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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을 찬송하는 예배로 채우고,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사명의 자리로 나아감으로써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축복을 온전히 유통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을 찬송하는 예배로 채우고 ,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사명의 자리로 나아감으로써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축복을 온전히 유통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         “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 하늘로 올려지시니 ] 그들이 [ 그에게 경배하고 ] 큰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늘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 ”( 누가복음 24:50-53).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24 장 50-53 절 말씀 ( 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 을 한국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으로 읽었을 때 제일 먼저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16 장 19-20 절과 사도행전 1 장 9-11 절과 비교하여 종합적인 줄거리를 알아야겠다고 생각되었습니다 .   1.       세 본문 통합 줄거리 ( 종합 요약 )   부활하신 주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지상 명령과 성령 사역에 대한 말씀을 마치신 후 , 그들을 데리고 감람산 자락의 베다니 앞까지 나아가셨습니다 .   예수님은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셨으며 , 바로 그 축복의 순간에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려지기 시작하셨습니다 .   예수님이 위로 올라가실 때 구름이 그를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고 , 제자들이 아쉬움과 경이로움 속에서 하늘을 자세히 쳐다보고 있을 때 흰 옷 입은 두 천사가 그들 곁에 나타났습니다 .   천사들은 "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을 찬송하는 예배로 채우고,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사명의 자리로 나아감으로써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축복을 온전히 유통하고 누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을 찬송하는 예배로 채우고,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사명의 자리로 나아감으로써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축복을 온전히 유통하고 누릴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니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 그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하니라”(누가복음 24:50-53).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24 50-53 말씀(예수 그리스도의 승천) 한국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으로 읽었을 제일 먼저 병행구절인 마가복음 16 19-20절과 사도행전 1 9-11절과 비교하여 종합적인 줄거리를 알아야겠다고 생각되었습니다.

 

1.      본문 통합 줄거리 (종합 요약)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마지막 지상 명령과 성령 사역에 대한 말씀을 마치신 , 그들을 데리고 감람산 자락의 베다니 앞까지 나아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손을 들어 제자들을 축복하셨으며, 바로 축복의 순간에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하늘로 올려지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위로 올라가실 구름이 그를 가려 보이지 않게 되었고, 제자들이 아쉬움과 경이로움 속에서 하늘을 자세히 쳐다보고 있을 입은 천사가 그들 곁에 나타났습니다.  천사들은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려지신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그대로 오시리라" 재림을 약속했습니다.

 

예수님은 하늘에 오르사 하나님의 우편에 앉으셨으며, 주님의 승천과 천사의 선포를 목격한 제자들은 확신과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갔습니다.  그들은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찬송하였고, 약속하신 성령을 받은 세상 곳곳에 나아가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주께서는 그들과 함께 역사하시며 따르는 표적으로 말씀을 확실히 증거해 주셨습니다.

 

2.      본문별 핵심 포인트 비교 overview

 

누가복음은 예수님께서 베다니 앞에서 제자들을 축복하시는 도중에 승천하셨음을 강조하며, 이에 제자들이 기쁨으로 성전에 모여 하나님을 찬송하는 예배 중심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마가복음은 지상 사역을 마친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리우사 하나님 우편 보좌에 앉으셨음을 선포하고, 하늘의 주님께서 지상 제자들의 복음 전파 사역에 표적으로 함께 역사하시는 천상 왕권을 강조합니다.

 

사도행전은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구름에 가려져 올라가신 승천의 시각적 과정을 생생히 기록하며, 입은 천사를 통해 "하늘로 가심을 그대로 다시 오시리라" 확실한 재림의 약속을 선포합니다.

 

3.      종합 줄거리 속의 3 핵심 메시지

 

대제사장의 축복과 승천 (누가복음 강조): 예수님은 제자들을 떠나실 책망이나 아쉬움이 아닌 '축복' 남기셨습니다.  헬라어 원문 상으로도 축복하시는 도중에 하늘로 올리우셨는데, 이는 주님의 축복이 단절되지 않고 지상에 있는 제자들에게 계속해서 흘러가고 있음을 뜻합니다.

 

하나님 우편의 왕권과 동역 (마가복음 강조): 예수님의 승천은 단순히 지상을 떠난 공간적 이동이 아니라, 우주적 통치자로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시는 왕위 등극식입니다.  보좌에 앉으신 주님은 지상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할 표적으로 동역하셨습니다.

 

가신 그대로 오시리라는 재림 약속 (사도행전 강조): 구름에 싸여 가신 시각적 사건은 가시적이고 역사적인 재림(Parousia) 보증이 됩니다.  천사들의 메시지는 제자들이 하늘만 바라보는 신비주의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다시 오실 주님을 기다리며 땅끝까지 증인이 되는 사명으로 나아가게 만듭니다(인터넷).

 

(2)   둘째로, 저는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의 축복 ελογεν ( 에울로게인)](24:51) 대해서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특히 저는 이렇게 누가복음 마지막 , 마지막 부분인 24 51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예수님의 축복 묵상할 누가복음 첫째 장인 누가복음 1 42절에서 엘리사벳이 예수님의 어머니인 마리아를 향한 축복[ 소리로 불러 이르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λογημένη(에울로게메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λογημένος(에울로게메노스)]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구조적으로 , 누가복음은 축복(찬송)으로 시작해서 예수님의 축복으로 끝나는 완벽한 대칭[Inclusio(수미쌍관)] 이루고 있다는 사실이 매우 흥미롭습니다.  이러한 관점에서 오늘 본문 누가복음 24 51절에서 예수님의 축복을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가 어떻게 겸손히 받아 누려야 할까요?

 

1.      엘리사벳처럼 '약속의 성취' 전적으로 신뢰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장에서 엘리사벳이 마리아와 태중의 예수를 축복할 , 핵심은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1:45)였습니다.

 

24장의 예수님의 축복 역시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주겠다"(24:49) 말씀 직후에 일어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축복을 누리는 첫걸음은, 눈앞의 현실이 어떠할지라도 주님의 말씀과 약속은 반드시 성취된다는 것을 전적으로 신뢰하는 겸손한 믿음입니다.

 

2.      현재진행형(미완료 시제) 주님의 축복 아래 머물러야 합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51절의 '축복하실 때에'[ν τ ελογεν( 에울로게인)] 미완료 현재형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 예수님은 축복을 '마치고' 떠나신 것이 아니라, 축복하시는 도중에(과정 속에)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는 승천하신 대제사장 예수님의 축복이 단절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향해 계속 흘러내리고 있는 현재진행형 축복임을 뜻합니다.

 

제자들은 축복의 손길 아래서 떠나지 않았습니다.  우리 역시 날마다 삶의 자리에서 "주님의 축복이 지금도 위에 머물러 있다" 사실을 기억하며, 그분의 다스림 안에 겸손히 거해야 합니다.

 

3.      ' 기쁨'으로 예배하며 사명의 자리로 나아가야 합니다.

 

누가복음의 인클루시오[Inclusio(수미쌍관)] 성전에서 시작해 성전으로 끝납니다(1 사가랴의 성전 직무 → 24 제자들이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함).

 

예수님의 축복을 받은 제자들의 즉각적인 반응은 ' 기쁨' '지속적인 찬송(예배)'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의 축복을 아는 자는 환경을 초월한 기쁨을 누립니다.  우리는 삶의 모든 순간을 하나님을 찬송하는 예배로 채우고, 복음의 증인이 되는 사명의 자리로 나아감으로써 축복을 온전히 유통하고 누릴 있습니다(인터넷).

 

(a)   여기서 승천하신 대제사장 예수님의 축복이 단절된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도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향해 계속 흘러내리고 있는 현재진행형 축복은 무엇일까요?

 

a.      하늘 보좌에서 우리를 위해 하시는 '끊임없는 중보기도' (Intercession)

 

현재진행형인 예수님의 가장 핵심적인 축복은 우리를 위한 중보와 변호입니다.  대제사장의 성막 사역은 백성을 위한 축복과 기도로 완성됩니다.

 

로마서 8:34: "... 죽으실 아니라 다시 살아나신 이는 그리스도 예수시니 그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자요 우리를 위하여 간구하시는 자시니라."

 

히브리서 7:25: "...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라."

 

영적 의미: 우리가 지치고 낙심하여 기도할 힘조차 없을 때에도, 하늘 보좌에 계신 예수님은 대제사장으로서 우리의 이름을 부르시며 지금 순간도 멈추지 않고 기도하고 계십니다.  이것이 우리가 매일 삶을 버텨낼 있는 가장 축복입니다.

 

b.     성령을 통해 부어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위로와 평안' (Shalom)

 

예수님은 제자들을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승천하시면서 약속하신 ' 다른 보혜사 성령' 보내주셨습니다.

 

요한복음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영적 의미: 보좌에 계신 주님은 성령을 통해 시공간을 초월하여 우리 마음에 찾아오십니다.  세상의 환경과 물질이 없는 내면의 깊은 평안, 그리스도의 '샬롬(Shalom)' 매일의 속에 공급해 주시는 현재적 축복입니다.

 

c.      사명의 자리를 지키게 하시는 '영적인 능력과 권세' (Dunamis)

 

예수님이 승천하시기 직전 주신 축복은 단순히 " 살아라" 하는 기복적 염원이 아니라, 세상으로 나아갈 제자들에게 무기(능력) 쥐여주시는 파송의 축복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4:49: "볼지어다 내가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너희에게 보내리니 너희는 하늘로부터 능력(δύναμις, 두나미스)으로 입혀질 때까지 성에 머물라 하시니라."

 

영적 의미: 주님은 하나님 우편의 왕권을 가지시고, 지금도 지상에서 복음을 전하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자들에게 영적인 힘과 지혜, 그리고 환경을 이길 권세를 계속해서 공급해 주십니다.

 

요약하자면, 지금도 흘러내리는 주님의 현재진행형 축복은 "나를 향한 쉬지 않는 중보기도", "성령님이 주시는 평안", 그리고 " 세상을 이길 영적 능력"입니다.  우리는 이미 축복의 손길 아래 놓여 있습니다(인터넷).

 

(3)   셋째로, 저는 예수님의 승천에 관하여 “διέστη π’ ατν κα νεφέρετο ες τν ορανόν”(디에스테 아우톤 카이 아네페레토 에이스 우라논)["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려지시니)"](24:51)라는 헬라어 문장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한국어 성경(개역개정) 충분히 설명을 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헬라어 문장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1.      διέστη π’ ατν (디에스테 아우톤) (“그들을 떠나”) : "그들로부터 갈라져 떼어지셨다"

 

원형 시제: διίστημι(디이스테미) 부정과거(Aorist) 능동태 태동사입니다.  '사이를 갈라놓다', '거리를 두다', '분리되다'라는 뜻입니다.

 

숨겨진 뉘앙스: 동사는 단순히 걸어서 멀어지거나 작별 인사를 하고 떠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공간과 공간이 갈라지듯, 어떤 초자연적인 힘이나 공간적 이동에 의해 제자들과 물리적으로 '확연히 분리되어 떨어져 나간 역사적 사건' 특정 시점에 단회적으로(부정과거) 일어났음을 보여줍니다.

 

복음서 전체를 통해 제자들과 밀접하게 동행하셨던 예수님께서, 이제 지상 사역을 영원히 종결하시고 새로운 천상 사역으로 이동하시는 '결정적 분리' 순간을 선언하는 단어입니다.

 

2.      κα νεφέρετο (카이 아네페레토) [(그리고) “올려지시니”] : "그리고 계속해서 위로 올려지고 계셨다"

 

원형 시제: ναφέρω(아나페로) 미완료(Imperfect) 수동태입니다.  '위로 올리다', '(제단에) 바치다'라는 뜻입니다.

 

숨겨진 뉘앙스 (매우 중요): 앞의 분리(διέστη) 순식간에 일어난 단회적 사건(부정과거) 반면, 위로 올려지신 사건은 미완료 시제가 사용되었습니다.

 

헬라어에서 미완료는 '과거에 어떤 행동이 연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그림' 보여줍니다.

 

, 예수님이 깜짝할 사이에 하고 사라지신 것이 아니라, 제자들이 숨을 죽이고 바라보는 가운데 몸이 서서히, 그리고 계속해서 위로 떠올라 올라가고 계시는 역동적인 시각적 과정을 스냅숏처럼 포착한 표현입니다.

 

수동태의 신학적 의미: 주님이 스스로 올라가신 측면도 있지만, 성령과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올려지심을 당한(Passive)'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땅에서 복종하신 아들의 사역을 완벽하게 인정하시고, 그를 하늘의 영광스러운 보좌로 승귀(Exaltation)시키시는 영적 대관식의 과정임을 뜻합니다.

 

3.      ες τν ορανόν (에이스 우라논) (“하늘로”) : " 하늘을 향하여"

 

의미: ες(~안으로, ~ 향하여) ορανός(하늘) 결합한 문장입니다.

 

숨겨진 뉘앙스: 여기서 하늘은 우리가 눈으로 보는 대기권의 스카이(Sky) 넘어, 하나님의 임재와 통치가 온전히 실현되는 보좌의 영역(Heaven) 의미합니다.  미완료 수동태인 νεφέρετο(아네페레토)(“올려지시니”) 결합하여, 주님의 몸이 제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져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영역 안으로 진입해 들어가는 목적지를 분명히 해줍니다.

 

종합적인 번역과 묵상:

 

원문의 맛을 살려 구절을 다시 번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그분은 제자들과 초자연적으로 분리되어 떨어지셨고,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을 향해 계속해서 서서히 위로 올려지고 계셨다."

 

짧은 문장은 예수님의 승천이 제자들의 착시나 영적 환상이 아니라, 눈앞에서 서서히 위로 진행된 명백한 역사적·시각적 사건임을 변증합니다.  또한 대제사장이신 주님이 지상 성소를 떠나 하늘의 성소로 걸어 들어가시는 엄숙하고 장엄한 행진을 묘사하는 완벽한 헬라어 문장입니다(인터넷).

 

(a)   여기서 저는 구약의 엘리야가 회로이바람을 타고 승천한 사건이 생각났습니다: “ 사람이 길을 가며 말하더니 불수레와 불말들이 사람을 갈라놓고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왕하2:11).  무슨 연관성이 있을까요?

 

a.      공간의 '갈라놓음' '초자연적 분리' (구조적 대칭)

 

엘리야 사건: "불수레와 불말들이 사람을 갈라놓고"(왕하 2:11)

 

예수님 사건: "그들을 떠나[διέστη, 디에스테: 갈라져 떼어지다] 하늘로 올려지시니"( 24:51)

 

연관성: 사건 모두 지상의 인물(엘리사 / 제자들) 승천하는 인물(엘리야 / 예수님) 사이를 어떠한 초자연적인 권능이 개입하여 강력하게 분리(갈라놓음)시킨 승천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완벽한 평행이론을 이룹니다.  이는 승천이 인간의 의지가 아닌, 하나님의 주권적 능력에 의한 공간적 이동임을 보여줍니다.

 

b.     회오리바람(바람) 구름: 하나님의 신적 권능의 도구

 

엘리야 사건: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으로 하늘로 올라가더라"(왕하 2:11)

 

예수님과 성도 사건: "구름이 그를 가려"( 1:9), "우리를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살전 4:17)

 

연관성: 헬라어와 히브리어 문맥에서 '바람'(רוּחַ, 루아흐) '구름' 모두 하나님의 성령, 혹은 그분의 영광스러운 임재(Shekinah) 상징합니다.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이라는 신적 통로를 통해 끌어 올려졌듯이, 예수님과 마지막 날의 성도들 역시 하나님의 영광의 구름에 휩싸여 천상의 영역으로 이동하게 됩니다.

 

c.      '갑절의 (성령)' 전수와 지상 사역의 계승 (가장 중요한 신학적 연관성)

 

엘리야와 엘리사: 엘리야가 승천하기 직전, 엘리사는 그의 "성령이 하시는 역사가 갑절이나 내게 있게 하소서"(왕하 2:9)라고 구했습니다.  엘리야가 승천한 그의 겉옷이 떨어졌고, 엘리사는 영감을 받아 지상 사역을 갑절로 계승했습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예수님 역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하늘로부터 능력으로 입혀질 때까지 성에 머물라"( 24:49) 하셨고, 사도행전 2장에서 성령 강림으로 약속을 성취하셨습니다.

 

연관성: 스승의 승천은 사역의 끝이 아니라, 남겨진 제자들에게 성령의 권능이 부어지는 계기가 됩니다.  엘리야의 승천으로 엘리사가 사역을 이어받았듯, 예수님의 승천으로 인해 지상의 제자들(교회) 성령을 받고 주님의 사역을 땅끝까지 계승하게 되었습니다.

 

요약하자면,

구약의 엘리야 승천 사건은, 장차 참되신 선지자이자 왕이신 예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승천하시고 성령을 보내주실 것인지를 수천 전에 미리 보여준 가시적 예고편이었습니다.  그리고 엘리야와 예수님의 승천은, 마지막 그리스도 접붙임 우리 역시 영광의 몸으로 끌어 올려질 [휴거: 예수님이 재림하실 , 살아 있는 성도들이 공중으로 끌어 올려져 주님을 영접하는 사건]이라는 소망을 확고하게 지지해 줍니다(인터넷).

 

(b)   여기서 저는 데살로니가 4 16-17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로 친히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들도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혹시 예수님의 승천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의 일어남이나 우리 살아 남은 자들의 끌어 올림 연관성이 있는 같습니다.  무엇일까요?

 

(i)                  누가복음 24 51절에 묘사된 예수님의 승천(νεφέρετο, 위로 올려지고 계셨다) 데살로니가전서 4 16-17절에 약속된 성도들의 부활 휴거('일어남' '끌어 올림') 신학적으로 '원인과 결과', 그리고 ' 열매와 다음 수확'이라는 아주 밀접한 필연적 연관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를 3가지 핵심 연관성으로 인공지능이 정리한 것입니다(인터넷):

 

a.      ' 열매' 법칙: 주님의 승천은 성도 승천(휴거) '원형'이자 '보증'입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의 승천은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독단적 사건이 아니라, 장차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자들이 겪게 미래적 승천의 서막입니다.

 

고전 15:20, 23: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열매가 되셨도다... 먼저는 열매인 그리스도요 다음에는 그가 강림하실 때에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요."

 

연관성: 머리이신 예수님께서 지상 사역을 마치고 하늘 보좌로 올려지셨듯이, 그분의 교회이자 지체인 우리(그리스도 안에 죽은 자들과 살아남은 자들) 역시 머리이신 주님이 가신 길을 그대로 따라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승천은 성도의 승천을 가능하게 만드는 영적 법칙의 확립입니다.

 

b.     헬라어 동사의 연관성: 하나님의 주권적 권능에 의한 '끌어 올려짐'

 

누가복음 24 51절의 올려지시니”[νεφέρετο(아네페레토)] 수동태로 쓰여 하나님의 권능에 의해 이끌려 올라가셨음을 보여주듯, 데살로니가전서 4 17절의 '끌어 올려' 역시 강한 초자연적 권능을 뜻하는 단어가 사용되었습니다.

 

살전 4:17 “끌어 올려”: 헬라어 원어는 ρπάζω(하르파조), '낚아채다', '강탈하다', '거부할 없는 힘으로 잡아 끌어올리다'라는 뜻입니다.

 

연관성: 주님의 승천이 인간의 과학이나 중력의 법칙을 깨뜨린 하나님의 초자연적 개입이었던 것처럼, 성도들의 '일어남(부활)' '끌어 올림(휴거)' 역시 마지막 하나님의 주권적인 강력한 신적 권능에 의해 순식간에 일어날 사건입니다.   사건 모두 인간의 힘이 아닌, 오직 하나님의 신적 수동(Divine Passive)으로 이루어지는 역사입니다.

 

c.      '구름' '공중': 공간적 이동과 영광의 영역으로의 진입

 

누가복음의 병행구절인 사도행전 1 9절을 보면 예수님이 승천하실 "구름이 그를 가려 보이지 않게" 했습니다.  데살로니가전서 4 17절에서도 성도들이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한다고 기록합니다.

 

성경에서 구름의 의미: 성경에서 구름(νεφέλη, 네펠레) 단순한 대기 현상이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Shekinah(셰카이나): 히브리어로 '하나님의 임재', 또는 '인간 가운데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광채' 뜻하는 성경적·신학적 용어] 상징하는 시각적 도구입니다.

 

연관성: 예수님께서 영광의 구름에 싸여 지상(가시적 영역) 떠나 천상(하나님의 영역)으로 들어가셨듯이, 성도들 역시 영광의 구름 속으로 이끌려 들어가 '공중'이라는 영원한 처소에서 주님과 결합하게 됩니다.  주님이 승천을 통해 열어놓으신 영광의 통로로 성도들이 그대로 진입하는 것입니다.

 

요약하자면,

예수님의 승천은 "내가 하늘로 방식 그대로, 마지막 너희도 나에게로 끌어 올려 항상 함께 있게 하겠다" 것을 온몸으로 보여주신 시각적 약속입니다.  주님의 승천이 역사적 사실이기에, 우리의 부활과 휴거 역시 확실한 역사적 미래가 됩니다(인터넷).

 

(4)   마지막 넷째로, 저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을 놀라고 무서워(두려워)하며 마음에 의심을 했었던 제자들(24:37-38) 승천하시는 예수님의 축복을 받은 후에는 “[그에게 경배하고] 기쁨으로 예루살렘에 돌아가 성전에서 하나님을 찬송했다(52-53) 사실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러한 변화가 제자들에게 있을 있었던 것일까요?  이러한 변화가 우리에게도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a)   두려움과 의심으로 가득했던 제자들이(37-38) 예수님의 승천을 목격한 기쁨지속적인 찬송 사람으로 완전히 변화된 사건은, 오늘날 무기력과 염려 속에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반드시 일어나야 본질적인 영적 도약입니다.  제자들이 이토록 극적으로 변화될 있었던 결정적인 원인을 누가복음 24장의 문맥 속에서 3가지로 인공지능이 정리한 것입니다(인터넷):

 

1.      부활의 '역사적 실재' 눈과 손으로 직접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이 처음에 두려워하고 의심했던 이유는 예수님을 (유령)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37).  그러나 예수님은 의심을 책망하지 않으시고 확증을 주셨습니다.

 

손과 발을 보여주심: " 손과 발을 보고 나인 알라 나를 만져 보라"(39)

 

생선을 잡수심: 제자들이 너무 기쁘므로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랍게 여길 , 구운 생선 토막을 그들 앞에서 직접 잡수셨습니다(41-43).

 

변화의 이유: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의 부활이 환상이나 착각이 아니라 손으로 만질 있는 역사적 실제임을 온몸으로 체득했을 , 그들을 짓누르던 죽음의 공포와 의심은 순식간에 사라지고 강력한 확신이 자리를 채웠습니다.

 

2.      '성경 말씀' 깨달아져 영적 안목이 열렸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마음을 바꾼 것은 시각적 기적만이 아니었습니다.  결정적인 변화는 말씀의 깨달음에서 왔습니다.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심: 예수님은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자신을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하신 말씀을 설명해 주시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45) 하셨습니다.

 

변화의 이유: 십자가의 고난과 부활이 실패나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원한 구속 역사 속에서 치밀하게 계획된 필연적 사건임을 성경을 통해 깨닫자 그들의 절망은 '구원의 확신'으로 완전히 뒤바뀌었습니다.

 

3.      승천하시는 대제사장의 '현재적 축복' 무게를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누가복음의 마지막 장면은 제자들의 시선을 땅에서 하늘로 옮겨 놓았습니다.

 

축복의 손길을 보며 승천을 목격함: 예수님은 손을 들어 그들을 축복하시는 중에(ν τ ελογεν, 미완료 현재형)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51).

 

변화의 이유: 육신으로 계시던 예수님은 시공간의 제한을 받으셨지만, 승천하셔서 하나님 우편에 앉으신 주님은 이제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토록 자신들을 축복하시고 지키실 대제사장이 되셨음을 직시한 것입니다.  주님이 결코 자신들을 버린 것이 아니라, 하늘 보좌에서 영원히 동행하신다는 확신이 들었기에 그들은 고아가 아닌 승리자로서 기쁨을 안고 예루살렘(고난의 현장)으로 돌아갈 있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주는 영적 적용

 

제자들을 변화시킨 3가지 요소부활의 확신, 말씀의 개달음, 대제사장의 연속적인 축복 오늘날 우리에게도 동일하게 주어져 있습니다.

 

상황과 환경은 여전히 두렵고 두려울지라도, 지금도 하늘 보좌에서 나를 향해 손을 들고 축복하고 계시는 대제사장 예수님을 영안을 열어 바라볼 , 우리 역시 제자들처럼 "환경을 초월한 기쁨" 누리며 삶의 자리를 "찬송과 예배의 성전"으로 바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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