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يجب ألا تكون الغاية النهائية لإيماننا هي الظروف المنظورة التي تحيط بنا، ولا الأدلة المرئية على المعجزات، بل كلمة الرب نفسها، كما سُجِّلت وأُعلنت.

  يجب ألا تكون الغاية النهائية لإيماننا هي الظروف المنظورة التي تحيط بنا، ولا الأدلة المرئية على المعجزات، بل كلمة الرب نفسها، كما سُجِّلت وأُعلنت .         « وبعد اليومين خرج من هناك إلى الجليل، لأن يسوع نفسه شهد أن ليس لنبي كرامة في وطنه . فلما جاء إلى الجليل قبله الجليليون، إذ كانوا قد عاينوا كل ما فعل في أورشليم في العيد، لأنهم هم أيضًا جاءوا إلى العيد . فجاء يسوع أيضًا إلى قانا الجليل، حيث صنع الماء خمرًا . وكان خادم للملك ابنه مريض في كفرناحوم . هذا إذ سمع أن يسوع قد جاء من اليهودية إلى الجليل، انطلق إليه وسأله أن ينزل ويشفي ابنه، لأنه كان مشرفًا على الموت . فقال له يسوع : « إن لم تروا آيات وعجائب لا تؤمنون ». قال له خادم الملك : « يا سيد، انزل قبل أن يموت ابني ». قال له يسوع : « اذهب . ابنك حي ». فآمن الرجل بالكلمة التي قالها له يسوع، وذهب . وفيما هو نازل استقبله عبيده وأخبروه قائلين : « إن ابنك حي ». فاستخبرهم ...

예수님 그리스도의 죽으심 (10) (행 1:1-11)

예수님 그리스도의 죽으심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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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 1: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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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5대 사역중 두 번째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에 대해서 묵상해오고 있음.

1.        우리는 지난 주 수요 예배 때 아홉 번째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9)”이란 제목아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에 대해 2가지로 묵상했음:

a.        첫째는,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심은 분명한 것이다라는 것임.  그 이유는 그 일이 이미 예언된 것이기 때문임.  둘째는, 예수님의 십자가는 독특한 십자가이다 라는 것임.

 

B.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으심 (10)”이란 제목아래 예수님께서 십자가상에서 하신 일곱 마디(십자가상의 칠언) 중 첫 번째부터 세 번째 말씀을 묵상하고자 함[다음 주 수요일에는 넷 번째부터 마지막 일곱 번째 말씀을 묵상할 것임]

1.        잠잠하셨던 예수 그리스도와 예언의 성취. 

a.        예수님은 공생애 기간 수많은 기적과 능력의 말씀을 선포하셨으나, 정작 체포되시고 심문을 당하시며 십자가에 못 박히는 전 과정 속에서는 철저히 침묵하셨습니다.  빌라도와 헤롯 앞에서도, 군인들의 조롱 앞에서도 자기를 변호하거나 대적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구약 선지자의 예언을 성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1)     (사 53:7)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

(a)     잠잠함의 영적 의미: 주님의 침묵은 무능함이나 포기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심판을 묵묵히 받아들이시겠다는 온전한 복종이었으며, 자기를 박해하는 죄인들을 향한 끝없는 인내와 사랑이었습니다.

 

2.        침묵을 깨고 선포하신 일곱 마디(가칠언)의 절대적 중요성

a.        이렇듯 도수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처럼 철저히 잠잠하셨던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 극심한 고통의 순간에 침묵을 깨고 입을 열어 일곱 마디의 말씀을 남기셨습니다.  평소에 침묵하셨던 분의 말씀이기에 이 가칠언은 더욱 무겁고 중요합니다.

(1)     이것은 유언을 넘어선 구속사의 최종 선언입니다.

(2)     온 인류의 죄를 짊어지신 메시아의 심장 소리이자 영적 요약입니다.

(3)     고통의 절정에서 쥐어짜 내신 말씀이기에, 우리가 평생을 두고 귀 기울이고 묵상해야 할 하나님 사랑의 결정체입니다.

 

C.     첫 번째하신 말씀: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눅23:34).

1.        제일 먼저 예수님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셨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a.        여기서 “저들”이란 예수님을 채찍질하고, 조롱하며, 손과 발에 대못을 박은 로마 군병들과 종교 지도자들(대제사장, 서기관)입니다.  영적으로는 주님을 거역한 모든 죄인이자 원수들, 영원히 멸망 받아 마땅한 자들입니다.

(1)     공의로우신 하나님 아버지는 주님을 못 박은 그 악한 자들에게 즉시 불과 유황의 심판을 내리셔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으로 인해 하나님의 진노가 유보되고, 공의의 심판이 원수들이 아닌 '예수님 자신'에게 쏟아지게 되었습니다.

(a)     주님이 그들의 죄값을 대신 지고 계셨기에, 하나님께 당당히 그들을 "사하여 달라"고 요청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이사야 53:12 "그가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예언 성취).

 

2.        무지한 죄인들을 향한 긍휼: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a.        원수들은 자신들이 지금 감히 '하나님의 아들'을 못 박고 있다는 죄악의 무게를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그저 일개 유대인 사형수를 처형하는 줄로만 알았습니다.

(1)     주님은 그들의 악함을 고발하시는 대신, 그들의 영적 무지함을 불쌍히 여기시며 용서의 핑계로 삼아주셨습니다.  죄인을 끝까지 품으시는 메시아의 무한한 긍휼입니다.

 

3.        오늘날 우리 삶으로의 적용: 원수를 향한 용서와 기도

a.        이 첫 번째 말씀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오늘날 우리에게 아주 무겁고도 영광스러운 신앙의 실천을 요구합니다.

(1)     우리가 살아가는 이 시대에도 우리를 까닭 없이 대적하고, 비방하며, 억울하게 괴롭히고 고통을 주는 '원수 같은 존재'들이 있습니다.

(2)     인간의 감정으로는 결코 그들을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서 원수였던 나를 먼저 용서하신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야 합니다.

(3)     주님을 본받아, 우리에게 상처 준 자들을 향해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이 자기들이 하는 행동의 영적 파멸을 알지 못하나이다"라고 하나님께 고개 숙여 기도할 때, 비로소 우리 안에 십자가의 참된 평안과 새 사람의 능력이 나타나게 됩니다.

 

D.     두 번째하신 말씀: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하시더라"(눅23:43).

1.        여기서 “네가”는 예수님의 좌우에 못박힌 강도 둘중에 한 명임.  예수님은 그에게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음.

a.        십자가형의 특징: 의학적으로 십자가형은 과다출혈뿐만 아니라, 매달린 몸의 무게 때문에 폐가 압박을 받아 일어나는 '질식'이 주된 사인이었습니다.  숨을 쉬려면 못 박힌 발에 힘을 주고 몸을 위로 밀어 올려야 했기에, 말씀하신 대로 보통 이틀, 길게는 일주일 동안 끔찍한 고통을 겪으며 천천히 죽어갔습니다.

b.       다리 뼈를 꺾은 이유: 유월절 안식일이 다가오자, 유대 지도자들은 시체를 십자가에 그냥 두지 않으려고 로마 군병들에게 사형수들을 속히 죽여달라고 요청했습니다(요 19:31).  이에 군병들은 강도들이 숨을 쉬기 위해 몸을 밀어 올리지 못하도록 망치로 그들의 다리 뼈를 부러뜨렸습니다(꺾었습니다).  다리가 부러진 강도들은 더 이상 몸을 지탱할 수 없어 몇 분 내에 완전히 질식하여 즉사했습니다.

c.        약속의 성취: 군병들이 다리를 꺾음으로써 그 강도는 예수님의 말씀대로 "오늘" 육신의 숨이 끊어졌고, 그 즉시 영혼이 주님과 함께 낙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주님의 예언이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2.        요한복음 3장 16절의 완전한 성취: 행함 없는 구원의 은혜

a.        평생 강도짓을 하며 남을 괴롭히다 죽어가는 이 절망적인 죄인에게 임한 구원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복음의 증거입니다.

(1)     (요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a)     멸망치 않고 얻은 영생: 이 강도는 교회에 다닌 적도, 세례를 받은 적도, 선한 일을 행한 적도 없습니다.  오직 죽기 직전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을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기억하소서”(눅23:42)라고 말했음.

(b)     하나님의 위대한 사랑: 주님은 그 짧지만 진실한 믿음의 고백을 외면하지 않으셨습니다. 과거의 모든 죄악을 단번에 도말하시고, 멸망의 길에서 건져내어 영원한 생명(영생)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를 구주로 고백하는 믿음으로만 받는 전적인 은혜임을 증명합니다.

 

E.      세 번째하신 말씀: (요19:26-27)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 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1.        육신의 형제들이 아닌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부탁하신 이유

a.        예수님은 십자가 위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육신의 어머니 마리아를 바라보시며 자식으로서의 도리와 효도를 다하셨습니다.  그런데 주님은 육신의 동생들이 아닌 제자 요한에게 어머니를 위탁하셨습니다.

(1)      육신의 동생들 (마 13:55): 마리아는 성령으로 예수님을 잉태한 후, 요셉과의 사이에서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라는 친동생들을 낳았습니다.

(2)      형제들에게 부탁하지 않으신 이유: 당시 예수님의 동생들은 아직 예수님을 메시아로 온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습니다(요 7:5).  무엇보다 십자가 처형의 그 무서운 자리에 육신의 동생들은 두려워 아무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3)      십자가 곁을 지킨 유일한 제자 요한: 다른 제자들은 예수님이 체포되실 때 무서워 다 도망쳤지만,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인 요한만큼은 끝까지 십자가 곁을 지키며 주님의 고통을 함께 나누고 있었습니다(요 19:26).  주님은 믿음의 자리를 끝까지 지킨 요한에게 육신의 어머니를 영적 어머니로 맡기시며, "보라 네 어머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 안에서 혈통을 넘어선 새로운 '영적 가족'이 탄생한 순간입니다.

 

2.        요한의 순종과 부활의 아침 (요 20:8-10 연결)

a.        요한은 주님의 말씀에 즉시 순종하여 그 시로부터 마리아를 자신의 친어머니처럼 집에 모셨습니다.  이 아름다운 순종은 사흘 뒤 부활의 아침에 놀라운 은혜로 연결됩니다.

(1)       안식 후 첫날 아침, 예수님의 무덤이 비어있다는 소식을 듣고 베드로와 요한이 달려가 무덤 안을 확인한 후 "자기들의 집으로 돌아가니라"(요 20:10)고 성경은 기록합니다.

(2)      요한이 주님의 부활에 대한 소망과 의문을 품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을 때, 그 집에는 주님의 말씀대로 모셔온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함께 계셨습니다.

(3)      주님의 처참한 죽음을 보며 가슴이 찢어졌던 마리아와 주님의 무덤을 확인하고 온 요한이 한 집에서 만나, 마침내 막달라 마리아를 비롯한 여인들을 통해 예수님이 살아나셨다는 부활의 첫 소식(목격 담)을 함께 나누며 큰 위로와 기쁨을 맞이하게 된 것입니다.

 

3.        오늘날 우리 삶으로의 적용: 십자가 곁을 지키는 자의 사명

a.        이 세 번째 말씀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누가 진정한 주님의 제자인가?"를 질문합니다.

(1)      세상이 예수님을 조롱하고 박해할 때, 많은 이들이 두려워 도망치고 멀어집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들조차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요한처럼 끝까지 예수님 곁에 머무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십자가 곁에 머무는 자만이 주님의 세밀한 음성을 들을 수 있고, 주님이 가장 아끼시는 소중한 사명(어머니를 돌보는 사명)을 위탁받을 수 있습니다.

(a)      우리가 요한처럼 날마다 주님 곁에 머물러 그분의 말씀을 듣고 순종할 때, 주님은 우리에게 부활의 산 소망을 가장 먼저 누리게 하실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그 곁을 지키며 들은 생명의 복음을 세상 가운데 담대히 전하는 참된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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