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장: “질투” 비우기
앞 장에서는
원망을 비우는 것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원망은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것을 바라보지 못하게 하고, 내가 받지 못한 것과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바라보게 합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선이 다른 사람에게 오래 머물면 또 하나의 죄가 마음속에 자리 잡기 쉽습니다. 바로 질투입니다.
질투는 다른
사람이 가진 것을 바라보면서 내게 없는 것을 불평하고, 다른 사람이 받는 인정과 사랑과 칭찬을 불편해하는
마음입니다. 처음에는 단순한 비교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왜 저 사람은
나보다 잘될까?” “왜 저 사람은 나보다 더 많은 인정을 받을까?” “왜 저 사람에게는 있는데 나에게는 없을까?” “왜 하나님께서는
저 사람에게 더 많은 것을 주신 것처럼 보일까?” 그러나 이런 비교를 마음속에서 계속 키우면 어느 순간 다른
사람의 성공이 나의 실패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의 기쁨이 나의 슬픔이 됩니다. 다른 사람이 칭찬받으면 내가 무시당한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리고 결국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사람을 미워할 수도 있습니다.
저 역시 이런
질투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아무 잘못도 하지 않은 믿음의 형제를 마음속으로 미워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나에게
특별히 해를 끼친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이 나보다 더 인정받고 칭찬받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불편했습니다. 돌이켜보면 그 사람에게 문제가 있었던 것이 아니라 제 마음에
문제가 있었습니다. 내가 인정받고 싶었습니다. 내가 높아지고 싶었습니다. 내가 다른 사람보다 더 나은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이 높아지는 것이 마치 내가 낮아지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마음의 중심에는 교만이
있었습니다. 질투는 결국 비교에서 시작하여
교만으로 자라고 미움으로 열매 맺습니다. 그러므로 질투를 비우려면 다른 사람을 바꾸려고 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살펴야 합니다. “나는 왜 저 사람의 성공을 기뻐하지 못하는가?” “나는 왜 저 사람이
칭찬받으면 마음이 불편한가?”
“나는 왜 내가 더 인정받아야 한다고 생각하는가?” 이 질문 앞에서 정직해져야 합니다.
질투는
사람을 다르게 보게 합니다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지를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람이 사울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돌아왔을 때 이스라엘 여인들은 노래했습니다.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삼상 18:7). 이
말을 들은 사울은 몹시 불쾌했습니다. 사람들이 다윗을 자신보다 더 높이 평가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성경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날 후로 사울이 다윗을 주목하였더라”(9절). 이전까지 다윗은 사울에게 충성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울을 위해 수금을 탔습니다. 이스라엘을 위해 싸웠습니다. 목숨을 걸고 골리앗과 싸웠습니다. 그러나 질투가 사울의 마음에 들어오자 다윗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충성스러운 신하가 경쟁자로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사람이
자신의 자리를 빼앗으려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질투는 다윗을 바꾼 것이 아닙니다. 사울의 눈을 바꾸었습니다.
질투는 사실을
바꾸지는 않지만 사실을 바라보는 우리의 눈을 바꾸어 버립니다. 그래서 질투는 위험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못했기 때문에 미워하는 것이 아닐 수 있습니다. 오히려 잘하기 때문에 미워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사랑받기 때문에 불편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인정받기 때문에 싫어질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잘되는 모습을 보면서 내가 낮아진 것처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럴 때 문제는 그 사람이
아니라 내 마음일 수 있습니다.
질투는
마음속에서 사람을 경쟁자로 만듭니다
질투가 들어오면
형제도 경쟁자가 될 수 있습니다. 동역자도 경쟁자가 될 수 있습니다. 친구도 경쟁자가 될 수 있습니다. 심지어 가족도 경쟁자가 될 수 있습니다. 가인은 자신의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아벨이 가인에게 해를 끼쳤기 때문이 아닙니다.
요한일서 3장 12절은 가인이
동생을 죽인 이유에 대해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고 말씀합니다. 아벨의 의로움이 가인의 마음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비교가 질투로 자라고, 질투가 미움으로 자라고, 미움이 결국 살인으로 나타났습니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극단적인 행동이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마음속에서는 다른 사람을 밀어낼 수 있습니다. 그 사람이 실패하기를 바랄 수 있습니다. 그 사람에 관한 좋지 않은 말을 들으면 마음 한구석에서 기뻐할
수도 있습니다. 그 사람의 약점을 발견하면
안도할 수도 있습니다. “역시 저 사람도
별것 아니구나.” 이런 마음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살펴야 합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실패를 기뻐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을 끌어내려 내가 올라가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질투를 비운다는 것은 단순히 다른 사람을 부러워하지
않는 정도가 아닙니다. 다른 사람을
경쟁자로 바라보며 그의 기쁨을 불편해하고 그의 실패를 은근히 바라는 마음까지 하나님 앞에서 비우는 것입니다.
질투는
하나님께서 맡기신 사명을 잊게 합니다
사울의 비극은
다윗을 미워했다는 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질투 때문에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을 잊어버렸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백성을 돌보고 나라를 지켜야 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을 향한 질투에 사로잡히면서 그의 관심은 블레셋보다
다윗에게 더 많이 향했습니다. 다윗을
잡기 위해 군사를 움직였습니다. 다윗을
추격하는 데 시간과 힘을 사용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바라보다가 자신에게 맡겨진 일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다른 목회자의 사역을 계속 바라보다가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교회를 잊을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사업과 성공을 바라보다가 내게 맡겨진 일에 충실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른 가정의 자녀들과 비교하다가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자녀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은사를 부러워하다가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사를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질투는
다른 사람의 삶을 너무 많이 바라보게 합니다. 그러다 보면 정작 내가 살아야 할 삶을 놓칩니다.
그러므로 질문을 바꾸어야 합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잘되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오늘 나에게 맡기신 것은 무엇인가?”라고 물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큰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칭찬을 받아도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이 가진 은사가 내 것보다 더 돋보여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맡기신 일이 있고 나에게 맡기신
일이 있기 때문입니다. 비교하지 말고
충실하십시오. 경쟁하지 말고 사명을
감당하십시오.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사울의 질투에는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은 마음도 깊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사무엘이 그의 죄를 책망했을 때에도 사울은 “내 백성의 장로들 앞과 이스라엘 앞에서 나를 높이사”라고 요청했습니다(삼상 15:30). 사람에게
인정받고 싶어 하는 마음 자체가 언제나 죄는 아닙니다. 누구나 사랑받고 싶고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있습니다.
문제는 사람의 인정이 하나님보다 더 중요해지는 것입니다. 내가 칭찬받아야 기쁘고, 다른 사람이 칭찬받으면 불편하고, 내 이름이 알려져야 만족하고,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인정받으면 마음이 상한다면, 그 마음을 하나님 앞에서 살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전혀 다른 길을 보여 주셨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비우시고 종의 형체를
취하셨습니다. 자신을 높이기 위해 다른
사람을 낮추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3절).
질투를 비우는 길은 여기에 있습니다. 내가 높아져야 한다는 마음을 비우고 그리스도의 겸손을 품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알아주는가?”보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는가?”를 물어야 합니다. 사람이 몰라도 하나님은 아십니다. 사람이 보지 않아도 하나님은 보십니다. 사람이 칭찬하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우리의 충성을 알고 계십니다.
‘
아삽처럼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리십시오
질투의 문제를
가장 정직하게 보여 주는 또 한 사람이 아삽입니다. 시편 73편에서 아삽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는 내가
악인의 형통함을 보고 오만한 자를 질투하였음이로다”(시 73:3). 아삽은 악한 사람들이 잘되는 모습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습니다.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자신보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더 잘되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거의 넘어질 뻔했습니다. 그러나
결정적인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에야 그들의 종말을 내가 깨달았나이다”(17절). 아삽의 환경이 먼저 바뀐 것이 아닙니다. 그의 시선이 바뀌었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던 눈이 하나님께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늘에서는 주 외에 누가 내게 있으리요 땅에서는 주밖에 내가 사모할 이 없나이다”(25절).
이것이 질투를 비우는 중요한 길입니다.
질투가 올라올 때 다른 사람을 더 자세히 바라보지 마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누가 더 많이 가졌는지 계속 비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을 바라보십시오. 누가 더 많이 칭찬받는지 계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일을 바라보십시오. 누가 더 큰 사역을 하는지 비교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맡기신 사명에 충실하십시오. 질투를 비우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고정된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신 은혜를 함께 기뻐하십시오
질투는 다른
사람의 기쁨을 나의 슬픔으로 만듭니다. 사랑은 반대입니다. 다른
사람의 기쁨을 함께 기뻐합니다. 다른
사람이 칭찬받을 때 축하해 주십시오. 다른 사람이 좋은 결과를 얻었을 때 함께 기뻐하십시오.
다른 사람의 자녀가 잘되었을 때 축복해 주십시오. 다른 교회가 성장하고 다른 목회자가 귀하게 쓰임받을 때 하나님께
감사하십시오. 직장 동료가 승진했을
때 축하하십시오. 친구의 사업이 잘될
때 함께 기뻐하십시오. 처음에는 마음이
따라오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입으로는
축하하면서 마음은 불편할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 마음까지 하나님께 가져가십시오. “하나님, 저 사람에게 주신 은혜를 진심으로 기뻐하지 못하는 제 마음을 보여 주십시오.
비교하는 마음을 비워 주십시오. 저 사람에게 베푸신 은혜를 함께 기뻐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주님, 저 사람을 더 귀하게 사용해 주십시오.” “저 가정을 축복해
주십시오.” “저 사람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더욱 확장되게 해주십시오.” 질투하는 사람을 축복하기 시작하면 우리의 마음도 조금씩 달라집니다. 질투는 “왜 저 사람에게 주셨습니까?”라고 묻지만, 사랑은 “저 사람에게도 은혜를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질투를
비우고 감사를 배우십시오
질투하는 마음에는
감사가 자리 잡기 어렵습니다. 질투는 늘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바라보기 때문입니다.
“왜 나는 저것이 없을까?” “왜 저 사람에게만 좋은 일이 생길까?” “왜 저 사람은 나보다
더 많은 것을 받았을까?”
이런 생각으로 마음이 가득 차면 하나님께서 이미 내게 주신 은혜를 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질투를 비우려면 감사를 배워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가족을 감사하십시오. 내게 맡기신 교회를 감사하십시오. 내게 주신 은사를 감사하십시오.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감사하십시오.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을 감사하십시오. 지금까지 인도해 주신 은혜를 감사하십시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신 은혜를 감사하십시오. 질투는
없는 것을 확대합니다. 감사는 받은
것을 보게 합니다. 질투는 부족함을
확대하지만, 감사는 은혜를 확대합니다. 감사한다고 해서 내게 없는 것이 갑자기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내게 이미 주어진 은혜를 볼 수 있는 눈이 열립니다.
다른
사람의 질투 때문에 나까지 질투하는 사람이 되지 마십시오
때로는 내가
다른 사람을 질투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이 나를 질투할 수도 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질투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과 요셉의 꿈 때문에 마음에 미움이 생겼고 결국
요셉을 애굽으로 팔았습니다. 그들이
한 일은 분명 악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악이 하나님의 계획을 무너뜨리지는 못했습니다. 훗날 요셉은 형들에게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 요셉은
형들의 악을 선이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형들의 악보다 하나님의 섭리를 더 크게 보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줍니다. 누군가 나를
질투할 수 있습니다. 나를 오해할 수도
있습니다. 내가 잘되는 것을 불편해할
수도 있습니다. 나를 끌어내리려고 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다고 나까지 그
사람을 미워하고 경쟁할 필요는 없습니다. 사람의 질투보다 하나님의 섭리가 더 크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의 질투 때문에 내 사명을 포기하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리에서 충실하십시오. 사람의 반응보다 하나님의 인도를 바라보십시오.
우리가
비워야 할 질투와 품어야 할 거룩한 열심을 구별해야 합니다
성경에는 우리가
비워야 할 죄 된 질투만 나오는 것은 아닙니다. 민수기 25장에서 하나님께서는 비느하스가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위한 열심을 보였다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 마음의 중심입니다. 사울의 질투는 자신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자신의 자리와 명예를 지키기 위한 질투였습니다. 그러나 비느하스의 열심은 자기 이름을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귀하게 여기는 데서 나왔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내가 지금 화가 난 이유가 정말 하나님의 영광 때문인가?” “아니면 내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인가?” “하나님의 뜻이 무너지는 것이 아픈 것인가?” “아니면 내가 인정받지 못해서 아픈 것인가?” “이 열심은 사랑에서
나오는가?” “아니면 두려움과 소유욕에서 나오는가?”
이 질문은 부부관계에서도
중요합니다. 부부는 하나님께서 주신 결혼의 언약을 귀하게 지켜야 합니다. 그러나 배우자를 사랑한다는 이유로 지나치게 통제하고 감시하며
소유하려는 마음까지 거룩한 질투라고 부를 수는 없습니다. 사랑은 관계를 지키지만 상대방을 소유물로 만들지 않습니다.
우리가 비워야 하는 것은 나의 영광과 자리를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을 끌어내리려는 질투입니다. 그리고 품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뜻과 거룩하심을
귀하게 여기는 열심입니다.
질투를
비우고 사랑으로 살아가십시오
질투를 비우는
목적은 단순히 다른 사람을 질투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합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이 잘되는 것을 기뻐합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나의 실패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서로 다른 은사와 사명을 주셨음을
인정합니다. 그래서 질투가 올라올 때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주님, 제가 왜 저 사람을 불편해하는지
보여 주십시오.” “제 안에 있는 비교와 교만을 비워 주십시오.” “사람에게 인정받으려는 마음을 비워 주십시오.” “저 사람에게 주신
은혜를 함께 기뻐하게 해주십시오.”
“저에게 맡기신 사명에 충실하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실제로 사랑을 선택하십시오. 축하하십시오. 격려하십시오. 축복하십시오. 기도하십시오. 다른 사람의 기쁨을 함께 기뻐하십시오. 마음이 먼저 따라오지 않더라도 말씀에 순종하여 사랑의 행동을
시작하십시오. 그 과정에서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도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질투” 비우기의 원리와 실천 지침
그렇다면 우리는
일상의 삶에서 질투를 어떻게 비워 갈 수 있을까요? 질투는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는 데서 시작하여 교만과 미움으로 자라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질투를 비우려면 다른 사람에게 고정된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고, 비교를 감사로 바꾸며,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명에 충실해야
합니다.
1.
질투가
올라올 때 비교하고 있는 대상을 확인하십시오
질투는
비교에서 시작됩니다. 그러므로
마음이 불편해질 때 먼저 물어보십시오: “나는 지금 누구와 나를 비교하고 있는가?” “무엇을 비교하고
있는가?” 재산입니까? 외모입니까? 자녀입니까? 직장입니까? 사역의 크기입니까? 교회의 규모입니까? 사람의 칭찬입니까? 다른 사람의 은사입니까? 비교의 대상을 발견하면 그 생각을 계속 키우지 마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십시오.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주신 것은 그 사람에게 맡기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것은 내게 맡기신 것입니다. 비교는 다른 사람의 삶을 살게 하지만, 사명은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삶을 살게 합니다.
2.
다른
사람에게 주신 은혜를 의도적으로 축복하십시오
질투하는
사람을 마음속에서 계속 경쟁자로 두지 마십시오.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시오. 잘되기를 축복하십시오. 좋은 일이 생기면 축하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면 감사하십시오. 가정에서도 형제자매를 비교하지 마십시오. 부모는 한 자녀를 다른 자녀와 비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자녀 역시 형제자매에게 주신 은혜를 경쟁의 이유로 삼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에서도 다른 교회와 다른
목회자의 열매를 경쟁의 대상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일터에서도 동료의 성공을 나의 실패로 받아들이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함께 기뻐하는 것은 질투를 비우는 실제적인 훈련입니다.
3.
사람의
인정 대신 하나님 앞에서의 충실함을 구하십시오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알아주는가?”를 계속 생각하면 다른 사람이 받는 칭찬에 민감해집니다. 그러므로 질문을 바꾸십시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충실한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충실하십시오. 내 이름이 드러나지 않아도 섬기십시오. 다른 사람이 칭찬받아도 함께 기뻐하십시오. 내가 한 일을 다른 사람이 인정받는 것처럼 느껴질 때에도
먼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살피십시오. 물론 정당한 평가와 공정함이 필요한 상황에서는 사실을 바르게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칭찬이 내 마음의 주인이 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질투를 비우는 사람은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4.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은혜를 날마다 감사하십시오
질투가
올라오면 내가 받지 못한 것을 생각하기보다 이미 받은 것을 세어 보십시오. 오늘 감사할 것을 구체적으로 적어 보아도 좋습니다. 가족, 건강,
교회, 일터, 친구, 은사, 사역, 구원, 하나님의 말씀, 기도할 수 있는 은혜를 기억하십시오. 감사는 다른 사람보다 내가 더 많이 가졌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가
충분히 귀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질투가 “왜 나는 이것이 없는가?”라고 말할 때 감사는 “하나님께서 내게도 많은 은혜를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5.
다른
사람보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명에 집중하십시오
질투가
생길 때 가장 좋은 질문 가운데 하나는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맡기신 일은 무엇인가?” 다른 사람의 사역을 바라보는 데 시간을 다 쓰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삶을 평가하는 데 마음을 빼앗기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가족을 사랑하십시오. 내게 맡기신 교회를 섬기십시오. 내게 맡기신 일터에서 정직하게 일하십시오. 내게 주신 은사를 사용하십시오. 내가 감당해야 할 오늘의 순종에 충실하십시오. 사울은 다윗을 바라보다가 자신의 사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아삽은 악인의 형통을 바라보다가 거의 넘어질 뻔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시선을 돌렸을 때 다시 길을 찾았습니다. 사람을 바라보던 눈을 하나님께 돌리고, 비교하던 마음을 사명으로 돌리십시오.
그러나 질투를
비우는 일도 우리의 의지만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제부터 절대로 비교하지 않겠다.” “다른 사람이 잘되면 무조건 기뻐하겠다.” 결심한다고 해서 마음속
깊은 질투가 곧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비교와 교만을 보여 주셔야 합니다. 다른 사람이 잘될 때 불편해하는 마음을 깨닫게 하셔야 합니다. 사람의 칭찬을 구하는 마음을 비우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볼 수 있는 눈을 열어 주셔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기쁨을 진심으로 함께 기뻐할 수 있도록 그리스도의 사랑을 우리 안에 이루어 주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 안에 있는 질투와 비교와 교만을 보여 주십시오. 다른 사람이 잘될 때 불편해하고, 다른 사람이 칭찬받을 때 제가 낮아진 것처럼 느끼는 마음을 비워 주십시오.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는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께서 저를
아시고 사랑하신다는 사실로 만족하게 하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주신 은혜를 함께 기뻐하고 축복하게 하시며,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은혜를 감사하게
하십시오. 사람을 바라보며 경쟁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제게 맡기신 사명에 충실하게 하십시오. 질투를 비운 제 마음을 그리스도의 겸손과 감사와 사랑으로 채워 주십시오.”
질투를 비운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갖지 않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외면하는 것도 아닙니다. 질투를 비운다는 것은 다른 사람의 성공을 나의 실패로 해석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른 사람에게
주신 은혜를 함께 기뻐하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명에 충실하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높아져도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많은 칭찬을 받아도 괜찮습니다. 다른 사람이 나보다 더 큰 일을 하는 것처럼 보여도 괜찮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내게도 은혜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게 맡기신 사명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의 기쁨을 나의 슬픔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의 성공을 나의 실패로 만들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에게 주신 은혜를 나를 향한 하나님의 거절로 해석하지
마십시오. 아삽처럼 사람에게서 하나님께로 시선을 돌리십시오. 요셉처럼 사람의 악보다 크신 하나님의 섭리를 믿으십시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처럼 자신을 높이려는 마음을 비우고
겸손히 섬기십시오. 질투는 “왜 저
사람에게는 있는데 나에게는 없는가?”라고 묻지만, 믿음은 “하나님께서
저 사람에게 주신 은혜를 함께 기뻐하고, 내게 주신 은혜를 감사하겠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질투를 비우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고정된 시선을 하나님께
돌리는 것입니다. 비교와 교만과 미움을 비우고, 그 빈자리에 그리스도의
겸손과 감사와 사랑이 자라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걸어가야 할 “질투 비우기”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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