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죽으심 (6)
[사도행전 1장 1-11절]
우리가 예수님의
5대 사역중 두 번째인 “예수님의 죽으심”에 대해서 묵상해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여섯 번째로 “예수님의 죽으심
(6)”이란 제목아래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8가지로 나눠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1) 기도의 시간,
(2) 기도의 장소,
(3) 기도의 자세,
(4) 기도의 내용,
(5) 기도의 열심,
(6) 기도의 인내,
(7) 기도의 응답,
(8) 기도의 결과. 지난 주 수요예배 때 우리는 이미
(1) 기도의 시간(죽게되었을 때)와 (2) 기도의 장소(하나님의 면전에서)와 (3) 기도의 자세와
(4) 기도의 내용과 (5) 기도의 열심을 묵상했습니다. 오늘은
(6) 기도의 인내와 (7) 기도의 응답과
(8) 기도의 결과에 대해서 묵상하면서 주시는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여섯 번째로, ‘기도의 인내’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26장 44절 말씀입니다:
“또 그들을 두시고 나아가 세 번째 같은 말씀으로 기도하신 후.”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인내하시면서 기도하신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기도 응답을 받으실 때까지 인내하시면서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앞서 두 번이나 하셨던 기도의 내용은
*"내 아버지여 만일 내가 마시지 않고는 이 잔이 내게서 지나갈 수 없거든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였습니다. 4 4절에서 세 번째로 같은 기도를 하셨다는 것은 중언부언하는 헛된 반복이 아니라,
자신의 온 마음과 생명을 다해 아버지의 뜻에 완전히 굴복하기까지 포기하지 않고 기도하셨음을 뜻합니다(인터넷).
성경을 보면 인내하지 않고도 기도 응답을 받은 경우도 있습니다. 그 예가 바로 느혜미야입니다(느2:1-8). 주요 내용은 아닥사스다 왕 앞에서 수심을 보인 느헤미야가 왕의 질문(4절)에 대답하기 전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하고,
예루살렘 성 건축과 귀환에 필요한 조서와 재목을 구하였을 때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왕이 이를 즉각 허락한 사건을 담고 있습니다. 느헤미야
2장 1절에서 8절을 보면,
페르시아의 아닥사스다 왕이 수심이 가득한 느헤미야에게
"네가 무엇을 원하느냐"라고 불시에 질문을 던집니다.
왕의 말 한마디에 목숨이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절체절명의 위기 순간이었습니다. 이때 느헤미야는 길게 무릎을 꿇고 인내하며 기도할 시간적 여유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대답하기 직전,
찰나의 순간에 마음으로
'하늘의 하나님께 묵도'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왕에게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요청했습니다. 그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느헤미야의 그 짧은 화살 같은 기도를 들으시고,
즉시 왕의 마음을 움직이셨습니다.
그리하여 왕은 느헤미야가 요구한 통행 조서와 성벽 재건에 필요한 목재까지 그 자리에서 모두 즉각적으로 허락해 주었습니다. 우리는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때로는 인내의 과정 없이도 우리의 급박한 부르짖음에 즉각적으로 응답하시는 분임을 알 수 있습니다(인터넷).
그러나 모든 성도의 기도 응답이 다 느헤미야처럼 즉각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때로 우리의 믿음을 연단하시기 위해 인내의 기도를 요구하시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엘리야의 경우가 바로 그러했습니다.
엘리야는 무려 일곱 번이나 간절히 반복해서 기도를 드린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의 기도 응답을 받아낼 수 있었습니다. 열왕기상
18장 44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일곱 번째 이르러서는 그가 말하되 바다에서 사람의 손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나나이다.” 엘리야는
3년 반 동안 가뭄이 들었던 이 땅에 비를 내려달라고 땅에 엎드려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한 번 기도하고 사환을 보내 바다를 바라보게 했지만 아무 표징도 없었습니다.
두 번,
세 번,
여섯 번을 기도해도 하늘은 여전히 메말라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없다'는 사환의 절망적인 보고가 여섯 번이나 반복되는 동안에도,
엘리야는 낙심하지 않고 일곱 번째까지 인내하며 기도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마침내 일곱 번째 기도를 드렸을 때,
저 멀리 바다 끝에서 사람의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 하나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엘리야는 그 작은 징조를 보고 큰 비가 올 것을 확신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에 즉시 응답하시기도 하지만,
때로는 엘리야처럼 일곱 번까지 끝까지 인내하며 부르짖는 자를 통해 하나님의 크신 역사를 나타내십니다.
이렇게 우리도 인내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역시 기도의 응답이 더디 올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끝까지 인내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내 뜻과 내 타이밍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때를 신뢰하며 끈기 있게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8장 1절에서 8절을 통해,
우리가 왜 낙심하지 않고 인내하며 기도해야 하는지를
'불의한 재판장과 과부의 비유'로 명확하게 가르쳐 주셨습니다.
주님은 이 비유를 시작하시면서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말아야 할 것'을 분명히 선언하십니다. 비유에 등장하는 한 과부는 억울한 일을 당해 재판장을 찾아갔지만,
그 재판장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하는 불의한 자였습니다.
과부의 청을 들은 척도 하지 않았습니다.
만약 이 과부가 한두 번 가보고
'안 되는구나'
하며 낙심하고 포기했다면 그녀의 억울함은 영영 풀리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과부는 번거로울 정도로 날마다 찾아가 부르짖었고,
결국 그 완악한 재판장도 과부의 끈질긴 인내에 항복하여 그 원한을 풀어주게 됩니다. 주님은 하물며 불의한 재판장도 인내하며 구하는 자의 소원을 들어주는데,
밤낮 부르짖는 택하신 자들의 기도를 하나님 아버지께서 어찌 외면하시겠느냐고 말씀하십니다.
비록 응답이 지체되는 것처럼 보일지라도,
하나님은 반드시 속히 그 원한을 풀어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 비유의 진짜 결론은
8절 마지막에 나옵니다.
주님은
"그러나 인자가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라고 탄식하십니다.
응답이 더디 올 때 낙심하여 기도의 자리를 떠나는 것이 우리 신앙의 가장 큰 위기(Danger)입니다. 끝까지 인내하며 부르짖는 믿음,
즉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끝까지 신뢰(Divine
Trust)하는 기도의 무릎이 오늘날 너무나 희귀하다는 주님의 안타까운 외침입니다.
우리는 기도가 응답될 때까지 인내하는 이 참된 믿음의 소유자가 되어야 합니다(인터넷).
일곱 번째로, ‘기도의 응답’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예수님께서 세 번이나 피땀 흘려 인내하며 기도를 마쳤을 때,
하늘에서 천사가 내려와 힘을 돕는 영적인 응답이 임했습니다.
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았고 곧 체포될 위기였지만,
기도를 끝내신 예수님의 내면은 완전히 승리하여 확신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26장 45절을 보면 기도를 마친 주님의 당당한 선포가 나옵니다:
“이에 제자들에게 오사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이전까지만 해도 예수님은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다'고 하시며,
가급적 이 고난의 잔이 지나가기를 눈물로 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세 번에 걸친 인내의 기도가 끝난 직후,
주님의 음성에는 더 이상 두려움이나 망설임이 없습니다.
다가오는 십자가의 때를 담대히 선포하시며,
오히려 잠든 제자들을 깨우고 원수들을 향해 당당히 걸어 나가십니다. 인내의 기도는 문제를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정면으로 돌파할 수 있는 영적인 힘을 공급받는 통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를 응답해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응답해주신다고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기도의 자리에 낙심하지 않고 끝까지 머물 수 있는 이유는,
기도가 우리의 막연한 독백이 아니라 하나님의 신실하신 약속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를 확증하는 하나님의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1)
첫 번째로,
예레미야 33장 3절 말씀입니다:
"너는 내게 부르짖으라 내가 네게 응답하겠고 네가 알지 못하는 크고 은밀한 일을 네게 보이리라."
이 말씀은 예레미야 선지자가 시위대 뜰에 갇혀 한 치 앞도 볼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주신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들어주겠다'는 정도를 넘어,
우리의 생각을 뛰어넘는
'크고 은밀한 일',
곧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을 기도를 통해 보여주겠다고 약속하십니다.
(2)
두 번째로,
마태복음 7장 7절 말씀입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예수님께서는 세 가지 강력한 동사
'구하라, 찾으라, 두드리라'를 사용하시면서 기도하는 자에게 반드시
'주실 것이요,
찾아낼 것이요,
열릴 것'이라는 삼중의 절대적인 응답을 보장하셨습니다.
주님은 구하는 자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신실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이처럼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분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확실한 약속의 말씀을 붙잡고 담대히 은혜의 보좌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의 응답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묵상할 때,
아브라함의 사연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아브라함 하면 우리는 즉각적으로 “여호와 이레”,
즉 '여호와께서 준비하신다'는 은혜의 고백을 가장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창세기
22장 14절을 보면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그 땅 이름을 여호와 이레라 하였으므로 오늘날까지 사람들이 이르기를 여호와의 산에서 준비되리라 하더라." 아브라함이 독자 이삭을 번제로 바치라는 청천벽력 같은 시험 앞에 순종하여 칼을 들었을 때,
하나님은 그를 급히 막으셨습니다.
그리고 고개를 돌려보니 수풀에 뿔이 걸려 있는 숫양 한 마리가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부르짖고 순종하며 나아간 그 예배의 자리에,
하나님은 이미 번제할 제물을 완벽하게 예비해 두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당신의 사랑하는 자녀들의 간구함과 기도를 신실하게 응답하십니다.
우리가 눈물로 기도 제목을 들고 하나님의 산(기도의 자리)으로 올라갈 때,
하나님은 우리가 미처 생각지도 못한 응답을
'미리 준비'해 놓고 기다리십니다. 기도의 응답은 내가 부르짖는 순간에 겨우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완전한 주권 속에서 이미 예비되어 있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낙심치 말고 끝까지 기도해야 합니다(인터넷).
마지막 열덟 번째로, ‘기도의 결과’에 대해서 묵상하고자 합니다.
기도를 마친 예수님께 세상의 군대와 원수들이 몰려왔습니다.
그러나 그 결정적인 순간에 드러난 기도의 결과는 놀라웠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에게 힘이 없어 무력하게 잡히신 것이 아니라,
인류 구원의 사명을 위해 스스로 잡혀 주신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유다와 군사들이 예수님을 잡으러 왔을 때,
예수님은 당당하게 그들을 맞이하셨으며 그들에게 결박당하신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내어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얼마든지 그 자리를 피하실 수가 있으셨습니다.
가룟 유다가 로마 군대와 대제사장들의 하속들을 떼거지로 데리고 왔다 했을지라도,
예수님은 이미 기도를 통해 모든 상황을 다 알고 계셨기에 얼마든지 그 위기를 모면하고 피하실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도망치거나 피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요한복음
18장 1절에서 11절을 보면 당시의 상황이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이
"너희가 누구를 찾느냐"
물으시며
"내가 그니라"
하고 당당히 정체를 밝히시자,
그를 잡으러 왔던 강력한 군사들과 하속들이 뒤로 물러가 땅에 엎드려지는 압도적인 광경이 벌어집니다(6절). 주님의 신적 권세 앞에 세상의 군대가 추풍낙엽처럼 쓰러진 것입니다.
또한 베드로가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랐을 때도,
예수님은 오히려 베드로를 꾸짖으시며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11절)라며 스스로 십자가의 길을 가겠다고 선언하십니다. 이처럼 주님의 영광스러운 말 한마디에 뒤로 넘어져 땅에 엎드러지는 이 연약한 사람들이,
어떻게 감히 천지의 주재이신 예수님을 결박하고 잡아갈 수 있었겠습니까?
절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잡은 것이 아닙니다.
기도로 완전히 승리하신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하시기 위해,
스스로 권세를 내려놓고 일부러 잡혀 가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온전한 기도가 가져오는 당당함이며 영적 권세의 결과입니다(인터넷).
세상의 권력자였던 빌라도는 재판 과정에서 예수님의 무죄를 알고 어떻게든 그분을 놓아주려고 여러 번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세상의 막강한 권세를 가진 총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결국 예수님을 놓아주지 못하고 십자가에 내어주고 말았습니다.
빌라도가 유대인들의 압박에 굴복한 것처럼 보이지만,
영적인 실상은 전혀 다릅니다.
그 이유는 바로 예수님께서 그리하길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그 길을 스스로 선택하시고 허락하셨기에 빌라도는 주님의 뜻대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이 위대한 구속사의 정점이 요한복음
19장 30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신 포도주를 받으신 후에 이르시되 다 이루었다 하시고 머리를 숙이니 영혼이 떠나가시니라."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다 이루었다"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이 선포는 인류 최초의 복음이자 구원의 약속이었던 창세기
3장 15절의 말씀을 마침내 다 이루신 역사적인 순간입니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하신 그 예언대로,
예수님은 사탄에게 발꿈치를 상하는 것 같은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지만,
마침내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사탄의 머리를 완전히 짓부수고 승리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눈물의 겟세마네 기도가 가져온 최종적인 기도의 결과입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받아들이셨고,
그 결과로 온 인류의 죄를 대속하는 구원 사역을
"다 이루셨습니다. 겟세마네의 기도가 없었다면 갈보리의 승리도 없었을 것입니다.
주님은 기도로 먼저 승리하셨기에,
십자가 위에서 가장 영광스러운 구원의 마침표를 찍으실 수 있었습니다(인터넷).
결론을 맺겠습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를 시작으로 즉각 응답하시는 하나님,
인내를 요구하시는 하나님,
그리고 반드시 약속을 성취하시는 여호와 이레의 하나님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기도의 최종 결과는 환경을 이기고 사명을 다 이루는 영적 권세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 이 모든 기도의 비밀을 아는 우리가 붙잡아야 할 마지막 결론의 모델이 있습니다.
바로 엘리야의 기도입니다. 엘리야는 메마른 하늘을 바라보며 손바닥만 한 작은 구름이 일어날 때까지 일곱 번이나 인내하며 기도했습니다.
그 끈질긴 인내의 기도가 끝났을 때,
마침내 하늘이 열리고 위대한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열왕기상
18장 45절에서 46절은 기도의 결론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조금 후에 구름과 바람이 일어나서 하늘이 캄캄해지며 큰 비가 내리는지라 아합이 마차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허리를 동이고 이스르엘로 들어가는 곳까지 아합 앞에서 달려갔더라." 엘리야가 기도의 자리를 끝까지 지켰을 때,
하늘이 캄캄해지며 마침내 대지를 적시는 큰 비가 쏟아졌습니다.
뿐만 아니라 성경은
'여호와의 능력이 엘리야에게 임하매'
그가 아합의 마차보다 더 빨리 달리는 초자연적인 새 힘을 얻었다고 기록합니다.
기도는 단순히 비를 내리게 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기도하는 사람의 내면과 육체에 하나님의 권능과 새 힘이 임하게 만듭니다.
지치고 메마른 삶을 다시 달리게 하는 원동력은 오직 여호와의 능력뿐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영적인 가뭄이 찾아오고 기도의 응답이 더디 보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낙심하지 말고 엘리야처럼,
그리고 우리 예수님처럼 응답의 구름이 떠오를 때까지 인내함으로 부르짖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하늘 문이 열리고 영육의 큰 비가 내리며,
여호와의 능력이 여러분의 심령 위에 임하는 기적을 경험하길 기원합니다. 우리 모두가 이 험한 세상 속에서 낙심치 않고 끝까지 부르짖어,
마침내 "다 이루었다"는 승리를 선포하는 능력의 기도자,
약속의 성취를 맛보는 기도의 사람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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