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अध्याय 5: “लोभ” को रिक्त करना

  अध्याय 5: “लोभ” को रिक्त करना         पिछले अध्याय में हमने “घमंड” को रिक्त करने के द्वारा उस हृदय को देखा जो स्वयं को परमेश्वर से ऊँचा करना और अपनी इच्छा को पहले रखना चाहता है। अब अध्याय 5 में हम “लोभ” को देखेंगे। घमंड के साथ लोभ भी हमारी आत्मा को गहराई से जकड़ता है, हमें परमेश्वर में संतुष्ट होने से रोकता है और संसार की वस्तुओं को लगातार पकड़ते रहने के लिए प्रेरित करता है।   हमें परमेश्वर के वचन के सामने ईमानदारी से खड़े होकर अपने भीतर बसे लोभ की वास्तविकता का सामना करना और उसे रिक्त करना सीखना चाहिए।    एक बड़े अस्पताल के कैंसर केंद्र के पूर्व निदेशक डॉ. ली ही-दे ने कैंसर कोशिकाओं के शारीरिक स्वभाव की तुलना एक आत्मिक सिद्धांत से की थी।   सामान्य कोशिकाएँ एक निश्चित व्यवस्था के अनुसार बढ़ती और मरती हैं। परंतु असामान्य आनुवंशिक परिवर्तन होने पर ऐसी विकृत कोशिकाएँ उत्पन्न हो सकती हैं जो मरती नहीं, बल्कि निरंतर बढ़ती रहती हैं। यही कैंसर कोशिकाएँ हैं।   कैंसर कोशिकाएँ अपने विस्तार के लिए उन पोषक तत्वों को भी अपने लिए ले ...

"괴로운 행복"

"괴로운 행복" 예레미야 선지자가 그가 불러 준 모든 말을 책에 기록한 바룩에게 “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고 일러 주었 ” 습니다 : “ 바룩아 , 너는 ‘ 아 , 괴롭다 .   여호와께서 나의 고통에 슬픔까지 더하셨으니 내가 탄식하다가 지쳐 평안을 얻지 못하였구나 .’ 하였다 ”( 예레미야 45:1-3,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사도 바울의 탄식과 절규인 로마서 7 장 24 절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 현대인의 성경 ) “ 아아 , 나는 얼마나 비참한 사람인가요 !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구해 내겠습니까 ?”].   그리고 또 생각난 말씀은 작년 12 월 14 일에 갑자기 사고로 이 세상을 떠난 친구 익순이의 어머님께서 저에게 카카오톡으로 보내신 메시지 중에 “ 괴로운 행복 ” 입니다 .   그리고 방금 생각난 것은 복음성가 “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 보라 ” 입니다 : (1 절 ) 괴로울 때 주님의 얼굴보라 평화의 주님 바라보아라 세상에서 짓밟힌 친구들아 위로의 주님 바라보아라 , (2 절 ) 힘이 없고 내 맘이 연약할 때 능력의 주님 바라보아라 주의 이름 부르는 모든 자를 힘주시고 늘 지켜주시리 , ( 후렴 ) 눈을 들어 주를 보라 네 모든 염려 주께 맡겨라 슬플 때에 주 예수 얼굴보라 사랑의 주님 안식 주리라 .

언행일치가 안 되는 제 자신의 모습은 결국 제가 교만해서 그렇다는 책망입니다.

언행일치가   안   되는   제   자신의   모습은   결국   제가   교만해서   그렇다는   책망입니다 .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해 유다 백성들에게 이집트로 가지 말라고 말씀하셨을 때 이사랴와 요하난과 그 밖의 모든 교만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보내 그들이 이집트에 가서 살면 안 된다는 것을 말하라고 하지 않았다고 예레미야에게 말했습니다 .   그러면서 그들은 바룩이 예레미야를 선동해서 자신들을 대적하게 한다고 말했습니다 .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여 이집트로 가면서 바룩도 같이 갔습니다 ( 예레미야 43:1-7, 현대인의 성경 ).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할 때 교만한 사람들의 말 ( 바룩이 예레미야를 선동해서 자신들을 대적하게 한다고 말했는데 ) 과 행동 ( 바룩도 거느리고 이집트로 함께 갔음 ) 이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   언행일치가 안 되는 제 자신의 모습은 결국 제가 교만해서 그렇다는 책망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