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신하라 깨어라”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베드로전서 5장 8-9절).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5장 8절 말씀을 보면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우리의 “대적”은 “마귀”라는 사실입니다. “마귀”란 헬라어로 “διάβολος”(다이볼로스)인데 그 의미는
“이간질하는 자”, “중상략하려는 자”입니다. 즉,
마귀는 하나님과 성도인 우리 사이 뿐만 아니라 성도와 성도 사이의 관계를 이간질하여 찢어놓습니다(인터넷). 이 “마귀”가 우리의 “대적”이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대적”이란 마귀는 영적 법정에서 끊임없이 성도의 죄를 들추어내고 참소(고발)하여 낙심하게 만드는
존재란 말입니다(인터넷). 요한계시록 12장 10절 하반절 말씀입니다: “… 우리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 곧 우리 하나님 앞에서 밤낮 참소하던 자가 쫓겨났고.” 여기서 “참소”란 남을 헐뜯고 죄를 뒤집어씌워 윗사람에게 고발한다는 뜻입니다. 즉, 사탄 마귀가 하나님 앞에서 성도들의 죄와 허물을 들추어내며 끊임없이 고발하는 역할을 해왔음을 의미합니다(인터넷). 성경은 이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벧전5:8). 여기서 “우는 사자”란 배가 고파서 눈이 뒤집힌 상태로서 극도로 사나워진 사자가 먹잇감을 향해 으르렁거리는 소리를 뜻합니다(인터넷). 즉, 마귀가 '우는 사자' 같다는 것은 성도들에게 환경, 질병, 재정, 박해 등의 고난을 통해
극심한 두려움을 심어준다는 뜻입니다(인터넷). 왜 마귀는 우리에게 고난을
통해 극심한 두려움을 심어줍니까? 그 이유는 우리가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영적인 판단력이 흐려지고 하나님을 의심하며 스스로 믿음을 포기하게 되기 때문입니다(인터넷).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도 “근신하라 깨어라”(8절)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의 궁긍적인 의미는 영적으로 정신을 바짝 차리고 마귀의
공격에 방비하라는 강력한 이중 명령입니다. 이 이중 명령의 첫 번째 명령은 “근신하라”인데 그 본래 의미는 “술 취하지 않다”, “포도주를
마시지 않고 절제하다”라는 뜻입니다. 영적인 의미로는 주변 환경이나 세상 유혹, 혹은 자신의 염려와 감정에 흔들리지 않고 '차분하고 명석한 정신 상태를 유지하는 것'을 뜻함. 마귀의 속임수에
넘어가 영적인 혼미함이나 충동에 빠지지 않도록 마음의 브레이크를 잡는 상태를 말합니다. 여기서 “마음의 브레이크를
잡는”다는 것은 마귀가 우리의 “생각”을 통해 거짓말이나 속임수를 심으려고 할 때, 그래서 우리가 어떤 부정적인 생각이나 충동이
들 때, 그것을 내 생각으로 덥석 받아들이지 말고 “이 생각이 하나님이
주신 생각인가? 아니면 마귀가 심어준 생각인가?” 하나님의 말씀의 잣대로
거르는 방어벽을 세워야 합니다(인터넷).
가장 교활한 사탄이 우리의 생각의 영역에 들게하는 의문들과 말들을 우리는
매우 경계해야 합니다(창3:1-5,
현대인의 성경). 그러기 위해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 묵상해야 함(시 1:2, 현대인의 성경),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고 또 생각하면 사탄이 우리의생각의 영역에 들게하는 의문들이나 말들을 분별하여 믿음으로 차단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의 의지로는 이렇게 마음의 브레이크를 잡을 수가 없습니다. 오직 성령님께서 내 안에서 브레이크를 잡아주셔야 합니다.
충동이 일 때마다 "성령님, 제 마음의 운전대를 잡아주시고 제 마음의 브레이크를 밟아주소서"라고 마음 속으로라도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인터넷).
이 이중 명령의 두 번째 명령은 “깨어라”입니다(벧전5:8). 본래 의미는 육신적으로 '잠들지 않고 한밤중에 눈을 뜨고 있다', '파수꾼이 보초를 서다'라는 뜻입니다.
성경적 의미는 단순히 잠을 안 자는 것이 아니라, 위험을 직시하고 경계
태세를 취하는 '영적 경각심'을 의미합니다.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적(마귀)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철저히 방비하는 군사적 긴장 상태를 나타냅니다(인터넷). 어떻게 우리는
영적 경감심을 가지고 언제 들이닥칠지 모르는 마귀의 움직임을 주시하며 철저히 방비해야 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마귀의 이동 경로 주시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약점'과 '틈'을 감시해야 합니다. 마귀는 아무 곳이나 찌르지 않고, 개인의 가장 취약한 '영적 사각지대'를 통해 들이닥칩니다.
이 통로를 늘 주시해야 합니다. 또한 우리는 감정의 틈을 감시해야 합니다. 에베소서 4장
26-27절 말씀입니다: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해결되지 않은 분노, 쓴 뿌리, 억울함은 마귀가 가장
좋아하는 침투 경로입니다. 우리는 상황의
틈도 감시해야 합니다. 육체적으로 극도로
지쳤을 때, 영적인 침체 기일 때, 혹은 반대로 모든 일이 잘 풀려
영적으로 방심할 때(선 줄로 생각할 때) 마귀는 급습합니다. 우리 각자의 삶에서 마귀에게 자주 내어주는
'단골 메뉴(예: 음란, 비교의식, 재정적 염려, 말의 실수)'가 무엇인지 파악하고 그곳에 집중적인 방어벽을 세워야 합니다(인터넷).
또한 오늘 본문 베드로전서 5장 9절은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대적하라”는 헬라어 단어의 의미는 머뭇거리지 말고 지금 즉시 단호하게 결단하여 맞서라는 의미입니다(인터넷). 다시 말하면, 마귀가 우는 사자처럼 덤벼들 때, 두려워서 뒷걸질 치거나 도망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내 삶의 자리(믿음의 진지)를 두 발로 빳빳이 서서 버텨내라는 뜻임. 마귀는 도망치는 자의 등 뒤를 사정없이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미 사탄의 머리를 깨뜨리시고 승리하셨기 때문에, 성도의 대적은 새로운 승리를 쟁취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주님이 이겨놓으신 '승리의 영토'를 마귀에게 한 뼘도 빼앗기지 않도록 굳건히 버티는 것이 대적의 본질입니다”(인터넷). 그리고 성경은
“믿음을 굳건하게 하”라(9절)고 말씀하고 있는데 여기서 ‘굳건하게 하다’라는 헬라어
“στερεοί”(스테레오이)라는 단어의 물리적 뜻은 “딱딱한”, “단단한”, “속이 꽉 찬”,
“단단한 바위 같은”이라는 뜻입니다(인터넷). 흥미로운 점은 이 단어는 건축에서는 집을 지을 때 흔들리지
않는 “기초 암반"을 뜻합니다. 그리고 히브리서 5장
14절에서는 장성한 자가 먹는 '단단한 음식(단단한 식물)'을 표현할 때도 이 단어가 쓰였습니다(인터넷). 구체적인 영적 의미 3가지입니다(인터넷):
(1) 내부가 꽉 찬 밀도 높은 믿음 (속이 찬 신앙)
'스테레오이'는 겉만 번지르르한 것이 아니라 속이 밀도 있게 꽉 찬 상태를 뜻합니다.
마귀는 성도의 마음에 의심, 염려, 두려움의 틈새가 보이면 그 공백을 비집고 들어옵니다. 반면, 말씀과 기도로
영적 영양분이 꽉 채워진 성도는 마귀가 찔러도 들어갈 틈이 없는 '밀도 높은 믿음'을 가집니다.
(2)
외부의
충격에 변형되지 않는 믿음 (부동의 신앙)
우는 사자가 아무리 무섭게 포효하고 고난의 바람이 불어와도, 믿음의 모양이 찌그러지거나 흔들리지 않는 '견고함'을 뜻합니다. 상황과 환경에 따라 이랬다저랬다 유동적으로 변하는 신앙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라는 반석 위에 뿌리를 내려 모양이 고정된 '바위 같은 믿음'입니다.
(3) 군사들이 스크럼을 짜서 결속된 믿음 (공동체의 연대)
이 단어가 복수형('스테레오이')으로 쓰였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베드로 사도는 개인의 믿음뿐만 아니라, 교회 공동체가 서로 어깨를 걸고 틈새가 없도록 단단한 성벽처럼 결속된 상태를 염두에 두었습니다. 군사들이 방패와 방패를 맞대어 거대한 철벽을 만들듯,
성도들이 믿음 안에서 하나로 뭉쳐 있을 때 마귀는 결코 침투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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