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죽으심 (5)
[행 1:1-11]
A.
우리가 예수님의
5대 사역중 두 번째인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묵상해오고 있음.
1.
오늘은 다섯 번째로 “예수님의 죽으심 (5)”이란 제목아래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함.
a.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8가지로 나눠서 묵상하고자 함: (1) 기도의 시간, (2) 기도의 장소, (3) 기도의 자세, (4) 기도의 내용, (5) 기도의 열심, (6) 기도의 인내, (7) 기도의 응답, (8) 기도의 결과.
(1)
지난 주 수요예배 때 우리는 이미 (1) 기도의 시간(죽게되었을 때)와 (2) 기도의 장소(하나님의 면전에서)를 묵상하였고, 오늘은 (3) 기도의 자세, (4) 기도의 내용, (5) 기도의 열심을 묵상하면서 주시는 교훈을 받고자 함.
B.
(눅22:39-46) “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그 곳에 이르러 그들에게 이르시되 유혹에 빠지지 않게 기도하라 하시고 그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천사가 하늘로부터 예수께 나타나 힘을 더하더라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기도 후에 일어나 제자들에게 가서 슬픔으로 인하여 잠든 것을 보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자느냐 시험에 들지 않게 일어나 기도하라 하시니라.”
1.
기도의 자세:
a.
(눅22:41) “들을 떠나 돌 던질 만큼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여.”
(1)
무릎을 꿇는 행위는 하나님 아버지 앞에 자신의 뜻을 내려놓고 온전히 복종하겠다는 깊은 겸손을 뜻합니다(겸손과 순종)(인터넷).
(a)
이사야 선지자는 하나님의 영광을 뵙고 나서는 심령이 먼저 꿇어 엎드렸고 육체도 없드려 간구했음(사6:1-8).
(b)
엘리야의 경우는 “갈멜 산 꼭대기로 올라가서 땅에 꿇어 엎드려 그의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왕상18:42) 간구했음.
(i)
극단적인 겸손과 자기 부인:
·
자신을 완전히 낮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으려면 몸을 극단적으로 동그랗게 말아 엎드려야 합니다. 이는 하나님의 주권 앞에 자신을 흔적도 없이 낮추는 철저한 굴복과 경배의 태도입니다.
(ii)
해산의 고통과 같은 산고의 기도
·
태아가 자궁에 있는 듯한 자세: 몸을 웅크린 이 자세는 어머니의 태중에 있는 아기의 모습, 혹은 아이를 낳기 위해 진통하는 여인의 모습과 흡사합니다.
·
약속을 성취하기 위한 해산의 수고: 야고보서 5장 17-18절은 엘리야가 "간절히 기도한즉" 하늘이 비를 주었다고 평가합니다. 그는 하나님의 약속(비가 내릴 것)을 이 땅에 출산해내기 위해, 마치 산모가 진통하듯 온몸의 에너지를 쥐어짜며 치열하게 부르짖은 것입니다(인터넷).
(c)
스데반 집사는 무자비하게 날아드는 돌에 맞아 죽어가는 그 처절한 순간에도 분명히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행7:59-60).
(i)
돌이 날아오는 아수라장 속에서 본능적으로 몸을 움츠리거나 피하지 않고, 오히려 무릎을 꿇었다는 것은 그가 죽음의 순간까지 자신을 죽이려는 폭도들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만 시선을 고정했음을 보여줍니다(인터넷).
(2)
우리의 기도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a)
내면적 자세: 심령의 무릎을 꿇는 것 (철저한 항복과 신뢰)
(i)
성경에서 무릎을 꿇거나 얼굴을 땅에 댄 것은 "내 힘과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주권을 100% 인정합니다"라는 고백이었습니다.
·
우리가 의자에 앉아 기도하더라도, 우리의 마음만큼은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무릎을 꿇은 심정'으로 경외함을 잃지 않아야 합니다.
(b)
외면적 자세: 마음의 간절함을 몸으로 표현하는 것
(i)
성경은 마음과 몸이 분리되어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간절함이 극에 달하면 몸의 자세로 나타나기 마련입니다.
·
스데반처럼: 죽음의 위협이나 바쁜 일상, 지친 육체 속에서도 하나님을 향한 예배자의 태도(무릎 꿇음)를 유지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
적용: 때로는 실제로 무릎을 꿇거나, 두 손을 높이 들거나, 엎드려 기도해 보세요. 신체적인 자세를 바꿀 때 마음의 태도도 함께 엄숙해지고 영적인 간절함이 더 깊어지는 것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인터넷).
2.
기도의 내용:
a.
(눅22:42) “이르시되 아버지여 만일 아버지의 뜻이거든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 하시니.”
(1)
“이 잔”에 대해서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말했음:
(a)
“이 잔이란 말은 보통 누구나 당하는 고통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요, 이 세상에 오직 그분(예수 그리스도)만이 당하셔야 했던 특수한 고통(혹은 독특한 대속의 죽음)을 의미한다.
이 세상에 오직 한 번만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께서 철저하게 죄인의 수괴(우두머리)와 같이 여김을 받으사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대신 버림을 받는 자리에서도 끝까지 하나님을 찾으셨으나 하나님은 그를 계속 배척하신 고통스러운 일이 곧 이 잔이었다. 이것은 곧 인간의 모든 죄 짐을 짊어지신 대속적 죽음과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고통을 의미한다."
(2)
진정 하나님 앞에 나왔으면 내 뜻을 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구해야 함.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a)
(사 55:8-9)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i)
하나님의 면전에 나가는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이유:
·
생각과 차원의 격차 (하늘과 땅의 차이): 우리의 생각은 눈앞의 현실, 나의 유익, 그리고 시공간의 한계에 갇혀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각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영원하고 완전하며 흠이 없으십니다. 내 뜻을 고집하는 기도는 땅의 수준에 머무는 기도이지만,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기도는 하늘의 차원으로 올라가는 기도입니다.
·
참된 유익을 위한 내 뜻의 거절: 우리는 무엇이 우리에게 진정으로 좋은지 다 알지 못합니다. 겟세마네의 예수님처럼 인성을 가진 인간은 고통의 잔을 피하고 싶어 하지만, 하나님은 그 잔을 통과하여 온 인류를 구원할 부활의 영광을 바라보십니다. 따라서 내 뜻이 꺾이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이 피조물인 우리에게 가장 안전하고 완전한 복입니다.
·
코람데오(Coram Deo, 하나님 면전에서)의 기도: 하나님의 면전에 선다는 것은 그분의 주권과 통치를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내 계획을 결재받기 위해 하나님을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왕이신 하나님의 뜻에 나를 맞추기 위해 나아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기도는 나의 소원을 관철시키는 자리가 아니라, 내 뜻을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는 자리입니다(인터넷).
3.
기도의 열정(열심)
a.
(눅22:44) “예수께서 힘쓰고 애써 더욱 간절히 기도하시니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더라.”
(1)
예수님께서 하나님 앞에 나와서 하나님의 뜻이 이뤄지기를 간절히 힘쓰고 애써 간구하셨음.
진액을 다 쏟아내시면서 간구하신 것임.
(a)
땀 방울이 땅에 떨어질 정도로 간구하셨음.
(i)
가야바 대제사장의 뜰에서는 추워서 불을 피워 사람들이 불을 쬐일 때인데 예수님은 추운 동산에서도 땀을 흘리시면서 기도하셨음
(b)
예수님은 눈물도 흘리셨음.
(i)
(히5:7)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건하심으로 말미암아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을 때 예수님은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음.
-
여기서 심한 통곡'에 해당하는 헬라어 원어(크라우게스 이스퀴라스)는 단순히 흐느끼는 울음이 아니라, "찢어지는 듯한 거대한 비명"이나 "극도의 고통 속에서 터져 나오는 부르짖음"을 뜻합니다(인터넷).
-
예수님은 박윤선 박사님의 주석처럼 '하나님께 완전히 배척당하고 버림받는 잔'의 공포를 고스란히 느끼셨습니다. 신성을 가지셨다고 해서 십자가의 고통이 경감된 것이 아니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감정과 아픔을 느끼시는 참 인간(Humanity)이셨기에, 그 영혼의 고통이 눈물로 터져 나왔습니다. 주님은 차가운 겟세마네의 땅바닥을 당신의 피땀뿐만 아니라 눈물로 적시며 기도하셨습니다(인터넷).
(2)
“핏방울 같이 되더라”(눅22:44):
(a)
박윤선 박사님은 이렇게 주석하였음: “이 말씀은 다만 땀방울이 핏방울 같이 커서 땅에 떨어졌다는 뜻이 아니다. 이것은 땀에 피가 섞여 흘러 나왔기 때문에 핏방울 같이 보였다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고민이 이처럼 육체에까지 극도의 고통을 나타낸 것은, 그가 우리 죄를 걸머지시고 하나님 아버님의 심판의 진노를 당하셨기 때문이다.
… 주님이 피땀을 흘리신 이유는 모든 택하신 백성들의 죄짐을 홀로 지시고, 하나님 아버지께 버림받아 마땅한 지옥의 형벌과 저주를 그 온몸으로 직접 받아내고 계셨기 때문이다."
(3)
예수님은 죽게 되셨을 때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를 드리셨음.
(a)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구하셨음.
그래서 그 기도가 들으신바 되었음.
C.
결론:
1.
우리 가운데 심령이나 육체가 죽게 된 가운데 있는 우리도 예수님을 본 받아 우리 각자의 겟세마네 동산에 나아가 하나님의 면전에서 겸손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뜻을 열심히 구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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