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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pter 6: Emptying “Hypocrisy”

Chapter 6: Emptying “Hypocrisy”       `In the preceding chapters, we examined how we must empty ourselves of pride, which seeks to exalt itself above God, and greed, which is not satisfied with God but continually desires to possess more. Now we turn to another deeply rooted sin: hypocrisy .   Hypocrisy is the desire to present to others an image of ourselves that is different from who we really are. It is harboring one thing in our hearts while outwardly behaving as though we think otherwise.   It is becoming more conscious of people’s evaluation than of God and decorating our faith accordingly.   Therefore, emptying hypocrisy does not begin with trying to appear to others as a better Christian.   Rather, it begins with looking honestly at who we really are before God, without hiding anything.   We can deceive people. To some extent, we can manage the image that others see. But no mask is of any use before God, because God knows not...

바울의 마지막 문인 인사 (36) [골로새서 4장 15절]

 

바울의 마지막 문인 인사 (36)

 

 

 

[골로새서 415]

 

 

지난 주 수요일(9/16) 어느 한국 신문에 "200조원 무기 사면 뭐하나싸울 의지 없는 사우디, 후티에 쩔쩔"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기사가 있어서 읽어 보았습니다.  그 기사 내용은 사우디 아라비아가 막대한 국방비를 지출하며 세계 최고 수준의 군사 장비를 갖추고도 예멘 후티 반군의 공세에 무력하게 대처하며 '종이호랑이'로 전락한 내부 구조적 원인을 집중적으로 분석했습니다.  그 기사에서 지적한 사우디군의 3대 패착 중 하나는 왕실 혈통 중심의 무능과 부패입니다.  주요 군사 기관의 수장을 왕족들이 장악하고 있으며, 실전 성과보다는 가문과 친분 관계가 진급을 좌우하고 또한 막대한 오일 머니가 투입되는 무기 계약 과정에서 왕족 출신 군인들의 부패가 심각한 것으로 알려졌다고 합니다.  또 다른 3대 패착 중 하나는 외국인 용병 의존과 전투 의지 상실이라고 합니다.  자국 정규군의 사상자가 발생할 경우 정권이 받을 정치적 부담을 피해, 지상전의 상당 부분을 예멘 정부군이나 수단 출신 외국인 용병에게 전적으로 의존해 왔습니다.  사우디는 올해에만 용병 투입에 30억 달러( 4조 원)를 쏟아부었으나, 결과적으로 정규군의 훈련 부족과 전투 의지 실종이라는 비참한 결과를 낳았습니다.   현재 사우디는 주요 원유 수출 경로인 호르무즈 해협을 이란에, 홍해 바브엘만데브 해협을 후티 반군에 차단당하며 안보와 국가 경제에 치명적인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제가 이 기사 내용이 생각났던 이유는 오늘 본문 골로새서 4 15절에서 사도 바울이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언급한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이란 말씀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었기 때문입니다: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눞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그 연관성이란 사우디아라비아가 겉으로는 막대한 부와 최신 무기를 자랑하지만 실상 '종이호랑이'처럼 무력한 것처럼, 골로새서 4 15절에 등장하는 라오디게아 교회 역시 겉은 화려하지만 영적으로는 무기력하였다는 것입니다.  라오디게아는 역사적·영적으로 사우디군의 패착과 놀라울 정도로 닮은 꼴을 보여줍니다.  3가지로 생각해 볼 수가 있습니다(인터넷):

 

첫째는 풍요 속의 결핍과 외주화(용병 의존 vs 수입 의존)입니다.

 

사우디가 엄청난 오일머니로 무기를 사고 지상전을 외국인 용병에게 맡겼다가 전투 의지를 상실한 것처럼, 라오디게아는 교통과 금융의 중심지로서 엄청난 부를 누렸습니다.  서기 60년경 대지진이 일어났을 때, 로마 제국의 재정 지원을 거부하고 자력으로 도시를 재건할 만큼 부유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생존에 가장 중요한 물(수자원)이 나오지 않아 외부에서 관을 통해 물을 끌어와야(외주화) 했습니다.  북쪽 히에라폴리스의 뜨거운 온천수와 골로새의 차가운 만년설 물을 끌어왔으나, 정작 라오디게아에 도착할 때쯤엔 이도 저도 아닌 미지근한 물이 되었습니다.  사우디가 돈으로 안보를 사려다 실패한 것처럼, 라오디게아 역시 부유함 속에 치명적인 결핍을 외부 의존으로 해결하려다 영적 미지근함에 빠졌습니다.

 

둘째는, 내부 구조적 무능과 자만(왕족의 무능 vs 영적 눈먼 상태)입니다.

 

사우디군이 왕실 혈통 중심의 가문과 친분으로 진급을 결정하며 내부 부패와 무능에 빠진 것처럼,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은 자신들의 물질적 풍요가 곧 영적 우월함이라 착각하는 자만에 빠졌습니다.  이에 대해 요한계시록 3 17절은 이들의 상태를 정확히 꼬집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그들은 세계 최고 수준의 안약(프리기아 가루)과 특산품인 검은 양모로 만든 옷으로 유명했지만, 영적으로는 정작 본인들이 눈멀고 벌거벗은 상태(무능과 부패)임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셋째는, 영적 종이호랑이(싸울 의지의 상실)입니다.

 

최고의 무기를 들고도 후티 반군에 쩔쩔매는 사우디군처럼, 라오디게아 교회는 차갑지도 뜨겁지도 않은 상태로 영적 전투력을 완전히 상실한 '종이호랑이' 성도들이었습니다.  세상의 부와 타협하느라 복음을 위해 싸울 의지도, 핍박을 견딜 신앙의 야성도 사라진 상태였습니다.  바울이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보내며 지척( 17km 거리)에 있는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을 함께 챙기고 편지를 돌려 읽으라고 한 이유( 4:16) 역시, 풍요 속에 갇혀 영적으로 미지근해져 가는 그들을 깨우고 골로새 교회의 신앙적 순수함과 영적 생동감을 전염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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