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 짧은 말씀 묵상
예수님께서는“제물이 소금으로 정결하게 되듯이 모든 사람은 불로 정결하게 되어야 헌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9:49,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1)
제물에 소금을 친다는 말씀은 모세의 율법에 의하여 분부하신 것으로서 그것은 제물을 보존하기 위함이 아니고 하나님의 제단에 드렸던 제물이나 고기는 소금이 없이는 먹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특히 소제를 드릴 때에 더욱 그러하도록 요구하셨습니다(레위기11:13)(멘튜 헨리).
(2)
우리가 하나님께 “산제물로”
드려지기 위해선(로마서12:1) 우리의 부패한 “육체”(창세기6:3; 시편78:39)에 “소금치듯 함을 받아”야 합니다. 즉,
“제물이 소금으로 정결하게 되듯이”
우리는 “불로 정결하게 되어야 합니다(마가복음9:40, 현대인의 성경). 그래야 우리가 성령님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음직하게 됩니다(헨리).
(3)
새 찬송가
264장 “정결하게 하는 샘이”
1절 가사가 생각납니다:
“정결하게 하는 샘이 나의 앞에 있도다 성령께서 권고하심 죄 씻으라 하시네.” 그리고 새 찬송가
274장 “나 행한 것 죄뿐이니”
1절과 후렴 가사도 생각납니다:
“나 행한 것 죄뿐이니 주 예수께 비옵기는 나의 몸과 나의 맘을 깨끗하게 하옵소서 물 가지고 날 씻든지 불 가지고 태우든지 내 안과 밖 다 닦으사 내 모든 죄 멸하소서.”
(4)
시편
51편 7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우슬초로 나를 정결하게 하소서.
내가 깨끗할 것입니다. 나를 씻기소서. 내가 눈보다 희게 될 것입니다.” 레위기
11장 44절 상반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자신을 정결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라 ….”
(5)
다니엘
11장 35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 지혜로운 자들 가운데 일부는 죽임을 당하겠지만 그 결과 하나님의 백성들은 연단을 받아 정결하고 깨끗하게 될 것이며 이런 일은 하나님이 작정하신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다니엘
12장 10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시련과 박해를 통해서 많은 사람이 연단을 받아 정결하게 될 것이나 악한 사람은 계속 악을 행할 것이다. 악한 자는 아무것도 깨닫지 못할 것이며 오직 지혜로운 자만 깨달을 것이다.”
(6)
에스겔
37장 23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들은 우상들과 더러운 물건들과 그들의 죄악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들을 범죄하고 타락한 자리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할 것이며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될 것이다.”
바리새인들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하고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모세가 어떻게 너희에게 명하였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모세는 이혼 증서를 써주어 버리기를 허락하였나이다”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아 이 명령을 기록하였거니와 창조 때로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으니 이러므로 사람이 그 부모를 떠나서 그 둘이 한 몸이 될지니라 이러한즉 이제 둘이 아니요 한 몸이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하고 말씀하셨습니다(마가복음10:2-9).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를 생각하게 됩니다:
(1)
예수님을 시험하였던 바리새인들을 생각할 때 마태복음
22장 18절 말씀이 마음에 다가옵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시고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어찌하여 나를 시험하느냐”[(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예수님은 그들의 간교한 생각을 아시고
'위선자들아, 왜 나를 시험하느냐?”]. 예수님을 시험하였던 바리새인들은 “외식하는 자들”이요 “간교한 생각”을 가진 악한 자들이었습니다. 지금도 외식하는 자들은 간교한 생각을 가지고 예수님의 참 제자들을 시험하여 어떻게 해서든 실족하게 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2)
예수님을 시험한 바리새인들의 질문은 “남편이 아내를 버려도 좋습니까?”였습니다(마가복음10:2, 현대인의 성경). 호크마에 의하면 여기서 바리새인들의 시험한 목적을 한
3가지로 추리하였습니다:
“예수께서는 모세의 율법주의자보다 차원 높은 도덕을 가리켰으므로(마5:27 -
32) 이 문제에 대한 견해를 알고 싶어서,
(2) 이와 같은 논쟁에 예수를 끌어내어 어느 편에 가담시키려고,
(3) 당시 헤롯이 이혼하였고 세례 요한이 이를 반대하다가 죽었으므로 예수를 같은 운명에 빠뜨리기 위해서 등으로”(호크마). 여기서 두번째 추론에 과한 추가 설명은 당시 바리새인들은 신명기
24장 1-2절(사람이 아내를 취하여 데려온 후에 수치되는 일이 그에게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이혼증서를 써서 …)의 해석에서 대립되는 논쟁을 계속하였다.
엄격파인 샴마이파는 위의 수치되는 일을 간음으로 보고 간음한 이유 외에는 이혼을 못한다고 하였고,
자유적인 힐레파는 무슨 조건이든(가령 아내가 밥을 태웠을 때)
이혼이 가능하다고 하였다”고 합니다(호크마). 저는 이
3가지 추론 중에 세번째 추론이 흥미롭고 또한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됩니다. 그 이유는 바리새인들도 결국에 가서는 예수님을 세례 요한처럼 죽임을 당하게 하는 게 그들의 목적이었기 때문입니다[참고: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마태복음
12:14)].
(3)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모세가 “이혼 증서를 써 주기만 하면 아내를 버려도 좋다고”
한 이유는 “너희 마음이 완악함으로 말미암”았다[“너희가 고집이 세고 악하기 때문”이다(현대인의 성경)]고 말씀하셨는데(마가복음10:4-5)
이 마음의 완악함이란 완고한 마음으로서 어린아이와(9:36)
대조적으로 감수성이 없는 굳어진 마음입니다(호크마). 이렇게 차돌처럼 마음이 굳어져 있으면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습니다(참고: 스가랴7:12, 새번역). 뿐만 아니라 우리는 주님을 경외하지 않기에 주님의 길에서 떠납니다(참고: 이사야63;17, 새번역). 주님은 우리의 마음이 굳어진 것을 탄식하십니다(참고: 마가복음3:5, 새번역).
(4)
예수님의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실 때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는데(마가복음10:6, 현대인의 성경)
어떻게 지금은 남자와 여자 외에 여자가 남자가 되려고 하고,
남자가 여자가 되려고 하는 것일까요? 어떻게 지금 성전환이란 것까지 생겨난 것일까요? 창세기
6장 5절 말씀이 생각납니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현대인의 성경)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땅에 가득한 것과 그 마음의 생각이 항상 악한 것을 보시고”].
(5)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자기 부모를 떠나 두 사람이 한 몸이 되게 하셨으니 이제는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마가복음10:7-8,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씀하셨는데 왜 결혼한 한 남자와 한 여자는 자기 부모님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또한 그와 그녀의 부모는 왜 결혼한 자녀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혹시 믿음이 없어서 그런 것은 아닐까요? 남편이나 아내가 믿음이 없기에 부모님을 떠나지 못하고,
부모님도 믿음이 없어서 결혼한 자녀를 떠나보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성경은 믿음으로 행하지 않는 것은 죄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의심하고 먹는 자는 정죄되었나니 이는 믿음을 따라하지 아니하였기 때문이라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의심을 하면서 음식을 먹는다면 그것은 믿음으로 먹은 것이 아니기 때문에 죄가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모두 죄입니다”].
(6)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마가복음10:9,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씀하셨는데 왜 사람들은 갈라서는 것일까요? 혹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짝지었기 때문일 수도 있을까요?
집에 들어가서 제자들이 마가복음
10장 2-9절 씀에 대하여 다시 예수님을 여쭸을 때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 음행한 일도 없는데 자기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은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마태복음19:9, 현대인의 성경),
“누구든지 자기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본처에게 간음죄를 짓는 것이며 또 아내가 자기 남편과 이혼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도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마가복음 10:11-12,
현대인의 성경). 제자들이 예수님께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그런 것이라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하자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다 이 말대로 할 수는 없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람들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처음부터 결혼할 수 없는 몸으로 태어난 남자도 있고 불구자가 되어서 결혼할 수 없는 남자도 있으며 하늘 나라를 위해 스스로 결혼을 포기한 사람도 있다. 이 교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마태복음19:10-12,
현대인의 성경).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몇 가지 생각을 하게 됩니다:
(1)
이혼문제에 관해 제자들이 질문하였을 때 예수님께서 대답하신 보충설명(호크마) 중 “음행한 일도 없는데 자기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은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마태복음19:9, 현대인의 성경)하신 말씀을 묵상할 때 여기서 “음행”이란 의미가 무엇인지 먼저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 의미는
New International Version(NIV) 영어 성경에는 ‘결혼한 사람들 간의 성적인 관계에서의 부정’(marital
unfaithfulness)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호크마에 의하면 그 긍궁적인 의미는 “무분별하고 방종하며 집요하게 회개할 줄 모르는 문란한 성생활의 지속을 의미하는 것으로 단 한 번의 잘못된 부정 행위와는 전적으로 다른 것으로 보는 경우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호크마). 만일 이 의미가 맞다면 우리는 배우자의 “단 한 번의 잘못된 부정 행위”로 인해 이혼을 하려고 하기보다 그 배우자로하여금 자신의 음행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하나님께 매달릴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마가복음10:9, 현대인의 성경)하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을 믿는 어느 여자들은 음행죄를 범한 자신들의 남편이 회개하고 주님께와 자기들에게 돌아오길 인내심을 가지고 기도하여 응답을 받은 여자가 있는가 하면 아직도 기도 응답을 받지 못하고 하나님께 기도하며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는 여자도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어느 여자들은 남편의 지속적인 음행죄(자기 아내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다른 여자와 계속해서 바람을 피는/불륜관계를 맺는 죄)로 인하여 이혼을 한 여자들도 있습니다.
(2)
만일 아내가 음행한 일도 없는데 자기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남자는 간음죄를 짓는 것이라는 말씀(마태복음19:9, 현대인의 성경)을 묵상할 때 호세아 선지자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호세아 선지자에게 “너는 다시 가서 간음한 네 아내를 사랑하라.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신을 섬기고 우상에게 제물로 드리는 건포도 빵을 즐겨도 나 여호와가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는 것처럼 너도 네 아내를 사랑하라”(호세아3:1, 현대인의 성경)는 말씀에 순종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나는 은 약
170그램과 보리
18말을 주고 아내를 사서 그녀에게
'당신은 당분간 혼자 조용히 지내도록 하시오. 이제는 다른 남자를 쫓아다니거나 창녀짓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는 당신을 기다리겠소.'
하였다”(2-3절, 현대인의 성경). 호세아 선지자가 “다른 남자를 쫓아다니거나 창녀짓”을 하는 “음녀”(1절)요 “간음한”
자기 아내 고멜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다시 가서”
“여전히”(1절, 현대인의 성경)
사랑하였다는 말씀을 묵상할 때 “음행한 일도 없는데 자기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사람은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마태복음19:9, 현대인의 성경)하는 예수님의 말씀에 “아멘”할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이러한 “간음죄”를 계속해서 범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조차도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사랑하셔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신다고 생각할 때(참고: 호세아 3:1; 누가복음15:11-32,
현대인의 성경)
이것이 하나님의 “끝까지 사랑”(요한복음13:1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3)
“누구든지 자기 아내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은 본처에게 간음죄를 짓는 것이며 또 아내가 자기 남편과 이혼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도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마가복음
10:11-12, 현대인의 성경)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과연 지금도 이 말씀대로 자기 본처와 이혼하여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을 우리 남자들이 “간음죄를 짓는 것”이라고 확고히 믿고 있는 것일까요? 여자들은 어떠할까요? 자기 남편과 이혼하고 다른 남자와 결혼하는 것을 “간음죄를 짓는 것이다”하고 진정 믿고 있고 있는 것일까요? 호크마의 말입니다: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창조의 원리는 불변의 원리 이므로 가령 이혼증서를 써주었다 하더라도 하나님의 원리에서는 승인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의 부부관계는 불변이며 따라서 아내를 두고 다른 여자에게 중요한 셈이되므로 본처에게 간음죄가 되고,
아내의 경우도 마찬가지다”(호크마). 분명히 성경은 “하나님께서는 창조하실 때부터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다. 그래서 사람이 자기 부모를 떠나 두 사람이 한 몸이 되게 하셨으니 이제는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마가복음10:6-9,
현대인의 성경)하고 불변의 진리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이 “하나님의 원리에서는 승인되지 않는”(호크마) 이혼을 지금 우리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합리화시켜서 너무나 섣불리 이혼하는 문화가 만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요?
(4)
예수님의 제자들은 “남편과 아내의 관계가 그런 것이라면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낫겠습니다”(마태복음19:10,
현대인의 성경)하고 예수님께 한 말을 묵상할 때 어쩌면 그들은 남편이 그의 아내가 음행한 일도 없는데 그녀와 이혼하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는 것이 간음죄를 짓는 것이라는 예수님의 말씀(9절, 현대인의 성경)이 불편하게 들릴 수 있었다고 생각됩니다. 제가 그리 생각하는 이유는 “그들이 원할 때 자기들이 아내를 내어버릴 수 없다면,
그들은 아내를 처음부터 갖지 않겠다는 것이”였기 때문입니다(헨리). 메튜 헨리의 말입니다:
“제자들 자신들도 이혼하는 자유를 포기하고 싶지 않은 듯하다.
그들은 이혼이 결혼 생활에서 얻는 안락함을 보전하는데 편리한 방편으로 생각하였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토라진 어린아이들처럼 그들이 가지고 싶어하는 것을 가지지 못하게 되면,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을 내던져 버리겠다는 식이다”(헨리). 그런데 지금은 어떠합니까? 목사들과 장로들까지도 “이혼하는 자유”를 마음 것(?)
누리고 있지 않나요? 자신들의 “안락함을 보전하는데 편리한 방편”으로 이혼을 선택하고 실행하는 것이 익숙해진 이 시대가 아닌가요?
(5)
메튜 헨리의 말입니다:
“그렇지만 처음부터 이혼이 허락되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사람이 ‘독처하는 것이 좋지 않으니라’
하시고는 그들을 축복하셨다. 즉 이와 같이 완전히 한 몸으로 결합된 자들이 복 되도다 선언하신 것이다. 다음의 사실에 유의하라.
(a)
첫째,
부패한 본성은 제약을 참지 못하여 그리스도의 속박을 산산조각 내기를 좋아하며,
자기 자신의 정욕을 위한 자유를 누리기를 기뻐한다.
(b)
둘째,
사람이 세상의 즐거움을 그 안에 섞여 있는 십자가와 같이 고난 때문에 포기한다고 하는 것은 어리석고,
심술궂은 일이다.
이는 마치 세상의 모든 것이 우리 마음에 흡족하지 않다고 하여 우리가 세상을 뛰쳐나가야 한다는 것과 같다.
또는 어떤 유익한 직업이나 지위도 그 안에 우리가 예속되어야 할 의무를 지워 준다고 해서 그것을 거절해야 한다는 것과도 같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
이는 좋은 약이 입에 쓰다고 하여 내뱉는 것과도 같기 때문이다.
우리의 환경이 어떠하든지 간에 우리는 거기에 우리의 생각을 맞추어야 하고 그것이 주는 낙을 인하여 감사하며,
그것이 지니고 있는 십자가 를잘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을 병행하신 것처럼 양자를 서로 병행시키고 그것을 선용해야만 한다(전 7:14). 만일 결혼이라는 멍에를 기쁠 대는 내 벗어버리지 않아도 좋은 것이라면
"그러므로"
우리는 멍에를 메지 않아야 한다가 아니라
"그러므로' 우리가 멍에를 메어야 할 때 사랑과 온유와 인내로 그 멍에에 자신을 맞추려는 결심을 해야만 한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그렇게 되면 이혼은 가장 불필요하고 바람직하지 못한 것이 될 것이다”(헨리).
(6)
예수님께서 “모든 사람이 다 이 말대로 할 수는 없고 하나님이 허락하신 사람들만 그렇게 할 수 있다. 처음부터 결혼할 수 없는 몸으로 태어난 남자도 있고 불구자가 되어서 결혼할 수 없는 남자도 있으며 하늘 나라를 위해 스스로 결혼을 포기한 사람도 있다. 이 교훈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은 받아들여라”(마태복음19:11-12,
현대인의 성경)하신 말씀을 묵상할 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말한 것처럼 어떤 자는 결혼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인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이는 이혼을 금지하기 위하여 독신을 장려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그들에게 성욕을 절제하는 은사를 받아 결혼할 필요를 느끼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이 계속하여 독신으로 머물러 산다면(고전 7:1) 자기들의 최선을 다하게 된다는 하나님의 원칙을 제시하기 위함이었다.
왜냐하면 결혼하지 않는 사람들은 마음만 먹으면 ‘주님의 일을 위하여 어떻게 주님을 기쁘시게 할까’(고전
7:32-34) 염려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기 때문이다”(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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