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장: ‘비우기’(Kenosis)란?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비우기’란 무엇입니까?
바울은 빌립보서 2장에서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겸손과 자기 비움의 모습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낮추어 종의 형체를 가지셨고,
하나님의 뜻에 끝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비우기’란 과연 무엇일까요? 그 답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빌립보서 2장 7절의 말씀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이 한 구절 안에 그리스도인의 제자도가 걸어가야 할 중요한
길이 담겨 있습니다.
비우기의
시작은 성육신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신 사건을 우리는 성육신(Incarnation)이라고
부릅니다. 요한복음 1장 14절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여기서 말하는 ‘말씀’은 태초부터 하나님과 함께 계셨던 분이며, 동시에
하나님이신 분입니다(1절). 모든 만물이 그를 통하여 창조되었고(3절),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며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습니다(4절). 그런데 그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우리를 지으신 창조주께서
자신이 지으신 피조물의 자리까지 내려오신 것입니다. 하늘의 영광을 누리시던 분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셨고, 높임을 받으셔야 할 분께서 낮은 자리로
오셨습니다. 성육신은 기독교 신앙의
가장 놀라운 신비 가운데 하나입니다. 창조주께서 피조물 가운데 오셨고, 주님께서 종의 자리까지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여기에서 성경이 말하는 ‘비우기’의 의미가 시작됩니다.
‘케노시스’(kenosis)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빌립보서 2장 7절에서 “자기를 비워”라고 번역된 헬라어 동사는
“케노오”(κενόω)입니다. 여기에서 신학 용어인 “케노시스”(Kenosis)라는 표현이 나왔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자신을 비우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가장 먼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이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성을 비우신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고 해서 하나님이기를 그만두신 것이 아닙니다.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참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참 사람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성을 버리셨다고
이해한다면 성육신과 복음의 핵심 자체를 왜곡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자기를 비우셨다’는 말씀은 무엇일까요?
빌립보서 2장 전체의 문맥을 보면 그 의미를 더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본체이셨지만 자신의 지위와
영광을 붙들고 계시는 대신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종의 형체를 취하셨고 사람과 같이 되셨으며, 죽기까지, 십자가에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6~8절). 그러므로 예수님의 자기 비움은 신성을 버리는 비움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어 종의 자리로 내려가는 비움입니다.
주님은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우리를 섬기셨습니다. 자신의 영광을 드러내기보다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자신의 뜻을 앞세우기보다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셨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에서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케노시스의 모습입니다.
비움은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비우기’에
대한 중요한 원리를 하나 발견할 수 있습니다. 비운다는 것은 내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무조건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성경이 말하는 비움은 내가 내 삶의 주인이 되려는 마음을
비우고, 나 자신을 하나님의 뜻에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존재를 없애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그래서 비움은 소극적인 포기가 아니라 적극적인 순종입니다. “주님, 제가 원하는
것보다 주님의 뜻을 선택하겠습니다.” “내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사랑으로 섬기겠습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비움입니다. 이것이 성경적인 비움입니다.
예수님의
비움은 섬김으로 나타났습니다.
빌립보서 2장 7절에서 예수님의 자기 비움은 곧바로 한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종의 형체를 가지사.” 마음으로만 자신을 비웠다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내가 나를 비웠다면 그 결과는 다른 사람을 섬기는 삶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높은
분이셨지만 가장 낮은 자리로 내려오셨습니다. 주님은 섬김을 받으실 자격이 있으셨지만 오히려 사람들을 섬기셨습니다. 마가복음 10장
45절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그러므로 예수님의 비움은 단순히 ‘무언가를 포기하신 사건’이
아닙니다. 자신을 내어주어 다른 사람을
살리신 사건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에게
중요한 질문이 생깁니다. 나는 무엇을
비워야 하는가? 그보다 먼저 물어야
합니다. 나는 누구를 섬기기 위해 나
자신을 비워야 하는가? 이처럼 그리스도의
비움은 언제나 사랑과 섬김으로 나타납니다. 이처럼 비움은 언제나 사랑과 섬김을 향해 나아갑니다.
비운
자리는 무엇으로 채워야 하는가?
그러나 여기에서
한 가지 더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비움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빈 마음을 만드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비운 자리를 무엇으로 채우느냐가 더 중요합니다. 비움 자체가 목적은 아닙니다. 비운 자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워져야 합니다. 결국 비움의 목적은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래서 빌립보서 2장
5절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바울이 예수님의 자기 비움을 설명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예수님의 모습을 바라보라고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고 그분을 닮아 살아가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비움은 자신을 파괴하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서 더 온전히 살아 역사하시도록 자신을 내어드리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비움은 우리의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수님의 자기
비움은 단지 과거에 일어난 성육신의 사건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은 오늘 그분을 따르는 제자들의 삶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낮추어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시고 종의 자리에서 섬기셨듯이, 우리도 내가 주인이 되려는 마음을 비우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비우기’는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날마다 그리스도를 따라 살아가는 제자도의 과정입니다.
비움의
끝에는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예수님의 케노시스는
자신을 잃어버리는 길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자신을 온전히 내어드리는 길이었습니다. 주님은 신성을 버리신 것이 아니라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시고 섬기셨습니다. 자신을 보존하려 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마침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는 ‘비우기’도 이 길을 따라가야 합니다. 비움은 나를 없애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주인이 되려는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비움은 가진 것을 모두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가진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비움은 아무것도 남기지 않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워질 자리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비움의 끝에서 우리는 다시 한 번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이제부터 우리는 성경을
따라 우리의 삶에서 구체적으로 무엇을 비워야 하는지 하나씩 살펴보려고 합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의 자기 비움을 따라 우리의 삶에서 무엇을
비워야 하는지 말씀 앞에서 하나씩 살펴보려 합니다. 그 모든 비움은 결국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기 위한 비움이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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