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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9: Emptying “Evil Thoughts”

Chapter 9: Emptying “Evil Thoughts”       In the previous chapter, we examined how we must empty the hatred that has taken root in our hearts and fill that place with the love and forgiveness of Christ.   Now we want to go one step deeper.   We want to look at the “thoughts” within our hearts—the thoughts that arise before our words and actions begin, thoughts that may not be readily visible to other people but that God sees.   We have countless thoughts every day.   From the moment we open our eyes in the morning until we go to bed at night, thoughts of judging and comparing others, feelings of hurt and hatred, greed and anxiety, pride and envy, and the desire to be recognized continually pass through our hearts.   But here we need to make an important distinction.   There is a difference between a thought suddenly coming to mind and accepting that thought into our hearts and continuing to hold on to it.   Regardless of ou...

9장: “악한 생각” 비우기

9: “악한 생각비우기

 

 

 

앞 장에서 우리는 마음속에 자리 잡은 미움을 비우고 그 자리를 그리스도의 사랑과 용서로 채워야 함을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한 걸음 더 깊은 곳으로 들어가려고 합니다.  우리의 말과 행동이 시작되기 전, 다른 사람에게는 잘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는 보고 계시는 마음속의 ‘생각’입니다.

 

우리는 하루에도 수많은 생각을 합니다.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들 때까지 사람을 판단하고 비교하는 생각, 서운함과 미움, 탐욕과 염려, 교만과 시기, 인정받고 싶은 욕망이 끊임없이 마음을 오갑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구별이 필요합니다.  어떤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오르는 것과 그 생각을 마음에 받아들이고 계속 붙드는 것은 다릅니다.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좋지 않은 생각이 순간적으로 떠오를 수 있습니다.  누군가를 미워하는 생각이 스쳐 갈 수도 있고, 다른 사람을 질투하는 마음이 생길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생각이 떠올랐다는 사실만으로 자신을 정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어떻게 다루느냐입니다.  스쳐 가는 생각을 붙잡아 반복해서 생각하고, 마음속에서 키우고, 즐기고, 합리화하기 시작하면 그 생각은 점점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에서 자란 생각은 결국 말과 행동에 영향을 미칩니다.  그러므로 악한 생각 비우기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생각이 들어왔을 때 그것을 마음에 품고 키우지 않고, 말씀 앞에서 분별하여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악한 생각은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더럽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말씀하시면서 인간의 마음 깊은 곳을 지적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5 19절에서 주님은 “마음에서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 나오느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가복음 7 21절부터 23절에서도 여러 가지 악이 사람의 속, 곧 마음에서 나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죄를 주로 행동으로 생각합니다.  거짓말을 했는가?  남의 것을 훔쳤는가?  다른 사람을 해쳤는가?  음란한 행동을 했는가?  물론 행동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행동보다 더 깊은 곳을 바라보셨습니다.  주님은 그 행동을 만들어 낸 마음을 보십니다.  야고보서 1 15절은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면 사망을 낳는다고 말씀합니다.  죄는 어느 날 갑자기 행동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에 들어온 생각을 계속 품으면 욕망으로 자랄 수 있고, 욕망을 계속 따라가면 결국 행동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악한 생각을 비우는 일은 이미 나타난 행동만 고치는 것이 아니라 그 행동을 만들어 내는 마음의 방향까지 하나님 앞에서 살피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생각도 감출 수 없습니다

 

악한 생각이 위험한 이유 가운데 하나는 다른 사람에게 쉽게 보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누군가를 마음속으로 미워하면서도 웃을 수 있습니다.  질투하면서도 축하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상대방이 실패하기를 바라면서도 겉으로는 그 사람을 위하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습니다.  사람은 우리의 마음을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숨길 수 없습니다.  마태복음 9 4절에서 서기관들이 마음속으로 예수님을 판단했을 때 주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너희가 어찌하여 마음에 악한 생각을 하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은 아직 입 밖으로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미 그들의 생각을 알고 계셨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질문을 던집니다: “아무도 모른다면 나는 무엇을 생각하는가?  “사람들에게 말할 수 없는 생각을 마음속에서 반복해서 즐기고 있지는 않은가?  “겉으로 보이는 나와 하나님께서 보시는 내 마음은 얼마나 일치하고 있는가?  진정한 거룩함은 사람에게 좋은 사람으로 보이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마음의 자리까지 하나님 앞에 내어놓는 것입니다.

 

악한 생각은 종교적인 모습으로도 나타날 수 있습니다

 

악한 생각이 언제나 노골적인 죄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신앙적인 열심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나는 저 사람보다 믿음이 좋다.  “나는 저 사람보다 성경을 더 많이 안다.  “저 사람의 신앙은 잘못되었다.  “나는 옳고 저 사람은 틀렸다.  신앙적인 판단처럼 보이지만 그 마음속에 교만과 정죄와 우월감이 숨어 있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종교적으로 경건해 보였던 사람들의 마음까지 보셨습니다.  마태복음 22 18절에서도 예수님을 시험하려던 사람들의 악한 의도를 아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열심과 자기 의를 혼동하지 말아야 합니다.  말씀을 많이 알고 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을 낮추어 볼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했다는 사실이 다른 사람의 믿음을 함부로 판단할 권리를 주는 것도 아닙니다.  말씀을 많이 알수록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이 아니라 먼저 자신을 말씀 앞에 세우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마음속의 ‘계산’을 비워야 합니다

악한 생각 가운데 우리에게 매우 익숙한 것이 있습니다.  사람을 마음속으로 계산하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9 46절에는 제자들 사이에 누가 더 큰 사람인가를 두고 논쟁이 일어났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헬라어디알로기스모스’(διαλογισμός)는 생각이나 추론,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는 판단과 관련된 말입니다.  제자들의 입에서 논쟁이 나오기 전에 이미 마음속에서는 계산이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누가 더 중요한가?  “누가 더 인정받는가?  “왜 저 사람이 나보다 앞서는가?  우리도 사람을 만나면서 마음속으로 계산할 때가 있습니다.  “나는 저 사람에게 이만큼 해주었는데 저 사람은 나에게 무엇을 해주었는가?  “내가 왜 먼저 양보해야 하는가?  “저 사람과 가까이하면 나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내가 이 사람을 도와주면 나에게 무엇이 돌아오는가?  이러한 생각이 마음을 지배하면 사람을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손익을 계산하는 대상으로 바라보게 됩니다.  내게 잘해 주면 좋아하고, 내게 도움이 되면 가까이하고, 나를 인정해 주면 사랑하지만, 내 기대를 채워 주지 않으면 마음의 문을 닫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사람을 계산하라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악한 생각을 비운다는 것은 나쁜 생각 몇 가지를 없애는 것만이 아니라, 사람을 내 유익에 따라 계산하고 평가하려는 마음까지 비우는 것입니다.

 

사랑은 악을 마음의 장부에 기록해 두지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3 5절은 사랑에 대해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생각하다’로 번역된 헬라어로기제타이’(λογίζεται)는 계산하다, 헤아리다, 셈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말씀에는 다른 사람이 행한 잘못을 마음의 장부에 계속 기록해 두고 계산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사람은 상처를 오래 기억합니다.  “그 사람이 그때 나에게 그렇게 했지.  “내가 그 일 때문에 얼마나 힘들었는데.  “이번에는 반드시 갚아주어야 해.  이렇게 과거의 잘못을 마음의 장부에 기록해 두었다가 갈등이 생길 때마다 다시 꺼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상처를 억지로 잊으라는 뜻이 아닙니다.  잘못을 없었던 일로 만들라는 뜻도 아닙니다.  해결해야 할 문제를 덮으라는 것도 아닙니다.  상처받은 일을 상대방을 계속 정죄하고 공격하기 위한 장부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잠언 17 9절은 허물을 덮어 주는 사람이 사랑을 구한다고 말씀합니다.  사랑은 기억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기억을 복수의 무기로 사용하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을 마음속으로 등급 매기지 마십시오 

 

마음속의 계산은 차별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야고보서 2 1절부터 4절은 교회 안에서 부유한 사람에게 좋은 자리를 주고 가난한 사람을 낮은 자리로 밀어내는 모습을 책망합니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로 바라보기보다 나에게 얼마나 유익한가를 기준으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속에도 보이지 않는 등급표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사람은 돈이 많다.  “이 사람은 영향력이 있다.  “이 사람과 가까이하면 도움이 된다.  “저 사람은 나에게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외모로 취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도 사람의 재산과 직업, 학력과 사회적인 지위, 영향력에 따라 다르게 대하는 마음을 비워야 합니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직급이 높은 사람에게만 친절하고 나보다 낮은 위치에 있는 사람을 함부로 대한다면 우리의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가정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잘하는 자녀를 더 귀하게 여기고 부족한 자녀를 다른 자녀와 비교하지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사람의 가치는 나에게 얼마나 도움이 되느냐에 따라 결정되지 않습니다.  사람을 계산하는 마음을 비울 때 우리는 비로소 그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받은 존재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하나님까지 계산하려는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사람을 계산하는 마음은 어느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에도 들어올 수 있습니다.  “내가 이렇게 기도했는데 하나님께서는 왜 이것을 주시지 않는가?  “내가 이렇게 봉사했는데 왜 내 삶에는 어려움이 있는가?  “내가 하나님께 이만큼 드렸으니 하나님도 나에게 이만큼 복을 주셔야 하지 않는가?  이런 생각이 마음을 지배하면 신앙도 거래가 됩니다.  사도행전 8장의 시몬은 하나님의 능력을 돈으로 얻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선물로 받기보다 자신이 소유하고 이용할 수 있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디모데전서 6장에서도 경건을 이익의 수단으로 생각하는 태도를 경고합니다.  우리도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을 통해 내가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하는가?  “나는 하나님의 은혜 자체에 감사하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내가 원하는 것을 주실 때에만 감사하는가?  은혜를 계산하기 시작하면 감사가 사라집니다.  사랑을 계산하면 섬김이 거래가 됩니다.  신앙을 계산하면 하나님마저 내 욕망을 이루는 수단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는 계산보다 신뢰를 배워야 합니다.

 

생각을 품으면 행동으로 자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생각과 욕망이 실제 행동으로 이어지는 여러 사례를 보여줍니다.  여호수아 7장에서 아간은 전리품을 보았습니다. 탐이 났습니다. 그리고 결국 그것을 가져다가 숨겼습니다.  처음에는 마음속의 욕망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욕망을 다루지 않자 행동으로 이어졌습니다.  가룟 유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복음 13 2절은 마귀가 유다의 마음에 예수님을 팔 생각을 넣었다고 기록합니다.  이후 그 배반의 의도는 실제 행동으로 나타났습니다.  이것이 생각을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되는 이유입니다.  고린도후서 10 5절은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생각이 떠오르는 순간부터 죄라는 뜻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그 생각을 붙들고 따라갈 것인가, 아니면 그리스도께 복종시킬 것인가입니다.  생각은 찾아올 수 있지만, 그 생각에게 마음의 자리를 내어줄 것인지는 말씀 앞에서 분별해야 합니다. 

 

악한 생각을 방치하면 분별력이 흐려집니다

 

악한 생각을 계속 품으면 죄에 대한 감각이 점점 둔해질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양심이 불편했던 일이 나중에는 아무렇지도 않게 느껴집니다.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것이 잘못이라고 생각했지만, 반복하다 보면 “나는 사실을 말했을 뿐이다”라고 합리화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탐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 어느 순간 “성공하고 싶은 마음일 뿐”이라고 포장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질투였던 마음을 “저 사람에게 문제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죄는 이렇게 우리의 생각을 속입니다. 그래서 잠언 4 23절은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고 말씀합니다.  성도는 자신의 생각을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요즘 나는 무엇을 계속 생각하고 있는가?  “누구에 관한 생각이 내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가?  “그 생각은 나를 하나님께 가까이 가게 하는가, 아니면 미움과 교만과 탐욕으로 끌고 가는가?  이 질문을 자주 해야 합니다. 

 

마음의 밀실을 하나님께 열어드리십시오 

 

우리에게는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는 마음의 밀실이 있습니다.  가족도 모를 수 있습니다.  배우자도 모를 수 있습니다.  교회 성도들도 모를 수 있습니다.  그곳에서 우리는 자유롭게 상상하고 판단하고 욕망합니다.  그래서 진정한 영적 싸움은 사람의 눈이 없는 곳에서 일어납니다.  사람 앞에서는 경건해 보이면서 마음속에서는 다른 사람을 정죄할 수 있습니다.  입으로는 축복하면서 속으로는 그 사람이 실패하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밀실까지 보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 문을 하나님께 열어드려야 합니다.  숨기지 마십시오.  변명하지 마십시오.  합리화하지 마십시오.  다윗처럼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139:23-24).  이 기도는 자신을 정죄하기 위한 기도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빛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살펴 달라는 기도입니다.

 

악한 생각을 비운 자리를 말씀으로 채우십시오

 

악한 생각을 비우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비워 놓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로마서 12 2절은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빌립보서 4 8절은 참되며 경건하며 옳으며 정결하며 사랑받을 만하며 칭찬받을 만한 것을 생각하라고 권면합니다.  성경은 단순히 “나쁜 생각을 하지 말라”고만 하지 않습니다.  무엇을 생각해야 하는지도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미움이 올라오면 용서를 생각하십시오.  질투가 올라오면 그 사람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십시오.  교만이 올라오면 내가 받은 모든 것이 은혜임을 기억하십시오.  정죄하고 싶을 때 나 역시 하나님의 긍휼이 필요한 사람임을 기억하십시오.  탐욕이 올라오면 이미 받은 은혜를 세어 보십시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십시오.  악한 생각을 비우는 가장 좋은 길은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우리의 생각을 새롭게 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마음이 우리의 생각을 다스리게 해야 합니다.

 

 

 

 

 

 

 

 

 

 

 

 

 

 

 

 

 

 

 

 

 

 

 

 

 

 

“악한 생각” 비우기의 원리와 실천 지침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악한 생각을 어떻게 비워 갈 수 있을까요?  생각은 눈에 보이지 않기 때문에 방치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생각을 다스리는 훈련은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우리의 말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중요한 출발점입니다.  다음의 다섯 가지를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습니다.

 

1.   악한 생각이 떠오르면 ‘멈춤–분별–기도–대체’를 실천하십시오.

 

악한 생각이 떠올랐을 때 무조건 그 생각을 따라가지 마십시오.  먼저 멈추십시오.  “지금 내 마음에 어떤 생각이 들어오고 있는가?  그 생각을 알아차리는 것입니다.  그다음 분별하십시오.  “이 생각은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는가?  “이 생각은 사랑과 진실과 거룩함을 향하고 있는가, 아니면 미움과 교만과 탐욕을 향하고 있는가?  그리고 기도하십시오: “주님, 이 생각을 제 마음에 품고 키우지 않게 하십시오. 제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시켜 주십시오.  마지막으로 대체하십시오.  악한 생각을 억지로 지우려고만 하지 말고 말씀에 맞는 생각으로 바꾸십시오.  미움에는 용서를, 시기에는 축복을, 교만에는 겸손을, 탐욕에는 감사와 나눔을, 정죄에는 긍휼을 선택하십시오.  악한 생각 비우기는 생각을 억지로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 생각을 말씀 앞에서 분별하고 그리스도의 뜻에 맞는 생각으로 바꾸어 가는 것입니다.

 

2.   가정에서는 과거의 허물을 마음의 장부에 기록하지 마십시오.

 

가정에서는 서로의 약점을 가장 잘 압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기면 과거의 잘못을 쉽게 꺼냅니다.  “당신은 예전에도 그랬잖아.  “몇 년 전에도 똑같았어.  “나는 아직도 그 일을 기억하고 있어.  해결해야 할 문제는 정직하게 대화해야 합니다. 상처를 억지로 잊을 필요도 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용서한 일을 싸울 때마다 다시 꺼내 상대방을 공격하는 무기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배우자의 잘못을 마음속 장부에 계속 기록하지 마십시오.  자녀의 과거 실수로 현재의 자녀를 규정하지 마십시오.  그리고 가족의 약점을 다른 가족과 비교하지 마십시오.  사랑은 악을 계산하지 않습니다.  가정에서의 생각 비우기는 가족의 허물을 모두 잊는 것이 아니라, 그 허물을 붙들고 정죄하려는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3.   교회와 공동체에서는 사람을 마음속으로 등급 매기지 마십시오.

 

사람의 재산과 직업, 학력과 영향력으로 사람의 가치를 판단하지 마십시오.  나에게 도움이 되는 사람에게만 친절하지 마십시오.  나와 의견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 사람의 인격과 신앙 전체를 악하게 판단하지 마십시오.  소문만 듣고 사람을 미리 판단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약점을 이야기하는 대화에 쉽게 동참하지 마십시오.  특히 교회에서는 신앙을 기준으로 사람을 우월하게 여기거나 열등하게 보는 마음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복음은 사람을 등급으로 나누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와 자매로 바라보게 합니다.

 

4.   일터에서는 손익보다 정직과 사랑을 먼저 생각하십시오.

 

일터에서는 계산이 필요합니다.  사업에서는 비용과 이익을 계산해야 하고, 책임 있는 결정도 내려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계산이 악한 것은 아닙니다.  문제는 이익을 얻기 위해 정직과 공의와 사랑을 버리려는 마음입니다.  계약에서 중요한 사실을 숨기지 마십시오.  상대방이 모르는 약점을 이용하여 부당한 이익을 얻지 마십시오.  경쟁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거짓된 말을 퍼뜨리지 마십시오.  동료의 공로를 자신의 것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 이렇게 물으십시오: “이것이 나에게 얼마나 이익인가?”뿐 아니라, “이것이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가?”를 함께 물으십시오.  성도의 일터도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는 자리입니다.

 

5.   하루를 마치며 마음의 생각을 하나님 앞에서 점검하십시오.

 

잠자리에 들기 전에 잠시라도 하루 동안 자신의 마음을 돌아보십시오.  “오늘 나는 누구를 판단했는가?  “누구에게 서운함을 품었는가?  “누군가의 성공을 질투하지 않았는가?  “사람을 내 유익에 따라 대하지 않았는가?  “내 이익을 위해 정직을 타협하려 하지 않았는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생각을 붙들고 있지는 않았는가?  그리고 시편 139편의 기도를 드리십시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잘못을 발견하면 회개하십시오.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하나님께 그 사람의 이름을 말씀드리십시오.  바로잡아야 할 일이 있다면 다음 날 행동으로 옮기십시오.  하루의 생각을 하나님 앞에서 살피는 습관은 우리로 하여금 생각에 끌려가기보다 생각을 말씀 아래 두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나 이 모든 실천을 우리의 의지와 노력만으로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완벽하게 통제할 수 있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주시고, 무엇이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생각인지 분별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해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 마음과 생각을 살펴 주십시오.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지만 주님께서는 아시는 제 마음속의 악한 생각을 보여 주십시오.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계산하며, 미워하고 질투하며, 제 유익만을 구하려는 생각을 숨기거나 합리화하지 않게 하십시오.  악한 생각이 떠오를 때 그것을 붙들고 키우지 않고 말씀 앞에서 분별하게 하시며,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게 하십시오.  제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제 욕망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게 하십시오.  악한 생각을 비운 제 마음을 말씀과 성령으로 채우시고 제 안에 그리스도의 마음을 이루어 주십시오. 

 

악한 생각을 비운다는 것은 생각을 하나도 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생각 자체를 없애는 것도 아닙니다.  악한 생각 비우기는 내 생각이 내 삶의 주인이 되지 못하게 하고,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내 생각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앞세우고, 내 욕망보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내 판단보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비우기의 목적은 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악한 생각을 비운 그 자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채우고, 성령의 다스리심을 받으며,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도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무슨 생각이 들어오는지, 어떤 생각을 붙들고 있는지, 어떤 생각이 마음속에서 자라고 있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생각을 발견할 때 숨기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비우십시오.  그 빈자리를 말씀으로 채우십시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채우십시오.  성령의 다스리심에 맡기십시오.  생각이 달라지면 말이 달라집니다.  말이 달라지면 행동이 달라집니다.  그리고 행동이 달라지면서 우리의 삶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악한 생각은 “내 생각이 옳다”고 주장하지만, 믿음은 “내 생각도 말씀 앞에서 살펴야 한다”고 고백합니다.  악한 생각을 비우고 모든 생각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것,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걸어가야 할 “악한 생각 비우기”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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