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의 의문
우리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의문은 한 두개를 아닐 것입니다. 저는 그 많은 의문 중에 대표적인 기독교인의 의문은 바로 의인의 고통이라 생각합니다. 왜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의인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욥이란 인물이 그랬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전하고 정직한 의인이었습니다(욥1:1, 8). 그런데 그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겐 왜 자기가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특히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멀리하여 죄가 없는데 왜 자기가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42:4). 성경 시편 73편에 나오는 아삽이란 인물도 그랬습니다. 그는 왜 의인은 고난을 당하고 악인은 형통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삽은 의문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기까지 하였습니다(3절). 심지어 그는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 “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더 하도다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12-14절). 만일 우리가 아삽처럼 우리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악인은 형통하는 것을 보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과연 우리는 의문만 할 것 같습니까? 아니면 더 나아가서 악인을 질시하면서 아삽처럼 “내가 내 마음을 정히 하며 내 손을 씻어 무죄하다 한 것이 실로 헛되도다”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아삽과 욥처럼 의인의 고통에 대한 의문이 있을 때 우리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면서 거룩하신 하나님께 범죄할 위험이 많습니다. 그 위험 중 하나는 바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마치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므로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께 범죄하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지함 속에서 스스로 깨달을 수 없고 헤아려 알 수 없는 어려운 일을 말하므로 하나님께 우리의 입술로 범죄할 위험이 많습니다(욥42:3). 또한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범죄할 위험이 많습니다. 우리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면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기가 쉽습니다. 그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는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그 말씀을 듣기를 거부할 확률이 많습니다. 과연 우리가 의문 중에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야 합니다(시73:17).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 가운데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을 꺠달아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무소불능하시며 무슨 경영이든지못 이루실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욥42:2). 이 전능하신 하나님은 또한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에게 상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이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의인의 삶 속에 고통을 허락하시사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롬8:28). 그 이유는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악인의 결국과 의인의 결말을 깨달아야 합니다. 악인의 결국은 무엇입니까? 순식간에 멸망입니다(시73:19-20). 의인의 결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후에 우리를 영접하시는 것입니다(24절).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우매 무지한지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22절, 참고: 욥42:3). 악인의 형통함을 질시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주님 앞에서 짐승같았음을 깨달아야 합니다(22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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