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 콘텐츠로 건너뛰기

आइए मौत के नज़रिए को अपनाएँ। (सभोपदेशक 7:2)

  आइए मौत के नज़रिए को अपनाएँ।         “ दावत वाले घर में जाने से शोक वाले घर में जाना बेहतर है , क्योंकि यह सभी इंसानों का अंत है , और जो जीवित हैं , वे इस बात पर गंभीरता से विचार करेंगे ” ( सभोपदेशक 7:2) ।       नए साल की शुरुआत से ही , मैं दो अंतिम संस्कार में शामिल हो चुका हूँ — और ये दोनों ही एक हफ़्ते के अंदर हुए। इन कार्यक्रमों में शामिल होने से मुझे सभोपदेशक 7:2 पर फिर से सोचने का मौका मिला। जब मैंने इस बात पर विचार किया कि मौत ही सभी लोगों का अंतिम अंजाम है , और एक जीवित व्यक्ति के तौर पर इस सच्चाई को गहराई से महसूस किया , तो मैंने खुद से फिर पूछा : " तो फिर , मुझे कैसे जीना चाहिए ?" आज जब मुझे अपने प्यारे तीसरे चाचा , पादरी किम चांग - ह्युक के बारे में खबर मिली , तो यह सोच और भी गहरी हो गई ; डॉक्टरों ने कहा है कि उनके पास जीने के लिए बस दो या तीन हफ़्ते बचे हैं। उस आयत पर फ...

기독교인의 의문

기독교인의 의문


 

 

우리 기독교인들이 갖고 있는 의문은 두개를 아닐 것입니다.  저는 많은 의문 중에 대표적인 기독교인의 의문은 바로 의인의 고통이라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믿어 의롭다 하심을 얻는 의인이 고통을 당해야 하는가라는 의문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욥이란 인물이 그랬습니다.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순전하고 정직한 의인이었습니다(1:1, 8).  그런데 그는 극심한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므로 그에겐 자기가 고난을 당해야 하는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특히 욥은 하나님을 경외하므로 악을 멀리하여 죄가 없는데  자기가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하나님께 기도드렸습니다:  “내가 말하겠사오니 주여 들으시고 내가 주께 묻겠사오니 주여 내게 알게 하옵소서”(42:4).  성경 시편 73편에 나오는 아삽이란 인물도 그랬습니다.  그는 의인은 고난을 당하고 악인은 형통하는지 의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삽은 의문만 가지고 있었던 것이 아니라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시하기까지 하였습니다(3). 심지어 그는 이렇게까지 말했습니다“볼지어다 이들은 악인이라 항상 평안하고 재물은 하도다 내가 마음을 정히 하며 손을 씻어 무죄하다 것이 실로 헛되도다 나는 종일 재앙을 당하며 아침마다 징책을 보았도다”(12-14).  만일 우리가 아삽처럼 우리는 고통을 당하고 있는데 악인은 형통하는 것을 보면 과연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겠습니까? 과연 우리는 의문만 같습니까?  아니면 나아가서 악인을 질시하면서 아삽처럼 “내가 마음을 정히 하며 손을 씻어 무죄하다 것이 실로 헛되도다”라고 생각하겠습니까?  우리 기독교인들은 아삽과 욥처럼 의인의 고통에 대한 의문이 있을 때 우리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면서 거룩하신 하나님께 범죄할 위험이 많습니다.   위험 하나는 바로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입니다.  마치 출애굽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우리는 하나님을 원망하므로 우리의 입술로 하나님께 범죄하기가 쉽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무지함 속에서 스스로 깨달을 없고 헤아려 없는 어려운 일을 말하므로 하나님께 우리의 입술로 범죄할 위험이 많습니다(42:3).  또한 우리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범죄할 위험이 많습니다.  우리는 악인의 형통함을 부러워하면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반하기가 쉽습니다.  그리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우리는 하나님께 등을 돌리고 말씀을 듣기를 거부할 확률이 많습니다.  과연 우리가 의문 중에 하나님께 범죄하지 않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가야 합니다(73:17).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의 계시 가운데 깨달아야 합니다.  무엇을 꺠달아야 합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하나님되심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은 무소불능하시며 무슨 경영이든지못 이루실 것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42:2).   전능하신 하나님은 또한 공의로우신 하나님이십니다.  악인을 심판하시고 의인에게 상을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공의로우신 하나님은 의인의 속에 고통을 허락하시사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8:28).   이유는 하나님은 선하신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악인의 결국과 의인의 결말을 깨달아야 합니다.  악인의 결국은 무엇입니까? 순식간에 멸망입니다(73:19-20).  의인의 결말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후에 우리를 영접하시는 것입니다(24).  그리고 우리는 우리 자신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우매 무지한지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22, 참고: 42:3).  악인의 형통함을 질시한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주님 앞에서 짐승같았음을 깨달아야 합니다(22).  리는 우리의 고통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을 묵상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고통을 통하여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통에 참예하는 축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러한 가운데서 우리는 이렇게 마음으로 고백해야 합니다“하늘에서는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밖에 나의 사모할 없나이다”(25).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