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는 이유 (8)
[골로새서 1장 1-8절]
마지막
넷째로, 사도 바울은 골로새에 있는 신실한 성도들이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그들 중에서와 또한 온 세계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나고 있었기에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했습니다.
골로새서 1장 6절을 보십시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이 기쁜 소식을 듣고 진리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열매를 맺은 것처럼 그 말씀이 온 세계에서도 그렇게
열매를 맺으며 전파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가정을 꿈꾸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까? 저는 ‘사랑의 열매를 맺는 가정’을 꿈꾸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사랑의 씨앗을 심어 사랑의 뿌리가 보이지 않는 땅 밑에 깊이 넓게 많이 자라나므로 사랑의 싹이
조금씩 땅 위로 보이면서 사랑의 나무가 견고하게 무럭무럭 잘 자라나서 사랑의 열매를 맺는 주님 중심된 우리 가정이 되길 기원합니다.” 특히
저는 예수님의 이중적인 계명(twofold command)을 순종하므로 이중적인 열매(twofold
fruit)를 맺는 주님 중심된 가정이 되길 꿈꾸면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이미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우리들은 예수님의
이중적인 계명대로 우리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우리의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우리의 이웃을 우리 자신 같이 사랑할 때에(마22:37, 39) 맺는 이중적인 열매(twofold fruit)란 2가지입니다: (1) 우리가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벧후1:4)으로서 그 의미는 성령님의 성화로 인해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요 또한 (2) 성령님의
열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를 맺는 것입니다(갈5:22-23). 그러므로 저는 주님 중심된 가정, 예수님을 닮아가며 예수님의 사랑으로 서로 사랑하는 가정, 예수님의 증인 공동체를 꿈꾸면서 하나님께
기원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보여주는 가정, 복음의 열매는 맺는 우리 가정이 되길 기원합니다.
우리가 골로새서 1장3-5절 말씀 중심으로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한 3가지 이유를 이미 묵상했습니다. 그 이유는 현대인의 성경 번역으로 말한다면 첫째로 그들이 그리스도 예수님을 잘 믿고 있었기 때문이요, 둘째로 그들이 모든 성도를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요, 셋째로 그들에게는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성도들에게 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를 하는지 마지막 네 번째 이유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골로새에 있는 신실한 성도들이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그들 중에서와 또한 온 세계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 여기서 저는 한 3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골로새 교회에 신실한 성도들이 전에 들은 “이 복음”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5절에서 이 복음을 “복음 진리의 말씀”이라고 말했습니다. 즉, “복음”이란 “진리의
말씀”이라고 말한 것인데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1장 13절에서 비슷한
말씀을 했습니다: “그 안에서 너희도 진리의 말씀 곧 너희의 구원의 복음을 듣고 ….” 저는 이 두 말씀을
좀 연관해서 묵상 적용할 때에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들은 복음이요 우리가 들은 복음은 “진리의 말씀”으로서 한 마디로 그 복음, 그 진리의 말씀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의 “구원의 복음”이요 우리의 “구원의 복음”입니다. 저는 “이 복음”(골1:6)을 골로새서 말씀 중심으로 한 4가지로 생각해 보았습니다:
(a) 이 “구원의 복음”은 ‘우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한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역사(능력)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영적으로 죽어 있었던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은
것’[참고: (골3:1상)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을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2장 12-13절을 보십시오: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은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땅에 묻혔고 또한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하나님의 능력을 믿음으로 그분과 함께 다시 살아나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도 전에는 죄와 할례 받지 못한 육적인 욕망 때문에 영적으로 죽어 있었으나 하나님이 그리스도와 함께
여러분을 살리셨습니다. …”].
로마서 6장 3-4절을 보십시오: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b) 이 “구원의 복음”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은 것을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1장 14절을 보십시오: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현대인의 성경)
“우리는 이 아들이 피 흘린 대가로 자유를 얻고 죄를 용서받았습니다”][참고:
(엡1:14) “이는 (성령님이)
우리 기업의 보증이 되사 그 얻으신 것을 속량하시고 …”]. 여기서 “속량”이란 노예의 값을 지불하여 사서 해방시키는
것으로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죄의 노예와 사탄의 노예에서 자유케 하시고자 지불하신 값은 바로 자신의 생명이었습니다. 즉, 에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므로 우리는 죄 사함을 받아 죄에서 자유를 얻게 된 것입니다.
(c) 이 “구원이 복음”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죽음과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로 하나님을 떠나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던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신 것’을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1장 20-22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십자가의 피로 평화의 길을
열어[“화평을 이루사”(개역개정)] 하늘에 있는 것이든 땅에 있는 것이든 모든 것을 그분을 통해 자기와 화해하게[“화목하게”(개역개정)] 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전에 여러분의 악한 행실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죽음을 통해 여러분과 화해하셨습니다[“화목하게 하사”(개역개정)]. 이것은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이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사람으로 자기 앞에 세우기 위한 것입니다”(22절). 로마서 5장 10절을 보십시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 고린도후서 5장 18절을 보십시오: “모든 것이 하나님께로서 났으며
그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고 ….”
(d) 이 “구원의 복음” 골로새서 1장 13절 현대인의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어두움의 권세에서 구출하여 자기가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신 것을 말씀합니다.
여기서 “어두움의 권세”는 “사탄의 권세”(행26:18)를 말하고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의 나라”는 “주(님)의 나라”(마20:21; 히1:8)요 “하나님의 나라”(마21:31; 눅18:17)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구원의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구출하여(건지시사/구원하시사) 주님(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주신 것을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사도 요한의 관점으로 말한다면 요한일서 3장 14절에 하나님이 우리를 “사망”(영적으로 죽었고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에서 옮겨 생명(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게 하신 것을
말씀합니다. 또한 요한복음
5장 24절에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는 것을 말씀합니다. 한 마디로, 사도 요한의
관점에서의 구원의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망에서 건져내시사 생명(영생)으로 옮기신 것을 말씀합니다.
이것을 사도
바울의 관점에서의 구원의 복음과 연관해서 정리한다면
‘구원의 복음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으로 영적으로 죽었고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었던(사망) 우리를 죄의 노예와 사탄의 노예에서 자유케하시사(속량) 하나님과 화목케 하시므로 우리를 하나님의 나라로(생명으로) 옮기신 것’을 말씀합니다.
(2) 전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았다’는 말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할 수밖에 없지 않으십니까? 가정을 생각해도 하나님의 은혜로 여기까지 왔고, 주님의 교회를 보아도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까지
왔으며 나 자신을 생각해 보아도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지금까지 지내왔음을 인정하며 고백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새찬송가 301장 “지금까지 지내온 것” 1절 가사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겸손히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지내온 것 주의 크신 은혜라 한이 없는 주의 사랑 어찌 이루 말하랴 자나 깨나 주의 손이 항상 살펴 주시고
모든 일을 주 안에서 형통하게 하시네.” 그리고 진정 우리가 나의 나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인 줄을
알아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우리는 그 은혜의 힘으로 마땅히 주님과 주님의 교회를 위하여 수고해야 합니다. 우리는 그 은혜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보다 더 많이 수고해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말로만
'하나님의 은혜입니다'라고 하고 행함으로 수고하지 않고 있다면 우리는 그 은혜를
헛되게 하고 있을 뿐입니다(고전15:10).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내려가면서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라고 말하였는데 여기서 바울이 말한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지 한 3가지로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a)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골로새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임했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6절). 사도 바울이 이 골로새서 편지를 쓸 당시에는 골로새에 있는
불신자들이 이미 복음이 그들에게 이르러 그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아 신자가 된 상태였지만 그 복음이 그들에게 이르기 전에는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은 불신자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이르렀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면 누가 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했을까 질문할
때 골로새서 2장 1절을 보면 우리는 사도 바울이 그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이 아닌 것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바울은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내 얼굴을 보지 못한 사람들을 위해 내가 얼마나 애쓰고 있는가를 여러분(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알기 바랍니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현대인의 성경). 죤
맥아더 목사님은 사도 바울이 에베소 교회에서 3년간 사역을 하고 있었을 때 골로새 교회가 시작되었고 그 교회를
개척한 사람은 바울이 아니라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7절에 언급하고
있는 “에바브라”라고 말하고 있고 에바브라는 에베소서를 방문했을 때 바울을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은 후 다시 골로새로 돌아와서 골로새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다가 골로새 교회를 개척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맥아더). 여러분,
우리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있었을 때 주님께서 주님의 사람을 우리에게 보내시사 예수 그리스도를 복음을 듣게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가 없었다면
우리는 복음을 들을 기회도 없었을 것이고 우리가 복음을 아예 듣지도 못했다면 우리는 예수님에 대해서 알 수고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로마서 10장 13-15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그런즉 그들이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
전파하는 자가 없이 어찌 들으리요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으면 어찌 전파하리요 기록된 바 아름답도다 좋은 소식을 전하는 자들의 발이여 함과 같으니라”[(현대인의 성경) “누구든지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이다.'
라는 성경 말씀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지도 않은 분을 어떻게 부르며 듣지도 못한 분을 어떻게 믿겠습니까? 전하는 사람이 없이 어떻게 듣겠습니까? 또 보내심을 받지 않고 어떻게 전하겠습니까?
이것은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이 참으로 아름답구나!' 라고 한 성경 말씀과 같습니다”].
(b)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골1:6). 주님께서 에바브라를 구원하시사 그를 통하여 골로새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게 하시므로 그 불신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2장 8-9절에서 이렇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것은 우리의 선행으로 된 것이 아니므로 아무도 자랑할 수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를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골로새서 1장 13-14절에서 바울이 말한 것처럼 골로새 교회 성도들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죽으시사 흘리신 피의 대가로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은 것과 하나님께서 그들을 어두움의 권세에서 건지사 하나님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 주신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또한 골로새서 1장
21-22절의 말씀대로 악한 행실로 하나님을 멀리 떠나 마음으로 하나님과 원수 되었던 골로새인들을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인
죽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사 그들을 하나님의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할 것이 없는 자로 하나님 앞에 세워주신 것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입니다. 골로새서
3장 10절 말씀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새 사람”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12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가 “하나님이 택하신 사랑받는 거룩한
사람들”이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24절 현대인의 성경 말씀으로 말한다면, 하나님의 은혜란 우리가 장차 주님에게 하늘의 축복의 상으로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은혜란 골로새인들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주님으로 받아들인 것입니다(2:6,
현대인의 성경).
(c)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는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골1:6).
제가 2009년 7월
22일에 “하나님의 은혜”란 제목 아래 이런 짧은 말씀 묵상 글을 썼었습니다: “한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롬5:12).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모두가 죄인이 되었습니다
(19절). 그리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습니다(12절). 그러나 죄가 더한 곳에 하나님의 은혜가 더욱 넘쳤습니다(20절).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는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아 선물(은사)이 많은 사람에게 넘쳤습니다(15절). ‘이 선물은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합니다(16절).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사망이 그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왕 노릇하였은즉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이 한 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할 것입니다’(17절).
우리는 한 사람 마지막 아담인 예수 그리스도의 의의 한 행동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게 되었습니다(18절).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인이 되었습니다(19절). 그의 십자가에
죽으시기까지 하나님 아버지께 순종하시므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신 선물은 바로 ‘영생’입니다(21절). 이 선물을 받은
저와 여러분들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오늘도 살아가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 묵상을
다시 읽으면서 제가 인용한 로마서 5장 12절부터의 성경 구절 한절
한절 말씀을 믿고 깨달아 간다는 그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가 없이는 우리가 이 하나님의 말씀을 결코 깨달을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짧은 말씀 묵상의 글입니다. 2021년 11월
30일에 “나중에라도 깨달음은 은혜입니다”라는 제목아래 이런 글을 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구약 성경 말씀대로 행하고 계셨는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 일을 깨닫지 못했다가 예수님께서 나중에 영광을 받으신 후에야 깨달았습니다(요12:16, 현대인의 성경). 나중에라도 깨닫게 되는 것 또한 하나님의 은혜라 생각합니다. 그 이유는 나중에라도 깨닫지 못함은 불신과 더불어 이해가
아닌 충분히 오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짧은 말씀 묵상의 글 하나만 더 나누고 싶습니다. “깨달음을 간구해야 합니다”라는 제목 아래
2021년 2월 22일에 쓴 글임: “우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이 절실히 필요한 상황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 그 상황에서 건져주시길 간절히 부르짖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말씀대로 우리를 깨닫게 해주시길 간구해야 합니다(시119:169). 그
깨달음이란 (1) 나는 무력한(helpless) 존재라는 사실과
(2) 하나님은 나의 진정한 도와주시는 분(Helper)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의
입장에서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 내려가면서 오늘 본몬 골로새서
1장 6절에서 “… 너희가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라고 말했을 때 편지를 받는 골로새에 있는 신실한 성도들이 받은 하나님의
은혜란 3가지입니다: (1)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에바브라를 통해) 골로새에 있는 불신자들에게 임했다는 것(6절), (2)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6절), (3)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것(6절).
(3) 골로새 교회 ‘성도들 중에서와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나고 있다’는 말씀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골1:6).
탈무드에 감출
수 없는 3가지가 있다고
합니다. 그 세 가지란 “기침과 가난과
사랑”이라고 합니다. 감기는 시도 때도
없이 나오는 “기침” 때문에 숨길 수 없으며, 가난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리고 사랑하는 마음도 숨길 수 없습니다. 그런데 감출 수 없는 것이 하나 더 있는데 그것은 바로 “열매”입니다(인터넷). 마태복음
7장 16절과 20절을 보면 예수님께서는 열매를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는데 그 의미는 열매를 보고 나무를 아는 것처럼 선지자들도 그들의 행동을 보고 진짜 선지자들인지 거짓 선지자들인지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현대인의 성경).
예수님은 17-1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좋은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기 마련이다.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나쁜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다”(현대인의 성경). 또한 그 유명한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 비유를 보면 예수님께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와 “열매 맺는 가지”가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요15:2, 현대인의 성경). 다시 말하면, 예수님께서는
열매를 맺지 못하는 제자들과 열매를 맺는 제자들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열매를 맺는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 안에 거하는 자들이요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자들로서(4,
7절) 예수님의 말씀을 지킵니다(7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면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합니다(7,
16절). 그러므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열매를 많이 맺습니다.
오늘 본문 골로새서 1장 6절을 보면 사도 바울은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들에게 편지를 써내려가면서 이렇게 말씀했음: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현대인의 성경) “여러분이 기쁜 소식을 듣고 진리
가운데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열매를 맺은 것처럼 그 말씀이 온 세계에서도 그렇게 열매를 맺으며 전파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열매를 맺어 자란다’는 말씀은 계속해서 열매를 맺고(keeps
on bearing fruit) 또한 증가한다(increasing)라는 의미인데(KJV
성경 주석) 그 의미에는 특히 ‘말씀의 열매’를 내포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현대인의 성경은 “… 그 말씀이 온 세계에서도 그렇게
열매를 맺으며 전파되고 있습니다”라고 번역을 한 것입니다(6절, 현대인의
성경). 이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생각할
때 물론 하나님께서 골로새 교회의 신실한 성도로 하여금 말씀의 열매를 맺게 하신 것입니다[(고전3:7,
새번역) “그러므로 심는 사람이나 물주는 사람은 아무것도 아니요, 자라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그 책임이란 주님의 종인 에바브라를 통하여 받은 하나님의 말씀(골1:7)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살전2:13). 그래야 하나님의 말씀이 믿는 자들 속에서 역사할 것이기 때문입니다(13절, 현대인의 성경). 그러나 출애굽 당시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했습니다(히4:2). 다시 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음. 그러므로 그들이 들은 말씀이 자기들에게 유익이 되지 못했습니다(2절, 현대인의 성경). 그래서
사도 바울은 쉬지 않고 골로새 교회 성도들이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으로 채워져서 주님을 믿는 성도다운 생활을 하여 모든
일에 주님을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기를 위해 기도했습니다(골1:9-10, 현대인의 성경). 그뿐만
아니라 바울은 주님께 받은 사명을 따라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아낌없이 하나님을 말씀을 전하고자 했습니다(25절, 현대인의 성경). 그 목적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비밀인 그리스도를 알도록
하기 위함이요(2:2, 현대인의 성경) 또한 그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서였습니다(1:28).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게 하시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에 감사하는,
제임스 김 나눔
(2022년 7월 17일, 예수 그리스도와 복음의 열매를 더욱더 맺게 하시는 은혜와 축복을 사모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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