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위선” 비우기
앞에서 우리는 하나님보다 자신을 높이려는 교만과, 하나님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가지려는 탐욕을
어떻게 비워야 하는지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우리는 또 하나의 깊은 죄인 ‘위선’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위선은 실제의
나와 다른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마음입니다. 속으로는 다른 생각을 품고 있으면서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것처럼 행동하고, 하나님보다 사람의
평가를 의식하며 자신의 신앙을 꾸미는 것입니다. 그래서 위선 비우기는 사람들에게 더 좋은 그리스도인으로 보이려고 노력하는 데서 시작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실제 모습을 숨김없이 바라보는
데서 시작됩니다. 사람은 속일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모습은 어느 정도 관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어떤
가면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보이는 모습뿐 아니라 마음의 생각과 동기까지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위선을 비우기 위해 가장 먼저 물어야 할 질문은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보고 있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지금 나를 어떻게 보고 계시는가?” 이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는 것이 위선 비우기의 시작입니다.
말씀을
자기 욕심을 이루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복음서를 보면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의 위선을 매우 엄하게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었고, 율법을 지키는 일에도 열심이었습니다.
그러나 문제는 말씀을 아는 것과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서로 분리되어 있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6장 18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이혼에 관하여 말씀하십니다. 당시 종교 지도자들 가운데에는 신명기 24장에 기록된 이혼 증서에 관한 말씀을 자신들의 욕망에 맞게 이용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의 욕심을 비우고 순종하기 위해 받아들이기보다,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정당화하는 근거로 사용한 것입니다. 이것이 위선의 한 모습입니다. 겉으로는 “성경이 이렇게 말한다”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말씀을 자신의 욕망과 이익을 지키는 도구로 사용할 수 있습니다. 말씀에 나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내 생각에 맞추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위험에서 자유롭지 않습니다. 교회 안에서 교리와 전통과 규칙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들을 자신의 자리와 이익을 지키거나,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을 함부로 정죄하는 도구로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먼저 나를 비추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향하기 전에 내 마음을 향해야 합니다.
말씀을 가지고 다른 사람의 잘못을 찾기 전에,
그 말씀 앞에서 내가 무엇을 회개해야 하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말씀을 많이 아는 것이 위선을 막아주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을 많이 알면서도 그 말씀에 자신을 비추지 않으면,
성경 지식마저 자신의 위선을 감추는 가면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는가, 아니면 말씀을 이용하여 내 생각을 정당화하려고
하는가?”
위선은
자신의 본모습을 감추는 가면과 같습니다
신약에서 위선자를
가리키는 헬라어
‘휘포크리테스’(ὑποκριτής)는 본래 무대에서 다른 사람의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었습니다. 배우는 무대에서 자신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맡은 역할을
보여줍니다. 이 이미지가 위선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위선적인 신앙은
실제의 나와 다른 모습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려는 것입니다. 마음에는 미움이 있는데 사랑이 많은 사람처럼 행동하고, 실제로는 용서하지 않았으면서 용서한
것처럼 말하며, 하나님보다 돈과 명예를 더 의지하면서도 하나님만 의지하는 사람처럼 보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교회에서는 경건한 말을 하지만 가정에서는 가족을 함부로 대할
수도 있습니다. 강단에서는 용서를 말하면서
마음에는 오랜 미움을 품고 있을 수도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는 친절하게 말하면서 뒤에서는 그 사람을 험담할 수도 있습니다. 겉으로는 다른 사람의 성공을 축하하면서 속으로는 그 사람이
실패하기를 바랄 수도 있습니다. 위선의
위험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람
앞에서의 나와 하나님 앞에서의 내가 점점 달라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회칠한 무덤에 비유하셨습니다. 겉은 아름답게 보이지만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문제 삼으신 것은 겉을 깨끗하게 하는 행동 자체가
아니었습니다. 겉은 깨끗하게 하면서 속은 그대로 두는 것이 문제였습니다. 신앙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를 꾸미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서 내 마음의 실제 모습을 정직하게 바라보고,
그 안에 있는 죄를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은혜로 변화되어 가는 것입니다.
위선은
다른 사람뿐 아니라 자기 자신까지 속이게 합니다
가룟 유다는
위선이 얼마나 깊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인물입니다. 그는 이미 예수님을 넘겨줄 마음을 품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자신을 배반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때, 유다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랍비여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었습니다(마 26:25).
이미 마음속에서는 배신을 결정했으면서도 겉으로는 아무것도 모르는 제자처럼 행동한 것입니다.
위선은 처음에는
다른 사람을 속이는 것으로 시작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랫동안 가면을 쓰고 살다 보면 결국 자신까지 속이게 됩니다.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모습이 실제 자신의 모습이라고 착각하기
시작합니다. 교회에서 오랫동안 신실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으면 그 평가 자체가 자신의 신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목회자는 설교를 잘하고 많은 사람에게 인정받는다는 이유로 자신의
영혼도 건강하다고 착각할 수 있습니다. 직분자는 오랫동안 교회를 섬겼다는 이유로 자신은 회개할 것이 별로 없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평가는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판단하는 최종
기준이 될 수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 앞에서의 나입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무엇을 생각하는지, 가족을 어떻게 대하는지, 돈을 어떻게
사용하는지, 다른 사람의 성공과 실패를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는지, 자신의
잘못이 드러났을 때 회개하는지 아니면 변명하는지가 우리의 실제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위선 비우기는 다른 사람에게 보여주는 모습을 고치는
데서 끝나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실제의 나를 정직하게 만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행동뿐 아니라 그 동기까지 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복음
12장 2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마음을 감출 수 있습니다.
좋은 행동 뒤에 숨어 있는 욕망도 감출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는 감출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도 고린도전서 4장 5절에서 주님께서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무엇을 했는지만 보시는 것이 아니라 왜
그것을 했는지도 보십니다. 다른 사람을
도왔지만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더 컸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를 열심히 섬겼지만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싶은 마음이 숨어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옳은 말을 했지만 상대방을 회복시키기보다 이기고 싶은 마음으로
말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위선
비우기는 행동만 고치는 일이 아닙니다. 행동 뒤에 숨어 있는 마음의 동기를 하나님 앞에서 살피는 것입니다. 우리는 때때로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이것을 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인가,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서인가?” “상대방을 살리기 위해 말하는 것인가,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 말하는 것인가?” “공동체를 위한 것인가, 아니면 내 자리와 체면을 지키기 위한 것인가?” 이러한 질문 앞에 정직하게 서는 것이 위선을 비우는 중요한
훈련입니다.
다른
사람의 위선보다 먼저 내 안의 위선을 보아야 합니다
위선에 관한
말씀을 읽을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리새인을 생각하면서 다른 사람을 떠올리는 것입니다.
“저 사람이 바로 바리새인 같은 사람이다.” “저 목회자가 위선적이다.” “저 사람은 말과
행동이 다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위선에 관하여 주신 말씀은 먼저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위한 말씀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비추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장 5절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 위선자는 다른 사람의 티에는 민감하지만 자신의 들보에는 둔감합니다.
다른 사람의 잘못은 크게 보면서 자신의 잘못은 작게
봅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높은 기준을
요구하면서 자신에게는 여러 가지 이유와 예외를 허용합니다. 그러므로 위선을 비우는 첫걸음은 다른 사람의 위선을 찾아내는 것이 아니라 내 안의 위선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주님, 제가 다른
사람을 판단하면서 제 안의 죄를 보지 못했습니다.” “주님, 제가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면서 정작 저 자신에게는 적용하지 않았습니다.” “주님, 사람들에게
인정받기 위해 실제보다 더 경건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말씀은 다른 사람을 찌르는
칼이 되기 전에 먼저 나를 비추는 거울이 되어야 합니다.
자신은
실천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요구하는 것이 위선입니다
바리새인적 위선의
또 다른 모습은 자신은 행하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는 말씀대로 살라고 요구하는 것입니다. 자신은 사랑하지 않으면서 사랑하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용서하지 않으면서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자신은 섬기지 않으면서 섬기라고 요구합니다. 자신은 자신의 욕심을 비우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의 욕심을 정죄합니다. 이러한 위선은 가정에서도 쉽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자녀에게 성경을 읽으라고 하면서 자신은 말씀을 가까이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자녀에게 정직하라고
가르치면서 부모는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자녀에게 사과하라고 요구하면서 부모는 자신의 권위를 이유로
사과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특히
가장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면 권위가 무너진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래서 자신의 연약함과 실수를 감추기 위해 권위주의라는 가면을
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잘못했을 때
아내와 자녀 앞에서,“미안하다. 아빠가 잘못했다. 주님 앞에서도 내가 부족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은 권위를 잃는 일이 아닙니다. 오히려 자녀들은 완벽한 아버지보다 회개할 줄 아는 아버지를
통해 복음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한
번도 넘어지지 않는 부모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넘어졌을 때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여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목회자와 지도자가 모든 것을 알고 언제나 옳은 사람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습니다. 자신의 판단이 잘못되었을
때 인정하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사과하며, 말씀 앞에서 자신도
계속 변화되어야 하는 사람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위선을
비운다는 것은 완벽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완벽한 사람인
것처럼 보이려는 마음을 비우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보이기 위한 신앙이 종교적인 연극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신 또 하나의 이유는 그들이
사람들에게 보이는 신앙에 지나치게 집중했기 때문입니다. 신앙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무대가 아닙니다.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경건하게 보는지, 얼마나 훌륭한 목회자로 평가하는지,
얼마나 헌신적인 직분자로 인정하는지가 신앙의 중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사람에게 인정받는 것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좋은 평판도 감사할 일입니다. 그러나 사람의 평가가 하나님 앞에서의 진실함보다 중요해지는
순간 위선이 시작될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자신의 모습을 다른 사람들에게 보여줄 기회가 더욱 많아졌습니다.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여러 매체를 통해 자신의 사역과 선행과
생각을 쉽게 알릴 수 있습니다. 그
자체가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우리는 더욱 마음의 동기를 살펴야 합니다. “나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있는가, 아니면 나 자신을 드러내고 있는가?” 이 질문은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나 자신에게 먼저 물어야 할 질문입니다.
사람들에게 보이는 사역보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과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모습도 하나님 앞의 나입니다
위선을 비우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단둘이 마주하는 시간을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사람들에게 경건하게 보이기 위한 기도가 아니라 하나님께 자신의
실제 마음을 털어놓는 기도가 필요합니다. 의무적으로 성경을 읽었다는 사실을 확인하기보다 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비추시도록 해야 합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래서 은밀한 자리에서의 신앙은 중요합니다. 교회에서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 집에서는 말씀을 전혀
가까이하지 않는다면 자신의 신앙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녀에게는 예배와 말씀을 강조하면서 부모 자신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한다면 자녀들은 부모의 말과 삶 사이의 간격을 보게 됩니다. 반대로 부모가 완벽하지 않더라도 말씀을 사랑하고,
잘못했을 때 회개하고, 하나님을 의지하여 다시 일어나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자녀들은
말뿐 아니라 삶을 통해 신앙을 배우게 됩니다. 일터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들이 보고 있을 때만 정직한 것이 아니라 아무도 보지 않을 때에도 정직해야 합니다. 상사가 있을 때만 성실하게 일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맡기신
일이라는 마음으로 책임 있게 감당해야 합니다. 사람 앞에서의 나와 아무도 보지 않을 때의 나 사이의 간격이 줄어들수록 우리의 신앙은 더욱 진실해집니다.
말씀을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도구로 사용하지 마십시오
성경을 많이
알고 신학을 공부하는 것은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성경 지식이 반드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만 적용하면 그 지식이 우리를
교만하게 만들 수도 있습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이 말씀은 저 사람이 꼭 들어야 하는데.”라고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먼저 물어야 합니다:
“주님께서 오늘 이 말씀을 통해 나에게 무엇을 말씀하고 계시는가?” 다른 사람의 잘못을 분별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 것은
다릅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공동체를
보호하기 위해 권면하고 책망해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때에도 먼저 자신의 마음을 살펴야 합니다.
내가 상대방의 회복을 원하는가, 아니면 그 사람을 이기고 싶은가? 진리를 말하고 있는가, 아니면 진리를 이용하여 내 분노를 쏟아내고 있는가?
공동체를 세우려는 것인가, 아니면 내 자리를 지키려는 것인가? 말씀은 다른 사람을 공격하는 무기가 되기 전에 먼저 나 자신을
변화시키는 말씀이 되어야 합니다.
위선을
비우는 일은 십자가 앞에서 시작됩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위선을 비울 수 있습니까? 결국 십자가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서는 자신을 의롭게 꾸밀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것은 다른 사람보다 더 경건했기 때문도 아니고,
실수가 없는 사람이었기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의 은혜가 필요한 죄인입니다. 이 사실을 정말 믿는다면 자신의 연약함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쓸 이유가 줄어듭니다. 잘못했을 때 인정할 수 있고, 죄를 지었을 때
회개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었을 때 사과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내 안의 위선을 보여주실 때 숨기거나
변명하지 마십시오. “주님,
이것이 제 모습입니다.”라고 인정하십시오. 그리고 그 죄를 십자가 앞으로 가지고 가십시오. 위선을 비운다는 것은 나 자신을 더 훌륭한 사람으로 만드는
일이 아닙니다. 스스로 의로운 사람처럼
보이려는 마음을 비우고, 그리스도의 의와 은혜를 붙드는 것입니다. 야고보서 3장
17절은 위로부터 오는 지혜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합니다: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관용하고 양순하며 긍휼과 선한 열매가 가득하고 편견과 거짓이 없나니.”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겉만 아름답게 꾸며진 사람이 아닙니다.
부족함이 있더라도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모습을 정직하게
인정하고, 회개하며,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계속 변화되어 가는 사람입니다. 위선을 비운다는 것은 흠이 없는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흠이 없는 사람인 것처럼 보이려는 가면을 벗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 앞에서의 나와 하나님 앞에서의 내가 점점 하나가
되어 가는 것입니다.
“위선” 비우기의 원리 및 실천 지침
그렇다면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위선을 어떻게 비워 갈 수 있을까요? 위선은 한 번의 결단으로 완전히 사라지는 죄가 아닙니다. 우리는 사람의 평가를 의식하고 자신을 좋게 보이려는 마음을
계속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을
구하며 말씀 앞에서 자신의 마음을 날마다 살펴야 합니다. 다음의 다섯 가지를 실제 삶에서 훈련할 수 있습니다.
1. 사람의 시선보다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십시오.
누가복음 12장 2절은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긴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나니”라고
말씀합니다. 위선은 사람의 시선을 하나님보다
더 의식할 때 자라기 쉽습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보일지를 지나치게 생각하다 보면 실제의 나보다 더 좋은 모습으로 자신을 꾸미게 됩니다. 그러므로 선한 일을 할 때에도, 사역할 때에도, 다른 사람을 섬길 때에도 자신의 마음을 살펴보십시오. “사람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나는 이 일을 할 것인가?” 이 질문은 우리의
동기를 살펴보는 데 도움이 됩니다. 사람이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 아시면 충분하다는 믿음을 배우십시오.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더 중요하게 여기십시오.
2. 말과 행동 뒤에 숨어 있는 동기를 살펴보십시오.
같은
행동이라도 동기는 다를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도우면서 인정받고 싶을 수도 있고, 옳은 말을 하면서 상대방을 이기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교회를 섬기면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고 싶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내가 지금 이 말을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내가 이 일을 하는
진짜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나를 드러내기 위한 것인가?” 우리 자신의 동기를
완벽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더욱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의 마음을 살펴 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을 판단하기 전에 먼저 내 마음을 살피십시오. 말씀을 다른
사람에게 적용하기 전에 먼저 자신에게 적용하십시오.
3.
말과
삶 사이의 간격을 정직하게 인정하십시오.
위선은
실제로 살아내지 못하고 있는 신앙의 모습을 이미 살아내고 있는 것처럼 보이려고 할 때 자랍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실제보다 더 영적인 사람처럼 꾸미지 마십시오.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잘못한 것은 잘못했다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아직 변화되지 못한 부분이 있다면 하나님 앞에서
그것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특히
가정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부모가
자녀에게 보여주어야 할 것은 완벽함이 아닙니다. 잘못했을 때 회개할 줄 아는 모습입니다. 아버지가 잘못했다면 아내와 자녀에게, “미안하다. 아빠가 잘못했다.”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목회자와 지도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권위를 지키기 위해 실수를 감추기보다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사과는 영적인 권위를 무너뜨리는 것이 아니라,
위선의 가면을 벗게 합니다.
4.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중히 여기십시오.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신앙보다 하나님과 단둘이 있을 때의 신앙을 소중히 여기십시오. 기도를 사람들에게 경건하게 보이기 위한 수단으로 만들지 마십시오.
성경을 읽는 것도 신앙적인 의무를 수행했다는 만족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말씀을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자신의 마음을 살피기 위해 해야 합니다. 가정에서는 부모 자신이 먼저 말씀을 가까이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녀에게만 신앙생활을
요구하지 말고 부모가 먼저 하나님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십시오.
일터에서도 사람들이 보고 있을 때와 보지 않을 때의 모습이 다르지 않도록 하십시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도 하나님은 보고 계십니다. 사람 앞에서의 나와 하나님 앞에서의 나 사이의 간격이 줄어드는
것이 위선을 비워 가는 길입니다.
5. 믿을 만한 사람의 권면을 겸손하게 들으십시오.
우리는
자신의 위선을 스스로 보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를 사랑하면서도 필요한 말을 해줄 수 있는 믿음의 동역자가 필요합니다. 누군가 우리의 잘못을 지적할 때 즉시 자신을 방어하지 마십시오.
모든 비판을 무조건 받아들일 필요는 없지만,
먼저 하나님 앞에서 살펴보십시오. “이 말을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보여주시는 것이 있는가?” 자신의 체면보다 진실을 중요하게 여기십시오. 다른 사람의 눈에 있는 티를 찾기 전에 내 눈의 들보를 살피십시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발견했다면 변명하지 말고 회개하십시오. 공동체 안에서 서로를 사랑으로 권면하고, 권면을 겸손하게 받을 수 있을 때 위선은 설 자리를 잃어갑니다.
그러나 이 다섯
가지를 자신의 노력만으로 이루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위선을 비우는 일 역시 하나님의 은혜와 성령의 도우심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자신의 힘만으로 마음 깊은 곳의 동기를 모두 깨끗하게
만들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나는 이제
위선적이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 또 다른 자기 의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말씀으로 우리의 마음을 비추어 주시도록
구해야 합니다. 그 빛 가운데 드러난
죄를 인정하고 회개하며,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주님, 사람들에게 보이고 싶은 제 모습이 아니라 주님께서 보시는 제 모습을 보게 해주십시오. 제 안에 숨어 있는 위선과 자기 의를 보여주시고,
그것을 숨기거나 변명하지 않게 하십시오. 사람의 인정과 칭찬을 구하는 마음을 비우고 하나님 한 분을
기쁘시게 하며 살게 하십시오. 말과
삶이 하나 되게 하시고, 잘못했을 때 인정하고 회개하며 사과할 수 있는 정직한 사람이 되게 하십시오.
성령께서 제 마음을 날마다 비추시고 그리스도의 진실한
마음으로 채워 주십시오.”
위선을 비운다는
것은 자신의 약점과 실패를 모든 사람에게 다 공개한다는 뜻이 아닙니다. 또한 아무런 분별 없이 자신의 모든 생각을 말해야 한다는 뜻도
아닙니다. 위선 비우기의 핵심은 사람들에게
보이는 나와 하나님 앞에서의 실제 나 사이의 거리를 줄여 가는 것입니다.
말과 삶이 하나 되어 가고, 사람 앞에서와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의
모습이 하나 되어 가며, 잘못했을 때 가면 뒤에 숨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하게 회개하는 것입니다. 비우기의 목적은 빈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의 인정과 자기 의와 가식으로 채워져 있던 마음을
비우고 그 자리를 그리스도의 마음으로 채우는 것입니다. 위선은 “나는 이렇게 보이고 싶다”고 말하지만, 믿음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고 싶다”고
고백합니다. 그러므로 위선을 비우는
사람은 완벽한 사람처럼 보이려고 애쓰지 않습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인정하면서도 그 자리에 머물지 않고, 날마다 십자가의 은혜를 의지하여 변화되어
갑니다. 사람의 박수보다 하나님의 시선을
의식하고, 자신의 체면보다 진실을 선택하며, 다른 사람의 잘못을 지적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마음을 살핍니다. 그리고 가정과 교회와 일터에서 말과 삶이 점점 하나 되어 갑니다. 이것이 우리가 날마다 걸어가야 할 “위선 비우기”의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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