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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죽으심 (9) (행1:1-11)

https://youtu.be/UR_0ZxS4t7s?si=J3Xr2FAxhm3LV26k  

예수님의 죽으심 (9) (사도행전 1장 1-11절)

예수님의 죽으심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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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행전 1장 1-11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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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5대 사역 가운데 두 번째인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계속 묵상하고 있습니다.  지난주 수요예배 때는 여덟 번째로 ‘예수님의 죽으심 (8)’이라는 제목 아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고 골고다를 향해 나아가시는 말씀을 묵상했습니다.  그때 우리는 예수님께서 골고다로 가시는 길에서 일어난 세 가지 사건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는 구레네 사람 시몬이 로마 군인들의 강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진 사건이었습니다.  둘째는 많은 백성과 여자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면서 예수님을 따라간 사건이었습니다.  셋째는 예수님께서 다른 두 행악자와 함께 처형 장소인 골고다로 끌려가신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그 가운데 첫 번째 사건인 구레네 사람 시몬의 이야기를 집중적으로 묵상했습니다. 시몬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졌지만,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운반한 것이 인류의 죄를 대속하시는 주님의 구속 사역에 공로를 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대속 사역은 오직 주님 홀로 이루시는 완전한 사역이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사건도 생각해 보겠습니다.  누가복음 23장 27–31절에 따르면, 많은 백성과 여자들이 예수님을 위하여 슬피 울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한 인간적인 동정과 눈물에 머물지 말고, 다가올 심판을 생각하며 자신의 죄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돌이켜야 한다는 사실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여인들의 눈물 자체를 무의미하다고 선언하신 것은 아닙니다.  다만 인간적인 슬픔만으로는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며, 죄인을 구원하는 것은 오직 예수님의 대속 사역이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세 번째 사건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행악자와 함께 골고다로 가신 것입니다.  누가복음 23장 32절은 다른 두 행악자도 예수님과 함께 사형을 받게 되었다고 기록합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범죄자들과 같은 처지에 놓이신 것입니다.  이것은 이사야 53장 12절의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라는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셨지만 죄인들과 같은 자리에 서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의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니라,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죄인들의 자리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이제 우리는 골고다를 향해 나아가신 예수님께서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두 가지 중요한 진리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 가운데 예언되고 성취된 확실한 역사적 사건이라는 사실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는 다른 모든 십자가와 구별되는 유일하고 독특한 대속의 십자가라는 사실입니다.  이 두 가지 진리를 통해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닫는 시간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 가운데 예언되고 성취된 확실한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은 갑작스럽게 일어난 우연한 비극이 아니었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자신의 사명을 이루지 못하고 실패하신 사건도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께서 오래전부터 말씀으로 계시하셨고, 마침내 역사 속에서 성취하신 구속 사건이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구약의 예언, 예수님 자신의 예고, 사복음서의 증언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구약성경은 여자의 후손이 뱀의 권세를 이길 것을 예고했습니다

 

먼저 창세기 3장 15절을 보겠습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이 말씀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직후 하나님께서 뱀에게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기독교 전통에서는 이 말씀을 ‘원시 복음’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인간이 죄에 빠진 직후부터 하나님께서 구원의 소망을 계시하셨다는 의미입니다.  이 말씀에는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는 뱀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적대 관계가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여자의 후손이 궁극적으로 뱀의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이 말씀을 기독교의 구속사적 관점에서 읽을 때, 여자의 후손을 통해 이루어질 궁극적인 승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통과하시고 부활하심으로 죄와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라는 표현을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 방식에 대한 직접적인 예언이라고 단정하기보다는, 메시아께서 고난을 당하시지만 궁극적으로 원수의 권세를 이기실 것이라는 약속으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십자가에서 고통을 당하시고 죽으셨습니다.  그러나 그 죽음이 마지막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16장 20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평강의 하나님께서 속히 사탄을 너희 발 아래에서 상하게 하시리라.”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사탄의 권세를 최종적으로 꺾으실 것을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사탄의 승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구속 계획이 이루어지는 자리였습니다.  사탄과 악한 세력은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승리했다고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통해 죄인을 구원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십자가의 죽음이 패배가 아니었음을 선포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복음의 놀라운 역설입니다.   인간의 눈에는 십자가가 실패처럼 보였지만, 하나님의 구속 계획 안에서는 죄와 사망을 이기는 승리의 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고난을 당하고 죽으실 것을 세 차례에 걸쳐 구체적으로 예고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이 하나님의 계획 가운데 이루어졌다는 사실은 예수님 자신의 말씀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세 차례에 걸쳐 제자들에게 예고하신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1)   첫 번째 예고는 마태복음 16장 21절입니다: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이 말씀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한 직후에 나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을 때,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어떤 방식으로 구원의 사역을 이루실 것인지를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종교 지도자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실 것이며, 제삼일에 살아나셔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하여야 할 것’이라는 표현은 헬라어로 ‘데이(δεῖ)’입니다.  이 표현은 문맥에 따라 반드시 이루어져야 할 일을 나타냅니다.  예수님의 고난과 죽음, 부활이 하나님의 구속 계획 안에서 반드시 이루어질 사건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앞으로 일어날 일을 예측하신 것이 아닙니다. 자신이 왜 이 땅에 오셨으며, 어떤 방식으로 죄인을 구원하실 것인지를 계시하신 것입니다.

 

(2)   두 번째 예고는 마태복음 17장 22–23절입니다: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이번에는 예수님께서 자신이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제삼일에 살아나실 것을 분명하게 밝히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매우 근심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고난과 죽음의 의미를 온전히 깨닫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을 사랑했지만, 그분의 사역이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그들에게는 메시아의 승리와 영광은 기대할 만한 일이었지만, 메시아의 죽음은 이해하기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기대와 다른 길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을 피함으로써가 아니라 고난을 통과하심으로써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3)   세 번째 예고는 마태복음 20장 18–19절입니다: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사형하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이 예고는 앞선 두 예고보다 훨씬 구체적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 지도자들이 자신을 사형에 넘길 것이며, 이방인들에게 넘겨져 조롱과 채찍질을 당하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히실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는 십자가 처형의 과정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닥칠 모욕과 고통을 알고 계셨습니다.  십자가형이 얼마나 잔혹하고 수치스러운 형벌인지도 알고 계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향해 나아가셨습니다.  왜 그러셨습니까?  요한복음 10장 1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예수님께서는 단지 다른 사람들의 음모에 휘말려 어쩔 수 없이 죽으신 분이 아닙니다.  물론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 권력자들은 실제로 예수님을 정죄하고 처형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행동이 하나님의 주권을 무너뜨리지는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시며 자원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세 차례 예고는 모두 죽음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매번 부활에 대한 약속이 함께 주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으실 것이지만, 제삼일에 살아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는 절망의 마지막 장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는 부활의 영광으로 나아가는 구원의 길이었습니다.

 

사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음을 증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마태복음과 마가복음과 누가복음과 요한복음 모두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 복음서는 각각 독특한 관점과 강조점을 가지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다는 핵심 사실을 함께 증언합니다.  먼저 마태복음 27장 3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마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후 군인들이 그분의 옷을 나누었다고 기록합니다.  이 장면은 시편 22편 18절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시편의 이 표현은 예수님의 수난을 묘사하는 복음서의 기록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구약성경의 고난받는 의인에 관한 말씀과 연결되어 있으며,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속의 역사 안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다음으로 마가복음 15장 25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마가는 십자가 처형의 시간을 제삼시라고 기록합니다.  유대인의 시간 계산법에 따르면 제삼시는 대략 오전 9시 무렵입니다.  이러한 시간 기록은 십자가 사건이 막연한 신화나 추상적인 상징이 아니라 실제 역사 속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전해지고 있음을 보여 줍니다.  누가복음 23장 33절은 처형 장소와 함께 십자가에 달린 사람들의 위치를 기록합니다: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누가는 예수님께서 두 행악자 사이에서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고 기록합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죄인들과 같은 형벌을 받으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19장 18절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요한복음은 예수님께서 가운데 계셨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기록합니다.  물리적으로 예수님께서는 두 사람 사이에 못 박히셨습니다.  구속사적으로 볼 때, 이 장면은 예수님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자신을 내어 주신 구속 사역의 중심에 계신다는 사실을 묵상하게 합니다.  물론 이러한 묵상적 의미가 본문에 기록된 물리적 사실을 대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예수님의 구속 사역이 지닌 의미를 더욱 깊이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중요한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사 복음서가 공통으로 증언하는 역사적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기독교 신앙의 주변적인 이야기가 아니라 복음의 중심에 놓여 있는 사건입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15장 3절에서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선포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연한 사고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 가운데 이루어진 사건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목격자들의 증언과 부활의 증거를 통해 더욱 분명하게 드러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공개적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복음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로마 군인들, 예수님을 조롱하던 사람들, 멀리서 바라보던 여자들, 그리고 그 사건을 지켜본 여러 사람에 대해 기록합니다.  누가복음 23장 48–49절을 보면, 예수님의 처형을 보러 모였던 무리들이 그 일어난 일을 보고 가슴을 치며 돌아갔고, 예수님을 아는 자들과 갈릴리에서부터 따라온 여자들도 멀리 서서 그 일을 바라보았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5절은 그 사건을 목격한 이의 증언이 참되다는 사실을 강조합니다.  또한 요한복음 19장 33–34절은 군인들이 예수님께서 이미 죽으신 것을 확인하고 다리를 꺾지 않았으며, 한 군인이 창으로 옆구리를 찔렀다고 기록합니다.  이러한 기록은 예수님의 죽음이 단순히 기절이나 일시적인 의식 상실이 아니었음을 보여 줍니다.  또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바로 그분임을 나타내셨습니다.  요한복음 20장 27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의심하던 도마에게 손과 옆구리를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요 20:28).  이 장면은 예수님의 부활이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님과 동일하신 분의 부활이라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요한계시록 5장 6절은 하늘 보좌 가운데 서 계신 어린 양을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더라”고 묘사합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하늘의 예배 가운데서도 구속의 중심으로 드러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다만 성경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도 육체에 남아 있는 모든 상처가 어떤 형태로 보존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상처를 보여 주셨다는 기록과, 하늘 보좌의 어린 양에 대한 요한계시록의 상징적 묘사를 구별하여 이해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분명한 사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이 실제 역사 속에서 일어났으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바로 그 죽음을 이기신 주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분은 실제로 고난을 당하셨고, 실제로 죽으셨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믿는 복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다른 모든 십자가와 구별되는 독특한 십자가입니다.

 

이제 두 번째로, 예수님의 십자가가 왜 독특한 십자가인지 묵상해 보겠습니다.  골고다에는 세 개의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가운데에는 예수님께서 달리셨고, 양옆에는 두 행악자가 달렸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세 사람 모두 같은 형벌을 받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 세 십자가는 그 의미와 목적에 있어서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순히 세 개의 십자가 가운데 하나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죄가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유일한 대속의 십자가였습니다.

 

강도들의 십자가는 자신들의 죄에 대한 형벌이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인을 위한 대속의 십자가였습니다

 

누가복음 23장 41절을 보면,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달린 한 행악자가 자신의 죄를 인정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행한 일에 상당한 보응을 받는 것이니 이에 당연하거니와 이 사람의 행한 것은 옳지 않은 것이 없느니라.”  이 사람은 자신이 형벌을 받는 것이 자신의 행위에 대한 결과임을 인정했습니다.  반면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한 후 여러 차례 그분에게서 죄를 찾지 못했다고 밝혔습니다(눅 23:4, 14–15, 22).  물론 빌라도의 선언 자체가 예수님의 무죄를 최종적으로 결정하는 근거는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실제로 죄가 없으신 분이셨으며, 신약성경은 그분의 무죄성과 거룩함을 분명히 증언합니다.  히브리서 4장 15절은 예수님께서 우리와 똑같이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셨다고 말씀합니다.  베드로전서 2장 22절도 이렇게 말씀합니다: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 달리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셨지만 우리 죄를 대신 담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베드로전서 2장 24절은 예수님께서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지닌 첫 번째 독특성입니다.  강도들의 십자가는 그들의 죄와 관련된 형벌이었지만,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 없으신 분께서 죄인들을 위해 죽으신 대속의 십자가였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의 사랑이 확증되었다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우리는 복음의 핵심을 발견합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심판을 예수님께서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죄의 문제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해결하셨습니다.  이것은 인간의 선행이나 공로로 이루어진 일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21절은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이를 우리를 대신하여 죄로 삼으신 것은 우리가 그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도덕적으로 죄인이 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담당하시고, 그분 안에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도록 하셨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마다 자신이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는지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의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의와 대속의 공로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육체적 고통을 넘어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담당하신 십자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만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십자가형은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수치를 동반하는 형벌이었습니다.  손과 발이 못에 박히고, 온몸이 처형 도구에 매달리며, 숨을 쉬는 것조차 극심한 고통을 수반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육체적 고통을 실제로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가 독특한 이유는 단순히 육체적 고통의 정도가 다른 사람들보다 컸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분께서는 죄 없으신 중보자로서 자기 백성의 죄를 담당하시고,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지닌 구속론적 독특성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이렇게 부르짖으셨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마태복음 27장 46절에 기록된 이 말씀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입니다.  이 부르짖음은 시편 22편 1절의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담당하시는 가운데 깊은 고통을 표현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이해할 때 우리는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께서 본질적으로 분리되셨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십자가 사건에서도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성자께서는 참된 인간의 본성으로 고난과 죽음을 겪으셨으며, 우리의 죄를 담당하시는 중보자로서 하나님의 심판을 감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단순한 순교자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여 죄인을 대신하는 구속의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강도들도 극심한 육체적 고통과 수치를 경험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죽음은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만 죄가 없으신 중보자로서 우리 죄를 담당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다른 모든 십자가와 구별됩니다.

 

욥의 고난과 비교할 때도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속의 목적과 능력에 있어서 독특합니다

 

우리는 인간이 겪는 극심한 고난을 생각할 때 욥의 고난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욥기 2장 7–8절을 보면, 사탄의 시험으로 욥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이 나서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는 재 가운데 앉아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었습니다.  욥의 고통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육체적·정신적 고난이 얼마나 심각할 수 있는지를 보여 줍니다.  욥은 재산을 잃었고, 자녀들을 잃었으며, 자신의 건강까지 잃었습니다.  그에게 닥친 고난은 한 인간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욥의 고난과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그 목적과 의미에 있어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욥의 고난은 그의 믿음과 인내를 드러내는 과정이 되었으며, 하나님을 더욱 깊이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욥의 고난이 다른 사람의 죄를 대속하거나 인류를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것은 아니었습니다.  반면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은 죄인을 구원하기 위한 대속의 고난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기 백성의 죄를 담당하시고, 자신의 죽음으로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이 차이를 분명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욥의 고난은 고난받는 신자의 믿음을 보여 주지만, 예수님의 고난은 죄인을 구원하는 대속의 사역입니다.  또한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당하신 고통을 설명할 때 성경이 직접 말씀하는 내용과 우리가 추론하는 내용을 구별해야 합니다.  마태복음 27장 34절은 예수님께 쓸개 탄 포도주를 주었지만 맛보신 후 마시려 하지 않으셨다고 기록합니다.  마가복음 15장 23절은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지만 예수님께서 받지 않으셨다고 기록합니다.  이 음료가 고통을 덜어 주는 효과가 있었을 가능성은 있지만,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왜 그것을 거절하셨는지 그 이유를 직접 설명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예수님께서 모든 고통을 조금도 줄이지 않고 의도적으로 감당하시려 했다고 단정하기보다는, 예수님께서 고난의 길을 끝까지 감당하셨다는 사실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좋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고난의 길에서 물러서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으며, 십자가에서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의 옛 사람이 죽고 새 생명으로 살아나는 구원의 근거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독특한 또 하나의 이유는 그분의 죽음이 단지 과거의 한 사건으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그리스도와 연합한 성도들의 새로운 삶의 근거가 됩니다.  로마서 6장 6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 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여기서 바울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신자의 옛 사람의 죽음을 연결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셨을 때,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은 믿음으로 그분과 연합하여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것은 우리가 육체적으로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우리가 죄를 전혀 짓지 않는 완전한 사람이 되었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 의미는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신분과 삶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이상 죄의 지배 아래 머물러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죄가 우리를 지배할 권리를 가진 주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하나님께 순종하는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6장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살아 있는 자로 여길지어다.”  이것이 십자가 복음의 실제적인 능력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죄의 형벌에서 구원받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새 생명 가운데 살아갈 소망을 얻습니다.  십자가는 죄의 용서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십자가는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향해 살아가는 새 삶의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를 바라보며 단지 과거의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만 기억해서는 안 됩니다.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사람으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합니다.  죄를 미워하고 의를 사랑해야 합니다.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벗어나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신의 욕심과 자랑을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닮아 가야 합니다.  물론 이러한 변화는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며, 우리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우리에게 죄 사함의 은혜를 주셨고, 부활의 생명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의 소망을 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십자가가 지닌 놀라운 구속의 능력입니다.

 

죄 없으신 의인이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자원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사건을 묵상하면서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살펴보았습니다.  첫째,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구약의 약속과 예수님 자신의 예고, 그리고 사복음서의 증언을 통해 분명하게 드러나는 역사적 구속 사건입니다.  둘째,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죄인들을 대신하여 죽으신 유일하고 독특한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이 두 가지 사실을 마음에 새기면서, 이제 예수님의 십자가가 우리에게 어떤 은혜를 주는지 세 가지로 정리해 보겠습니다.

 

1.      예수님께서는 죄 없으신 의인으로서 우리의 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죄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죄가 없으신 분이셨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죄인들과 같은 자리에 서셨고, 그들이 받아야 할 형벌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우리는 자신의 죄를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선행이나 종교적인 열심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담당하셨고, 그분의 죽음으로 구속을 이루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공로를 자랑할 수 없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그분을 찬양해야 합니다.

 

2.      예수님께서는 억지로가 아니라 자원하여 자신의 생명을 내어 주셨습니다

 

지난주 우리는 구레네 사람 시몬이 로마 군인들의 강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짊어진 사건을 묵상했습니다.  시몬은 억지로 십자가를 짊어졌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감당하셔야 할 구속의 십자가를 자원하여 지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생명을 아무도 빼앗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스스로 버리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신을 구원할 능력이 없어서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마태복음 26장 53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원하시면 아버지께 구하여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들을 보내시게 할 수도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자신을 구원하는 대신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머무르셨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향한 주님의 사랑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 우리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기 전에 주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를 묵상할 때마다 우리는 주님의 사랑 앞에 겸손해져야 합니다.  우리의 자랑을 내려놓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3.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생을 주시며 죄 사함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신 목적은 분명합니다.  첫째, 우리를 죄의 형벌과 하나님의 심판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둘째,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셋째,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이 모든 은혜는 우리의 공로나 수고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 앞에서 두 가지 사실을 함께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는 우리가 얼마나 심각한 죄인이었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의 아들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했습니다.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가 하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 가운데 있는 우리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이 사랑을 깨달을수록 우리는 죄를 가볍게 여길 수 없습니다. 동시에 자신의 죄 때문에 절망에 빠져서도 안 됩니다.  회개하며 주님께 나아갈 수 있고,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여 다시 일어설 수 있습니다.

 

4.      이미 이루어진 십자가의 승리를 믿음으로 누리며 살아갑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예수님의 십자가는 실패가 아닙니다. 죄와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는 하나님의 구속 사역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지만 사망에 머물러 계시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지금도 만물을 다스리시며 자기 백성을 위해 중보하고 계십니다. 장차 다시 오셔서 구원을 완성하실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강생과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과 재림은 하나님의 구속 계획 안에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이미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아들입니다.  동시에 그 구원의 은혜가 우리의 삶 가운데 열매 맺도록 성령을 의지하며 살아갑니다.   로마서 6장 6절의 말씀처럼, 우리의 옛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더 이상 죄에게 종노릇 하는 삶에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여겨야 합니다.  죄를 지을 기회가 있을 때 십자가를 기억합시다.  내 자랑과 교만이 올라올 때 십자가를 바라봅시다.  다른 사람을 정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 나 같은 죄인을 위해 죽으신 예수님을 기억합시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감당할 때에도 십자가의 사랑을 본받읍시다.  우리는 십자가를 통해 구원을 얻기 위해 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십자가로 구원받았기 때문에 감사함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분의 죽으심으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았고, 그분의 부활로 새 생명의 소망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우리 자신을 위해서만 살지 말고,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위해 살아갑시다.  십자가의 은혜를 잊지 맙시다. 죄의 지배에 굴복하지 맙시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주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살아갑시다.  그리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은혜 안에서 날마다 새로워지며, 주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까지 충성스럽게 살아가는 모든 성도님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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