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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어찌할까’는 죄인을 향해 당장 진노를 쏟아내지 않으시고, 어떻게든 그들을 구원하고 돌이키고자 하시는 오래 참으심(인내)의 눈물이 담긴 외침입니다.

  “ 하나님의 ‘ 어찌할까 ’ 는 죄인을 향해 당장 진노를 쏟아내지 않으시고 , 어떻게든 그들을 구원하고 돌이키고자 하시는 오래 참으심 ( 인내 ) 의 눈물이 담긴 외침입니다 ."       “ 그가 또 이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한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한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세 번째 종을 보내니 이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내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혹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그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그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바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무릇 이 돌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 ”( 누가복음 20:9-18).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20 장 9-18 절에서 예수님의 “ 포도원 농부 비유 ” 의 말씀을 묵상할 때 제일 먼저 병행 구절인 마태복음 21 장 ...

“하나님의 ‘어찌할까’는 죄인을 향해 당장 진노를 쏟아내지 않으시고, 어떻게든 그들을 구원하고 돌이키고자 하시는 오래 참으심(인내)의 눈물이 담긴 외침입니다.

 

하나님의 어찌할까 죄인을 향해 당장 진노를 쏟아내지 않으시고, 어떻게든 그들을 구원하고 돌이키고자 하시는 오래 참으심(인내) 눈물이 담긴 외침입니다."

 

 

 

그가 비유로 백성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시니라 사람이 포도원을 만들어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에 가서 오래 있다가 때가 이르매 포도원 소출 얼마를 바치게 하려고 종을 농부들에게 보내니 농부들이 종을 몹시 때리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다른 종을 보내니 그도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거저 보내었거늘 다시 번째 종을 보내니 종도 상하게 하고 내쫓은지라 포도원 주인이 이르되 어찌할까 사랑하는 아들을 보내리니 그들이 그는 존대하리라 하였더니 농부들이 그를 보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는 상속자니 죽이고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하고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였느니라 그런즉 포도원 주인이 사람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와서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주리라 하시니 사람들이 듣고 이르되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 하거늘 그들을 보시며 이르시되 그러면 기록된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무릇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누가복음 20:9-18).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20 9-18절에서 예수님의 포도원 농부 비유 말씀을 묵상할 제일 먼저 병행 구절인 마태복음 21 33-46절과 마가복음 12 1-12 말씀과 비교하면서 비유의 말씀을 요약하고 싶어졌습니다.

 

(a)    말씀은 포도원 주인(하나님) 은혜를 저버리고 그의 아들(예수님)까지 죽인 악한 농부들(종교 지도자들)에게 임할 심판과 구원 역사의 이동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공관복음 본문의 핵심 내용을 바탕으로 요약한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비유의 핵심 줄거리

 

포도원 조성과 위탁: 주인이 포도원을 정성껏 가꾼 농부들에게 세로 주고 타국으로 떠납니다.

 

종들의 파견과 거역: 추수 때가 되어 주인이 소출을 받으려고 종들을 보내지만, 농부들은 종들을 때리고 모욕하며 빈손으로 쫓아냅니다.

 

아들의 파견과 살해: 주인은 마지막으로사랑하는 독자 아들 보내면 존대할 것이라 기대했으나, 농부들은 그를 상속자라 부르며 포도원 밖에 내쫓아 죽입니다.

 

주인의 심판과 결과: 진노한 주인은 직접 와서 악한 농부들을 진멸하고, 포도원을 다른 사람들에게 넘겨줍니다.

 

2.       비유의 영적 의미

 

포도원 주인: 하나님 아버지

 

악한 농부들: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기득권을 지키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

 

보냄을 받은 종들: 구약 시대에 끊임없이 배척당하고 순교했던 하나님의 선지자들

 

주인의 아들: 인류의 구원자로 오셨으나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실 예수 그리스도

 

포도원을 맡을 다른 사람들: 이방인을 포함하여 복음을 받아들이고 합당한 열매를 맺을 새로운 하나님 나라의 백성(교회)

 

3.       복음서(공관복음) 강조점 비교

 

마태복음 (21:33-46): 포도원의 세부 묘사(산울타리, 짜는 , 망대) 가장 구체적입니다.  특히 "하나님의 나라를 너희는 빼앗기고 나라의 열매 맺는 백성이 받으리라" 선언을 통해, 구원의 은혜가 유대 종교 지도자들에게서 열매 맺는 이방인과 교회로 이동함을 명확히 강조합니다.

 

마가복음 (12:1-12): 이야기의 전개가 매우 간결하고 역동적입니다.  주인이 보낸 종들의 수난 과정을 점진적으로 묘사하며, 마지막에 보낸 아들이하나뿐인 사랑하는 아들임을 부각하여 예수님의 독생자성과 십자가 죽음의 비극성을 드러냅니다.

 

누가복음 (20:9-18): 주인이 아들을 보내기 "어찌할까" 고민하는 내면적 묘사가 특징적입니다.  비유의 결론 부분에서 종교 지도자들이 심판의 메시지를 듣고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라고 반응하자, 예수님은 시편 말씀을 인용하시며 건축자의 버린 (예수님)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는 엄중한 심판을 덧붙이십니다(인터넷).

 

(2)    둘째로,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기득권을 지키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악한 농부들) 구약 시대에 끊임없이 하나님의 선지자들(보냄을 받은 종들) 배척하고, 몹시 때리고, 능욕하고 심지어 죽이기까지한 이유에 대해서 궁금해졌습니다.   구체적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a)    악한 농부들(유대 종교 지도자들) 하나님의 종들(선지자들) 그토록 잔인하게 배척하고 죽인 구체적인 이유는 크게 가지로 요약할 있습니다(인터넷):

 

1.       경제적·정치적 기득권의 사수

 

성전 중심의 거대한 이권: 당시 대제사장 가문과 종교 지도자들은 성전 제사와 세금, 환전 등을 통해 막대한 부와 권력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소유권의 착각: 비유 농부들이 포도원을 '자신의 소유' 착각했듯, 이들은 하나님이 맡기신 백성과 성전을 자신들의 사유재산으로 여겼습니다.

 

현상 유지(Status Quo) 욕망: 선지자들의 회개 촉구와 개혁 메시지는 자신들이 쌓아 올린 종교적·경제적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위험 요소였습니다.

 

2.       영적 눈묾과 위선에 대한 폭로 거부

 

죄의 지적에 대한 반발: 구약의 선지자들은 권력자들의 불의, 탐욕, 우상숭배를 정면으로 책망했습니다.  지도자들은 회개하기보다 자신의 죄를 폭로하는 선지자들의 입을 막는 쪽을 선택했습니다.

 

종교적 우월감: 그들은 자신들이 율법을 가장 지키는 의인이라 믿었습니다.  따라서 자신들을 심판의 대상이라 외치는 선지자들의 메시지를 도저히 받아들일 없었습니다.

 

3.       하나님 주권에 대한 근본적인 거부

 

주인 없는 포도원을 원하는 마음: 농부들이 아들을 죽인 이유는 "그러면 상속(포도원) 우리 것이 되리라"( 20:14) 속셈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통치 거부: 이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권력을 행사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의 진짜 통치와 간섭을 받기 싫어했습니다.  주인의 전권을 대행하는 종들과 아들을 제거함으로써, 자신들이 포도원의 영원한 주인이 되려 했던 것입니다(인터넷).

 

(i)                      여기서 어떻게 선지자들의 회개 촉구와 개혁 메시지는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쌓아 올린 종교적·경제적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위험 요소였을까요?

 

·       선지자들의 메시지가 종교 지도자들의 시스템을 위협한 구체적인 이유는 그들이 구축한종교를 사유화한 경제 구조백성 통제권 근간을 뒤흔들었기 때문입니다.  이를 종교적, 경제적 측면으로 나누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a.       경제적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위험성 (성전 마피아 구조의 폭로)

 

당시 대제사장들과 종교 지도자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중심으로 거대한 경제적 이권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었습니다.

 

희생 제물 독점권 무력화: 율법상 성전 제사에는 없는 제물만 바쳐야 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백성들이 멀리서 끌고 가축은 흠이 있다며 거부하고, 성전 안에서 자신들이 검수한 비싼 가축만 사서 바치도록 강제했습니다.  선지자들의 "상한 심령과 공의를 원하신다" 개혁 메시지는 이러한 제물 매매 시스템의 명분을 완전히 박탈하는 행위였습니다.

 

성전 세금과 환전 수수료 타격: 성전 세는 오직 성전 전용 화폐(두로 동전)로만 내야 했습니다.  일반 화폐를 성전 화폐로 바꾸는 과정에서 지도자들은 폭리 수준의 환전 수수료를 챙겼습니다.  예수님이 성전 청결 사건 " 집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 호통치신 것은 경제적 착취 시스템을 정면으로 타격한 것이며, 이는 지도자들에게 엄청난 재정적 손실을 의미했습니다.

 

b.       종교적·정치적 시스템을 무너뜨리는 위험성 (권력 정당성의 상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의 권력은 백성들이 그들을 '하나님의 대리자'이자 '영적 권위자' 인정해 주는 데서 나왔습니다.

 

가짜 의로움의 가면을 벗김: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겉으로는 철저히 율법을 지키는 척하며 영적 기득권을 유지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들은 이들의 속마음이 탐욕과 위선으로 가득 찼음을 대중 앞에서 폭로했습니다.  백성들이 지도자들의 위선을 깨닫는 순간, 그들이 수백 년간 쌓아 올린 종교적 통제력과 사회적 지위는 순식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직접 통치 선포: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을 거쳐야만 하나님께 나아갈 있는 '중간 매개자'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반면 선지자들은 백성 개개인의 진정한 회개와 하나님과의 직접적인 관계 회복을 촉구했습니다.  이는 중간에서 권력을 행사하던 지도자들의 존재 가치 자체를 부정하는 개혁이었습니다.

 

결국 그들에게 선지자들의 개혁 메시지는 단순한 종교적 조언이 아니라, 자신들의 돈줄을 끊고 권력의 정당성을 빼앗으려는 치명적인 공격이었기에 목숨을 걸고 선지자들을 죽여 입을 막으려 했던 것입니다(인터넷).

 

(ii)                    여기서 구약의 선지자들은 권력자들의 불의, 탐욕, 우상숭배를 정면으로 책망했을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회개하기보다 자신의 죄를 폭로하는 선지자들의 입을 막는 쪽을 선택했다고 하였는데 지금도 유대 종교 지도자들처럼 책망을 받을 회개하기보다 자신의 죄를 폭로하는 기독교 신문 기자들의 입을 막는 쪽은 선택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       오늘날 현대 기독교계나 종교 단체에서도 과거 유대 종교 지도자들이 보여주었던 위선과 기득권 수호의 모습이 불행하게도 반복되는 경우가 존재합니다.  예수님이 비유하신 '악한 농부들' 속성은 특정 시대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죄성을 가진 인간이 권력과 기득권을 가졌을 언제든 나타날 있는 보편적인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현재 기독교계 안팎에서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유사한 방식으로 언론(기자) 입을 막으려고 시도하는 구체적인 행태는 다음과 같이 나타납니다(인터넷):

 

a.       경제적 압박을 통한 언론 통제

 

광고 후원 중단: 교계 내부의 비리나 재정 의혹을 보도하는 언론사에 대해 대형 교회나 교단 차원에서 광고를 전면 중단하거나 후원금을 끊어 언론사의 경영을 압박합니다.

 

구독 거부 운동: 자신들의 입장에 반하는 기사를 쓰는 신문사에 대해 성도들을 동원하여 불매 운동이나 구독 거부 운동을 벌임으로써 언론의 영향력을 축소하려 합니다.

 

b.       법적·행정적 수단을 통한 입막음

 

무분별한 소송 남발: 기사의 팩트(fact) 여부와 상관없이 명예훼손, 업무방해 등으로 고소·고발을 남발합니다.  자금력이 부족한 중소 교계 언론이나 언론인 개인이 소송 비용과 법적 공방에 지쳐 스스로 취재를 포기하도록 만드는 전략입니다.

 

출입 금지 취재 거부: 교단 총회나 주요 행사에서 비판적인 성향의 기자들의 출입을 금지하고 공식 인터뷰를 거부하여 정보 접근 권한 자체를 차단합니다.

 

c.       영적·정서적 프레이밍 (진영 논리)

 

'교회 해체 세력'으로 매도: 종교 지도자의 도덕적 타락이나 재정 비리를 지적하는 기자를 향해 "하나님의 교회를 허물려는 사탄의 도구", "불신자들에게 교회의 수치를 드러내는 배신자"라는 프레임을 씌웁니다.

 

영적 권위에 대한 도전으로 취급: "주의 종을 대적하면 저주를 받는다" 식의 왜곡된 성경 해석을 동원하여, 합리적인 비판과 폭로를 신앙적인 죄악으로 둔갑시켜 백성(성도)들이 귀를 닫게 만듭니다.

 

구약의 선지자들이 목숨을 걸고 왕과 제사장들의 죄를 고발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건강한 기독교 언론 역시 권력화된 종교 권력을 감시하고 교회의 본질을 지키는 '선지자적 사명' 수행한다고 있습니다.  반면 이를 억압하는 행위는 예수님이 경고하신 악한 농부들의 모습을 그대로 답습하는 안타까운 현실입니다(인터넷).

 

-            그러면 성도들이 이러한 교회 안에서 권력형 비리를 마주했을 분별하고 대처해야 성경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n  교회 권력형 비리를 마주했을 성도들이 취해야 성경적인 분별과 대처 방법은 맹목적 추종이나 감정적 비난을 넘어, 말씀의 기준 위에서 교회를 보호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제시하는 구체적인 지침은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성경적 분별의 기준 (맹목적 순종의 탈피)

 

'열매' 분별하기: 예수님은 거짓 선지자들을 분별하는 기준으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7:16) 하셨습니다.  직분이나 은사, 교회의 크기가 아니라 지도자의 삶과 재정 운영에서 '성령의 열매' '의로움' 나타나는지 보아야 합니다.

 

베레아 성도들의 태도: 베레아 사람들은 바울의 말조차도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 17:11)했습니다.  지도자의 가르침이나 행동이 성경의 진리와 공의에 부합하는지 말씀으로 검증해야 합니다.  '주의 '이라는 이유로 불의를 덮고 무조건 순종하는 것은 성경적 태도가 아닙니다.

 

2.       성경적 대처의 단계 (마태복음 18 원칙)

 

예수님은 공동체 내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단계별 절차를 주셨습니다( 18:15-17).  권력형 비리에도 원칙이 투명하고 공정하게 적용되어야 합니다.

 

1단계 (개인적 권고): 사실관계를 명확히 확인한 , 신뢰할 있는 대리인이나 당사자에게 조용히 문제를 제기하고 회개를 촉구합니다.

 

2단계 (증인 동행): 개인의 권고가 통하지 않을 , 한두 사람(중직자나 객관적인 성도) 동행하여 사실관계를 확증하고 다시 권면합니다.

 

3단계 (공동체의 공론화): 여전히 거부할 경우, 교회 공동체(당회, 공동의회 ) 상회(노회, 총회) 공식적으로 문제를 제기하여 투명하게 해결해야 합니다.  바울도 "범죄한 자들을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 나머지 사람들로 두려워하게 하라"(딤전 5:20) 명했습니다.

 

3.       구조적·실천적 대처 방법

 

건강한 견제와 제도 마련: 재정과 행정이 1인에게 집중되지 않도록 정관을 정비하고, 투명한 재정 감사 시스템을 요구해야 합니다.  초기 예루살렘 교회도 재정 문제로 갈등이 생겼을 구제와 재정을 전담할 집사들을 세워 사도들의 권력을 분산시켰습니다( 6:1-6).

 

침묵하지 않는 용기: 불의를 보고도 '은혜'라는 미명 하에 침묵하는 것은 악에 동조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의 선지자들처럼, 교회의 거룩성을 허무는 죄에 대해서는 사랑을 바탕으로 단호한 '거룩한 저항' 필요합니다.

 

공의와 소외된 자를 위한 기도: 비리 구조 속에서 상처받고 떠나는 약한 성도들을 보호하고 위로하는 일에 힘써야 합니다.

 

지도자의 허물을 무조건 덮어주는 것은 교회를 살리는 길이 아니라, 비유 악한 농부들처럼 심판(포도원을 빼앗김)으로 가는 길입니다.  참된 대처는 지도자를 파멸시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죄를 도려내어 교회와 지도자 모두를 회복시키는 것이어야 합니다(인터넷).

 

(3)    셋째로, 저는 포도원 주인이 어찌할까”[Τί ποιήσω ( 포이에소)] 고민하는 모습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20:13).  고민 끝에 결론은 하나뿐인 사랑하는 아들”(12:6) 보내는 것이었는데 여기서 아버지의 어찌할까 내면의 고민에 대해 생각해 보고 싶습니다.

 

(a)    포도원 주인의어찌할까라는 고뇌는, 비유 전체에서 하나님의 감정과 사랑을 가장 깊이 드러내는 인간적인 표현이자 영적인 절정입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완악함과 대비되는 하나님 아버지의 내면적 고민과 신비로운 사랑을 가지 차원으로 깊이 묵상해 있습니다(인터넷):

 

1.       정의와 자비 사이의 치열한 고뇌

 

인간적 관점의 어찌할까: 이미 주인이 보낸 종들이 거듭 능욕을 당하고 쫓겨났을 , 주인의 권위와 공의로는 즉시 군대를 보내 농부들을 진멸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아버지의 고뇌: 그러나 아버지는 당장 심판의 칼을 들지 않으십니다.  "이들을 당장 심판해야 하는가(정의), 아니면 기회를 주어야 하는가(자비)?"라는 고뇌입니다.  하나님의 "어찌할까" 죄인을 향해 당장 진노를 쏟아내지 않으시고, 어떻게든 그들을 구원하고 돌이키고자 하시는 오래 참으심(인내) 눈물이 담긴 외침입니다.

 

2.       아들의 죽음을 예견한 아버지의 아픔

 

마가복음은 아들이 그냥 아들이 아니라하나뿐인 사랑하는 아들임을 강조합니다.

 

보낼 때의 심정: 아버지는 농부들의 잔인함과 탐욕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들을 보낸다는 것은 아들이 겪을 고초와 죽음의 위험을 직시하는 일이었습니다.

 

독생자를 내어주는 대가: "어찌할까"라는 고민의 무게는 " 가장 소중한 아들의 목숨을 악한 자들을 위해 내어줄 것인가" 대한 결단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악한 농부들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아들을 죽음의 자리로 밀어 넣는 우주적인 고통을 선택하신 것입니다.

 

3.       "그들이 아들은 존대하리라" 실패한 기대가 아닌 '마지막 사랑'

 

아버지의 기대: 아버지는 "그들이 아들은 존대하리라(존중하리라)" 기대하며 보냅니다.  전지하신 하나님이 농부들이 아들을 죽일 것을 모르셨을 없습니다.

 

최후의 보루: 그럼에도 표현을 쓰신 것은 아들을 보내는 것이 하나님이 인간에게 주실 있는 '최후의, 그리고 가장 최고의 카드'였기 때문입니다.  아들마저 거부한다면 이상 그들에게는 구원의 기회가 없음을 알기에, 아버지는 마지막 남은 하나의 사랑까지 전부 쏟아부으신 것입니다.

 

구약의 이사야 5장에서도 하나님은 포도원을 향해 "내가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으랴"라며 탄식하십니다.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어찌할까" 모의하며 아들을 죽였지만, 하나님 아버지는 우리를 살리기 위해 "어찌할까" 고민하시며 아들을 제물로 내어주셨습니다(인터넷).

 

(i)                      여기서 저는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신 자녀도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 어찌할까고민하면서 우리 자녀를 주님께 받어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살도록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a.       소유권의 이전: 포도원을 내어드리는 결단

 

비유 악한 농부들의 치명적인 죄는 주인의 포도원과 아들의 상속권을 자신들의 소유로 착각한 것이었습니다.

 

자녀는 하나님의 소유: 오늘날 많은 부모가 자녀를 자신의 성취 수단이나 소유물로 여깁니다.  그러나 성경은 "자식들은 여호와의 기업이요 태의 열매는 그의 상급"( 127:3)이라고 말합니다.

 

복음적 양육: 자녀를 주님께 바친다는 것은 자녀의 미래와 진로, 삶의 주권을 하나님께 온전히 이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상의 성공 가도가 아닌, 하나님의 나라와 영혼을 구원하는 일에 쓰임 받도록 양육하는 결단입니다.

 

b.       부모의 "어찌할까": 안락함과 사명 사이의 고뇌

 

자녀를 복음과 교회를 위해 살도록 내어주는 과정에는 부모로서의 실제적인 고뇌(어찌할까) 따릅니다.

 

세상적 염려: " 자녀가 좁은 길을 걷다가 고난을 받으면 어쩌나", "경제적으로 힘들면 어쩌나" 하는 인간적인 염려가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거룩한 결단: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가 아들이 겪을 십자가의 고통을 아시면서도 우리를 위해 내어주셨듯, 믿음의 부모 역시 자녀가 세상의 안락함 속에 안주하기보다 복음을 위해 고난받는 가치 있는 삶을 살도록 격려하는 "어찌할까" 성숙한 고민과 결단을 내려야 합니다.

 

c.       성경적 모범: 한나의 고백과 헌신

 

성경에서 묵상과 가장 어울리는 인물은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입니다.

 

서원의 성취: 한나는 간절한 기도 끝에 얻은 아들 사무엘을 자신의 품에 끼고 키우지 않았습니다.  젖을 떼자마자 아들을 하나님의 성전에 바치며 "내가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리나이다"(삼상 1:28)라고 고백했습니다.

 

축복의 결과: 한나가 자녀에 대한 기득권과 소유권을 내려놓았을 , 사무엘은 영적으로 어두웠던 사사 시대를 끝내고 다윗 왕정을 여는 위대한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로 자라났습니다.  부모가 자녀를 주님께 맡길 , 하나님이 자녀의 삶을 직접 책임지시고 가장 영광스럽게 사용하십니다.

 

"잃어야 얻는다" 앞선 묵상처럼, 부모가 자녀를 안에서 움켜쥐려고 하면 결국 세상의 가치관에 자녀를 잃어버리게 되지만, 주님과 복음을 위해 기꺼이 내어드릴 자녀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주인공으로 얻어지게 됩니다(인터넷).

 

(4)    넷째로, 저는 하나님의 은혜를 배반하고 기득권을 지키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대제사장, 서기관, 바리새인 )(악한 농부들) 포도원 주인의 아들을 죽인 이유가 상속자를 죽이고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20:14)하는 속셈 때문이라는 비유의 말씀을 묵상할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독생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구체적인 이유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어졌습니다.

 

(a)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박아 죽인 구체적인 이유는 비유 농부들의 속셈인 " 사람은 상속자니 죽이고 유산을 우리의 것으로 만들자" 말씀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제거함으로써 자신들이 누리던 종교적, 정치적, 경제적 영토를 영원히 독점하고자 했습니다.  역사적·성경적 배경을 바탕으로 구체적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1.       신성모독(Blasphemy) 죄목: "감히 인간이 하나님과 동등하다 하니"

 

종교 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의 가장 죄목은 '신성모독'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 선포: 예수님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 부르시며 하나님을 " 아버지"라고 하신 것은, 당시 유대인들에게 신성모독이자 가공할 유죄 강의였습니다( 5:18).

 

사함의 권세 주장: 중풍병자 등에게 " 사함을 받았느니라" 말씀하시자, 지도자들은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를 사하겠느냐"( 2:7)라며 격분했습니다.  자신들의 종교적 독점권(성전 제사) 예수님이 직접 무력화하셨기 때문입니다.

 

안식일 논쟁: 예수님은 종교 지도자들이 백성들을 통제하기 위해 만든 철저한 안식일 규정들을 깨뜨리시며 "인자는 안식일의 주인"( 12:8)이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이는 그들의 영적 권위에 대한 정면 도전이었습니다.

 

2.       정치적·군사적 두려움: 로마와의 관계 파탄 우려

 

당시 유대는 로마 제국의 식민지였고, 종교 지도자들(특히 사두개인과 대제사장 가문) 로마가 허용한 안에서 권력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밀란(폭동) 대한 공포: 예수님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는 표적을 행하시자 수많은 군중이 예수님을 메시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지도자들은 로마 정부가 이를 민중 반란으로 간주하여 자신들의 권력과 예루살렘 성전을 통째로 파괴할까 두려워했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의 정치적 계산: 요한복음 11 48-50절에서 대제사장 가야바는 "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하다" 예수님을 죽일 정치적 명분을 공식화했습니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예수 명을 제물로 삼은 것입니다.

 

3.       대중적 인기의 이동과 시기심

 

기득권의 상실: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과 고침의 기적을 백성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을 떠나 예수님께로 몰려들었습니다.  복음서는 빌라도 총독조차도 "그들이 시기심으로 예수님을 넘겨준 "( 15:10) 알고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체제 전복의 위협: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백성들이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왕이여"라고 외쳤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은 자신들이 쌓아 올린 종교 권력 체제를 뿌리째 흔드는 가장 위험한 인물이었습니다.

 

결국 유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이 구약에 예언된 진짜 메시아(상속자)일지도 모른다는 표적들을 수없이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인정하는 순간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탐욕 때문에 눈이 멀어 상속자를 포도원 (예루살렘 성문 골고다 언덕)으로 내쫓아 죽인 것입니다(인터넷).

 

(i)                      여기서 저는 교회나 교계 지도자들이 탐욕 때문에 눈이 멀어 그리도 잃지 않으려고는 무엇일까 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잃어야 얻는다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       예수님의 비유 농부들이 포도원을 독점하려다 모든 것을 잃었듯, 오늘날 권력화된 지도자들이 탐욕에 눈이 멀어 그토록 잃지 않으려고 움켜쥐는 것들은 결국 영원하지 않은 세상의 것들입니다.  잃어야 얻는다 기독교의 핵심 진리(역설) 연결하여, 그들이 집착하는 것과 성경이 말하는 참된 얻음의 원리를 인공지능이 정리한 것입니다(인터넷):

 

a.       지도자들이 탐욕 때문에 '그토록 잃지 않으려는 '

 

사유화된 종교적 권력과 통제권: 백성들을 자신의 뜻대로 움직이고 지배하려는 권력욕입니다.  자신이 세운 종교적 왕국에서 ''으로 군림하는 지위를 결코 내려놓고 싶어 하지 않습니다.

 

물질적 부와 재정적 기득권: 성전 매매를 통해 막대한 부를 챙긴 유대 지도자들처럼, 오늘날에도 교회의 재정을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고 사유화하거나 세습하려는 경제적 이권입니다.

 

대중의 평판과 명예(의인이라는 가면): 사람들 앞에서 거룩하고 의로운 사람으로 존경받는 명예입니다.  자신의 죄와 치부가 드러나 명예가 실추되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합니다.

 

대체 불가능한 존재감: "내가 아니면 된다" 영적 교만입니다.  자신이 떠나면 교회가 무너질 것처럼 생각하며 후임자나 공동체에 권력을 이양하지 않으려고 집착합니다.

 

b.       잃어야 얻는다 십자가의 역설

 

예수님은 복음서에서 원리를 끊임없이 강조하셨습니다: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 16:25).

 

기득권을 잃어야 '하나님 나라' 얻습니다: 손에 인간적인 자원과 권력을 내려놓고 잃어버릴 , 비로소 하나님의 주권과 통치가 삶과 교회에 임합니다.

 

가짜 의를 잃어야 '참된 ' 얻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종교적 외식과 명예의 가면을 잃어버릴 , 비로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입혀지는 참된 의로움을 얻게 됩니다.

 

밀알의 죽음: 하나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고 자신을 잃어버려야 수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12:24).  지도자가 자신의 권리를 포기하고 낮아질 , 비로소 공동체가 살아나는 생명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결국 악한 농부들은 포도원을 잃지 않으려고 아들을 죽였지만, 결과 주인에게 진멸당하고 포도원을 통째로 빼앗겼습니다.  기득권을 지키려다 영원한 생명과 하나님 나라를 모두 잃어버린 것입니다.  반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자신의 목숨을 아낌없이 잃으심으로써 인류를 구원하는 영광을 얻으셨습니다(인터넷).

 

-            성경과 역사 속에는 기득권을 움켜쥐려 했던 유대 종교 지도자들과 정반대로, 자신의 권리와 기득권을 완전히 내려놓음으로써 공동체와 교회를 살려낸 위대한 지도자들의 모범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성경적 예시 가지를 인공지능이 소개한 것입니다(인터넷):

 

1.       세례 요한: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3:30)

 

세례 요한은 예수님이 사역을 시작하시기 , 유대 광야에서 수많은 군중의 존경과 따름을 받던 당대 최고의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내려놓은 기득권 (대중의 인기와 영적 권위): 예수님이 등장하시자 요한을 따르던 제자들과 군중이 모두 예수님께로 가기 시작했습니다.  지도자로서 권력과 인기를 잃어버릴 있는 위기였습니다.

 

성경적 대처와 결과: 요한은 시기하거나 기득권을 지키려 하지 않고, 오히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선포했습니다.  자신은 신랑의 음성을 듣고 기뻐하는 친구일 뿐이라며 주인공의 자리를 예수님께 온전히 내어드렸습니다.  그의 철저한 내려놓음 덕분에 제자들이 혼란 없이 예수님을 메시아로 따를 있었고, 하나님 나라의 세대교체가 아름답게 이루어졌습니다.

 

2.       사도 바울: "내가 가진 모든 특권을 배설물로 여김은"( 3:7-8)

 

바울(사울) 유대 사회에서 태생부터 최고의 기득권을 가진 엘리트 중의 엘리트였습니다.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고,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으며, 로마 시민권자였습니다.

 

내려놓은 기득권 (종교적 신분과 보장된 미래): 가만히만 있어도 유대 사회의 최고 권력층(산헤드린 공의회 의원 )으로 탄탄대로를 걸을 있는 모든 사회적, 종교적 배경을 가졌습니다.

 

성경적 대처와 결과: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 모든 기득권을배설물 여겼습니다.  자신이 누릴 있는 모든 특권과 안전을 포기하고 이방인의 사도가 되어 맞고, 굶주리고, 감옥에 갇히는 삶을 자처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기득권을 배설물처럼 버렸을 , 예루살렘의 작은 공동체에 머물던 기독교는 세계로 뻗어나가 열방의 교회가 살아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3.       느헤미야: "백성의 총독으로서 누릴 (봉급) 받지 아니하였노라"( 5:14-19)

 

느헤미야는 바사(페르시아) 제국 왕의 관원으로, 엄청난 부와 권력을 누리던 고위 관료였습니다.  그는 무너진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기 위해 유다 총독으로 부임했습니다.

 

내려놓은 기득권 (정당한 경제적 권리와 특권): 총독으로서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고 풍족한 봉급(총독의 ) 받을 정당한 법적 권리가 있었습니다.  이전 총독들은 이를 당연하게 누리며 백성들을 압제했습니다.

 

성경적 대처와 결과: 느헤미야는 기근과 흉년으로 고통받는 백성들의 형편을 보고, 12 동안 총독의 녹을 번도 받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사재를 털어 매일 150명이 넘는 백성들을 대접하며 성벽 재건에 동참했습니다.  지도자가 스스로 경제적 기득권을 내려놓고 고난에 동참하자, 낙심했던 백성들의 마음이 하나로 뭉쳤고, 대적들의 방해 속에서도 52일만에 성벽을 완공하는 영적 부흥을 이루어냈습니다.

 

이들은 공통적으로 "내가 낮아지고 사라져야 하나님의 교회가 살고 하나님의 이름이 높아진다" 진리를 몸소 보여준 참된 지도자들이었습니다(인터넷).

 

(5)    마지막 다섯째로, 저는 예수님께서 그러면 기록된 건축자들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함이 어찜이냐 무릇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지겠고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20:17-18) 하신 말씀을 묵상하고자 합니다.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a)    예수님께서 인용하신 말씀은 시편 118 22절의 예언을 바탕으로, 종교 지도자들의 음모가 실패하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원과 심판의 절대적인 기준이 되실 것을 선언하신 엄중한 결론입니다.  말씀의 핵심 의미를 인공지는이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 것입니다(인터넷):

 

1.       건축자의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십자가와 부활)

 

버린 (예수님의 죽음): '건축자들'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을 뜻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종교적 시스템에 예수님이 쓸모없다고 판단하여, 마치 공사장의 무가치한 돌처럼 성문 밖으로 내버려 십자가에 박았습니다.

머릿돌 (예수님의 부활과 승리):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버려진 돌을 다시 살리셔서, 건물 전체를 지탱하고 연결하는 가장 중요한 '모퉁이의 머릿돌(기준돌)' 삼으셨습니다.  인간의 악한 음모는 예수님을 죽였지만, 하나님의 주권은 이를 통해 인류 구원의 기초(교회) 세우는 대역전극을 완성하셨습니다.

 

2.       위에 떨어지는 자는 깨어짐 (현재적·영적 심판)

 

복음에 걸려 넘어짐: 예수님이라는 위에 떨어져 깨어진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거부하는 자들이 직면할 영적인 파멸을 뜻합니다.

 

교만의 붕괴: 자칭 율법의 전문가라던 종교 지도자들은 자신들의 의로움을 의지하다가, 낮고 겸손하게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기준에 걸려 넘어져 그들의 영적 기득권과 거짓된 신앙이 산산조각이 났습니다.  복음을 거부하는 자는 스스로가 심판의 걸림돌에 걸려 넘어지게 됩니다.

 

3.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가루로 만듦 (미래적·최종적 심판)

 

피할 없는 종말론적 심판: 표현은 구약 다니엘서 2장에 나오는 '손대지 아니한 신상의 ' 세상 권력의 신상을 쳐서 가루로 만들어 버리는 환상을 연상시킵니다.

 

완전한 진멸: 초림의 예수님은 걸려 넘어질 있는 낮은 모습으로 오셨지만, 재림의 예수님은 우주를 통치하는 심판주(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거대한 ) 오십니다.  끝까지 회개하지 않고 아들을 대적한 악한 농부들과 세상 권력은, 마지막 날에 흔적도 없이 가루가 되어 흩어지는 비극적이고 완전한 심판을 맞이하게 됩니다.  역사적으로 유대 기득권은 AD 70 예루살렘 성전이 위에 하나도 남지 않고 무너지면서 말씀 그대로 가루처럼 흩어졌습니다.

 

결국 말씀은 "너희가 기득권을 지키려 나를 버릴지라도, 나는 하나님의 구원 역사의 중심(머릿돌) 것이며, 끝내 나를 거부하는 자들은 영원한 심판을 피할 없다" 엄중한 선언입니다.  비유 악한 농부들이 아무리 발버둥 쳐도 포도원 주인의 주권을 이길 없음을 보여줍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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