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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아들을 내주신 이 (롬8:32)

  https://youtu.be/9tJxsCkB1dc?si=yoecT3l2ALBPh1Wa

저 같이 가장 작고 또한 가장 보잘것 없는 자를 ...

 저 같이 가장 작고 또한 가장 보잘것 없는 자를 ...  사울은 사무엘에게 " 나는 이스라엘 지파 중에서도 가장 작은 베냐민 지파 출신이며 게다가 우리 가족은 우리 지파의 모든 집안 중에서도 가장 보잘것 없는 집안인데 어째서 나에게 이런 말씀을 하십니까 ?" 라고 말했지만 , 사무엘은 사울과 그의 하인을 데리고 큰 객실로 들어가 그들을 귀빈석에 앉히고 그런 다음 그들을 위해 미리 준비해 놓은 가장 맛있는 고기로 사울을 대접했습니다 ( 사무엘상 9:21-24, 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께서 저 같이 가장 작고 또한 가장 보잘것 없는 자를 천국에서 귀빈석에 앉게 하시고 그런 다음 미리 준비해 놓으신 가장 좋은 것으로 저를 대접해 주실 것이라는 생각을 하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은화 20 개에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렸던 요셉 ( 창세기 37:28, 현대인의 성경 ) 이 자기 친동생 베냐민에게 은화 300 개를 주었다 (45:22, 현대인의 성경 ) 는 말씀이 흥미롭습니다 .   요셉의 형들이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았을 때 요셉의 가치가 은화 20 개 밖에 안된다고 생각했다면 , 요셉이 친동생 베냐민에게 은화 300 개를 주었다는 것은 동생을 향한 형의 마음을 좀 엿볼 수가 있습니다 .   그런데 우리 예수님은 자신이 제자였던 가룟 유다가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은화 30 개에 팔아 넘겼습니다 ( 마태복음 27:3).   이사야 53 장 3 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 "...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

부모의 생명과 자식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부모의 생명과 자식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습니다.  아버지 야곱은 특별히 사랑하였던 라헬이 낳은 요셉 ( 창세기 37:3, 현대인의 성경 ) 이 맹수에게 찢겨 죽은 것이 틀림없다 (44:28, 현대인의 성경 ) 고 생각하고 살고 있었는데 라헬이 낳은 또 하나의 아들은 베냐민에게마저 무슨 일이 일어나게 되면 백발이 된 자기를 슬픔 가운데서 무덤으로 내려보내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42:38, 현대인의 성경 , 참고 : 44:29, 현대인의 성경 ).   그정도로 아버지 야곱의 생명과 야들 베냐민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었습니다 (44:30).   그래서 야곱의 아들 유다는 이집트 총리 ( 요셉 ) 에게 " 우리가 아버지에게 돌아갈 때 만일 이 아이가 우리와 같이 가지 않으면 아이가 없는 것을 보고 아버지가 죽게 될 것입니다 .   이렇게 되면 백발이 된 아버지를 우리가 죽이는 셈이 됩니다   ...   내가 아이를 데리고 가지 않고 어떻게 아버지에게 돌아갈 수 있겠습니까 ?   아버지에게 불행한 일이 닥치는 것을 내가 차마 볼 수 없습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30-31 절 , 34 절 , 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제가 몇 년전 딸 아이에게 ' 아빠는 첫째 아기 주영이가 내 품에서 죽었는데 너까지 죽으면 아빠는 더 이상 살 수가 없을 것 같다 ' 라고 말한 기억이 납니다 .   부모의 생명과 자식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다는 말씀 (30 절 ) 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

목숨을 거시고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고 우리에 대한 책임을 지시는 주님

목숨을 거시고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고 우리에 대한 책임을 지시는 주님 야곱의 아들들 중 유다는 심각한 기근으로 인해 양식을 사러 두 번째 이집트로 내려가기 위해서 막내 동생 베냐민과 함께 가야했기에 아버지 야곱에게 "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 주십시오 .   그러면 우리가 즉시 떠나겠습니다 .   그렇게 해야만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자녀들이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   내가 목숨을 걸고 그의 안전을 보장합니다 .   그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겠습니다 " 라고 말했는데 ( 창세기 43:1-5, 8-9, 현대인의 성경 ), 실제로 그는 자기의 목숨을 걸고 베냐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베냐민에 대한 책임을 지고자 베냐민 대신 자기가 애굽 총리의 종이 되어 이집트에 머물로 있겠다고 요셉에게 말했습니다 .   그리고는 요셉에게 " 그러니 제발 이 아이 ( 베냐민 ) 는 형제들과 함께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 라고 간곡히 부탁을 드렸습니다 (44:32-33, 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유다의 후손으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스스로 십자가에 목숨을 버리시므로 말미암아 ( 요한일서 3:16, 현대인의 성경 ) 허물과 죄로 죽었던 우리를 살리셨다 ( 에베소서 2:1) 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목숨을 거시고 우리의 안전을 보장하고 우리에 대한 책임을 지신다는 생각이 듭니다 .

특별한 사랑, 특별 계시

특별한 사랑, 특별 계시 아버지 야곱으로 부터 "특별히" 사랑을 받아 화려하게 장식한 긴 겉옷을 야곱으로부터 받아 입었던 요셉(창세기 37:3, 현대인의 성경)은 "특별히" 자기 동생 베냐민에게는 다른 형들보다 다섯 배나 음식을 더 주었습니다(43:34, 현대인의 성경). 이 말씀을 묵상할 때 특별히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특별 계시"가 생각났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성경을 통하여 조명되어 있고 성령을 통하여 깨닫게 되는 구원자를 위한 특별한 은혜의 계시"(인터넷).

실컷 울고 싶을 때 울어야 합니다.

실컷 울고 싶을 때 울어야 합니다.  요셉은 자기 동생 베냐민을 보고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서 급히 밖으로 뛰쳐나가 울 곳을 찾다가 자기 안방으로 들어가서 실컷 울었습니다 .   그는 정을 억제할 수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창세기 43:30-31, 현대인의 성경) .   왜 그랬을까요 ?   어쩌면 그 이유는 베냐민은 요셉에게 있어서 같은 어머니인 라헬의 소생이요 유일한 동생이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그리고 그 이유는 그러한 동생 베냐민을 22 년 만에 [17 살 때 헤어짐 (37:2) + 30 세 때 애굽 총리가 됨 (41:46) + 7 년 풍년 (47 절 ) + 흉년 2 년 째 (45:11)] 만나서 그러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야곱의 9 명의 아들들이 막내 동생 베냐민과 함께 이집트에 내려가 요셉 앞에 섰을 때에 요셉은 집안 일을 맡은 하인에게 " 이 사람들을 내 집으로 안내하고 짐승을 잡아 식사를 준비하라 . 이들이 정오에 나와 함께 식사할 것이다 " 라고 말했습니다 .   그래서 그 하인은 요셉이 시키는 대로 그들을 요셉의 집으로 안내했습니다 .   그런데 요셉의 형들은 두려워하여 " 지난번 우리 자루에 들어 있던 그 돈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끌려왔다 . 그가 우리를 치고 달려들어 우리 나귀들을 빼앗고 우리를 노예로 삼으려고 하는 것이 틀림없다 " 라고 했습니다 ( 창세기 43:15-18, 현대인의 성경 ).   흥미로운 점은 요셉의 집안 일을 맡은 하인이 요셉의 형제들에게 한 말입니다 : “안심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23 절 ).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예수님께서 배 타고 육지를 떠나 상당히 멀리까지 갔는데 바람이 휘몰아치므로 배가 파도에 시달리고 있었을 때 새벽 4 시쯤 되어 예수님께서 바다위로 걸어서 제자들에게 오셨는데 제자들은 “ 보고 무서워하여 ‘ 유령이다 !’ 하고 소리쳤 ” 을 때 예수님께서 “ 안심하라 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 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 마태복음 14:24-27).   그리고 그 요셉의 하인이 요셉의 형제들에게 “ 당신들의 하나님 , 곧 당신들 아버지의 하나님이 그 돈을 당신들의 자루에 넣어 주신 것입니다 ”( 창세기 43:23, 현대인의 성경 ) 라는 말씀도 흥미롭습니다 .   그 하인은 이집트 사람이었을텐데 어떻게 이러한 말을 할 수 있었을까요 ?   혹시 그는 요셉을 통하여 요셉의 하나님을 믿게 되어서 그리말했을까요 ?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요?

생사의 갈림길에 놓여 있어서 그랬던 것이 아닐까요 ?   처음에 곡식을 사러 이집트에 내려갔다가 돌아와서 르우벤이 아버지 야곱에게 " 내가 만일 베냐민을 아버지에게 데려오지 않으면 나의 두 아들을 죽여도 좋습니다 .   그를 나에게 맡기십시오 .   내가 책임지고 데리고 돌아오겠습니다 " 라고 말했을 때에 야곱은 "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한다 ..." 라고 말했었는데 ( 창세기 42:37-38, 현대인의 성경 ) " 지체하지 않았더라면 벌써 두 번이나 ( 이집트에 ) 갔다 왔을 것 " 같은 때에 유다가 아버지 야곱에게 " 저 아이 ( 베냐민 ) 를 나와 함께 보내 주십시오 .   그러면 우리가 즉시 떠나겠습니다 .   그렇게 해야만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자녀들이 죽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   내가 목숨을 걸고 그의 안전을 보장합니다 .   그에 대한 책임은 내가 지겠습니다 .   내가 만일 무사히 그를 데리고 와서 아버지 앞에 두지 않으면 내가 평생 동안 그 피의 대가를 치르겠습니다 . ..." 라고 말했을 때에는 (43:8-10, 현대인의 성경 ) 야곱은 " 정 그렇다면 이렇게 하여라 ...   너희 동생도 그 사람에게 즉시 데리고 가거라 ..."(11-14 절 , 현대인의 성경 ) 고 말했습니다 .   왜 야곱의 마음이 변한 것일까요 ?   분명히 그는 " 그의 형은 죽었고 그만 남았는데 만일 너희가 그를 데리고 가는 도중에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너희는 백발이 된 나를 슬픔 가운데서 무덤으로 내려 보내는 자들이 될 것이다 "(42:38, 현대인의 성경 ) 라고 말할 정도였었는데 , 어떻게 야곱은 "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43:14) 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   그 정도로 그와 가족이 살던 가나안 땅에 기근이 매우 심각하고 이집트에서 가져온 식량도 다 떨어져서 온 식구가...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   가나안 땅에 기근은 더욱 심각해지고 이집트에서 가져온 식량도 다 떨어졌을 때에 서야 아버지 야곱은 베냐민을 다른 아들들과 함께 이집트로 보냅니다 ( 창세기 43:1-2, 13, 현대인의 성경 ).   떠나 보내면서 야곱은 이렇게 말합니다 : "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14 절 ).   이미 특별히 사랑하던 자식 요셉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야곱에게 있어서 또 다른 사랑하는 부인 라헬의 소생인 베냐민마저 "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 라는 마음 자세로 이집트로 보낸 것을 생각할 때 에스더가 한 말인 " 죽으면 죽으리이다 " 가 생각납니다 ( 에스더 4:16).   그런데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죄악 된 세상에 보내실 때 "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 나 " 죽으면 죽으리이다 " 가 아니라 실제로 잃으시고 십자가에 죽게 하시고자 보내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    그 목적은 불순종과 죄 때문에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들을 ( 에베소서 2:1, 현대인의 성경 ) 살리시기 위해서였습니다 ( 요한일서 4:9).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 "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 마태복음 16:25).

부모의 생명이 사랑하는 자녀의 생명과 서로 하나로 묶였 있었는데 그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그 부모님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부모의 생명이 사랑하는 자녀의 생명과 서로 하나로 묶였 있었는데 그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그 부모님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   아버지 야곱은 10 명의 아들들 중 9 명이 다시 집으로 돌아와 있었던 모든 일을 들은 후 자루 속에 들어있었던 돈 주머리를 보고 두려워했습니다 .   그리고 그는 그 아들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 " 너희가 내 자식들을 잃게 하는구나 !   요셉도 없어지고 시므온도 없어졌는데 너희가 이제 베냐민마저 빼앗아 가려고 하니 모든 일이 다 나를 괴롭게만 하는구나 ."   그러자 맏아들 르우벤은 아버지 야곱에게 " 내가 만일 베냐민을 아버지에게 데려오지 않으면 나의 두 아들을 죽여도 좋습니다 .   그를 나에게 맡기십시오 .   내가 책임지고 데리고 돌아오겠습니다 " 라고 말했습니다 .   그러나 야곱은 " 내 아들은 너희와 함께 내려가지 못한다 .   그의 형은 죽었고 그만 남았는데 만일 너희가 그를 데리고 가는 도중에 그에게 무슨 일이라도 일어난다면 너희는 백발이 된 나를 슬픔 가운데서 무덤으로 내려 보내는 자들이 될 것이다 " 라고 말했습니다 ( 창세기 42:35-38, 현대인의 성경 ).   아버지 야곱의 심정은 9 명의 아들들이 요셉과 시므온을 잃게 하였는데 베냐민마저 잃을까봐 애굽으로 데려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   그 이유는 그는 베냐민마저 잃으면 슬픔 가운데서 무덤으로 내려가게 될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   그 이유는 아버지 야곱의 생명과 아들 베냐민의 생명이 서로 하나로 묶여 있었기 때문입니다 (44:30).   부모의 생명이 사랑하는 자녀의 생명과 서로 하나로 묶였 있었는데 그 자녀가 부모보다 먼저 죽으면 그 부모님의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

"벤-오니" (슬픔의 사람)

"벤-오니" (슬픔의 사람) 에브랏 곧 베들레헴에 약간 못 미친 곳에서 야곱의 아내 라헬이 난산으로 인애 몹시 고통을 당하다가 아들을 낳고 숨을 거두면서 그 아들의 이름을 " 벤 - 오니 " 라고 지었습니다 .   그 이름의 뜻은 " 슬픔의 아들 " 입니다 .   그러나 그의 아버지 야곱은 그 아들의 이름을 " 베냐민 " 이라고 불렀습니다 .   그 이름의 뜻은 " 오른손의 아들 " 입니다 ( 창세기 35:16-18, 현대인의 성경 ).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이사야 53 장 3 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 "a man of sorrows"( 슬픔의 사람 ).   또한 요한복음 11 장 35 절 말씀도 생각납니다 : "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 ."   예수님 이야말로 진정한 하나님의 " 슬픔의 아들 "(" 벤 - 오니 ") 이셨다고 생각합니다 .     예수님께서 슬픔과 고통을 당하시므로 ( 이사야 53:3, 현대인의 성경 ) 우리가 기쁨 ( 이사야 34:10; 요한복음 17:13) 과 나음을 받았습니다 ( 이사야 5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