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장: “음란” 비우기
간음하는 자는
지각이 없는 자라 이것을 행하는 자는 자기의 영혼을 망하게 하며 상함과 능욕을 받고 부끄러움을 씻을 수 없게 되나니”(잠 6:32-33).
앞 장에서는
우리 마음속에 자리 잡은 악한 생각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겉으로 드러난 행동만이 아니라 그 행동이
시작되는 마음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런데
마음속에 자리 잡는 악한 생각 가운데 특별히 경계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음란한 마음과 정욕입니다.
성적인 죄는
어느 날 갑자기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눈으로 본 것을 마음에 계속 품고, 관심을 가져서는 안 될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며,
잘못된 욕망을 반복해서 키울 때 결국 행동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다윗의 경우가 그러했습니다. 사무엘하 11장에 보면
다윗은 왕궁 옥상을 거닐다가 목욕하는 한 여인을 보았습니다. 그 여인은 매우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거기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 여자가 누구인지 알아보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우리아의 아내 밧세바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데려오게
하여 간음했습니다. 다윗의 죄는 한순간에
완성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았습니다. 관심을 가졌습니다.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결국 욕망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그러므로 음란을 비운다는 것은 간음이라는 마지막 행동만 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음란을 비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을 나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대상으로 바라보는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께서 정하신 사랑의 질서
안에서 눈과 마음과 몸을 지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행동보다 마음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수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7-28). 예수님께서는 간음의 문제를 행동의 차원에서 마음의 차원으로까지
가져가셨습니다. 실제로 간음하지 않았다고
해서 마음까지 깨끗하다고 말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사람의 아름다움을 알아보는 것 자체와 그 사람을 정욕의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보았다는 사실 자체가 곧 죄는 아닙니다. 성적인 욕망 자체도 하나님께서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신
사실과 분리하여 무조건 악한 것으로 보아서는 안 됩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성을 하나님의 뜻과 질서에서 떼어내어 자기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하는 마음입니다. 다른 사람을 한 인격체가 아니라 내 욕망을 위한 대상으로
바라보고, 그 사람을 향한 정욕을 의도적으로 품고, 마음속에서 반복해서
즐기며,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넘으려고 할 때 죄가 자라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단순히 행동을 조심하라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의 시선과 마음까지 하나님
앞에서 살피라는 말씀입니다.
음란은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함께 무너뜨립니다
잠언 6장은 간음하는 사람이 결국 자기 자신을 망하게 한다고 경고합니다. 음란의 죄는 혼자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배우자에게 깊은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도 상처를 남길 수 있습니다. 가정을 흔들 수 있습니다. 교회와 공동체의 신뢰를 무너뜨릴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죄를 숨기기 시작하면 또 다른 죄가 따라오기 쉽습니다. 거짓말을 하게 됩니다. 휴대전화와 메시지를 숨기게 됩니다. 행적을 감추게 됩니다. 사람들 앞에서는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행동하면서 은밀한
삶을 따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렇게
음란은 거짓과 위선을 함께 끌고 들어옵니다. 그래서 처음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한 번 보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마음으로만 생각하는데 무슨 상관인가?” “그저 친한 관계일
뿐이다.” “아직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렇게 자신을 안심시키다 보면 어느 순간 자신이 생각하지
못했던 자리까지 갈 수 있습니다. 죄를
이기는 가장 지혜로운 길 가운데 하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가서 버티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죄의 길에서 방향을 돌리는 것입니다.
눈을
지키고 마음을 지켜야 합니다
요한일서 2장 16절은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경고합니다. 우리의 눈은 마음에 영향을 줍니다. 그러므로 무엇을 보는지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음란이 언제나 눈에서만 시작되는 것은 아닙니다. 외로움에서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인정받고 싶은 욕구에서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배우자에 대한 불만이나 관계의 갈등 속에서 다른 사람에게
정서적으로 마음을 기대면서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인터넷과 영상, 소셜미디어를 반복해서 보면서 정욕을 키울 수도 있습니다. 직장이나 교회에서 만나는 사람과 필요 이상의 정서적인 친밀감을
쌓으면서 마음이 움직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단순히 “무엇을 보고 있는가?”만 물어서는 안 됩니다. “내 마음이 지금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나는 누구에게서
배우자에게 받아야 할 친밀함을 찾고 있는가?” “누구의 관심과 인정에 지나치게 마음이 끌리고 있는가?” “혼자 있을 때 나는
무엇을 반복해서 보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살펴야 합니다.
유혹
앞에서 자신을 지나치게 믿지 마십시오
잠언 7장은 음란의 유혹에 빠지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그는 위험한 곳으로 가까이 갑니다.
피해야 할 상황에 스스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결국 유혹의 말을 듣고 따라갑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원리를 배웁니다. 유혹을 이기는 것은 유혹의 한가운데 들어가서 자신의 의지가
얼마나 강한지를 증명하는 것이 아닙니다. 피해야 할 것은 피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보지 말아야 할 것은 보지 마십시오. 삭제해야 할 것이 있다면 삭제하십시오. 접속하지 말아야 할 곳에는 접속하지 마십시오.
불필요한 사적인 연락을 계속하지 마십시오. 마음을 흔드는 관계라면 적절한 경계를 세우십시오. 혼자 있는 시간과 공간에서 반복적으로 죄에 넘어지고 있다면
그 환경을 바꾸십시오. “나는 괜찮다.” “나는 목회자니까
괜찮다.” “나는 신앙생활을 오래 했으니 이 정도는 이길 수 있다.” “우리는 그냥 친한 사이일 뿐이다.” 이런 자기 확신이
오히려 위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것이 지혜입니다. 죄와 싸우는 사람은 죄 가까이에 있으면서 자신의 힘을 자랑하는 사람이 아니라 죄의 자리를 피하고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사람입니다.
사람을
욕망의 대상이 아니라 존귀한 존재로 바라보십시오
음란의 깊은
문제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을 바라보는 시선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몸은 내가 마음대로 바라보고 상상하며 이용할 수 있는 대상이 아닙니다. 직장에서 만나는 이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만나는 이성을 존중해야 합니다. 온라인에서 보는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사람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욕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 그 사람의 인격과 존엄은 뒤로 밀려나고 나의 욕망만 앞에 서게 됩니다. 이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지만 정욕은 상대방을 통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합니다. 사랑은 상대방을
존중하지만 정욕은 상대방을 이용하려고 합니다. 사랑은 경계를 지키지만 정욕은 경계를 넘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음란을 비운다는 것은 성적인 욕망을 억누르는 것만이 아닙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바라보는 시선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결혼은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성경은 성 자체를
더럽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결혼이라는 언약 안에서 부부가 서로 사랑하며 한 몸을 이루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결혼 안에서 이루어지는 부부의 사랑과 성적인 친밀함은
하나님께서 주신 아름다운 선물입니다. 문제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하나님의 뜻과 질서에서 떼어내어 자신의 욕망을 위해 사용하는 것입니다. 부부는 서로를 욕망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대해서는 안 됩니다. 서로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배려해야 합니다. 성적인 관계에서도 일방적인 요구보다 사랑과 책임과 서로를
향한 배려가 중요합니다. 결혼의 친밀함은
소유가 아니라 사랑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성은 아름답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정하신 경계를 벗어난 정욕은 그 아름다운 선물을 왜곡시킵니다.
배우자를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잠언 5장 18절은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고 말씀합니다. 결혼한 사람은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배우자를 귀하게 여기고
결혼의 언약 안에서 만족과 신실함을 배워야 합니다. 그러나 비교가 시작되면 만족이 흔들립니다. “저 사람은 내 배우자보다 더 아름답다.” “저 사람은 내 배우자보다 나를 더 이해해 준다.” “저 사람은 내 말을
더 잘 들어준다.” “저 사람과 함께 있으면 내가 더 인정받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을 계속 품으면 배우자의 부족함은 점점 크게 보이고
다른 사람의 장점은 점점 크게 보입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 몸보다 먼저 마음이 배우자를 떠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결혼의 신실함은 육체적인 간음을 하지 않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마음과 몸과 관계에서
배우자에게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배우자의 장점을 다시 보십시오.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친밀함을 가꾸십시오. 서로의 필요를 정직하게 이야기하십시오. 상처가 있다면 외면하지 말고 대화하십시오. 결혼은 저절로 건강해지는 관계가 아닙니다. 사랑은 돌보아야 합니다.
부부의
어려움은 간음의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부부 사이에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정서적인
거리가 생길 수도 있습니다. 성적인
어려움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서로의
필요가 다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됩니다. 부부가 정직하게 대화하고 필요하다면 지혜로운 도움을 받으며 관계를 돌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분명합니다. 배우자와의 관계가 어렵다는 사실이 간음을 정당화하지는 않습니다. “배우자가 나를 이해해 주지 않았다.” “배우자가 나를 사랑해
주지 않았다.” “우리 부부관계가 오래전부터 좋지 않았다.” 이러한 어려움은 진지하게 다루어야 하지만 자신의 간음을 다른
사람의 책임으로 돌리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죄에 대한 책임은 자신의 선택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문제가 생겼을 때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옮기기보다 먼저 배우자와 정직하게 대화하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배우자에게 충실하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과 관계를 갖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허락하신 배우자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그 언약에 마음과 몸과 삶으로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음란의
문제 앞에서 다른 사람보다 먼저 자신을 살피십시오
성적인 죄는
쉽게 다른 사람을 정죄하게 만드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죄에는 매우 민감하면서 자신의 마음속 정욕에는 둔감할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8장에서 간음
중에 잡힌 여인을 사람들이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그들은 그 여인의 죄를 문제 삼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간음이 죄가 아니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다른 사람의 죄를 정죄하기 전에 자신도 하나님 앞에
서 있는 죄인임을 기억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내 눈은 깨끗한가?” “내 마음속에 반복해서 품는 정욕은 없는가?” “배우자가 아닌 사람에게
정서적으로 지나치게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나는 다른 사람의
죄를 비판하면서 내 마음의 죄를 숨기고 있지는 않은가?” 다른 사람에게 돌을 들기 전에 자신의 마음을 하나님 앞에
내어놓아야 합니다.
죄를
깨달았을 때 숨기지 말고 하나님께 돌아가십시오
음란의 죄에
빠졌을 때 죄를 숨기기 시작하면 문제는 더 깊어집니다. 거짓이 따라옵니다. 위선이
따라옵니다. 책임을 피하기 위한 변명이
따라옵니다. “상대방이 먼저 다가왔다.” “배우자 때문에 외로웠다.” “나는 어쩔 수 없었다.” “한 번뿐이었다.” 이렇게 자신의 죄를
합리화하면 회개에서 점점 멀어집니다. 다윗도 처음에는 자신의 죄를 숨기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죄가 드러났을 때
마침내 “내가 여호와께 죄를 범하였노라”고 고백했습니다. 음란을 비우는 사람은 한 번도 유혹을 받지 않는 사람이 아닙니다. 죄를 깨달았을 때 숨기지 않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사람입니다.
죄를 인정해야 합니다. 변명을 멈추어야 합니다. 필요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끊어야 할 관계가 있다면 끊어야 합니다. 도움을 받아야 한다면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회개는 단지 “잘못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죄에서 방향을 돌리는 실제적인 변화가 따라야 합니다.
죄보다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십시오
그러나 성적인
죄를 다룰 때 경고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복음에는 회복도 있기 때문입니다. 호세아서에서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지 못한 이스라엘을 향한 자신의 사랑을 호세아의 가정을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떠나 다른 신들을 따랐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버리는 것으로 끝내지 않으시고
다시 돌아오라고 부르셨습니다. 이것은
간음이 가벼운 죄라는 뜻이 아닙니다. 오히려 죄의 심각함과 함께 죄인보다 크신 하나님의 은혜를 보여 줍니다. 그러므로 음란의 죄에 빠진 사람도 “나는 이제 끝났다”고
생각하며 죄 가운데 머물러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 돌아가야 합니다. 회개해야 합니다. 필요한
책임을 져야 합니다. 그리고 다시 신실한
삶을 시작해야 합니다. 다만 용서와
관계의 회복을 동일하게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간음으로 배우자에게 깊은 상처를 입혔다면 단순히 “하나님께 용서받았으니 이제 다 끝났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상처받은 배우자의 아픔을 존중해야 합니다. 진실한 회개와 책임이 필요합니다. 신뢰가 다시 세워지는 데에는 시간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목회적이고 전문적인 도움도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반복적인 기만이나 다른 심각한 해가 있는 상황에서는
배우자의 안전과 존엄도 중요하게 고려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가볍게 만들지 않습니다. 오히려 죄를 정직하게 인정하고 책임 있게 돌이킬
힘을 줍니다.
육체의
간음보다 더 깊은 사랑의 문제도 살펴야 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따르는 일을 간음에 비유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과의 관계를 언약적인 사랑의 관계로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적인 음란을 살피면서 더 깊은 질문도 해야
합니다. “내 마음이 가장 사랑하는
것은 무엇인가?” 돈일 수 있습니다. 성공일
수 있습니다. 명예일 수 있습니다. 자녀일 수도 있습니다. 가정일 수도 있습니다. 심지어 교회와 사역의 성공일 수도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선물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면 선물이
우상이 될 수 있습니다. 배우자도 하나님보다
높은 자리에 둘 수 없습니다. 자녀도
그렇습니다. 가정도 그렇습니다. 교회도 그렇습니다. 그러므로 음란 비우기의 가장 깊은 자리에는 결국 우리의 사랑이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라는 질문이 있습니다. 잘못된 사랑의 방향을 비우고 우리의 사랑을 다시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음란” 비우기의 원리와 실천 지침
그렇다면 우리는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음란을 어떻게 실제로 비워 갈 수 있을까요? 음란 비우기는 단순히 “간음하지 않겠다”고 결심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우리의 눈과 마음과
관계와 몸을 하나님께 드리고, 유혹이 자랄 수 있는 자리를 지혜롭게 다루며, 잘못된 욕망을 비운 자리를 그리스도의 사랑과 신실함으로 채워 가는 과정입니다.
1.
눈과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지키십시오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어떤 영상과 사진을 반복해서 보는지, 어떤 사람에게 시선이 계속 머무는지, 혼자 있을 때 무엇을 찾는지, 마음속에서 어떤 상상을 반복하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유혹이 되는 콘텐츠나 환경이 분명하다면 단호하게 거리를 두십시오. 필요하다면 접근 자체를 어렵게 만드십시오. 죄를 피하기 위한 실제적인 조치를 취하는 것은 믿음이 약해서가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지혜입니다.
2.
관계의
경계를 지키십시오
음란은
육체적인 관계 이전에 정서적인 관계에서 시작될 수도 있습니다. 배우자가 아닌 사람과 지나치게 개인적인 감정을 나누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보십시오. 배우자에게 숨겨야
할 메시지나 만남이 생기고 있다면 이미 경고 신호일 수 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다”는 말만으로 자신을 안심시키지 마십시오. 마음이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합니다. 특히 목회와 상담, 직장과 사역의 관계에서는 상대방을 존중하면서도 건강한 경계를 지켜야 합니다. 숨겨야만 유지할 수 있는 관계라면 그 관계를 하나님 앞에서
다시 살펴보아야 합니다.
3. 배우자를 귀하게 여기고 결혼의 친밀함을 돌보십시오
결혼한
사람은 다른 사람과 비교하기보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배우자를 다시 바라보아야 합니다. 감사를 표현하십시오. 대화하십시오. 함께 시간을 보내십시오. 상대방의 필요를 들어주십시오. 서로의 몸과 감정을 존중하십시오. 문제가 있다면 외면하지 말고 정직하게 이야기하십시오. 필요하다면 도움을 받으십시오. 결혼의 신실함은 간음을 하지 않는 소극적인 상태가 아니라
배우자를 계속 사랑하고 존중하며 언약을 돌보는 적극적인 삶입니다.
4. 죄를 숨기거나 합리화하지 마십시오
잘못된
욕망이나 관계가 시작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면 빨리 하나님께 가져가십시오. “아직 행동하지 않았으니 괜찮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나는 언제든 멈출 수 있다”고 자신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이미 죄를 범했다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지 마십시오. 자신의 선택을 인정하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십시오. 끊어야 할 것은 끊고, 고쳐야 할 것은 고치고, 책임져야 할 것은 책임져야 합니다. 진정한 회개는 죄를 감추는 데서 돌아서서 빛 가운데로 나오는
것입니다.
5.
비운
자리를 그리스도의 사랑과 신실함으로 채우십시오
음란을
비우는 목적은 욕망이 전혀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의 방향이 바로 서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욕망의 대상으로 보던 눈이 존중하는 눈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배우자를 비교하던 마음이 감사하는
마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자기 만족만을
구하던 마음이 상대방의 유익을 구하는 사랑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세상을 사랑하던 마음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그리고 혼자 있을 때에도 그리스도의 임재 안에서 살아가야
합니다. 말씀을 가까이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몸과 마음을 하나님께 드리십시오.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십시오. 정욕을 비운 자리를 방치하지 말고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우십시오.
그러나 이 모든
실천은 우리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다시는 그런 생각을 하지 않겠다.” “나는 절대로 넘어지지 않겠다.” 이런 결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힘을
지나치게 믿는 것이 위험할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눈과 마음을 지켜 주시고, 잘못된 욕망을 깨닫게 하시며,
유혹 앞에서 피할 길을 선택하게 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넘어졌을 때 숨지 않고 십자가 앞으로 돌아오게 하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 눈과 마음을 살펴 주십시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제가 무엇을 바라보고 무엇을 생각하는지
주님은 아십니다. 다른 사람을 제 욕망을
채우기 위한 대상으로 바라보지 않게 하시고,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귀한 사람으로 바라보게 하십시오.
잘못된 욕망과 관계를 비우게 하시고,
유혹의 자리를 피할 지혜와 용기를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제게 허락하신 배우자를 사랑하고
존중하며 결혼의 언약에 신실하게 하십시오. 죄를 깨달았을 때 숨기거나 변명하지 않고 즉시 주님께 돌아가게 하십시오. 제 마음에서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을 보여 주시고 그것을
비우게 하십시오. 정욕을 비운 제 마음을
그리스도의 사랑과 신실함으로 채워 주십시오.”
음란을 비운다는
것은 사랑을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된 욕망을 비우고 하나님께서 주신 참된 사랑의 질서를 회복하는 것입니다. 정욕을 비운다는 것은 기쁨을 버리는 것도 아닙니다.
잠시의 욕망보다 더 크고 깊은 기쁨을 그리스도 안에서 찾는 것입니다. 배우자에게 신실하다는 것은 단지 간음하지 않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과 몸과 삶으로 결혼의 언약을 귀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보다 더 깊은 자리에서 우리의 사랑이 다시 하나님을
향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바라보고 있는가?” “내 마음은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배우자가 아닌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고 있지는 않은가?” “아무도 보지 않을
때 나는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가?”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것이 내 마음에 있지는 않은가?” “내 몸과 마음과 관계는 지금 누구의 것이라고 생각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이 질문 앞에서 자신의 눈과 마음을 하나님께 내어드리십시오. 비워야 할 것을 비우십시오. 끊어야 할 것을 끊으십시오. 돌아와야 할 자리로 돌아오십시오. 그리고 그 빈자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우십시오. 음란은 “내 욕망을 채우라”고 말하지만, 믿음은 “내 몸과 마음은 주님의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음란 비우기는 욕망을 없애는 일이 아니라, 잘못된 욕망을 비우고 우리의
사랑을 다시 하나님께로 돌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걸어가야 할 “음란 비우기”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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