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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죽으심 (9) (행1:1-11)

https://youtu.be/UR_0ZxS4t7s?si=J3Xr2FAxhm3LV26k  

예수님의 죽으심 (9) (행 1:1-11)

예수님의 죽으심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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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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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가 예수님의 5대 사역중 두 번째인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묵상해오고 있음.

1.      우리는 지난 주 수요 예배 때 여덟 번째로 “예수님의 죽으심 (8)”이란 제목아래 예수님께서 골고다를 향해서 나아가시는 것에 대해서 묵상했음.

a.      그 골고다 도상에서 3가지 사건이란 (1)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감(예수님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음), (2) 백성들과 많은 여자들이 슬피 울면서 예수님을 따라갔음, (3) 다른 두 행악자와 함께 골고다로 가심임.

(1)   그 중에 우리는 첫 번째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고 간 것에 대해서 이미 묵상했음.

(2)   두 번째인 백성들과 많은 여자들이 슬피 울면서 예수님을 따라간 것(눅23:27-31)도 예수님에게 도움이 되지 못했음.

(a)   내용: 많은 백성과 여인들이 가슴을 치며 슬피 울며 예수님을 따라왔으나, 예수님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해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해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b)   영적 의미: 여인들의 눈물은 인간적인 동정과 연민에 불과했으며, 예수님의 고난을 막거나 덜어드리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다가올 예루살렘의 심판을 경고하시며, 죄에 대한 본질적인 회개와 영적 각성이 없는 눈물은 무의미함을 짚어내셨습니다.

(3)   세 번째인 다른 두 행악자와 함께 골고다로 가신 것(눅23:32)도 도움이 되지 않았음.

(a)   내용: 예수님은 다른 두 행악자(강도)와 함께 사형장인 골고다로 끌려가셨습니다.

(b)   영적 의미: 주님은 가장 흉악한 범죄자들과 동일 취급을 당하시며 이사야 53장 12절("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받았음이니라")의 예언을 성취하셨습니다.  함께 걷는 행악자들은 예수님께 위로나 도움이 되기는커녕, 주님이 받으시는 수치와 모욕의 깊이를 더할 뿐이었습니다.

 

B.    오늘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에 대해 2가지로 묵상하면서 주시는 은혜를 받고자 함.

1.      첫째로,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심은 분명한 것이다라는 것임.  그 이유는 그 일이 이미 예언된 것이기 때문임.

a.      구약의 예언:

(1)   (창3:15)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a)   이 인류 최초의 복음(원시 복음) 말씀에서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는 말씀은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에 대한 최초의 예언임.

(i)                  역사적 성취: 사탄은 가룟 유다를 충동질하고 로마 권력을 이용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발이 나무에 고정되어 찔리고 피 흘리는 십자가의 처형 방식은, 영적으로 예수님의 발꿈치가 상하는 고통과 죽음을 시각적으로 정확하게 성취한 사건입니다.

·         치명상의 차이: 뱀이 사람의 발꿈치를 물면 큰 고통과 일시적인 해를 입히지만(예수님의 영육간의 고난과 잠시 동안의 죽음), 여자의 후손은 뱀의 '머리'를 밟아 부숩니다.  즉, 사탄은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승리했다고 믿었으나, 예수님은 그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사탄의 머리(권세)를 영원히 박살 내셨습니다.

b.     신약의 예언:

(1)   예수님의 직접적인 순난 예고

(a)   점진적으로 구체화되는 십자가 예언: 예수님은 제자들의 신앙 고백과 영적 성장에 맞추어 십자가의 고난과 죽음을 더욱 명확하고 구체적으로 계시하셨습니다.

(i)                  1차 예고: (마16:21) “이 때로부터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시니”

·         고난의 필연성과 부활 계시: 베드로의 위대한 신앙 고백 직후, 주님은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에게 고난을 받고 죽어야 하며 '제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처음으로) 나타내셨습니다.  여기서 "해야 한다"는 헬라어 '데이(dei)'는 하나님의 신적 필연성을 의미합니다.

(ii)                2차 예고: (마17:22-23) “갈릴리에 모일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인자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매우 근심하더라”

·         배반과 넘겨짐: 변화산 사건 이후, 주님은 '장차 사람들의 손에 넘겨져' 죽임을 당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본질을 깨닫지 못한 채 그저 인간적인 '근심'에 빠졌습니다.

(iii)              3차 예고: (마20:18-19) “보라 우리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노니 인자가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넘겨지매 그들이 사형하기로 결의하고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어 그를 조롱하며 채찍질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나 제삼일에 살아나리라”

·         처형 방식(십자가)의 구체적 명시: 예루살렘 입성을 직전에 두고 하신 이 예고는 가장 구체적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사형 결의, '이방인(로마인)'에게로의 넘겨짐, 조롱과 채찍질, 그리고 마침내 '십자가에 못 박힐 것'이라는 처형의 방법까지 정확하게 예언하셨습니다.

(b)   신약 예언이 주는 영적 은혜와 확신

(i)                  주도적인 대속의 사랑: 예수님은 자신에게 닥칠 모든 모욕과 고통, 채찍질과 십자가의 참혹함을 다 알고 계시면서도 예루살렘을 향한 걸음을 멈추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붙잡혀 어쩔 수 없이 죽으신 것이 아니라, 우리를 위해 스스로 목숨을 버리신 주도적인 사랑(요 10:18)입니다.

(ii)                부활로 완성되는 소망: 세 번의 예고 모두 "죽임 당함"으로 끝나지 않고 반드시 "제삼일에 살아나리라"는 부활의 약속으로 마칩니다.  십자가는 절망의 끝이 아니라 부활의 영광으로 가는 문이었습니다.

(2)   사복음서도 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히신 것을 기록하였음.  사복음서 기자 전원이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을 일제히 그리고 생생하게 증언하고 있다는 사실은 십자가 사건이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실재임을 확증합니다.  사 복음서는 각기 다른 영적 관점(왕, 종, 인자, 하나님의 아들)으로 예수님을 조명하지만,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는 핵심 사실만큼은 단 한 줄의 오차도 없이 일치하여 기록하고 있습니다.

(a)   (마27:35) “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은 후에 그 옷을 제비 뽑아 나누고”

(i)                  성경 예언의 성취: 예수님을 못 박은 후 '옷을 제비 뽑아 나눈' 행동을 기록합니다.  이는 시편 22편 18절("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의 메시아 예언이 처형 현장에서 그대로 이루어졌음을 고발하며, 십자가가 하나님의 각본대로 진행되었음을 증명합니다.

(b)   (막15: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i)                  역사적 시간의 구체성: "때가 제삼시(유대 시간 기준, 현재 시간으로 오전 9시)"라고 정확한 처형 시간을 명시합니다.  구체적인 시간의 기록은 이 사건이 역사 속에서 실제 일어난 일임을 강력하게 지지합니다.

(c)   (눅23:33) “해골이라 하는 곳에 이르러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두 행악자도 그렇게 하니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i)                  장소와 동행자: '해골(골고다)'이라는 처형 장소와 함께 두 행악자가 좌우편에 못 박힌 상황을 기록합니다. 세상 죄를 지고 가시는 예수님이 가장 낮은 자, 죄인들의 괴수와 같은 자리까지 낮아지셨음을 시각적으로 보여줍니다.

(d)   (요 19:18) “그들이 거기서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을새 다른 두 사람도 그와 함께 좌우편에 못 박으니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

(i)                  중심에 계신 예수님: 두 사람 사이에 "예수는 가운데 있더라"고 기록합니다.  이는 물리적 위치일 뿐만 아니라 영적인 선포입니다.  예수님은 인류 죄인들의 한복판에 서셔서, 모든 죄를 짊어지시는 구속사의 중심이자 유일한 중보자가 되셨음을 드러냅니다.

(e)   사복음서 공동 증언이 주는 확신: 당시 로마의 십자가형은 사형수의 존재와 명예를 완전히 말살하는 가장 수치스러운 형벌이었습니다.  만약 제자들이 예수를 미화하려 했다면 이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죽음을 감추거나 축소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복음서가 이를 가감 없이 일치되게 기록한 것은, 십자가가 인류 구원을 위해 반드시 일어나야만 했던 가공되지 않은 진실이기 때문입니다.

(3)   또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많은 사람들이 목격했음.  수많은 눈들의 목격과 부활하신 주님의 몸에 새겨진 흔적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이 결코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대사건임을 최종적으로 확증합니다.

(a)   공개적인 장소에서의 수많은 목격자들 (부인할 수 없는 역사): 예수님의 십자가 처형은 예루살렘 성문 밖, 수많은 유월절 인파가 오고 가는 길목(골고다)에서 일어났습니다.

(i)                  적대자들: 예수님을 정죄한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장로들, 그리고 로마 군인들이 현장에서 죽음을 끝까지 확인하고 조롱했습니다.

(ii)                군중들과 여인들: 멀찍이 서서 바라보던 갈릴리에서 온 여인들과 수많은 백성이 그 처형의 전 과정을 똑똑히 목격했습니다.

(iii)              결론: 만약 십자가 죽음이 가짜였다면, 기독교를 말살하려 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로마 정부가 가장 먼저 반박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누구도 십자가 죽음 자체를 부인하지 못했습니다.

(b)   승천하신 예수님의 몸에 있는 못자국과 창자국 (영원한 사랑의 흔적):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도, 그리고 하나님 보좌 우편으로 승천하실 때도 신비롭게 십자가의 흔적을 그대로 지니고 계셨습니다.

(i)                  도마에게 보이신 흔적: 의심하던 도마에게 주님은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요 20:27)고 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의 몸에 남은 못자국과 창자국은 그분이 환상이 아니라, '십자가에서 실제로 피 흘려 죽으셨던 바로 그 예수'임을 증명하는 가장 확실한 물리적 증거였습니다.

(ii)                하늘 보좌에 계신 어린 양: 요한계시록 5장 6절은 하늘 보좌에 계신 예수님을 "일찍이 죽임을 당한 것 같은 어린 양"으로 묘사합니다.  주님은 하늘의 영광 중에서도 십자가의 고난 흔적을 그대로 가지고 계십니다.

(iii)              구속의 영원한 영수증: 주님의 몸에 새겨진 못자국과 창자국은 우리의 죄 값을 완전히 치르셨다는 '영원한 구속의 영수증'이자,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를 영원토록 보여주는 '사랑의 훈장'입니다.

 

2.      둘째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독특한 십자가이다 라는 것임.

a.      골고다 언덕에는 세 개의 십자가가 나란히 서 있었고, 겉보기에는 모두 같은 처형을 당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십자가는 좌우의 강도들과는 완전히 구별되는 '독특함(Uniqueness)'이 있었습니다.

(1)   죄인의 십자가 vs 의인의 십자가 (죄의 유무의 독특성):

(a)   강도들의 십자가 (죄값의 십자가): 좌우편의 강도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흉악한 범죄에 대한 대가로 마땅한 형벌을 받은 것입니다.  그들의 십자가는 자신의 죄값을 치르는 십자가였습니다.

(b)   예수님의 십자가 (대속의 십자가): 반면 예수님은 빌라도조차 "아무 죄도 찾지 못했다"고 선언했을 만큼 흠이 없으신 분이었습니다.  죄가 전혀 없으신 거룩한 의인이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 자체가 역사상 유일무이한 독특함입니다.

(c)   영적 의미: 주님은 자신의 죄가 아니라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기 위해 그 자리에 서셨습니다.  의인이 죄인을 대신하여 죽으신 이 독특한 사랑(롬 5:8) 덕분에, 죄인인 우리가 의롭다 함을 얻는 위대한 '영적 교환'이 일어났습니다.

(2)   육체적 고통 vs 진노의 잔 (고통의 질적인 독특성):

(a)   강도들이 겪은 고통: 좌우의 강도들이 겪은 고통은 인간이 느낄 수 있는 극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이었습니다.  못에 찔리는 아픔, 질식의 고통, 그리고 사람들의 조롱에서 오는 수치심이 전부였습니다.

(b)   예수님이 겪으신 고통: 예수님의 고통은 차원이 달랐습니다.  육체적 고통을 넘어, 온 인류의 죄에 대해 하나님 아버지가 쏟으시는 철저한 저주와 진노를 온몸으로 받아내시는 영적 고통이었습니다.

(c)   영적 의미: 주님은 십자가 위에서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부르짖으셨습니다.  가장 사랑하는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철저하게 '버림받는 지옥의 고통'을 겪으신 것입니다.  강도들은 결코 알 수도, 경험할 수도 없었던 이 '하나님과의 단절'이라는 영적 고통이야말로 주님 십자가만의 가장 아프고도 독특한 고통이었습니다.

b.     우리고 고통을 생각할 때 욥의 고통을 생각하게 됨.  욥이 겪은 고통도 인간으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극한의 처절함이었지만, 예수님의 고통은 그 고통을 대하시는 태도와 영적인 결과에서 완전히 구별되는 독특함이 있습니다

(1)   욥의 고통과 대조되는 예수님 고통의 독특성:

(a)   마취제를 거부하고 온 정신으로 감내하신 고통 (욥과의 대조)

(i)                  욥의 고통과 반응 (욥 2:7-8): 욥은 사탄의 시험으로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악창(종기)이 나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어야 했습니다.  욥은 밀려오는 고통을 이기지 못해 온몸을 긁으며 비명을 질렀고, 이는 인간이 겪는 육체적 질고의 극치를 보여줍니다.

(ii)                예수님의 고통과 반응 (마 27:34, 막 15:23): 로마 군인들은 십자가 처형의 극심한 통증을 덜어주기 위해 일종의 마취제이자 진통제인 '쓸개 탄 포도주(몰약을 탄 포도주)'를 권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맛만 보시고 마시기를 거부하셨습니다.

(iii)               독특한 영적 의미: 욥은 고통을 피할 길이 없어 온몸을 긁으며 앓았지만, 예수님은 고통을 경감시킬 방법이 있었음에도 그 마취제를 스스로 거부하셨습니다.  주님은 흐려진 정신이 아니라, 가장 맑고 온전한 정신(의식)으로 십자가의 끔찍한 저주와 형벌, 아픔을 단 일 퍼센트의 감면도 없이 온몸으로 다 받아내셨습니다.  우리가 받아야 할 죄의 형벌을 100% 온전히 대속하시기 위한 자발적이고도 철저한 순종이었습니다.

(b)   우리를 새 사람으로 만드시는 생산적인 고통 (롬 6:6):

(i)                  욥의 고통의 한계: 욥의 고통은 욥 개인의 믿음을 정금 가치 단련하고 하나님의 주권을 깨닫게 하는 통로였으나, 다른 사람의 죄를 사하거나 타인을 변화시키는 구원론적 능력은 없었습니다.

(ii)                예수님 고통의 구속적 능력: 예수님이 온 정신으로 당하신 십자가 고통은 인류의 운명을 바꾸는 생산적이고 구속적인 고통이었습니다.

(iii)              영적 의미: 로마서 6장 6절 말씀처럼,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 우리의 옛 사람(죄에 매여 살던 아담의 본성)도 주님과 함께 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주님의 고통과 죽음은 단순한 희생으로 끝나지 않고, 우리의 죄의 몸을 멸하여 다시는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주님이 온전한 고통을 당하셨기에, 우리의 옛 사람이 완전히 죽고 '새 사람'으로 다시 살아나는 위대한 구원의 창조가 일어난 것입니다.

 

C.   결론: "죄 없으신 의인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직 우리를 위해 자원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셨다"는 사실입니다.

1.      골고다 도상의 철저한 고독(누가복음), 구약과 신약의 정밀한 예언(창세기, 마태복음), 욥과 대조되는 온전한 정신의 순종(마가복음), 그리고 옛 사람을 죽이는 로마서의 능력까지, 이 모든 과정은 하나의 목적을 향해 흐르고 있었습니다.  바로 우리를 향한 자발적인 대속의 사랑입니다.

a.      "죄 없으신 의인"이 당하신 부당한 형벌 (대속의 본질)

(1)   예수님은 십자가 좌우의 강도들처럼 자기 죄 때문에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동정심으로 가슴을 치던 예루살렘 여인들처럼 무력하게 끌려가신 것도 아닙니다.  주님은 아무 죄가 없으신 완전한 의인이셨으나, 법정적으로 가장 흉악한 사형수의 자리에서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죄인이 받아야 할 영원한 지옥의 진노를 의인이신 주님이 고스란히 대신 짊어지신 것입니다.

b.     억지가 아닌 "자원함(Spontaneity)"으로 걸어가신 길

(1)   주님의 십자가는 로마 군인의 강요에 의해 억지로 지고 갔던 구레네 사람 시몬의 십자가와 본질적으로 다릅니다.  주님은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동원해 상황을 역전시키실 능력이 있으셨으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고통을 잊게 해줄 마취제(쓸개 탄 포도주)마저 거절하시고 온 정신으로 매를 맞고 못 박히셨습니다.

(a)   "이를 내게서 빼앗는 자가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스스로 버리노라" (요10:18).

c.      자원하신 3가지 목적 (십자가의 열매): 예수님이 온전한 의식으로 진노의 고통을 자원하여 다 받아내신 이유는 오직 우리를 향한 목적이 뚜렷하셨기 때문입니다.

(1)   우리를 구원하시고자: 죄의 형벌과 비참한 운명, 영원한 저주에서 우리를 건져내시기 위함입니다.

(2)   우리에게 영생을 주시고자: 영원한 멸망으로 끝날 인생들에게, 하나님 나라에서 주님과 영원히 동행하는 참된 생명을 선물하기 위함입니다.

(3)   우리의 죄를 사하시고자: 도저히 씻을 수 없던 우리의 모든 과거, 현재, 미래의 죄과를 주님의 보혈로 깨끗이 씻어 영원한 법정적 사면을 선언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2.      묵상 마무리: 이미 이루어진 승리를 누리는 삶

a.      주님이 자원하여 다 겪으신 십자가 고통 덕분에, 우리의 '옛 사람'은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었고 우리는 '새 사람'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십자가는 실패나 비극이 아니라, 사탄의 머리를 박살 내고 우리에게 완전한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완벽한 대승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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