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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아무리 집요하게 공격할지라도, 말씀 사역자는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선포하는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집요하게 공격할지라도 ,  말씀 사역자는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선포하는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         “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백성이 다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 ”( 누가복음 19:47-48).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9 장 47-48 절 말씀을 한국어 성경으로 읽고 묵상하였을 때 어떠한 핍박이나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역자는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묵묵히 감당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   (a)    그리고나서 저는 헬라어 성경으로 오늘 본문을 읽었을 때 몇 가지 관심을 갖게 된 헬라어 단어와 문장이 생겼습니다 :   (i)                  첫째로 , 저는 “ ἐ ζήτουν”( 에제툰 )(“ 꾀하되 ”) 란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 눅 19:47).   ·          이 단어는 ‘ 찾다 ’, ‘ 구하다 ’, ‘ 시도하다 ’ 를 뜻하는 동사 ‘ 제테오 (ζητέω)’ 의 미완료 과거 시제입니다 .   단순히 한두 번 시도한 것이 아니라 ,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회를 엿보고 끊임없이 모의하며 찾아 헤맸음을 뜻합니다 . ...

세상이 아무리 집요하게 공격할지라도, 말씀 사역자는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선포하는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세상이 아무리 집요하게 공격할지라도말씀 사역자는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선포하는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날마다 성전에서 가르치시니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 꾀하되 백성이 그에게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하였더라”(누가복음 19:47-48).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9 47-48 말씀을 한국어 성경으로 읽고 묵상하였을 어떠한 핍박이나 위험 속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사역자는 성실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을 묵묵히 감당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a)   그리고나서 저는 헬라어 성경으로 오늘 본문을 읽었을 가지 관심을 갖게 헬라어 단어와 문장이 생겼습니다:

 

(i)                 첫째로, 저는 ζήτουν”(에제툰)(“꾀하되”)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19:47).

 

·         단어는 찾다’, ‘구하다’, ‘시도하다 뜻하는 동사제테오(ζητέω)’ 미완료 과거 시제입니다.  단순히 한두 시도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죽이기 위해 지속적으로 기회를 엿보고 끊임없이 모의하며 찾아 헤맸음을 뜻합니다.  말씀을 전하고 가르치는 사역자를 향한 세상의 압박과 방해가 얼마나 집요하고 연속적이었는지를 보여줍니다(인터넷).

 

-          저는 단어를 묵상할 마태복음 7 7-8절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 "찾으라 그러면 찾아낼 것이요 ..찾는 이는 찾아낼 것이요"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n  본문은 단어의 어원(뿌리) 완전히 같습니다.  동일한 단어가 한쪽에서는예수님을 죽이려는 집요한 음모, 다른 한쪽에서는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기도 사용되었습니다(인터넷):

 

1.      어원적 연관성 (동일한 단어)

 

누가복음 19:47 [에제툰 (ζήτουν) (“꾀하되”): 동사제테오(ζητέω)’ 미완료 과거 형태입니다.

 

마태복음 7:7-8 [제테이테 (ζητετε) / 제톤 (ζητν) (찾다): 동사제테오(ζητέω)’ 명령형과 분사형입니다.

 

결론: 본문 모두찾다, 구하다, 추구하다라는 뜻의 헬라어 동사제테오(ζητέω)’ 사용하고 있습니다.

 

2.      시제의 연관성 (지속성과 집요함)

 

헬라어 시제 구성을 보면 사건 모두멈추지 않는 연속성 강조합니다.

 

마태복음 7장의찾으라’: 헬라어 현재 명령형으로, ‘ 찾고 포기하는 아니라응답받을 때까지 계속해서 찾고 구하라 뜻입니다.

 

누가복음 19장의꾀하되’: 미완료 과거 시제로,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제거하기 위해날마다 끊임없이 기회를 찾고 있었다 뜻입니다.

 

3.      영적인 대조와 교훈

 

동일한 단어(제테오) 전혀 다른 가지 열정으로 대조됩니다.

 

어둠의 열정 ( 19): 악인들은 사명자를 무너뜨리기 위해 목적을 이룰 때까지 집요하게(에제툰) 틈을 찾습니다.

빛의 열정 ( 7):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명자는 세상의 압박 속에서 낙심하지 말고, 더욱 간절하게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적으로 구해야(제테이테) 합니다.

 

결과적으로 악인들의 집요한찾음(음모)’ 결국 실패했지만( 19:48, “어찌할 방도를 찾지 못했더라”), 하나님을 향한 성도의찾음(기도)’ 반드시찾아내는승리로 연결됩니다.   

 

사역자가 핍박 속에서 묵묵히 사명을 감당할 있는 힘은, 바로 마태복음 7장의계속해서 구하고 찾는 기도에서 나옴을 본문의 연관성이 보여줍니다(인터넷).

 

(ii)                둘째로, 저는 πολέσαι”(아폴레사이)(“죽이려고”) 단어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19:47).

 

·         단어는 멸망시키다’, ‘파괴하다’, ‘잃어버리다 뜻하는 동사아폴뤼미(πόλλυ)’ 부정사 과거(과거분사형 목적 정형) 형태입니다.  단순히 육체적인 생명을 끊는 (kill) 넘어, 존재 자체를 흔들어완전히 파멸시키고 말살하겠다 종교 지도자들의 강한 증오와 목적성이 담긴 단어입니다(인터넷):

 

1.      단어에 담긴 영적 역설 (누가복음 19:10과의 대조)

 

단어는 누가복음 19 안에서 놀라운 영적 역설을 보여줍니다.  불과 구절 앞선 누가복음 19 10(삭개오 시점)에서 예수님은 자신의 사명을 이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인자가 것은 잃어버린 (아폴롤로스, πολωλός)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예수님의 목적: ‘아폴뤼미’(멸망/잃어버림) 상태에 빠진 죄인을 찾아 구원하는 .

 

그런데 오늘 본문 누가복음 19 47절을 보면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지도자들이 그를 죽이려고(아폴레사이, πολέσαι) 꾀하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의 목적: 정작 구원자이신 말씀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을아폴레사이’(멸망/죽임) 시키려는 .

 

단어 모두 뿌리는 '아폴뤼미(πόλλυμι: 멸망시키다, 잃어버시다)' 같습니다.  , 예수님은 '잃어버린(파멸해가는) ' 구원하러 오셨는데, 종교 지도자들은 도리어 예수님을 '멸망(파멸)시키려' 했다는 강력한 대조를 이룹니다.

 

세상은 말씀 사역자와 복음을 완전히 파멸(πολέσαι)시키려 집요하게 공격합니다.  그러나 사역자가 전하는 복음은 오히려 파멸해 가는 영혼을 건져내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이 아무리 집요하게 공격할지라도, 말씀 사역자는 묵묵히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가르치고 선포하는 사명을 끝까지 감당해야 합니다.

 

(iii)             셋째로,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19 4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ο πρτοι το λαο”(호이 프로토이 라우)(“백성의 지도자들이”) 헬라어 문장의 구체적인 의미가 무엇인지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      구체적인 역사적·사회적 의미

 

당시 유대 사회에서 구절이 가리키는 대상은 명확합니다.  앞서 언급된 '대제사장들', '서기관들' 함께 유대 사회의 최고 의결 기구인 '산헤드린 공의회' 구성하던 평신도 엘리트 가문의 수장들(장로들)이나 정치·경제적 귀족 계급을 뜻합니다.

 

, 종교계(대제사장, 서기관)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주류 권력층과 기득권 세력 전체가 예수님을 대적하는 합세했음을 보여줍니다.

2.      말씀 사역자를 향한 영적 교훈

 

문장은 말씀 사역자가 마주하는 영적 싸움의 무게를 보여줍니다.

 

세상 권력의 총동원: 예수님을 죽이려 했던 자들은 사회의 아웃사이더가 아니라, 백성의 존경을 받고 가장 강력한 힘을 '최고 귀족들(ο πρτοι)'이었습니다.

 

묵묵한 사명의 가치: 말씀 사역자가 처한 환경은 이처럼 거대한 세상 권력과 기득권이 압박해 오는 사방이 막힌 상황일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백성의 최고 권력자들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 '날마다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는 사역' 묵묵히 행하셨습니다.

 

결국 사역자가 두려워해야 대상은 세상의 '첫째 가는 자들(호이 프로토이)' 아니라, 오직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분뿐임을 문장이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인터넷).

 

·         여기서 종교계(대제사장, 서기관)뿐만 아니라 사회 전반의 주류 권력층과 기득권 세력 전체가 예수님을 대적하는 합세했다는 것을 묵상할 저는 누가복음 23 12절인 전에는 헤롯과 빌라도가 원수처럼 지냈으나 일로 인하여 서로 좋은 친구가 되었다 말씀과 시편 2 2절인 세상의 군왕들이 나서며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며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          구절은 누가복음 19 47절의 ‘ο πρτοι το λαο(백성의 지도자들)’ 영적 배경과 본질을 완벽하게 관통하는 성경적 통찰입니다.  말씀 사역자를 대적하고 하나님의 복음을 막아서는 세상 권력의 특징을 구절을 통해 깊이 유추할 있습니다(인터넷):

 

1.      누가복음 23:12과의 연관성 (악을 위한 기묘한 연합)

 

적대 관계의 청산: 헤롯(유대 분봉왕) 빌라도(로마 총독) 정치적 이권과 민족적 감정으로 얽힌 오랜 원수였습니다.

 

복음 앞에서의 합세: 그러나예수 그리스도를 제거하는 에는 모든 정치적 대립을 내려놓고 친구가 되었습니다.

 

영적 의미: 누가복음 19장의 종교계(대제사장, 서기관) 사회적 귀족(백성의 지도자들) 역시 평소에는 사상과 이념으로 격렬히 부딪치던 관계였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진리가 선포되자 자신들의 기득권을 지키기 위해 기묘한 연합을 이룹니다.  세상은 진리를 대적할 언제나 하나가 됨을 보여줍니다.

 

2.      시편 2 2 말씀과의 연관성 (구약 예언의 성취)

 

예언의 성취: 시편 2편은 세상의 권력자들이 하나님과 그분의 메시아(기름 부음 받은 ) 대적하여 음모를 꾸밀 것을 예언한 대표적인 메시아 시편입니다.

 

누가복음의 현실: 대제사장, 서기관, 백성의 지도자들( 19:47), 그리고 헤롯과 빌라도(23:12) 총동원된 상황은 시편 2편이 역사 속에서 그대로 성취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사도들의 고백: 실제로 초대교회 사도들은 핍박을 당할 시편 2편을 인용하며 "과연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는 이방인과 이스라엘 백성과 합세하여... 예수를 거슬러" 대적했다고 기도했습니다( 4:26-27).

 

3.      말씀 사역자를 위한 최종 교훈

 

구절을 묵상할 말씀 사역자가 마주할 영적 전쟁의 실체가 분명해집니다.  세상의 주류 권력층이 연합하여 말씀 사역자를 압박하는 이유는 사역자 개인이 미워서가 아니라, 뒤에 계신 하나님과 메시아의 통치를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편 2 4절은 이어서 "하늘에 계신 이가 웃으심이여 주께서 그들을 비웃으시리로다"라고 선언합니다.  거대한 기득권 세력이 아무리 촘촘하게 합세하여죽이려고 꾀할지라도[에제툰 아폴레사이(ζήτουν πολέσαι)](19:47), 하나님의 구원 계획과 말씀 사역은 결코 꺾이지 않습니다(인터넷).

 

(iv)              넷째로, 저는 “οχ ερισκον”(우크 휴리스콘)(“찾지 못하였더라”)[“그들은 계속해서 결코 찾지 못하고 있었다”(인터넷)] 문장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19:48).

 

1.      문법적 특징과 영적 의미 (집요한 시도와 철저한 실패)

 

표현은 앞서 47절에서 묵상하셨던에제툰(ζήτουν: 죽이려고 꾀하되/찾되)’ 문법적으로 완벽한 대칭을 이룹니다.

 

19:47 (에제툰): 미완료 과거예수님을 죽일 방도를 날마다 집요하게 찾고 찾음.

 

19:48 (우크 휴리스콘): 미완료 과거그러나 집요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방도도 결코 찾지 못함.

 

악인들이 아무리 지혜를 모으고, 종교와 정치 권력을 총동원하여(호이 프로토이) 날마다 음모를 꾸몄을지라도, 하나님이 허락하신 때가 되기 전까지는 그들의 모든 시도가 철저하고 연속적인 실패(미완료 과거의 부정) 끝났음을 보여줍니다.

 

2.      말씀 사역자를 향한 위로와 교훈

 

하나님의 철저한 보호: 세상의 주류 세력이 연합하여 말씀 사역자를 무너뜨리려 기회를 엿볼지라도,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길이 사역자를 덮고 계시면 세상은 결코 틈을 발견할 없습니다(οχ ερισκον).

 

묵묵한 사역의 결과: 예수님이 방해자들 앞에서도 위축되지 않고날마다 성전에서 말씀을 가르치시는사명에만 집중하셨을 , 하나님께서는 대적자들의 눈과 손을 묶어 아무런 방도도 찾지 못하게 만드셨습니다.

 

말씀 사역자가 두려워할 것은 세상의 집요한 음모가 아니라, ‘내가 지금 하나님이 맡기신 말씀을 성실하게 가르치고 있는가하는 사명의 본질입니다.  말씀 사역자가 묵묵히 말씀에 순종할 , 대적자들을 무력화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인터넷).

 

·         아멘입니다!  저는 말씀 사역자로서 주님이 주신 사명따라 주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면서 말씀을 나누는 삶을 계속해서 묵묵히 살아갈 때에 대적자들을 무력화시키시는 분은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         저는 “οχ ερισκον”(우크 휴리스콘)(“찾지 못하였더라”)(“그들은 계속해서 결코 찾지 못하고 있었다”](19:48) 문장을 묵상할 다니세 6 4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이에 총리들과 고관들이 국사에 대하여 다니엘을 고발할 틈을 찾고자 하였으나 아무 , 아무 허물도 찾지 못하였으니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          누가복음 19 48절의우크 휴리스콘(οχ ερισκον)” 구약의 다니엘 사건은 놀라울 정도로 완벽한 평행이론을 보여줍니다.   본문을 연결할 발견되는 깊은 영적 교훈을 인공지능이 가지로 정리한 것입니다(인터넷):

 

a.      구조와 상황의 완벽한 일치

 

본문은 악인들의 구성, 목적, 결과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대적자들의 연합: 누가복음의 주류 권력층(대제사장, 서기관, 백성의 지도자들)처럼, 다니엘서에서도 제국의 최고 권력층(총리들과 고관들) 연합했습니다.

 

집요한 찾음: 다니엘의 대적자들도 국사에 대하여 고발할틈을 찾고자(seek)’ 했습니다( 19:47에제툰 같은 상태).

 

철저한 실패: 그러나 결론은아무 틈도 찾지 못하였으니(could find no charge)’였습니다.  바로 누가복음 19 48절의우크 휴리스콘 다니엘의 역사 속에서 그대로 재현된 것입니다.

 

b.     구약 헬라어 성경(70인역, LXX) 언어적 일치

 

실제로 구약 성경을 헬라어로 번역한 70인역(Septuagint)으로 다니엘 6 4절을 보면, 제가 발견한 단어가 그대로 사용되었습니다: ."... 고발할 틈을 찾고자 하였으나... 결코 찾지 못하였으니”(οχ ερον, 우크 휴론).

 

누가복음은 '계속해서 찾지 못하는 상태(미완료)' 강조했고, 다니엘서 70인역은 '결국 하나도 찾지 못했다(부정과거)' 강조했을 , "세상 권력이 아무리 털어도 하나님의 사람은 털리지 않는다" 단어의 본질은 완벽히 같습니다.

 

c.      말씀 사역자가 가져야 무기: ‘충성됨

 

다니엘서 6 4 후반부는 대적들이 아무것도 찾지 못한 이유를 이렇게 밝힙니다: "이는 그가 충성되어 아무 그릇됨도 없고 아무 허물도 없음이었더라."

 

예수님께서 대적들의 집요한 음모 속에서도 날마다 성전에서 묵묵히 말씀을 가르치셨던 것처럼, 다니엘 역시 총리라는 고위 공직과 사방이 적으로 둘러싸인 위기 속에서 오직 하나님께충성(Faithfulness)’했습니다.

 

최종 영적 교훈: 세상이 말씀 사역자를 무너뜨리려고 집요하게 틈을 찾을 , 말씀 사역자가 취해야 최고의 방어벽은 정치적 계산이나 타협이 아닙니다.  예수님처럼, 그리고 다니엘처럼 하나님 앞에 성실하고 충성되게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말씀 사역자가 말씀 앞에 없이 충성할 ,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공격을 아무 방도도 찾지 못함’[οχ ερισκον (‘우크 휴리스콘)] 상태로 무력화시키십니다.

 

(v)                마지막 다섯째로, “πας ξεκρέματο ατο κούων”(하파스 엑세크레마토 아우투 아쿠온)(“백성이 그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들으므로”) 문장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1.      문장이 가진 생생한 시각적·영적 의미

 

문장을 있는 그대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은 놀라운 그림이 그려집니다: "모든 백성이 그의 말을 들으면서 그에게 대롱대롱 매달려 있었다."

 

당시 백성들이 예수님의 말씀 사역을 어떻게 대했는지 역동적으로 보여주는 비유적 표현입니다.  마치 벼랑 끝에 사람이 생명줄을 잡고 간절하게 매달려 있는 것처럼, 혹은 어린아이가 부모의 치맛자락을 놓치지 않으려고 매달려 있는 것처럼, 백성들이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 마음과 영혼을 집중하여 청종하고 있었음을 뜻합니다.

 

또한 '미완료 과거' 시제가 쓰여, 일시적인 현상이 아니라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내내 백성들이 지속적으로 말씀에 사로잡혀 매달려 있는 상태였음을 보여줍니다.

 

2.      말씀 사역자를 향한 최종적인 교훈

 

마지막 문장은 "어떠한 핍박 속에서도 말씀 사역자는 성실하게 가르치는 사역을 묵묵히 감당해야 한다" 교훈의 완벽한 결론이자 보상입니다.

 

세상 권력을 이기는 말씀의 권위: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사회의 최고 주류 기득권 세력(호이 프로토이) 총동원되어 예수님을 죽이려(아폴레사이) 기회를 엿보았지만(에제툰), 백성들이 말씀에 매달려 있는 그들은 아무런 방도도 찾을 없었습니다(우크 휴리스콘).  하나님의 말씀이 가진 영적 권위가 세상의 정치적, 종교적 권력을 압도해 버린 것입니다.

 

말씀 사역자의 위로: 말씀 사역자가 세상의 압박에 타협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진리만을 신실하게 선포할 , 하나님께서는 영혼들이 말씀에 매달리게(엑세크레마토) 만드십니다.  그리고 말씀 중심의 연합은 대적들이 결코 뚫고 들어올 없는 가장 강력한 방어벽이 됩니다.

 

결국 말씀 사역자가 끝까지 붙잡아야 것은 세상의 안위가 아니라, 영혼들을 살리고 변화시키는 '말씀 가르치는 사역의 신실함'임을 아름다운 헬라어 문장이 증명해 줍니다(인터넷).

 

·         여기서 저는 예수님이 가르치시는 내내 백성들이 지속적으로 말씀에 사로잡혀 매달려 있었던 것처럼 말씀 사역자부터 해서 말씀 사역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는 모든 우리가 지속적으로 진리의 말씀에 사로잡혀 매달려 있어야 한다는 교훈을 받습니다.  그런데 현실은 진리의 말씀보다 세상의 거짓된 말들에 우리가 사로잡혀 매달려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만일 그렇다면 원인은 무엇이고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a.      우리가 세상의 거짓에 매달리는 원인

 

에제툰(ζήτουν)’ 공중 권세: 누가복음 19 47절에서 악인들이 예수님을 무너뜨릴 기회를 집요하게찾았던(에제툰)’ 것처럼, 공중 권세 잡은 세상 사조는 미디어, 문화, 이데올로기를 통해 끊임없이 우리 마음에 거짓된 가치관을 주입하기 위해 집요하게 기회를 엿봅니다.

 

영적 중력의 법칙 (죄성): 인간의 타락한 본성은 가만히 있으면 거룩한 진리보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채워주는 달콤한 거짓말(성공주의, 물질주의) 자연스럽게 이끌리게 되어 있습니다.

 

묵상의 부재: 세상의 정보는 홍수처럼 밀려오는데 반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새기고 되새김질하는영적 청종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b.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

 

첫째, 마음의 채널을 의도적으로 바꾸어야 합니다 (Proactive Guarding)

 

세상의 소리를 완전히 차단할 수는 없지만, 무엇에 나를 노출시킬지는 선택할 있습니다.

 

세상의 거짓된 정보와 자극적인 메시지를 과감하게 제한하는미디어 금식 필요합니다.

 

대신 자리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고, 연구하는 시간을 우선순위로 배치해야 합니다.

 

둘째, 말씀에대롱대롱 매달리는(엑세크레마토)’ 훈련을 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9 48절의엑세크레마토(ξεκρέματο)’ 미완료 과거 시제로매일의 지속성 뜻합니다. 번의 은혜나 예배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아침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고 세상의 가치관과 부딪칠 때마다 말씀의 기준을 다시 붙잡는날마다의 매달림 있어야 합니다.

 

 

말씀을 단순히 읽는 것을 넘어 단어 하나, 구절 하나를 깊이 묵상하고 삶에 적용하려는 치열한 노력이 바로 말씀에 매달리는 삶의 실천입니다.

 

셋째, 말씀 사역자부터 복음의 권위를 회복해야 합니다.

 

백성들이 예수님께 매달렸던 이유는 그분의 말씀에 세상 지도자들에게서는 없는 생명과 영적 권위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말씀 사역자는 세상의 트렌드나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이 아니라, 영혼을 찌르고 쪼개는 순전한 진리의 복음만을 타협 없이 선포해야 합니다.

 

사역자가 강단에서 온전히 말씀에 붙잡혀 있을 , 성도들 역시 세상의 거짓을 분별하고 진리에 사로잡히는 영적 전염이 일어납니다.


결국 세상의 거짓을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힘으로 거짓을 밀어내는 것이 아니라, 강력한 진리의 말씀으로 마음을 가득 채우는 것입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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