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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Devotional Reflection Based on the Incident of Peter Cutting Off Malchus's Ear: “Then one of those standing near drew his sword and struck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cutting off his ear.” ( Mark 14:47, Today's Korean Version ) 1. Identifying the People Involved: The person who stood beside Jesus and drew the sword was Simon Peter . The servant of the high priest was named Malchus . “Then Simon Peter, who had a sword, drew it and struck the high priest’s servant, cutting off his right ear. The servant’s name was Malchus.” ( John 18:10 ) 2. Jesus' Response to Peter's Action: (a) Jesus said: “Permit even this.” ( Luke 22:51, KJV: “Suffer ye thus far”; RSV: “No more of this” ) The Greek words clarify this: “ἕως τούτου” (“heōs toutou”) = “up to this point” or “even this” “ἐᾶτε” (“eate”) = “allow it,” “let it be,” “leave it alone” Therefore, Jesus is essentially saying: “Let them do what they are doing. Do not resist any further.” “If ...

주님께서 하신 일은 완전합니다

주님께서 하신 일은 완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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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세의 번째 노래( 32:1-43) 보면 [ 번째 노래 ( 15:1-18)] 모세는 “…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 …”라고 하나님을 노래했습니다(32:4).  


저는 말씀을 묵상할 때 하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은 완전할 밖에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생각은 모세가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하고”라고 노래를 했을 때 과연 이스라엘 백성들도 모세처럼 “그가 하신 일은 완전하고”라고 노래를 했을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이유는 출애굽기부터 신명기까지 보면 출애굽 당시의 이스라엘 백성들은 계속해서 불평하고 원망을 했기 때문입니다.  ,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애굽에서 건져내셔서 약속하신 가나안 앞까지 인도하심에 있어서 불만족에서 불평과 원망을 많이 했습니다.   예로, 신명기 1 17절을 보십시오“장막 중에서 원망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를 미워하시므로 아모리 족속의 손에 넘겨 멸하시려고 우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셨도다.”  이렇게 까지 말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입장에서는 과연 하나님께서 자기들에게 행하신 일은 완전하다고 노래할 수가 있었을까요?   생각엔 완전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없이는 “그가 하신 일은 완전”합니다 라고 노래할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또는 저는 말씀을 묵상할  모세가 “그가 하신 일은 완전하고”라고 믿음으로 신앙 고백으로 노래를 했다는 것은 자기가 가데스 므리바 물에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하나님의 거룩함을 나타내지 않으므로 그가 그리도 간절히 들어가고 싶었던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20:12) 또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은 완전합니다’라고 믿음으로 고백적 노래를 불렀다고 생각합니다(32:4).  잠언 19 21절을 보면 “… 오직 여호와의 뜻만이 완전히 서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모세의 뜻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고 싶어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은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진노하사 그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고 그에게 "그만해도 족하니(It's enough) 일로 다시 내게 말하지 말라" 말씀하셨습니다(3:23-26).  모세는 예수님께서 “…그러나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십시오”라고 기도하셨던 것처럼(26:39, 현대인의 성경) 자기의 뜻보다 주님의 완전한 (19:21) 이루어주길 원했습니다.  그는 자기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보다 하나님의 뜻대로 20 이상의 사람들은 여호수아와 갈렙을 제외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하나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후세대들이 땅에 들어가는 것을 원했습니다( 14:29).   이유는 모세는 하나님의 완전한 뜻만이 이루어지길 원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유는 모세는 완전하신 하나님께서 완전하신 뜻을 행하시는 모든 일이 완전하시다는 것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모세는 여호와 하나님 “그가 하신 일이 완전”합니다 라고 신앙 고백적인 노래를 하나님께 불렀다고 생각합니다(32:4).

 

우리 주님은 완전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완전하신 하나님의 뜻도 완전합니다.  우리를 향하신 완전하신 하나님의 완전한 뜻은 구원입니다.   구원의 뜻을 이루심에 있어서 완전하신 하나님이시요 완전하신 사람이신 독생자 예수님을  땅에 보내시고 십자가에 죽게하시므로 우리가 완전하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고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우리의 반석이시요 완전하신 하나님은 우리 안에서 구원의 일을 이미 시작하셨으며(1:6), 지금도 구원의 일을 행하고 계시며 (2:12), 그리스도 예수님의 날까지 구원의 일을 완성하실 것입니다(1:6, 현대인의 성경).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 완전하십니다’라고 신앙 고백적 노래를 하나님께 부르는 것입니다(3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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