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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거짓” 비우기

7 장 : “ 거짓 ” 비우기         앞 장에서 우리는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과 하나님 앞에서의 실제 모습 사이에 생기는 ‘위선’을 살펴보았습니다 .   위선이 실제의 나를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는 것이라면 , 거짓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진실을 감추거나 바꾸고 , 더 나아가 하나님의 진리까지 왜곡하는 것입니다 .   거짓은 단순히 사실과 다른 말을 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   거짓은 진리를 거부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8 장 44 절에서 마귀를 가리켜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거짓의 뿌리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다른 것을 믿게 하고 , 결국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거짓을 찾아내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   “나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 ”   “내 유익과 평판을 지키기 위해 사실을 감추거나 바꾸고 있지는 않은가 ? ”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가 , 아니면 내가 듣고 싶은 말씀만 받아들이는가 ? ”   거짓 비우기는 이 질문 앞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살피는 데서 시작됩니다 .   거짓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예레미야 9 장 3 절부터 6 절은 거짓이 가득했던 당시 유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   사람들은 활을 당기듯 혀로 거짓을 쏘았고 , 서로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러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알기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   거짓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만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 하나님과의 관계도 무너뜨립니다 .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삶에서는 거짓과 속임수를 당연...

7장: “거짓” 비우기

7: “거짓비우기

 

 

 

 

앞 장에서 우리는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과 하나님 앞에서의 실제 모습 사이에 생기는 ‘위선’을 살펴보았습니다.  위선이 실제의 나를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는 것이라면, 거짓은 자신의 유익을 위해 진실을 감추거나 바꾸고, 더 나아가 하나님의 진리까지 왜곡하는 것입니다.

 

거짓은 단순히 사실과 다른 말을 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거짓은 진리를 거부하고 자신에게 유리한 것을 진실처럼 받아들이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요한복음 8 44절에서 마귀를 가리켜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거짓의 뿌리에는 하나님의 말씀보다 다른 것을 믿게 하고, 결국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거짓을 찾아내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아가고 있는가?  “내 유익과 평판을 지키기 위해 사실을 감추거나 바꾸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가, 아니면 내가 듣고 싶은 말씀만 받아들이는가?  거짓 비우기는 이 질문 앞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살피는 데서 시작됩니다.

 

거짓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게 합니다

 

예레미야 9 3절부터 6절은 거짓이 가득했던 당시 유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사람들은 활을 당기듯 혀로 거짓을 쏘았고, 서로 속이며 진실을 말하지 않았습니다.  더 심각한 문제는 그러한 삶 속에서 하나님을 알기를 거부했다는 것입니다.  거짓은 사람과 사람 사이의 신뢰만 무너뜨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도 무너뜨립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하면서 삶에서는 거짓과 속임수를 당연하게 여긴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세상의 방법을 더 의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편 62 4절은 입으로는 축복하면서 속으로는 저주하는 사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말과 마음이 서로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의 작은 거짓을 가볍게 여기기 쉽습니다.  자신의 실수를 감추기 위해 사실을 조금 바꾸고, 책임을 피하기 위해 중요한 부분을 말하지 않으며, 자신의 평판을 지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작은 거짓을 반복해서 허용하면 양심은 점점 무뎌집니다.  처음에는 마음이 불편하지만, 반복하다 보면 거짓말을 하면서도 아무렇지 않게 됩니다.  그러므로 거짓을 비우는 일은 큰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을 사랑하고, 손해를 보더라도 진실을 선택하는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거짓된 말씀은 사람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

 

성경이 특별히 엄하게 경고하는 거짓 가운데 하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거짓을 말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시대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맡았다고 주장하면서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말을 전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6 13절부터 15절을 보면 백성은 탐욕에 빠져 있었고 지도자들은 거짓을 행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백성의 상처를 가볍게 여기며, “평강하다, 평강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평강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거짓된 말씀의 위험입니다.  사람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해주는 것이 반드시 사랑은 아닙니다.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무너지고 있는데도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사람을 살리는 위로가 될 수 없습니다.  참된 위로는 죄를 감추어 주는 것이 아니라 죄인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합니다.  참된 사랑은 회개가 필요한 사람에게 거짓된 평안을 주는 것이 아니라 말씀 앞에서 자신의 상태를 깨닫고 하나님께 돌아오도록 돕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지 않으셨는데 하나님의 이름으로 말해서는 안 됩니다

 

예레미야가 거짓 선지자들을 책망할 때 반복해서 지적한 문제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지 않으셨는데 보냄을 받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28 15절에서 하나냐를 향해 이렇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를 보내지 아니하셨거늘 네가 이 백성에게 거짓을 믿게 하는도다.  예레미야 14장과 23, 27장에서도 같은 문제가 반복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지 않으셨는데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고 말하고, 자신의 생각과 꿈과 욕망을 하나님의 말씀인 것처럼 전했습니다.  이것은 목회자가 특별히 두려워해야 할 죄입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 권한이 없습니다.  자신의 정치적인 생각이나 개인적인 욕망, 성공에 대한 기대나 경험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선언해서도 안 됩니다.  설교자는 말씀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맡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설교자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이것이 정말 본문이 말하고 있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과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을 혼동하고 있지는 않은가?  “나는 성도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하고 있는가, 아니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충실하게 전하고 있는가?  강단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는 사람일수록 이 질문 앞에 더욱 두려운 마음으로 서야 합니다.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이 언제나 좋은 말씀은 아닙니다

 

디모데후서 4 3절은 사람들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않고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따를 스승을 많이 두고” 살아갈 때가 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함께 나타납니다.  하나는 사람들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전하는 지도자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이 듣고 싶은 말만 찾는 청중의 문제입니다.  거짓된 가르침은 이 둘이 만날 때 더욱 강해집니다.  설교자는 사람들의 박수를 원하고, 청중은 자신의 욕망을 인정해 주는 설교를 원합니다.  결국 서로가 서로에게 듣고 싶은 말을 주고받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언제나 우리의 귀를 편안하게 해주는 말씀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위로합니다.  때로는 책망합니다.  때로는 우리의 죄를 드러냅니다.  때로는 우리가 가던 길에서 돌아서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끕니다.  그러므로 참된 설교의 기준은 “내가 듣기에 좋은가?”가 아닙니다.  “이 말씀이 성경에서 나온 것인가?  “이 말씀이 나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가?  “이 말씀 앞에서 나 자신을 돌아보고 회개하며 순종하게 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미가야는 사람들이 원하는 말보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전했습니다

 

열왕기상 22장에는 거짓된 말씀과 참된 말씀의 차이를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이 나옵니다.  아합 왕이 길르앗 라못을 치러 가려고 할 때 많은 선지자들은 왕이 듣고 싶어 하는 말을 전했습니다. 전쟁에 나가면 승리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미가야는 달랐습니다.  사람들은 미가야에게 다른 선지자들과 같은 좋은 말을 하라고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미가야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내게 말씀하시는 것 곧 그것을 내가 말하리라.  이 한 문장이 참된 말씀의 종이 가져야 할 자세를 보여줍니다.  설교자는 회중이 원하는 말을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닙니다.  왕이 좋아할 말을 하는 사람도 아닙니다. 자신의 인기를 지키기 위해 말씀을 부드럽게 바꾸는 사람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전하는 사람입니다.  미가야가 전한 말씀은 왕이 듣기 원하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미움을 받고 고난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사람의 반응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참된 말씀의 종은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두려워합니다. 

 

참된 설교는 사람을 회개와 그리스도께로 이끕니다

 

그렇다면 참된 목회자와 거짓된 목회자를 어떻게 분별할 수 있을까요?  단순히 설교를 잘하는가, 많은 사람이 모이는가, 유명한가, 감동적인가만으로 판단할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적어도 세 가지를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맡기신 말씀을 전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성경이 실제로 말하는 것을 충실하게 전해야 합니다.  둘째, 말씀의 알맹이가 있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예레미야 시대의 거짓 선지자들은 자신의 꿈과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처럼 전했습니다.  그러나 참된 말씀은 인간의 상상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뿌리를 둡니다.  셋째, 사람을 회개와 순종으로 이끄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참된 설교는 사람을 정죄하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죄를 깨닫게 하고 십자가 앞으로 인도하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붙들고 새로운 삶으로 나아가게 합니다.  위로가 필요할 때에는 위로해야 합니다.  상처 입은 사람을 더 짓누르는 것이 참된 설교는 아닙니다.  그러나 회개가 필요한 곳에서 회개를 말하지 않는 것 역시 사랑이 아닙니다.  참된 목자는 양들이 자신을 따르게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양들이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돕는 사람입니다.

 

성도도 들은 말씀을 분별해야 합니다

 

거짓된 가르침에 대한 책임을 목회자에게만 돌려서는 안 됩니다.  성도에게도 말씀을 분별할 책임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그의 말을 무조건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의 직분이나 학력이나 교회의 규모가 그가 하는 모든 말을 자동으로 진리로 만들어 주지는 않습니다.  설교를 들을 때 성경을 펴고 살펴야 합니다.  “이 말씀이 정말 성경이 가르치는 것인가?  “본문의 뜻을 바르게 전하고 있는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일치하는가?”를 살펴야 합니다.  목회자를 존중하는 것과 목회자를 절대화하는 것은 다릅니다.  참된 목회자는 성도들이 자신에게 의존하기를 바라기보다 성도들이 직접 말씀을 읽고, 기도하고,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며 그리스도를 따라가도록 도와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의 최종적인 대상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거짓은 다른 사람의 삶을 무너뜨릴 수 있습니다

 

성경은 거짓 증언을 매우 심각하게 다룹니다.  십계명의 아홉 번째 계명은 분명합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  거짓말은 단순히 말의 문제가 아닙니다. 한 사람의 명예와 가정과 일터와 인생을 무너뜨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열왕기상 21장에서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해 거짓 증인을 세웠습니다.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했다고 거짓 증언하게 했고, 결국 죄 없는 나봇은 죽임을 당했습니다.  탐욕이 거짓을 낳았고, 거짓이 한 사람의 생명을 빼앗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사람에 관한 말을 들었을 때 성급하게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한 사람의 증언만으로 중대한 일을 확정하지 말고 충분한 증언을 통해 사실을 확인하도록 가르칩니다( 19:15).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 관한 좋지 않은 말을 들었다고 해서 그것을 사실로 단정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퍼뜨려서는 안 됩니다.  먼저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한쪽 이야기만 듣고 사람을 정죄해서도 안 됩니다.  특히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말을 믿고 판단하면 한 사람에게 돌이키기 어려운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진실을 사랑하는 사람은 소문을 빨리 퍼뜨리는 사람이 아니라 사실을 신중하게 확인하는 사람입니다.

 

거짓은 진리를 없앨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을 때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군인들에게 돈을 주며 거짓말을 퍼뜨리게 했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훔쳐 갔다.  자신들의 자리와 평판을 지키기 위해 돈으로 거짓말을 만들어 낸 것입니다.  그러나 거짓말로 부활의 진리를 없앨 수는 없었습니다.  사람은 진실을 감추려고 할 수 있습니다.  돈과 권력을 이용하여 사실을 왜곡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루신 진리를 없앨 수는 없습니다.  이 사실은 거짓 때문에 억울한 일을 당하는 사람에게도 중요한 위로가 됩니다.  모든 진실이 우리가 원하는 시간에 밝혀지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오랫동안 오해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는 거짓을 또 다른 거짓으로 이기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진실을 말하고, 할 수 있는 책임을 다하고, 최종적인 판단을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거짓을 이기는 길은 더 교묘한 거짓이 아니라 진실입니다.

 

복음에 무엇인가를 더하는 것도 경계해야 합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그리스도의 복음에 인간의 공로를 더하려 했던 거짓 가르침을 강하게 경고합니다.  구원은 우리의 행위와 공로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의 은혜를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에 인간의 공로를 더하여 그것이 구원의 조건인 것처럼 가르친다면 복음의 본질을 흐리게 만들 수 있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2 17절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해서는 안 됩니다.  목회자에게 말씀은 성공을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교회를 크게 만들기 위한 상품도 아닙니다.  사람들의 마음을 얻기 위한 수단도 아닙니다.  말씀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맡은 사람은 그것을 자신의 욕망과 섞지 말고 순전하게 전해야 합니다. 

 

거짓을 비우는 것은 진리 앞에서 자신을 정직하게 돌아보는 것입니다

 

거짓에 관한 말씀을 읽으면서 거짓 목회자와 거짓 교인을 찾아내는 것으로 끝나서는 안 됩니다.  다시 우리 자신에게 돌아와야 합니다.  목회자는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은 말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고 있지는 않은가?  “교회의 성장이나 나의 평판을 위해 말씀을 바꾸고 있지는 않은가?  “사람들이 듣기 싫어한다는 이유로 꼭 전해야 할 말씀을 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성도도 물어야 합니다: “나는 듣고 싶은 말씀만 찾고 있지는 않은가?  “나를 위로하는 말씀은 좋아하면서 나를 책망하는 말씀은 거부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가 원하는 것을 말해주는 설교자를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의지하고 있지는 않은가?  그리고 가정과 일터에서도 물어야 합니다: “내 실수를 감추기 위해 사실을 바꾸고 있지는 않은가?  “내 이익을 위해 약속을 다르게 설명하고 있지는 않은가?  “내 잘못을 다른 사람에게 돌리고 있지는 않은가?  거짓 비우기는 다른 사람의 거짓을 폭로하는 운동이 아닙니다.  먼저 내 안의 거짓을 하나님의 말씀 앞에 드러내고 비우는 것입니다. 

거짓 없는 믿음은 자신의 의심까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가져갑니다

 

디모데후서 1 5절에서 바울은 디모데 안에 있는 “거짓이 없는 믿음”을 말합니다.  거짓 없는 믿음이란 한 번도 흔들리지 않는 믿음을 뜻하지 않습니다.  두려움이나 의심이 전혀 없는 사람만 참된 믿음을 가진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거짓 없는 믿음은 자신의 연약함까지 하나님 앞에 정직하게 가지고 가는 믿음입니다.  믿어지지 않는데도 다른 사람에게 믿음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 위해 “나는 전혀 두렵지 않다”고 말할 필요는 없습니다.  힘들면 힘들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두려우면 두렵다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의심이 생기면 그 의심까지 하나님께 가지고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다시 하나님의 약속을 붙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도 자신의 능력에 대한 확신이 아니었습니다.  로마서 4 21절은 그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했다고 말합니다.  참된 믿음은 “나는 할 수 있다”는 자기 확신이 아닙니다.  “나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신실하시다”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입니다.  그러므로 거짓 없는 믿음은 강한 사람처럼 보이는 믿음이 아니라,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드는 믿음입니다.

 

 

 

 

 

 

 

 

 

 

 

 

 

 

 

 

 

 

 

 

“거짓” 비우기의 원리 및 실천 지침

 

 

 

 

그렇다면 우리는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거짓을 어떻게 비워 갈 수 있을까요?  거짓은 어느 날 갑자기 큰 거짓말로 시작되는 경우보다 작은 타협을 반복하면서 마음속에 자리를 잡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말씀 앞에서 자신을 살피고, 작은 일에서도 진실을 선택하는 훈련이 필요합니다.  다음의 다섯 가지를 삶 속에서 실천할 수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을 진실의 기준으로 삼으십시오.

 

내 생각과 감정이 언제나 옳은 것은 아닙니다.  내가 간절히 원하는 것도 하나님의 뜻과 다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 위에 두지 말고 말씀 아래 두어야 합니다.  특히 목회자는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쉽게 말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설교할 때 본문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 먼저 살피고, 자신의 생각을 성경에 억지로 집어넣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도 유명한 사람의 말이라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받아들이지 말고 성경을 통해 확인하는 습관을 가져야 합니다.  사람의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 거짓을 비우는 첫걸음입니다.

 

2.   작은 일에서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말하십시오.

 

거짓은 작은 타협에서 시작됩니다.  자신에게 불리한 부분을 일부러 빼거나, 자신의 책임을 줄이기 위해 이야기를 조금 바꾸거나, 상대방에게 좋은 인상을 주기 위해 사실을 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사람은 자신에게 불리하더라도 사실을 바꾸지 않습니다.  가정에서도 잘못했을 때 변명하지 마십시오.  “내가 잘못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일터에서도 실수를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책임을 돌리지 마십시오.  사업에서도 계약과 약속을 자신에게 유리하게 바꾸어 설명하지 마십시오.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을 선택하십시오.

 

3.   다른 사람에 관한 말을 옮기기 전에 사실을 확인하십시오.

 

거짓말을 직접 만들어 내는 것만 죄가 아닙니다. 확인하지 않은 말을 사실인 것처럼 전달하는 것도 다른 사람에게 큰 피해를 줄 수 있습니다.  누군가에 관한 좋지 않은 이야기를 들었다면 즉시 다른 사람에게 옮기지 마십시오.  “이것이 사실인가?  “내가 직접 확인했는가?  “이 말을 전달하는 것이 정말 필요한가?”를 먼저 물어야 합니다.  특히 교회 공동체에서는 소문이 한 사람의 신앙과 가정과 명예를 크게 해칠 수 있습니다.  진실을 사랑한다면 말하기 전에 확인하고, 확인할 수 없다면 함부로 단정하지 마십시오.

 

4.   일터와 사업에서 정직과 투명성을 지키십시오.

 

거짓을 비우는 가장 실제적인 현장 가운데 하나가 돈과 이익이 오가는 일터입니다.  조금 더 이익을 얻기 위해 계약의 의미를 바꾸거나, 중요한 사실을 숨기거나, 상대방이 모르는 것을 이용해서 부당한 이익을 얻어서는 안 됩니다.  약속한 것은 지키고, 잘못한 것은 인정하며,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은 책임져야 합니다.  정직하면 당장 손해를 보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성도에게 성공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신실함입니다.  이익을 얻기 위해 진실을 버리지 마십시오. 진실을 지키기 위해 이익을 포기해야 할 때에는 하나님을 신뢰하십시오.

 

5.   잘못이 드러났을 때 변명보다 회개를 선택하십시오.

 

거짓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또 다른 거짓을 만들어 냅니다.  처음에는 작은 실수를 감추기 위해 거짓말을 하지만, 그 거짓말을 지키기 위해 또 다른 거짓말이 필요해집니다.  그러므로 잘못이 드러났을 때 거짓을 더하여 자신을 지키려고 하지 마십시오.  인정하십시오.  사과하십시오.  필요하다면 바로잡으십시오.  그리고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십시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은 수치가 아닙니다.  오히려 잘못을 알면서도 끝까지 감추고 거짓으로 자신을 지키려는 것이 영혼을 더 깊은 속박으로 끌고 갑니다.  회개할 수 있다는 것은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 실천만으로 우리 마음의 모든 거짓을 없앨 수 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거짓은 다른 사람을 속이는 데서 끝나지 않고 자기 자신까지 속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욕망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착각할 수도 있고, 자신의 생각을 진리라고 믿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날마다 성령께서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제 안에 있는 거짓을 보여 주십시오.  제 유익과 체면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감추거나 바꾸지 않게 하십시오.  제가 듣고 싶은 말씀만 찾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정직하게 서게 하십시오.  제 생각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주장하지 않게 하시고, 말씀을 맡은 자로서 주님의 말씀을 바르게 전하게 하십시오.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손해를 보더라도 진실을 선택하게 하시고, 잘못했을 때 변명하지 않고 인정하고 회개하게 하십시오.  거짓을 비운 제 마음을 그리스도의 진리로 채워 주십시오.

 

거짓을 비운다는 것은 말을 조심하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거짓 비우기는 내가 원하는 진실을 만들어 내는 삶을 버리고, 하나님의 진리 아래 나 자신을 두는 것입니다.  내 유익을 위해 사실을 바꾸지 않고, 사람의 박수를 얻기 위해 말씀을 바꾸지 않으며, 자신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목회자는 자신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성도는 사람의 말을 하나님의 말씀보다 높이지 말아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변명보다 정직을 선택해야 합니다.  일터에서는 이익보다 진실을 선택해야 합니다.  교회에서는 소문보다 사실을 확인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했을 때에는 거짓으로 자신을 보호하기보다 십자가 앞에서 회개해야 합니다.  비우기의 목적은 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이 차지하고 있던 마음의 자리를 비우고 그 자리를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채우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거짓을 비우는 마지막 목적은 단순히 ‘거짓말하지 않는 사람’이 되는 데 있지 않습니다.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그분의 말씀 안에서 진실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거짓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진실을 바꾸지만, 믿음은 자신을 하나님께 맡기고 진실을 선택합니다.  거짓은 사람의 반응을 두려워하지만, 진실한 믿음은 하나님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깁니다.  거짓은 자신의 잘못을 감추지만, 복음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십자가의 은혜를 붙들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지금 진실을 말하고 있는가?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가?  “나는 내 유익보다 진리를 더 사랑하고 있는가?  그리고 거짓이 발견될 때마다 그것을 숨기지 말고 십자가 앞에 가지고 가야 합니다.  그렇게 거짓을 하나씩 비우고 그 자리를 그리스도의 진리로 채워 가는 것, 이것이 우리가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날마다 걸어가야 할 “거짓 비우기”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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