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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적 순결을 지키기 위해 마음에 종교적 성벽을 높게 쌓고 "죄인들"을 뒤에서 멈추지 않고 불평의 말을 쏟아내곤 하면서 그들을 멀리하는 거룩해 보이는 바리새인과 같은 교회 직분자들에게도 계속해서 가까기 다가가시고 그들을 항상 영접하시는 사랑의 주님

종교적 순결을 지키기 위해 마음에 종교적 성벽을 높게 쌓고 " 죄인들 "( 동성애자 , 혹은 교회의 고정관념에 맞지 않는 소외된 이들 ) 을 뒤에서 멈추지 않고 불평의 말을 쏟아내곤 하면서 그들을 멀리하는 거룩해 보이는 바리새인과 같은 교회 직분자들에게도 계속해서 가까기 다가가시고 그들을 항상 영접하시는 사랑의 주님         “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가까이 나아오니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이 수군거려 이르되 이 사람이 죄인을 영접하고 음식을 같이 먹는다 하더라 ”( 누가복음 15:1-2).     (1)    오늘 본문 누가복음 15 장 1-2 절 말씀은 예수님께서 3 가지 비유의 말씀 [(1) 잃은 양의 비유 (4-7 절 ), (2) 잃은 드라크마의 비유 (8-10 절 ), (3) 잃은 아들 ( 탕자 ) 의 비유 (11-32 절 )] 을 하시기에 앞서 기록된 말씀입니다 .   (a)    첫째로 , 저는 이 기록된 1-2 절 말씀을 헬라어 ( 그리스어 ) 성경으로 읽었을 때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말씀을 들으러 ‘ 가까이 나아온다 ’ 는 헬라어 “ ἐ γγίζοντες”( 엥기존테스 ) 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   (i)                   이 단어는 “ 가까이 나아오다 ”, “ 접근하다 ” 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 동사 “ ἐ γγίζω”( 엥기조 ) 의 현재 분사 형태입니다 . 이 단어는 개역개정 성경에서 " 모든 세리와 죄인들이 ...

영적으로 아무 쓸모없는 맛을 잃은 영적 바보의 영적 미련함

영적으로 아무 쓸모없는

맛을 잃은 영적 바보의 영적 미련함

 

 

 

 

소금이 좋은 것이나 소금도 만일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땅에도, 거름에도 없어 내버리느니라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하시니라”(누가복음 14:34-35).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4 34-35 말씀을 읽으면서 제가 전에 소금 관하여 썼던 글들을 다시 찾아 읽어보았습니다.  2개의 글들만 나눕니다:

 

(a)   소금 맛을 잃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세상에 아무 쓸모가 없어 버려지는 소금 맛을 잃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참고: 마태복음 5:13, 현대인의 성경).

 

(b)   맛을 나게 하는 세상의 소금: 우리는 맛이 안나는 세상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맛을 나게 하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2)   그리고 나서 저는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소금이란 헬라어 단어 λας”(할라스) 대해서 찾아 보았습니다.

 

(a)   예수님 당시 1세기 유대 사회와 그리스-로마 문화 속에서 헬라어 단어 λας”(할라스)(소금) 가졌던 물리적, 경제적, 문화적 배경을 살펴보면, 예수님이 단어를 선택하셨는지 깊이 이해할 있습니다:

 

1.      경제적 배경: "백색 황금(White Gold)" 생존의 필수품

 

1세기 로마 제국 전역에서 소금(λας) 단순한 양념이 아니라 화폐에 준하는 가치를 지닌 전략 자산이었습니다.

 

로마 군인들의 급료를 소금으로 지불하기도 했으며(여기서 봉급을 뜻하는 영어 단어 'Salary' 유래), 소금 무역로를 통제하는 것은 국가의 권력이었습니다[추가 설명: 영어 단어 “Salary”(급여, 봉급, 월급) 어원은 라틴어 살라리움(Salarium)입니다.  살라리움은 '소금' 뜻하는 라틴어 '(Sal)'에서 파생된 말로, 본래 "소금을 사기 위한 수당(Salt-money)"이라는 뜻이었습니다.  냉장고가 없던 고대 사회에서 소금은 군인들이 전투 식량(고기나 생선) 절여 보관하고, 체내 전해질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하얀 황금'이었습니다.  따라서 로마 정부는 군인들에게 기본 급료 외에 소금을 구매할 있는 별도의 수당을 챙겨주었는데, 단어가 시간이 흐르며 군인과 공무원들이 받는 '정기적인 급여 전체' 뜻하는 말로 확장된 것입니다].

 

냉장 기술이 없던 당시, 갈릴리 호수에서 잡은 물고기를 예루살렘이나 로마 지역으로 수출하기 위해서는 소금에 절이는 과정(염장) 필수적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 당시 대중에게 소금”[“λας”(할라스)] '사회를 돌아가게 만드는 가장 가치 있고 필수적인 에너지'라는 이미지가 강했습니다[추가 설명: 예수님 당시 고대 유대 사회와 지중해 세계에서 소금(λας, 할라스) 단순한 양념을 넘어, '공동체와 세상을 유지하고 굴러가게 만드는 가장 가치 있고 필수적인 에너지이자 원동력'이라는 이미지가 매우 강했습니다.  현대인에게 소금은 마트에서 저렴하게 구하는 흔한 조미료에 불과하지만, 2,000 대중이 받아들인 소금의 사회적·문화적 가치는 오늘날의 '전기, 석유, 배터리, 또는 핵심 화폐' 가까웠습니다].

 

2.      채취적 배경: 사해(Dead Sea) 불순물 소금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사용된 소금”[“λας”(할라스)] 대부분 사해 주변에서 채취한 암염(바위 소금)이나 증발염이었습니다.

 

소금은 현대의 순수한 염화나트륨(NaCl) 달랐습니다.  사해 바닥의 진흙, 석회, 마그네슘, 유황 다양한 미네랄과 불순물이 잔뜩 섞인 거친 상태였습니다.

 

집에서 소금 덩어리를 천에 싸서 물에 우려내어 요리에 사용하곤 했는데, 소금 성분만 물에 녹아 빠져나가면 겉모습만 하얗고 아무 맛도 없는 '석회 가루 껍데기' 남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청중들이 매일 부엌에서 경험하던 소금”[“λας”(할라스)] 물리적 특성을 그대로 영적 비유(겉만 제자이고 속은 알맹이가 없는 상태) 가져오신 것입니다.

 

3.      언어적 배경: '지혜' '재치' 은유

 

당시 헬라어(그리스어) 문화권에서 소금”[“λας”(할라스)] 수사학적으로 '지혜', '통찰력', '말의 재치' 뜻하는 대유법으로 자주 쓰였습니다.

 

그리스-로마 문학에서 "소금기 없는 사람"이란 지루하고, 미련하며, 교양이 없는 사람을 뜻했습니다.  반대로 소금”[“λας”(할라스)] 삶을 매력적이고 가치 있게 만드는 '영리함' 의미했습니다.

 

바울 사도가 골로새서 4 6절에서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λας)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것도 당시 문화적 언어 습관을 반영한 것입니다.

 

4.      종교적 배경: 성전 제단의 제물 보존제

 

유대인들에게 소금”[“λας”(할라스)] 성전 제사와 직결된 '성물(Holy object)'이었습니다.

 

레위기 법에 따라 예루살렘 성전 제단 위에 올라가는 모든 동물 제물과 곡식 제물에는 반드시 소금을 쳐야 했습니다[( 2:13) “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성전 안에는 제물에 뿌릴 소금을 대량으로 보관하는 '소금 (Lishkat HaMelach)' 따로 있을 정도로 중요했습니다.

 

유대인 청중에게 λας”(할라스)(소금) 단어는 '하나님께 온전히 열납되기 위해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거룩한 정결제'라는 종교적 엄숙함을 촉발하는 단어였습니다.

 

요약하자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λας”(할라스)(소금) 단순히 짠맛을 내는 조미료가 아닙니다.  1세기 사람들에게 단어는 "목숨만큼 귀한 , 삶을 보존하는 , 매력적인 지혜, 그리고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헌신" 집약한 강력한 단어였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λας”(할라스)(소금) 가치를 제자들이 세상 속에서 발휘하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인터넷).

 

(3)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소금은 좋은 것이다’(14:34)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가 가지 짚고 넘어가야 점은 한국 성경은 소금이 좋은 것이나 …”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원어인 헬라어 성경 “Καλν ον τ λας”( 칼론 할라스)[단어 하나 하나를 순서로 읽으면 좋다 그러므로 소금은.  , “그러므로 소금은 좋다] 보면 그러므로”[“ον” ()] 있다는 것입니다(한국 성경은 접속사를 생략했음).  저는 그러므로접속사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a)   “ον”()(그러므로)이란 접속사는 예수님의 논리를 완성하는 매우 결정적인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들어갔는지, 앞뒤 문맥과 연결된 진짜 의미를 3가지입니다(인터넷):

 

1.      망대와 전쟁 비유의 최종 결론 [합리적 인과관계(“합리적 인과관계 어떤 원인과 결과가 누구나 상식적으로 고개를 끄덕일 만큼 앞뒤가 맞아떨어지는 논리적 관계를 뜻함)]

 

누가복음 14 34절의 그러므로 바로 앞선 가지 비유, 망대를 세우기 비용을 계산하는 (28-30) 전쟁에 나가기 승산이 있는지 헤아리는 임금(31-32) 비유에 이어지는 최종 결론(Conclusion)입니다.

 

망대를 짓다가 비용이 부족해 기초만 쌓고 비웃음을 당하는 , 이길 없는 전쟁에 무모하게 나갔다가 패배하는 것은 모두 '대가를 제대로 계산하지 않은 미련함'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제자가 되려면 이처럼 철저하게 자기 소유를 버리는 대가 지불의 계산이 끝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맛을 잃고 버려지는 소금처럼 미련하게 되기 때문이다"라는 논리로 '그러므로' 사용하신 것입니다.

 

2.      제자도의 절대적 가치 인정: "좋은 (Καλν)"

 

여기서 '좋다' 번역된 헬라어 '칼론(Καλν)' 단순히 영양가가 높다거나 맛이 좋다는 뜻을 넘어, '도덕적으로 탁월하고, 고상하며, 본질적으로 가치 있는 '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앞서 부모와 처자,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라고 하셨습니다(26-27).  무리에게는 요구가 너무나 가혹하고 무겁게 느껴졌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그러므로' 통해 반전을 주십니다.  " 대가 지불이 너무나 무겁고 힘들게 보이느냐?  '그러므로(그렇기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는 참된 제자의 (소금) 무엇과도 비교할 없이 고상하고 가치 있는(칼론) 것이다!"라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3.      생략된 '그러므로' 넣어서 본문 읽기

 

“ον”()(그러므로) 살려서 33절과 34절을 연결해 보면 예수님의 의도가 원어 그대로 살아납니다:

 

(33)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34) [그러므로] 소금은 ( 자체로 존재 목적과 가치가 뚜렷하기에) 참으로 고상하고 좋은 것이다.  그러나 소금마저도 맛을 잃어버린다면 무엇으로 다시 짜게 하겠느냐?

 

요약하자면,

헬라어 성경의 “ον”(그러므로)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삶만이 인생에서 가장 가치 있는(소금 같은) 결단이다"라는 것을 확증하는 접속사입니다.   단어 하나가 빠짐으로 인해 한국어 성경에서는 문맥과의 강력한 논리적 연결 고리가 다소 약해진 아쉬움이 있습니다(인터넷).

(4)   다음으로 저는 소금도 만일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14:34)라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a)   여기서 맛을 잃는다 헬라어 단어 “μωρανθ”(모란데) 원래 어원상의 본뜻은 "어리석게 되다", "바보(바보가) 되다"라는 의미입니다.  단어는 헬라어 동사 “μωραίνω”(모라이노)(미련하게 만들다) 과거형(aorist) 수동태 가접법 형태이며, 현대 영어 단어 “Moron”(바보, 멍청이) 어원이기도 합니다(인터넷).

 

(i)                  예수님께서 소금이 맛을 잃는 현상을 설명하시면서 '싱거워지다'라는 단어 대신 '바보가 되다'라는 단어를 선택하셨는지, 숨겨진 3가지 영적 의미가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언어유희(Wordplay) 통한 강렬한 풍자

 

1세기 헬라 문화권에서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는 존재였기 때문에, 사람의 생각이나 말에 있어서는 '지혜(Wisdom)' '통찰력' 상징했습니다.

 

따라서 당시 사람들에게 "소금이 바보가 되었다(μωρανθ)" 표현은 "지혜의 상징인 소금이 도리어 가장 미련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매우 역설적이고 유머러스한 풍자였습니다.

 

겉으로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부하면서도, 삶의 알맹이(헌신과 순종) 잃어버린 자의 실상이 얼마나 모순적이고 어리석은지를 시각적으로 극대화하여 보여주신 것입니다.

 

2.      '대가를 계산하지 않은 미련함'과의 논리적 연결

 

예수님은 앞서 망대를 세우기 비용을 계산하지 않은 사람을 향해 사람들이 "비웃었다"(29) 하셨습니다. 

 

, 주님을 끝까지 따를 결단과 자기부정(대가 지불) 없이 그저 군중 심리로 예수님을 따르다가 중도 하차하는 사람은, 세상 사람들에게조차 "비용 계산도 하고 덤벼든 미련한 (μωρανθ)"라고 조롱받게 된다는 경고입니다.

 

3.      존재 목적을 상실한 피조물의 비극

 

성경에서 미련함”(Folly) 단순한 지능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적 본질을 상실한 영적 상태를 뜻합니다.

 

소금의 유일한 존재 이유는 '짠맛' 내는 것입니다.  짠맛을 내지 못하는 소금은 하얀 색깔을 띠고 있어도 이상 소금이 아니라 한낱 길가에 버려질 쓰레기(석회 가루) 불과합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인이 세상과 구별되는 '거룩한 본질' 잃어버리고 세상 사람과 똑같이 살아간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그보다 미련하고 비참한 인생은 없다는 엄중한 메시지입니다.

 

요약하자면,

예수님이 쓰신 “μωρανθ”(맛을 잃다)라는 단어 속에는 "얘들아, 모든 것을 버리고 나를 따르는 제자의 삶을 살지 않는다면, 너희는 겉만 하얗고 속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영적 바보”(Moron) 되는단다"라는 안타까움과 강력한 경고가 동시에 녹아 있습니다.

 

(b)   예수님께서 2 누가복음 14 34절에서 경고하신 '맛을 잃어 바보가 소금(μωρανθ)' 비유는 오늘날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뼈아픈 현실을 그대로 관통합니다.  현대적 맥락에서 겉만 하얗고 속은 비어버린 '영적 바보(Moron)' 그리스도인의 실상은 다음과 같이 정의할 있습니다:

 

1.      '(Fan)' '제자(Disciple)' 착각하는 미련함

 

현대 교회 안에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생각은 없으면서, 종교적 분위기와 문화적 혜택만 누리려는 '(취미 생활자)'들이 가득합니다.

 

겉모습(하얀 소금 덩어리): 주일예배 참석, 세련된 찬양 소통, 직분(목사, 장로, 집사), 기독교 관련 서적 읽기.

 

알맹이(짠맛의 상실): 정작 삶의 손해를 감수하는 '자기부정', 원수를 사랑하는 '용서', 물질의 주권을 주님께 양도하는 '소유의 포기' 없습니다.

 

이처럼 대가 지불 없이 "예배당 의자에 앉아만 있으면 나는 안전한 제자다"라고 믿는 착각이 바로 예수님이 지적하신 번째 영적 미련함입니다.

 

2.      세상과 똑같이 계산하는 '합리적 바보'

 

예수님은 제자가 되기 위해 '영적 비용 계산(십자가)' 하라고 하셨는데,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적 손익 계산' 하느라 바쁩니다.

 

세상에서 성공하고, 부를 쌓고, 자녀를 명문대에 보내는 방식은 세상 사람들과 1% 다르지 않습니다.

 

오히려 신앙을 자신의 탐욕을 채우는 도구나 심리적 위안처로 삼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염려하고, 똑같이 돈을 사랑하며, 똑같이 남을 짓밟고 올라가려 하면서 입으로만 "예수 믿으세요"라고 하니, 세상 사람 눈에는 이들이 겉과 속이 다른 '위선자이자 영적 바보'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3.      '영적 촉매제' 아닌 '세상의 방해물'

 

예수님 당시 잃은 소금(석회 가루) 땅에 들어가면 흙을 산성화시켜 식물이 자라지 못하게 만드는 '공해 유발자'였습니다.

 

오늘날 맛을 잃은 그리스도인들과 교회는 세상의 부패를 막기는커녕, 오히려 세상이 기독교의 타락과 이기주의를 걱정하게 만드는 상태에 이르렀습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보여주어야 교회가 세상의 조롱거리가 되어 길가에 짓밟히는 현상은, 2 예수님이 경고하신 35 말씀("길가에 내버려지느니라") 정확한 성취입니다.

 

결론:

다시 짠맛을 회복하려면현대 교회가 '영적 바보' 상태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다시 '예수님이 요구하신 철저한 대가 지불의 자리' 돌아가는 것입니다.   자존심, 소유, 안락함을 예수님의 말씀 앞에 꺾는 '진짜 십자가' 때만 우리 안에서 다시 세상이 감당하지 못할 거룩한 짠맛(λας) 살아나기 시작합니다(인터넷).

 

(5)   다음에 저는 땅에도, 거름에도 없어 내버리느니라”(14:35)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a)   말씀은 제자의 본질을 잃어버린 자가 마주하게 철저한 영적 쓸모없음(Uselessness) 비참한 파멸 의미합니다(인터넷). 

 

(i)                  당시 1세기 유대인들의 농경 문화와 화덕 문화를 이해하면 말씀이 얼마나 무섭고 엄중한 선언인지 명확히 있습니다.   구체적인 영적 의미 3가지입니다(인터넷):

 

1.      농경 문화적 배경: 토양의 활력소(거름) 기능 상실

 

당시 고대 중동 지역(사해 인근)에서 채취한 소금(암염) 단순히 음식 간을 맞추는 용도 외에 농업용으로 아주 요긴하게 쓰였습니다.

 

거름(지력) 활성화: 적당량의 암염 가루를 ()이나 배설물(거름) 섞으면, 소금의 미네랄 성분이 박테리아의 활동을 조절하여 거름이 썩지 않고 토양에 영양분이 흡수되도록 돕는촉매제역할을 했습니다.

 

맛을 잃은 소금의 비극: 그러나 진짜 소금 성분(NaCl) 빠져나가고 석회 가루만 남은 소금은, 땅이나 거름에 섞으면 오히려 흙을 하얗게 산성화시켜 농작물을 모조리 죽이는 독물이 되었습니다.

 

영적 의미: 그리스도인이 짠맛(제자도) 잃어버리면, 세상() 살리거나 하나님의 교회(거름) 기름지게 하기는커녕, 주변 사람들을 영적으로 메마르고 실족하게 만드는영적 공해 유발자 된다는 뜻입니다.

 

2.      고대 화덕(오븐) 문화적 배경: 연료로서의 가치 상실

 

학자들의 고고학적 연구에 따르면, 당시 팔레스타인 가정의 진흙 화덕 바닥에는 열을 오래 보존하기 위해 소금 블록(암염 덩어리) 깔아두었습니다.  또한 배설물(말라붙은 ) 말려 땔감(거름)으로 , 소금을 함께 넣으면 불이 붙고 오래 타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맛을 잃어 화학적 성질이 변한 소금은 불을 지피는 데도 아무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결국 화덕 주인은 쓸모없는 돌덩어리를 파내어 길가에 내던졌고,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에 밟히게 되었습니다.

 

3.      "내버리느니라(βάλλουσιν ξω)" 영적 엄중함

 

헬라어 원문에서 "내버리느니라" '발루신 엑소(βάλλουσιν ξω)', '밖으로(ξω) 던져버리다(βάλλω)'라는 뜻입니다.  성경에서 표현은 주로 하나님의 최종적인 심판과 단절을 묘사할 사용됩니다.

 

열매 맺지 않아 찍혀 불에 던져지는 나무, 맛을 잃어 길가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는 소금은 모두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의 자격 박탈과 영적 파멸을 상징합니다.

 

겉만 하얀 종교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정작 십자가를 지는 삶의 열매가 없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교회 공동체에서 아무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외인(세상 사람)들에게조차 조롱거리로 짓밟히게 된다는 뼈아픈 경고입니다.

 

요약하자면,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제자의 본질을 상실한 그리스도인은 세상()에도, 하나님 나라(거름)에도 전혀 기여할 없는 가장 비참한 존재가 되어 결국 버림받게 된다" 영적 파산 선언을 하신 것입니다.

 

(b)   겉만 하얀 종교인의 모습을 하고 있으면서 정작 십자가를 지는 삶의 열매가 없는 자는, 하나님의 구원 사역과 교회 공동체에서 아무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결국 외인(세상 사람)들에게조차 조롱거리로 짓밟히게 교인들이 지금 얼마나 많을까요?

 

(i)                  실제로 오늘날 많은 기독교 연구 기관과 사회 조사 결과는 엄중한 성경적 경고가 우리 눈앞에서 그대로 현실이 되고 있음을 수치와 통계로 증명하고 있습니다.  현재 한국 교회와 글로벌 기교계 안에서 이른바 '맛을 잃고 세상에 짓밟히고 있는 교인들' 실상과 규모를 객관적인 지표를 통해 명확히 진단해 있습니다(인터넷):

 

1.      통계로 보는 실상: "개독교"라는 조롱과 신뢰도 추락

 

가장 객관적인 지표는 세상(외인)들이 교회를 바라보는 '사회적 신뢰도'입니다.

 

추락한 신뢰도: 목회데이터연구소와 종교 사회학 기관들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대한민국 성인 교회를 신뢰한다는 비율은 고작 15~20% 안팎에 불과합니다.  이는 불교나 가톨릭 종교에 비해 압도적으로 낮은 수치입니다.

 

조롱거리가 실태: 맛을 잃은 소금이 길가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밟히는 것처럼, 기독교는 인터넷과 미디어상에서 가장 조롱받는 종교(: '개독교'라는 비속어의 고착화) 되었습니다.  교인들이 세상과 똑같이 돈을 사랑하고, 세습하고, 이기적으로 행동하면서 겉으로만 거룩한 척한 결과입니다.

 

2.      교회 내부의 실상: '가나안 성도' '명목상 그리스도인' 급증

 

정작 십자가를 지는 삶의 열매가 없어 교회 내부에서부터 영적 가치를 잃어버린 교인들의 규모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가나안 성도 ( 20~30%): 교회에 출석하지 않으면서 자신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는 '가나안(안나가) 성도' 기성 교인 4~5 1 꼴입니다.  이들 상당수는 교회의 본질(짠맛) 상실과 이기주의에 실망하여 공동체를 이탈한 이들입니다.

 

명목상 그리스도인 (Nominal Christians, 50% 이상): 매주 예배당 의자는 채우지만 삶의 변화나 대가 지불(십자가) 전혀 없는 '무늬만 신자' 비율입니다.  영국의 신학자 스토트나 미국의 목회자들은 현대 교회 성도의 최소 절반 이상이 복음의 능력을 상실한 명목상의 상태라고 진단합니다.

 

3.      이렇게 많아졌는가? (원인 분석)

 

예수님은 분명 '망대 비유' 통해 비용(십자가의 대가) 계산하라고 하셨는데, 현대 교회는 오랫동안 비용 계산법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값구려진 복음: "예수 믿으면 받고, 성공하고, 천국 티켓을 얻는다" 식의 '값싼 은혜' 남발했습니다.

 

석회 가루의 대량 양산: 결과, 예수님을 닮으려는 헌신은 없고 종교적 마일리지만 쌓는 '하얀 석회 가루' 같은 교인들이 대량으로 양산되었습니다.  이들이 사회적으로 높은 직위에 올라가도 짠맛(정의, 희생, 정직) 내지 못하니 세상은 기독교를 향해 침을 뱉는 것입니다.

 

결론: 남의 이야기가 아닌 '' 이야기

 

예수님이 누가복음 14 35 바로 뒤에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라고 외치신 이유는, 말씀이 '지금 옆에 있는 타락한 교인' 향한 비판이 아니라, 바로 ' 자신' 영적 실상을 돌아보라는 절박한 촉구이기 때문입니다.

 

(6)   마지막으로, 저는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14:35)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합니다.

 

(a)   말씀은 예수님이 강한 경고나 감추어진 천국의 비밀을 선포하신 , 청중의 영적 각성과 결단을 촉구할 쓰신 관용구입니다.  말씀은 구약의 선지자적 전통을 이어받은 것이며, 신약성경의 결론인 요한계시록의 일곱 교회에 주시는 말씀과 완벽하게 연결됩니다. 의미와 연결성의 3가지 핵심 포인트입니다(인터넷).

 

1.      누가복음 14 35 말씀: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 의미

 

영적인 청종의 촉구

 

헬라어 원문은 " χων τα κούειν κουέτω( 에콘 오타 아쿠에인 아쿠에토)"입니다.  단순히 귀로 소리를 듣는 (Hearing) 넘어, 말씀의 깊은 속뜻을 깨닫고 삶으로 순종(Obeying)하라는 명령입니다.

 

영적 무감각에 대한 경고

 

예수님 주변에는 수많은 무리가 있었지만, 그들은 '기적과 '에만 관심이 있었을 '십자가와 대가 지불'이라는 본질에는 귀를 닫았습니다.  예수님은 말씀을 통해 "너희가 지금 말을 듣고도 변화되지 않는다면, 너희 역시 잃은 소금처럼 버려질 "이라는 엄중한 선택을 요구하신 것입니다.

 

2.      요한계시록 말씀과의 완벽한 평행 구조 (Connection)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는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를 향한 예수님의 성령의 메시지가 등장합니다.  이때 모든 교회의 결론은 항상 동일한 문장으로 끝납니다: "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 2:7, 11, 17, 29, 3:6, 13, 22).

 

누가복음의 경고와 요한계시록의 선언은 다음과 같은 영적 맥락에서 완전히 하나로 관통합니다:

 

' 잃은 소금' '라오디게아 교회' 일치 ( 3:15-16)

 

누가복음: 소금이 맛을 잃으면 "땅에도 거름에도 없어 내버리느니라" 하셨습니다.

 

요한계시록: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하십니다.

 

연결성: 미지근하여 아무 영적 쓸모가 없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태가 바로 누가복음 14장의 ' 잃은 소금(영적 바보)' 상태입니다.  하나님은 본질을 잃은 종교인을 '버리신다(토해내신다)' 점에서 말씀은 정확히 일치합니다.

 

겉만 하얀 석회' '사데 교회' 일치 ( 3:1)

 

누가복음: 겉은 소금처럼 하얗지만 속은 짠맛이 없는 위선을 경고합니다.

 

요한계시록: 사데 교회를 향해 "네가 살았다 하는 이름은 가졌으나 죽은 자로다"라고 책망하십니다.

 

연결성: 명목상의 그리스도인, 겉모습만 화려한 종교 시스템을 갖추고 있으나 실상은 영적으로 죽어 있는 현대 교회의 모습을 그대로 고발합니다.

 

'제자도' '이기는 ' 보상 ( 2-3 전체)

 

누가복음: 모든 소유를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끝까지 따르는 자가 '참된 제자(좋은 소금)'입니다.

 

요한계시록: 박해와 세속화의 유혹 속에서 끝까지 신앙의 순결을 지키는 자를 '이기는 (To him who overcomes)'라고 부르며, 그들에게만 생명의 면류관과 감추었던 만나를 주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결론: 시대를 향한 마지막 음성

 

누가복음 14장의 "들을 귀가 있는 자는 들으라" 초청은, 요한계시록 3 20절의 말씀으로 최종 요약됩니다: “볼지어다 내가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주님은 맛을 잃고 비참하게 세상에 짓밟히고 있는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문을 지금도 두드리고 계십니다.  겉치레뿐인 종교 생활을 청산하고, 주님의 말씀에 전체를 거는 진짜 제자가 되라는 성령의 음성에 귀를 열어야 때입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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