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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장: “미움” 비우기

  8 장 : “ 미움 ” 비우기         앞 장에서 우리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진실을 감추거나 바꾸는 ‘거짓’을 어떻게 비워야 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   이제 제 8 장에서는 우리의 마음과 관계를 깊이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죄 , 곧 ‘미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     사람은 살아가면서 상처를 받습니다 .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 억울한 일을 겪기도 하며 ,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   때로는 누군가의 말과 행동 때문에 깊은 분노가 생깁니다 .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아프고 화가 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습니다 .   문제는 그 상처와 분노를 어떻게 다루느냐입니다 .   상처를 계속 붙들고 상대방을 미워하며 , 그 사람이 잘못되기를 바라고 , 내가 받은 만큼 되갚아 주고 싶은 마음을 키우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미움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 .   요한일서 3 장 15 절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더라도 마음속에서 상대방을 끊임없이 정죄하고 저주하며 그의 불행을 바란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   그러므로 미움 비우기는 감정을 억지로 없애는 일이 아닙니다 .   상처와 분노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하도록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서 비우는 것입니다 .     가인과 아벨 , 미움을 비우지 못한 사람의 비극   성경에서 미움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건은 창세기 4 장의 가인과 아벨 이야기입니다 .   가인과 아벨은 각각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

8장: “미움” 비우기

 8: “미움비우기

 

 

 

 

앞 장에서 우리는 자신의 유익을 위해 진실을 감추거나 바꾸는 ‘거짓’을 어떻게 비워야 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제8장에서는 우리의 마음과 관계를 깊이 무너뜨리는 또 하나의 죄, 곧 ‘미움’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상처를 받습니다.  가까운 사람에게 배신을 당하기도 하고, 억울한 일을 겪기도 하며, 사랑받지 못했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때로는 누군가의 말과 행동 때문에 깊은 분노가 생깁니다.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 자체가 죄는 아닙니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아프고 화가 나는 것도 자연스러운 반응일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상처와 분노를 어떻게 다루느냐입니다.  상처를 계속 붙들고 상대방을 미워하며, 그 사람이 잘못되기를 바라고, 내가 받은 만큼 되갚아 주고 싶은 마음을 키우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미움이 우리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

 

요한일서 3 15절은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실제로 사람을 죽이지 않았더라도 마음속에서 상대방을 끊임없이 정죄하고 저주하며 그의 불행을 바란다면 하나님께서는 그 마음을 가볍게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미움 비우기는 감정을 억지로 없애는 일이 아닙니다.  상처와 분노가 내 마음의 주인이 되지 못하도록 그것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서 비우는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 미움을 비우지 못한 사람의 비극

 

성경에서 미움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가져오는지를 가장 먼저 보여주는 사건은 창세기 4장의 가인과 아벨 이야기입니다.  가인과 아벨은 각각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지만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자 가인은 몹시 분노했고 얼굴빛이 변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인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으며 죄가 그를 원하지만 그가 죄를 다스려야 한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은 하나님의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기보다 아벨을 바라보았습니다.  자신의 문제를 하나님 앞에서 다루기보다 동생을 향해 분노했습니다.  결국 마음속에서 자란 미움은 살인으로 이어졌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미움의 중요한 특징을 발견합니다.  미움은 어느 날 갑자기 완성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는 작은 서운함일 수 있습니다.  서운함이 오래 쌓이면 원망이 됩니다.  원망을 계속 품으면 분노가 되고, 분노를 비우지 않으면 미움으로 굳어질 수 있습니다.  그리고 미움은 결국 우리의 말과 행동을 지배하기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미움은 작을 때 다루어야 합니다.  마음속에 서운함과 분노가 생겼을 때 “별것 아니다”라고 방치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살펴야 합니다.  미움의 씨앗이 마음에 들어오는 것을 언제나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씨앗이 뿌리를 내리고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서는 안 됩니다.

 

미움은 복수하고 싶은 마음으로 자라납니다

 

창세기 27장에서 에서는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축복을 받은 후 동생을 죽이겠다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상처가 미움이 되었고, 미움이 복수심으로 발전한 것입니다.  우리도 상처를 받으면 비슷한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나도 똑같이 갚아주고 싶다.  “저 사람도 내가 당한 만큼 당했으면 좋겠다.  “언젠가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고 싶다.  이러한 마음이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우리는 중요한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최종적인 심판자가 아닙니다.  상대방의 잘못을 잘못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필요한 경우 책임을 물어야 할 수도 있습니다.  범죄나 폭력이 있다면 적절한 보호와 법적인 절차가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용서는 정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최종적으로 심판하고 보복할 권한까지 내가 붙들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로마서 12 19절은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라고 말씀합니다.  미움을 비운다는 것은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심판자가 되어 반드시 갚아주려는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공의에 맡기는 것입니다.

 

비교와 질투는 미움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사울 왕의 삶에서도 우리는 미움이 자라는 과정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돌아왔을 때 사람들이 사울보다 다윗을 더 높여 노래했습니다.  사울은 그 말을 마음에 담았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바라보는 그의 눈이 달라졌습니다.  비교가 질투가 되었고, 질투는 결국 미움으로 발전했습니다. 마침내 사울은 다윗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인정받을 때 마음이 불편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자녀가 더 잘되는 것처럼 보일 때, 다른 목회자의 교회가 더 성장할 때, 직장에서 동료가 나보다 먼저 승진할 때, 내가 아니라 다른 사람이 칭찬받을 때 마음속에 비교와 질투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 감정을 그대로 두면 어느 순간 그 사람 자체를 싫어하게 됩니다.  그 사람에게 잘못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이 잘되는 것이 싫어서 미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향한 미움을 발견했을 때 이렇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저 사람이 정말 잘못했기 때문에 내가 미워하는 것인가?” “아니면 내가 비교하고 질투하고 있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인가?  이 질문 앞에서 정직하게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미움은 마음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15 19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 마음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죄는 행동으로 나타나기 전에 마음에서 자랍니다.  그래서 분노가 올라올 때 즉시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는 것이 중요합니다.  잠언 16 32절은 “노하기를 더디 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고 말씀합니다.  감정이 격해졌을 때에는 잠시 멈출 필요가 있습니다.  그 자리에서 반드시 결론을 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즉시 문자나 이메일을 보내지 않아도 됩니다.  화가 난 상태에서 배우자나 자녀에게 하고 싶은 말을 모두 쏟아놓지 않아도 됩니다.  분노가 가라앉을 때까지 기다리고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먼저 살펴야 합니다.  “나는 왜 이렇게 화가 났는가?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상대방을 회복시키고 싶은가, 아니면 상처를 돌려주고 싶은가?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분노가 미움으로 자라는 것을 막는 데 도움이 됩니다.  분노가 올라올 때 멈추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자신을 다스리는 힘입니다.

 

미움은 가정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미움이 가장 깊은 상처를 남기는 곳 가운데 하나가 가정입니다.  가족은 서로 가장 가까이 있기 때문에 가장 깊이 사랑할 수 있지만, 동시에 가장 깊은 상처를 주고받을 수도 있습니다.  사무엘하 13장의 암논과 다말의 사건은 자기중심적인 욕망이 얼마나 무서운 상처와 미움을 낳을 수 있는지를 보여줍니다.  암논이 다말에게 품었던 것은 참된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는 정욕이었습니다.  그는 다말을 강제로 범한 뒤 오히려 그녀를 심히 미워했습니다.  참된 사랑은 상대방의 유익을 구합니다.  그러나 자기중심적인 욕망은 상대방을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대상으로 만듭니다.  암논의 죄는 거기에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사건으로 인해 다윗의 가정에 깊은 상처가 생겼고, 결국 압살롬의 복수로 이어졌습니다.  한 사람의 죄와 미움이 또 다른 미움과 복수를 낳은 것입니다.  미움은 혼자 머물지 않습니다.  가정 안에서 비워지지 않은 미움은 배우자에게 전달되고, 때로는 자녀에게까지 전달될 수 있습니다.

 

부부의 상처를 자녀에게 넘겨주지 마십시오

 

창세기 29장에서 레아는 남편 야곱에게 사랑받지 못하는 아픔을 경험했습니다.  자녀들의 이름에서도 남편에게 사랑받고 싶어 했던 그의 마음을 엿볼 수 있습니다.  배우자에게서 받지 못한 사랑과 인정 때문에 마음에 깊은 상처가 생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상처를 자녀를 통해 채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부부 갈등 속에서 자녀를 자기편으로 만들거나, 배우자의 잘못을 자녀에게 계속 이야기하거나, 배우자에게 받지 못한 정서적인 위로를 자녀에게 지나치게 요구하면 자녀가 부모의 갈등 속으로 끌려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녀는 부모의 외로움을 채우기 위해 존재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부부 사이의 문제는 가능한 한 부부가 하나님 앞에서 다루어야 합니다.  배우자를 향한 원망을 자녀에게 넘겨주지 마십시오.  자녀에게 다른 부모를 미워할 이유를 만들어 주지 마십시오.  내가 받은 상처가 다음 세대의 상처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미움을 비우는 것은 나 자신의 마음을 위한 일이면서 동시에 다음 세대를 보호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요셉은 미움받았지만 미움으로 살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37장에서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요셉을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했습니다.  비교가 시기를 낳았고, 시기는 미움으로 자랐습니다.  결국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고 애굽으로 가는 상인들에게 팔아버렸습니다.  요셉은 가족에게 버림받았습니다.  그는 미움받을 충분한 이유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놀라운 것은 요셉이 자신에게 행한 형들의 악을 자신의 인생을 지배하는 중심으로 만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39 21절은 감옥에서도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사람은 요셉을 버렸지만 하나님은 그를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이 믿음이 중요합니다.  사람에게 미움받았다고 해서 하나님에게도 버림받은 것은 아닙니다.  누군가 나를 오해한다고 해서 하나님까지 나를 오해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누군가 나에게 악을 행했다고 해서 그 사람이 내 인생의 마지막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요셉은 훗날 자신을 팔았던 형들을 다시 만났습니다.  그때 그는 복수할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복수하지 않았습니다.  창세기 50 20절에서 그는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요셉은 형들이 행한 악을 악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다”고 분명히 말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악보다 더 크신 하나님의 주권을 바라보았습니다.  이것이 미움을 비우는 데 매우 중요한 믿음입니다.  용서는 악을 선이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라, 악보다 크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미움을 받을 때에도 미움으로 대답하지 마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세상에서 미움을 받을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5장에서 주님은 세상이 주님을 미워했기 때문에 제자들도 미움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군가 나를 미워한다는 사실만으로 내가 반드시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미움을 받을 때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입니다.  상대방이 나를 미워한다고 해서 나도 그 사람을 미워하면 결국 그 사람이 던진 미움을 내 마음속에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히브리서 12 3절은 죄인들이 자신에게 거역한 일을 참으신 예수님을 생각하라고 말씀합니다.  미움받을 때 상대방만 바라보면 우리 마음도 점점 굳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십자가에서 자신을 위해 참으신 예수님을 바라보면 다른 길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악을 악으로 갚지 않고,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않고, 미움을 미움으로 갚지 않는 길입니다. 

 

용서는 미움이 내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형제가 자신에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해야 하는지를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용서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용서의 횟수를 계산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계속해서 용서하는 삶을 배우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용서에 대해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용서는 상대방의 잘못을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상처가 없었던 것처럼 행동하는 것도 아닙니다.  범죄를 숨기는 것도 아닙니다.  신뢰가 즉시 회복된다는 뜻도 아닙니다.  그리고 모든 관계가 반드시 이전과 똑같아져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필요한 경우에는 건강한 경계를 세워야 합니다.  반복적인 폭력이나 심각한 해를 당하는 상황이라면 안전을 확보하고 적절한 도움을 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용서와 화해도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용서는 내가 하나님 앞에서 시작할 수 있지만, 관계의 온전한 화해에는 상대방의 진실한 회개와 변화가 필요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용서란 상대방의 죄를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그 사람에 대한 최종적인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미움과 복수심이 내 마음을 지배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용서의 가장 큰 본은 십자가입니다

 

미움을 비우는 가장 깊은 자리는 결국 십자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향해 저주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는 우리가 어떤 사랑을 받은 사람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을 사랑했기 때문에 구원받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사랑받을 만했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것도 아닙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을 용서할 힘은 결국 내가 얼마나 큰 용서를 받았는지를 깨닫는 데서 나옵니다.  “저 사람은 용서받을 자격이 있는가?”만을 생각하면 용서하기 어렵습니다.  그러나 십자가 앞에서 질문이 달라집니다.  “나는 하나님께 얼마나 큰 용서를 받은 사람인가?  그 은혜를 기억할 때 우리는 조금씩 움켜쥐고 있던 미움을 비울 수 있습니다.  내가 용서받은 사람이기 때문에 다른 사람을 용서하는 법을 배워 갑니다. 

 

미움을 비우면 사랑이 다시 흐르기 시작합니다

 

잠언 10 12절은 말씀합니다: “미움은 다툼을 일으켜도 사랑은 모든 허물을 가리느니라.  허물을 가린다는 것은 죄를 숨기거나 잘못을 묵인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상대방의 약점과 실수를 붙잡아 자신을 높이는 도구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사랑은 과거의 잘못을 기억해 두었다가 싸울 때마다 다시 꺼내 공격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풀어 주신 은혜를 기억하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은혜를 베풀려고 합니다.  그러므로 미움을 비우는 일은 가까운 곳에서부터 시작해야 합니다.  배우자에게 쌓아둔 오래된 서운함을 살펴보십시오.  부모에게 품고 있는 상처를 하나님께 가지고 가십시오.  형제자매를 향한 경쟁심과 원망도 살펴보십시오.  교회에서 받은 상처와 사람에 대한 실망도 주님 앞에 가지고 가십시오.  직장에서 나를 힘들게 한 사람을 향한 분노도 하나님께 말씀드리십시오.  미움을 감추지 마십시오.  그러나 미움을 붙들고 살지도 마십시오.  하나씩 하나님 앞에서 비워야 합니다.  그리고 그 자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워야 합니다.

 

 

 

 

 

 

 

 

 

 

 

 

 

 

 

 

 

 

 

 

 

 

 

“미움” 비우기의 원리와 실천 지침

 

 

 

 

그렇다면 우리는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미움을 어떻게 실제로 비워 갈 수 있을까요?  미움은 한 번의 결단으로 모두 사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오래된 상처일수록 다시 생각나고, 이미 용서했다고 생각했던 일 때문에 다시 마음이 아플 수도 있습니다.  그때마다 실패했다고 생각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시 하나님께 가지고 가면 됩니다.  미움 비우기는 한 번의 감정적인 결단이라기보다, 상처와 분노가 다시 올라올 때마다 그것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랑을 선택해 가는 과정입니다.

 

1.   미움의 씨앗을 발견하면 하나님 앞에서 즉시 다루십시오.

 

작은 서운함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마음속에서 누군가를 계속 생각하며 화를 키우고 있다면 그 감정을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십시오.  “주님, 저 사람이 밉습니다.  “그 일을 생각하면 아직도 화가 납니다.  “저 사람이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까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인정하십시오.  미움이 없는 척하는 것은 비우기가 아닙니다.  먼저 미움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비울 수 있습니다.

 

2.   분노가 클 때에는 즉시 말하거나 행동하지 마십시오.

 

화가 난 상태에서는 말과 행동을 조심해야 합니다.  즉시 문자나 이메일을 보내지 마십시오.  배우자에게 생각나는 말을 모두 쏟아내지 마십시오.  자녀에게 분노를 그대로 퍼붓지 마십시오.  일터에서도 화가 난 상태에서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마십시오.  잠시 멈추고 기도하십시오.  필요하다면 거리를 두고 마음이 가라앉을 시간을 가지십시오.  그리고 나서 진실을 사랑으로 말하십시오.  분노를 억누르는 것과 분노에 지배되지 않는 것은 다릅니다. 감정을 부정하지 않되 감정이 나의 말과 행동을 결정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3.   복수하고 싶은 마음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상대방의 잘못을 내가 반드시 갚아주어야 한다는 생각을 비우십시오.  필요한 책임을 묻는 것과 복수하는 것은 다릅니다.  정의가 필요하다면 정당한 방법으로 문제를 다루십시오.  그러나 상대방을 무너뜨리는 것을 자신의 삶의 목표로 삼지 마십시오.  “하나님, 제가 심판자가 되지 않겠습니다. 이 일을 주님의 공의에 맡깁니다.”라고 기도하십시오.  미움을 비우는 중요한 순간은 내가 쥐고 있던 심판자의 자리를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순간입니다.

 

4.   가정의 상처를 다른 가족에게 전달하지 마십시오.

 

배우자에게 받은 상처를 자녀에게 풀지 마십시오.  자녀를 자기편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한 자녀를 다른 자녀와 비교하며 편애하지 마십시오.  부모에게 받은 상처를 배우자에게 반복하지 않도록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가정에서 미움의 흐름을 끊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 부모도 그렇게 살았으니 나도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그리스도 안에서는 다른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받은 상처를 다음 사람에게 넘겨주지 않고 내 세대에서 미움의 흐름을 끊는 것도 비우기의 중요한 실천입니다.

 

5.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고 박해하는 사람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기도를 시작하십시오.  “주님, 저 사람을 축복하고 싶은 마음이 아직 제게 없습니다. 그러나 제 마음을 다스려 주십시오.  이렇게 정직하게 기도해도 됩니다.  기도한다고 해서 반드시 그 사람과 즉시 가까워져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사람을 계속 저주하는 마음에서 벗어나 하나님께 맡기는 훈련은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눈물로 시작한 기도가 어느 날 긍휼의 기도로 바뀔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 실천도 우리의 힘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미움은 깊은 상처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제부터 미워하지 않겠다”고 결심한다고 즉시 사라지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 마음을 비추실 때 미움을 감추지 말고 인정해야 합니다. 그리고 십자가에서 받은 용서를 다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 안에 있는 미움을 보여 주십시오.  저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생각할 때 올라오는 분노와 원망과 복수심을 주님 앞에 숨기지 않게 하십시오.  제가 심판자가 되려는 마음을 비우고 모든 판단을 주님께 맡기게 하십시오.  제가 받은 상처를 배우자와 자녀와 다른 사람에게 다시 전달하지 않게 하시고, 미움을 미움으로 갚지 않게 하십시오.  십자가에서 저를 용서하신 주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게 하시고, 미움을 비운 제 마음을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워 주십시오.  미움을 비운다는 것은 상처가 없었던 것처럼 사는 것이 아닙니다.  잘못을 잘못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미움 비우기는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에게 내 마음의 주인 자리를 내어주지 않는 것입니다.  상대방의 잘못 때문에 내 마음이 평생 분노와 원망에 붙들려 살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내가 심판자가 되려는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의 공의에 맡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빈자리를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로 채워 가는 것입니다.  가인의 미움을 비워야 합니다.  에서의 복수심을 비워야 합니다.  사울의 질투와 미움을 비워야 합니다.  요셉처럼 사람의 악보다 크신 하나님의 손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십자가에서 자신을 미워하는 사람들까지 용서하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미움은 “갚아주어야 한다”고 말하지만, 믿음은 “하나님께 맡기겠다”고 고백합니다.  미움은 상처를 붙들고 살게 하지만, 사랑은 십자가를 붙들고 살아가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내가 아직도 미워하고 있는 사람은 누구인가?  “내가 놓지 못하고 반복해서 생각하는 상처는 무엇인가?  “내가 심판자가 되어 반드시 갚아주고 싶은 사람은 없는가?  “내가 받은 상처를 배우자나 자녀에게 전달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 이름과 그 상처를 하나님 앞에 가지고 가십시오.  그리고 하나씩 비우십시오.  비우기의 목적은 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미움을 비운 그 자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가정과 교회와 일터가 미움이 흘러가는 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사랑이 흘러가는 통로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걸어가야 할 “미움 비우기”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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