쉽게 말해서 들리지 않기 때문입니다.  들리지 않기 때문에 분명히 아는 말인데도 말의 소리를 수가 없는겁니다.    말을 한다라는 소리를 낸다는 것과 동일합니다.  청각을 잃게 되면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단어의 발음을 기억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소리를 듣지 못한다면 소리를 내기가 쉽지 않습니다”(인터넷).  (b) “사람들이 귀먹은 반벙어리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왔다는 사실을 묵상할 “네 사람이 중풍병자를 메고 예수님께” 와서 “그분이 계신 곳의 지붕을 뜯어 병자가 누워 있는 들것을 달아 내렸다”(2:3-4, 현대인의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얘야, 죄는 용서받았다”하고 말씀하셨”습니다(5, 현대인의 성경).  사람들처럼 귀먹은 반벙어리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사람들”도 믿음으로 그리 행하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귀먹은 반벙어리 사람을 치유해 주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이러한 믿음의 사람들이 우리를 위해 주님께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사랑이요 축복이라 생각합니다.  (c) “사람들이” 예수님께 “손을” “귀먹은 반벙어리 사람”에게 “얹어 달라[“안수하여 주시기를”(개역개정)] “간청하였다”(마가복음7:32,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묵상할 “더러운 귀신 들린 어린 딸을 가진 여자”가 “예수님의 앞에 엎드”려 “자기 딸에게 들린 귀신을 내쫓아 달라고 예수님께 간청하였다”(25-26, 현대인의 성경)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기서 ‘간청하였다’는 단어는 “미완료 시제로서 어미가 자기 딸의 치유를 소망하며 예수께 거듭거듭 호소하고 있는 장면을 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호크마) 것을 참고할 귀먹은 반벙어리 사람을 예수님께 데리고 와서 손을 얹어 달라고 간청하였던 사람들도 그의 치유를 소망하며 예수님께 거듭거듭 호소하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누가복음 18장에서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언제나 기도하고 실망하지 말아야 것을 가르치시기 위해서 비유를 들어 하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1, 현대인의 성경): “재판관은 얼마 동안 그녀의 간청을 들어주지 않고 있다가 마침내 이렇게 중얼거렸다.  '내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데도 과부가 계속 나를 성가시게 하니 내가 그녀의 간청을 들어주어야겠다.  그렇지 않으면 여자가 계속 와서 나를 괴롭힐 것이다’”(4-5,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재판관(2, 현대인의 성경) 과부의 간청을 들어줬다면 하물며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직접 택하신 우리가 밤낮 부르짓는데 우리의 간청을 들어주시지 않으시겠습니까?  (7, 현대인의 성경)  제가 하나님께 “간청하는 가지 일”은 “내가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서 살며 그의 아름다움을 바라보고 성전에서 그를 묵상하는 일”입니다(시편 27:4, 현대인의 성경).

 

(2)    예수님께서는 귀먹은 반벙어리 사람을 따로 데리고 가셔서 손가락을 그의 귀에 넣으시고 손가락에 침을 뱉어 그의 혀를 만지시고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에바다 하시니 이는 열리라는 뜻이라”(마가복음7:33-34) 말씀을 묵상할 3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a) 예수님께서 그의 귀에 손가락을 넣으시고 침을 뱉어 그의 혀를 만지신” 형태의 치유 행위는 당시 헬라와 유대인 의사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한 방법으로 있다고 합니다(Taylor, 호크마).  요한복음 9 6-7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고 예수님은 땅에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소경의 눈에 바르시고 그에게 '실로암(번역하면 보냄을 받았다는 )못에 가서 씻어라.' 하셨다.  그래서 소경은 가서 씻고 눈을 뜨고 돌아왔다.”  (b) 예수님께서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셨다(마가복음7:34) 말씀을 묵상할 원로 목사님이 수요 예배 로마서 8 19-27 말씀 중심으로 “세 가지 ‘탄식’”이란 제목 아래 선포하신 설교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여기서 “세 가지 ‘탄식’”이란 (1) 피조물의 탄식(22), (2) 우리의 탄식(23) 그리고 (3) “성령님의 탄식”입니다: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26).  예수님께서 귀먹은 반벙어리 사람을 치유하시기 전에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신 이유는 어쩌면 예수님께서는 그와 “함께 고통을 겪고” 계셨기 때문이요(참고: 로마서 8:22) 또한 그의 “몸의 속량”(참고: 23) 간절히 사모하셨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가지 흥미로운 점은, 예수님께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행하시기 전에는 “하늘을 우러러 축사”[“하늘을 우러러 감사 기도를 드리”셨음(현대인의 성경)]하셨는데(6:41) 귀먹은 반벙어리 사람을 치유하시기 전에는 “하늘을 우러러 탄식하”셨다는 사실입니다(마가복음7:34).  (c) 예수님께서 귀먹은 반벙어리 사람에게 “에바다”(: “열리라”) 외치셨을 “곧 그의 귀가 열리고 혀가 풀려 제대로 말을 하게 되었다”(34-35, 현대인의 성경) 말씀을 묵상할 저는 지금 귀가 들리지 않는 성도님들이나 제대로 말을 하지 못하는 성도님들이나 주님의 “에바다”의 놀라운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길 기원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귀먹은 반벙어리 사람을 치유하셨을(마가복음7:32-37, 현대인의 성경)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앉은뱅이, 절뚝발이, 소경, 벙어리, 밖의 많은 병자들을 데리고 와서 예수님 앞에 앉히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 주셨”습니다(마태복음15:30, 현대인의 성경).  “벙어리가 말하고 절뚝발이가 성해지고 앉은뱅이가 걷고 소경이 눈을 뜨는 것을 보고 사람들은 놀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31, 현대인의 성경).  “그 무렵 다른 군중이 많이 모여 들었으나 먹을 것이 없으므로 예수님은 제자들을 불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8:1, 현대인의 성경): “이 사람들이 나와 함께 있은 지가 벌써 3일이 되었는데 먹을 것이 없으니 가엾구나.  이들 가운데는 데서 사람들도 있으니 만일 굶겨 보낸다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2-3, 현대인의 성경)(마태복음 15 32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추가로 예수님께서는 “저들을 굶겨서 그대로 보내고 싶지는 않다”고 말씀하셨음).  그러자 제자들이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사람들로 배부르게 있으리이까”하고 대답하였고 예수님께서는 “너희에게 개나 있느냐”하고 질문하셨습니다(4-5).  그러자 제자들은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마태복음15:34).  예수님께서는 무리에게 명하사 땅에 앉게 하시고 일곱 개와 생선을 가지사 축사하시고[“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개역개정)]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니 제자들이 무리에게 주매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에 차게 거두었으며 먹은 자는 여자와 어린이 외에 사천 명이었습니다(36-38).  저는 말씀을 묵상할 가지 생각하게 됩니다:

 

(1)   예수님께 많이 모여든 다른 군중(“큰 무리”) 3일이나 예수님과 함께 있었는데 먹을 것이 없으므로 예수님은 그들을 가엽게 여기셨습니다[불쌍히 여기셨습니다(개역개정)](마가복음8:1-2, 현대인의 성경) [참고: 물고기 마리와 다섯 덩어리로 남자만 5,000명을 먹이신 ‘오병이어의 기적’의 말씀에는 이러한 말씀이 없음].  여기서 군중이 3일이나 먹을 것이 없었다는 것은 그들뿐만 아니라 예수님과 제자들도 먹을 것이 없었으므로 3일동안 다들 아무것도 먹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울(바울) “사흘 동안 보지 못한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습니다(사도행전9:9, 현대인의 성경)[3일”하니까 “요나가 사흘 동안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처럼 나도 사흘 동안 속에 있을 것이다”하는 말씀과(마태복음12:40, 현대인의 성경)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자기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죽은 3 만에 살아나리라고 말씀하신 것이 생각났음(마가복음9:31)].  예수님께서는 3 동안 먹지 못한 무리 중에 만일 “먼 데서 사람들”을 굶겨 보낸다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8:3, 현대인의 성경).  이렇게 예수님은 3 동안이나 굶주린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주님은 가난한 자와 궁핍한 자를 불쌍히 여기며 궁핍한 자의 생명을 구원하십니다(시편72:13).


(2)   여자와 아이들 외에 남자만 4,000(마태복음15:38, 현대인의 성경)이나 되는 사람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내지 않으면 “이 광야 어디서 떡을 얻어 사람들로 베부르게 있”었을까요? (마가복음8:4)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모조리 굶어 죽게 되었다고 말했었는데(출애굽기16:3,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처럼 내려 주겠다”하고 말씀하신 (4, 현대인의 성경) 이스라엘 백성들이 알지 못하던(신명기 8:3) “만나”(출애굽기16:31) 내려주셔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40 동안 먹에 하셨습니다.  목적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시기 위해서였습니다(신명기8:3).  육신적으로 굶주림이나 궁핍함은 오직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우리가 사는 줄을 배울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3)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개나 있느냐”하고 물으셨을 (마가복음8:5) 그들은 “일곱 개와 작은 생선 두어 마리가 있나이다”하고 대답했습니다(마태복음15:34).  오병이어의 기적 말씀을 보면 베드로의 동생 안드레는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마리를 가지고 “어떻게 많은 사람을 먹일 있겠습니까?(요한복음6:9,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했는데 칠병이어의 기적 말씀에는 제자들이 아무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저는 제자들의 침묵이 흥미롭습니다.  충분히 그들은 오병이어의 기적 때처럼 예수님께게 이런 저런 (질문) 있었을텐데 그들은 아무 질문이나 말을 하지 않았습니다.  어쩌먼 이유는 그들은 이미 예수님의 오병이어의 기적을 목격해서 그런 것은 아니었을까요?  혹시 그들은 예수님께서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마리로 남자만 5,000명을 먹이신 예수님의 기적을 목격했기에 칠병이어의 기적 때에는 그저 있는 7개와 물고기 2마리만 예수님께 말씀드린 예수님께서 그것으로 무리를 어떻게 먹히실 기대하고 기다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비록 우리가 보기엔 불가능해 보이는 상황에서 주님께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질 있을 때에도 전능하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여 침묵 속에서 주님께서 불가능한 상황을 어떻게 가능케 하실 것인지 믿음으로 지켜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4)   예수님께서는 무리를 명하여 땅에 앉게 하시고 7개를 가지사 감사 기도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어 나누어 주게 하셨고 생선 두어 마리도 그리하셨습니다(마가복음8:6-7).  우리가 생각하는 상황에 비해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지극히 적고 부족할지라도 만일 우리가 예수님을 본받아 믿음으로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에도 하늘을 우러러보시고 "아버지여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기도를 드리셨습니다(요한복음 11:41).  그리하셨을 하나님께서는 죽은 나사로도 살리셨습니다(44).  이렇게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는 우리가 믿음으로 하늘을 우러러 하나님께 감사 기도를 드릴 일어납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감사의 기적을 이루어 주시길 기원합니다.


(5)   남자만 4,000명이나 되는 무리를 예수님의 칠병이어의 기적으로 다들 베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일곱 광주리나 거뒀습니다(마가복음8:8, 현대인의 성경)[오병이어의 기적 때에는 광주리나 남았음(요한복음6:13, 현대인의 성경)].  3 동안이나 먹지 못해 굶주렸던 무리가 예수님의 칠병이어의 기적으로 베풀리 먹었다면 얼마나들 많이 먹었겠습니까?  그런데도 남은 조각이 일곱 광주리나 되었다는 것은 우리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 역사하시는 능력으로 우리가 구하거나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넘치게 주시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할 수밖에 없습니다(에베소서3:20, 현대인의 성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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