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परमेश्वर से आशीष पाए हुए लोग [भजन संहिता 115]

परमेश्वर से आशीष पाए हुए लोग       [भजन संहिता 115]     आज सुबह की प्रार्थना सभा के दौरान, मैंने कुलुस्सियों 1:6 पर मनन किया: “यह सुसमाचार आप तक पहुँचा है। ठीक उसी तरह, यह पूरी दुनिया में फल ला रहा है और बढ़ रहा है — जैसे यह आपके बीच उस दिन से हो रहा है जब आपने इसे सुना और परमेश्वर के अनुग्रह को सच में समझा। ” इस वचन पर मनन करते हुए, मैंने सीखा कि जिस पल हम सुसमाचार सुनते हैं और परमेश्वर के अनुग्रह को सच में समझते हैं, हमारे जीवन में “फल ” ज़रूर दिखना चाहिए। मुझे सिखाया गया कि जैसे-जैसे हम उस अनुग्रह को और गहराई, विस्तार और बहुतायत से समझते हैं, हमें हर अच्छे काम में फल लाना चाहिए (वचन 10)। तो फिर, वह महान अनुग्रह क्या है जो परमेश्वर ने आप पर और मुझ पर किया है? प्रेरित पौलुस कहते हैं, “उसमें हमें छुटकारा मिला है, पापों की क्षमा मिली है ” (वचन 14)। परमेश्वर द्वारा हमें दिए गए कई महान अनुग्रहों में से, मैंने खास तौर पर छुटकारे — यानी पापों की क्षमा — पर विचार किया। सिर्फ़ यह सोचकर कि यीशु में पाप की समस्या का समाधान हो गया है, मेरा दिल बहुत ज़्याद...

예수님은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세상의 무서운 징조에 함몰되지 말고, '약속을 신뢰하는 인내'라는 무기를 지니고 영원한 생명의 승리자로서 당당히 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세상의 무서운 징조에 함몰되지 말고, '약속을 신뢰하는 인내'라는 무기를 지니고 영원한 생명의 승리자로서 당당히 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곳곳에 지진과 기근과 전염병이 있겠고 무서운 일과 하늘로부터 징조들이 있으리라 모든 전에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 일이 도리어 너희에게 증거가 되리라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 내가 너희의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없는 구변과 지혜를 너희에게 주리라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너희가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누가복음 21:10-19).

 

(1)   저는 오늘 본문 누가복음 21 10-19 말씀을 한국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으로 읽었을 환난(재난) 징조말씀을 부분으로 나눠서 묵상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a)   번째 부분은, 10-11 말씀입니다.

 

(i)                  저는 구절 말씀을 헬라어 성경으로 묵상할 지진”[σεισμοί μεγάλοι (세이스모이 메갈로이)] 하늘로부터 징조들”[σημεά τε π ορανο μεγάλα (세메이아 아프 우라누 메갈라)]이란 말씀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μεγάλοι (메갈로이)/μεγάλα (메갈라)]이란 단어가 단어들(“지진 징조들”) 앞에만 나와있기 때문입니다.  이유와 의미는 무엇일까요?

 

1.      강조의 이유: 인간의 통제를 완전히 벗어난 재난

 

기근(λιμοί) 전염병(λοιμοί) 성격: 당대나 지금이나 기근과 전염병은 인간의 정치적 실패, 전쟁, 위생 관리 실패 '인간사(지상)' 영향과 얽혀 발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지진과 천기지변의 초자연성: 반면 지진은 땅의 기초가 흔들리는 현상이며, 하늘의 징조는 우주적 현상입니다.   둘은 인간이 예방하거나 통제할 방법이 전무한 순수 '신적 영역' 거대한 사건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재난에만 '(μέγας)' 붙여 피조물 전체를 압도하는 종말의 위엄을 시각적·공간적으로 극대화하셨습니다.

 

2.      구조적 의미: 땅과 하늘을 잇는 '샌드위치 구조'

 

단어와 마지막 단어의 대칭: 11절의 단어 배열을 보면 문장의 처음에 지진()’ 나오고, 마지막에 징조(하늘)’ 배치됩니다.

 

의미적 확장: 땅의 가장 거대한 요동(“ 지진”)(σεισμοί μεγάλοι)으로 시작해 인간 세상의 비극(기근, 전염병, 무서운 ) 거쳐, 하늘의 가장 거대한 징조(“ 징조들”)(σημεα μεγάλα) 마치는 우주적 전개 방식을 취합니다.  , 종말의 징조가 '땅의 기초(지진)'에서부터 '하늘의 (징조)'까지 우주에 가득 차게 됨을 선포하는 수사학적 장치입니다(인터넷).

 

·         여기서 저는 땅의 가장 거대한 요동인 기근과 전염병 무서운 대해서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싶습니다.  이유는 오늘 아침에도 뉴스를 보니까 일본에 7.1 강도의 지진이 일어났고, 또한 전염병도 현실적으로 언제 번질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신 무서운 무엇일까요?

 

-          여기서 무서운 헬라어 원어는 포베트론(φόβητρον)입니다.  신약성경 전체에서 오직 구절에만 쓰인 매우 독특한 단어입니다.  원어적 의미와 종말론적 맥락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신무서운 다음 가지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인터넷):

 

a.      원어적 의미: 인간을 혼비백산하여 도망치게 만드는 공포

 

헬라어 포베트론(φόβητρον)두려워하다라는 동사 포베오(φοβέω)’에서 유래한 명사로, 단순히 마음이 불안한 상태를 넘어인간을 극심한 공포와 패닉에 빠뜨려 본능적으로 도망치게 만드는 구체적인 대상이나 사건 뜻합니다.

 

고대 문헌에서는 사람을 기겁하게 만드는괴물이나무시무시한 광경(terror/dreadful sight)’ 묘사할 단어를 썼습니다.

 

b.     구체적인 현실적 맥락: 일상의 안전지대가 무너지는 충격

 

오늘 아침 지진이나 세계를 위협하는 새로운 감염병 뉴스처럼, 무서운 일들 인간이 구축해 놓은 사회적·물리적 안전망이 일순간에 완전히 파괴될 엄습하는 공포를 말합니다.

 

통제 불가능한 참사: 기근과 전염병 뒤에 단어가 배치된 것으로 보아, 재난이 연쇄적으로 폭발하면서 문명이 마비되고, 약탈, 도성의 붕괴, 생태계 파괴 인간의 힘으로 감당할 없는 수준의 대혼란(Civilization Collapse) 지상에 도래함을 의미합니다.

 

심리적 압도: , 말씀은 지진, 기근, 전염병이라는 개별적 재난 자체보다, 그로 인해 인류 전체가 직면하게 정신을 차릴 없을 정도의 집단적 패닉과 실존적 공포 자체를 예수님이 예고하신 것입니다.

 

결국 예수님은 지구적 재난(지진, 기근, 전염병) 우주적 징조 사이에 단어를 두어, 지상의 비극이 인간의 영혼을 깊은 두려움으로 흔들어 깨우는 과정을 시각화하셨습니다(인터넷).

 

(ii)                그러면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10)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         말씀은 종말의 때에 일어날 지구적 갈등과 기존 질서의 완전한 붕괴 의미합니다.

 

a.      민족[θνος (에드노스)] 간의 갈등: 인종, 혈통, 문화적 이념 중심의 내부적 증오와 내전, 분쟁을 뜻합니다.

 

b.     나라[βασιλεία (바실레이아)] 간의 충돌: 국가 권력과 군사력을 동원한 공식적인 영토 전쟁과 국제적 충돌을 의미합니다.

 

, 말씀은 종말이 가까울수록 인간이 만든 사회적·정치적 경계선들이 서로 충돌하며 세상의 평화 시스템이 스스로 무너질 것을 경고하신 것입니다(인터넷).

 

-          여기서 저는 실제로 지금 민족 간의 갈등과 나라 간의 충돌(전쟁)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끊임이 없는 이러한 갈등과 충돌 속에 살아가는 우리(그리스도인들) 어떠한 관점으로 이러한 갈등과 충돌을 봐야 하며 또한 어떻게 신앙생활을 해야 하는 것일까요?

 

n  그리스도인은 갈등을세상의 한계하나님의 주권이라는 가지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인간의 정치·군사적 동맹은 영원한 평화를 없음을 직시하고, 역사의 주관자는 오직 하나님뿐이심을 신뢰해야 합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음과 같이 신앙생활을 해야 합니다.


불안의 거부: 뉴스에 흔들리지 않고 그리스도의 평강을 유지합니다.

 

평화의 사도: 미움과 진영 논리를 거부하고 화평을 심습니다.

 

본향의 사모: 무너질 세상이 아닌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소망합니다”(인터넷).

 

#   여기서 진영 논리를 거부하고 화평 심어야 한다는 교훈을 생각할 기독교인들이 정치적으로 우파와 좌파로 대립하여 진영 논리를 하는 것에 대해 성경의 가르침은 무엇일까요?

 

성경은 인간의 정치체제가 결코 하나님의 공의를 온전히 대변할 없다고 가르칩니다.  좌파와 우파라는 이념은 성경 이후에 생겨난 인간의 불완전한 산물일 뿐입니다.  기독교인이 정치적 진영 논리에 빠지는 것에 대한 성경적 기준은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 나라는 좌파나 우파에 속하지 않습니다.

 

그리스도의 초월성: 예수님이 땅에 오셨을 , 로마 권력(우파적 압제)이나 열심당의 폭력적 해방 운동(좌파적 혁명) 어느 쪽도 선택하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나라는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다’( 18:36)라고 선언하셨습니다.

 

주권의 문제: 여호와의 군대 대장이 여호수아에게 너는 우리를 위하느냐 우리의 대적을 위하느냐라고 물었을 , 그는 아니라 나는 여호와의 군대 대장으로 지금 왔느니라’( 5:13-14) 답했습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진영에 동원되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주권 아래 엎드려야 하는 분입니다.

 

2.      양쪽 진영의 우상화를 경계해야 합니다.

 

성경은 좌파와 우파가 가진 인간적 가치의 한계를 모두 지적합니다.

 

우파의 맹점: 기득권 수호, 물질적 탐욕, 약자에 대한 무관심으로 흐를 성경의 엄중한 심판을 받습니다( 5:11-12).

 

좌파의 맹점: 인간의 힘으로 유토피아를 건설할 있다는 인본주의적 교만, 증오를 통한 평등 구현은 성경적 공의와 멉니다(바벨탑 사건).

 

어느 진영의 이념을 신앙과 동일시하는 순간, 그것은 '정치적 우상숭배' 됩니다.

 

3.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공의'라는 하나의 기준만 가집니다.

 

예언자적 거리두기: 기독교인은 특정 정당의 맹목적 지지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기준으로 삼아 양쪽 모두의 불의를 비판하고 선을 격려하는 '예언자적 거리' 유지해야 합니다.

 

화평케 하는 :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차별이 없이 하나가 되었다고 선포했습니다( 3:28).  이념으로 갈라진 세상에서 교회는 도리어 적대감을 허무는 평화의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2:14)”(인터넷).

 

 

(b)   번째 부분은, 누가복음 21 12-18 말씀입니다.

 

(i)                  저는 부분의 말씀을 한국어 성경과 헬라어 성경으로 읽었을 제일 먼저 관심을 갖게 점은 이름으로 예수님의 말씀이 번이나 반복해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1) “ 이름으로 말미암아 너희에게 손을 대어 박해하며 회당과 옥에 넘겨 주며 임금들과 집권자들 앞에 끌어 가려니와”(12) 너희가 이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나”(17).  예수님께서 이름으로 말씀을 번이나 하시면서 말씀들을 하신 것일까요?

 

·         예수님께서 이름으로[δι τ νομά μου (디아 오노마 )] 반복하신 이유는 제자들이 겪을 고난의 원인과 승리의 비결이 오직 예수님께만 있음을 각인시키기 위함입니다.

 

1.      고난의 본질 규정 (12)

 

제자들이 당하는 박해는 개인의 잘못이나 도덕적 실패 때문이 아닙니다.  세상이 예수님을 미워하기 때문에 그분의 대리자인 제자들을 미워하는 것입니다.  , 제자들의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영광스러운 흔적'임을 밝히시며 두려움을 영적 자부심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2.      고난의 범위와 한계 설정 (17)

 

"모든 사람에게 미움을 받을 "이라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 이름으로 말미암아" 다시 선포됩니다.  이는 세상의 증오가 아무리 커도 결국 예수님의 권세와 이름 아래 통제되고 있음을 뜻합니다(인터넷).

 

-          여기서 저는 제자들의 고난은 '예수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영광스러운 흔적'임을 밝히시며라는 글을 읽을 때에 갈라디아서 6 17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하지 말라 내가 몸에 예수의 흔적을 지니고 있노라.”  여기서 얻는 교훈은 예수님의 제자들인 우리(그리스도인들) 고난이란 바울처럼 우리 몸에 예수의 흔적 지니는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여기서 바울이 말한 예수의 흔적 구체적으로 우리에게 어떻게 적용될 있을까요?

 

n  사도 바울이 갈라디아서 6 17절에서 언급한예수의 흔적 헬라어로 스티그마’(στίγματα)입니다.  당시 노예나 군인의 몸에 불로 지져 소유주를 표시하던낙인 뜻합니다.  단어가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삶에 구체적으로 적용되는 방식은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a.      거룩한 소유권의 고백 (Identity)

 

적용: 세상의 가치관이나 유행, 진영 논리에 휩쓸리지 않고나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선명한 정체성을 지니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를 향해 소유권을 주장할 , 삶의 진짜 주인이 주님이심을 삶으로 증명하는 태도입니다.

 

b.     복음을 위해 감수한 불편과 손해 (Sacrifice)

 

적용: 바울이 복음을 전하다가 얻은 몸의 상처들이스티그마’(“흔적”)였듯이,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 때문에 자진해서 감수하는 불이익과 손해가 흔적입니다.

 

정직하게 일하다가 손해를 보거나, 이기적인 세상에서 먼저 양보하고,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억울한 비난을 묵묵히 견뎌내는 삶의 자국들이 현대판 예수의 흔적입니다.

 

c.      깨어진 관계를 기꺼이 품는 사랑 (Love)

 

적용: 미움과 갈등이 가득한 세상에서 끝까지 화평을 심기 위해 자존심과 감정을 꺾는 과정에서 생기는마음의 상처수고입니다.

 

타인을 용서하고 품느라 중심이 깨어지는 아픔을 겪을 , 우리 영혼에는 예수님의 십자가 흔적이 새겨집니다.

 

결국 예수의 흔적은 고난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예수님을 너무나 사랑해서 그분과 함께 걷다가 삶에 남게 영광스러운 흉터를 의미합니다(인터넷).

 

(ii)                또한 저는 누가복음 21 10-18 부분의 말씀을 묵상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변명할 것을 미리 궁리하지 않도록 명심하라”[θέτε ον ν τας καρδίαις μν μ προμελετν πολογηθναι (데테 타이스 카르디아이스 휘몬 프로멜레탄 아폴로게데나이)](14) 하신 말씀을 또한 새겨듣게 됩니다.  어떻게 예수님의 말씀을 실제적인 상황에서 명심하여 순종함으로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대적이 능히 대항하거나 변박할 없는 구변과 지혜”[ ο δυνήσονται ντιστναι ντειπεν παντες ο ντικείμενοι μν ( 디네손타이 안티스테나이 안테이페인 하판테스 호이 안티케이메노이 휘민)](15) 일이 도리어 너희(우리)에게 증거가 할수 있을까요?[ποβήσεται μν ες μαρτύριον (아포베세타이 휘민 에이스 마르티리온)](13)

 

1.      마음의 '기본값' 바꾸십시오 (14)

 

"명심하라" 원어 θέτε(데테) '두다, 고정하다'라는 뜻의 티데미(τίθημι)’ 명령형입니다.  그리고 "궁리하지 말라" ‘προμελετν(프로멜레탄)’ '미리 예행연습하다, 리허설하다'라는 뜻입니다.

 

실제 적용: 억울한 일을 당하거나 박해를 받을 , '무슨 말로 정당함을 입증할까' 머릿속으로 시나리오를 짜며 인간적인 방어벽(리허설) 만들지 마십시오.  대신, 마음의 중심[ν τας καρδίαις μν ( 타이스 카르디아이스 휘몬)] '하나님의 주권과 인도하심을 신뢰하는 자리' 단단히 고정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2.      입을 성령의 통로로 내어드리십시오 (15)

 

예수님은 "내가 너희에게 구변(, στόμα) 지혜를 주겠다" 하셨습니다.

 

실제 적용: 위기의 순간에 감정과 혈기로 말하지 않고, "주님, 입술을 주장하여 주옵소서"라고 즉각적으로 기도를 주님께 올려드려야 합니다.   말의 제어권을 주님께 양도할 , 원수들이 감히 대항하거나(ντιστναι, 버티어 서다) 반박할(ντειπεν, 맞받아 말하다) 없는 하늘의 권세가 임합니다.

 

3.      결과는 주님의 영광으로 이어짐을 믿으십시오 (13)

 

"되리라" 원어 ποβήσεται(아포베세타이) '결국 ~ 귀결되다, 나아가다'라는 뜻입니다.

 

실제 적용: 내가 의로움을 변호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주님을 의지하여 묵묵히 견디며 주님이 주신 지혜로 대답할 , 고난의 자리는 결국[ποβήσεται (아포베세타이)]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드러내는 강력한 증거[μαρτύριον (마르티리온)] 자리로 흘러가게 됩니다.

 

, 인간적인 변론을 내려놓고 입술의 주권을 주님께 맡길 , 위기는 도리어 가장 강력한 복음의 증거가 됩니다(인터넷).

 

·         여기서 되리라 원어 ποβήσεται(아포베세타이) 헬라어 단어를 묵상할 빌립보서 1 19 말씀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너희의 간구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령의 도우심으로 나를 구원에 이르게 아는 고로”[οδα γρ τι τοτό μοι ποβήσεται ες σωτηρίαν δι τς μν δεήσεως κα πιχορηγίας το πνεύματος ησο Χριστο (오이다 가르 호티 투토 모이 아포베세타이 에이스 소테리안 디아 테스 휘몬 데에세오스 카이 에피코레기아스 프뉴마토스 이에수 크리스투)].  어떠한 연관성이 있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요?

 

-          구절에서아포베세타이(ποβήσεται)’라는 동일한 단어가 사용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단어는지금 눈앞의 고난이 결국에는 하나님의 승리와 구원으로 귀결된다 강력한 역설적 신앙을 담고 있습니다.   본문의 연관성과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다음과 같습니다(인터넷):

 

a.      구조적 연관성: 고난에서 영광으로의 필연적 흐름

 

누가복음 21 13: 박해와 법정에 끌려가는 비극(고난) → ποβήσεται (“되리라”) → 복음의 증거(영광)

 

빌립보서 1 19: 사도 바울의 로마 감옥 수감(고난) → ποβήσεται (“이르게 ”) → 영혼의 구원과 승리(영광)

 

단어는 단순히 시간이 흘러 결과가 나타난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주권적 손길에 의해, 세상이 성도를 해치려고 만든 악한 상황이 도리어 하나님의 선한 목적을 이루는 도구로 뒤바뀐다는 성경적 법칙( 50:20) 보여줍니다.

 

b.     빌립보서 말씀을 통해 얻는 구체적 교훈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이 선포하신 거대한 약속이, 빌립보서의 바울을 통해 어떻게 성도의 삶에서 실제로 성취되는지 비결을 가르쳐 줍니다.

 

동역자의 기도와 성령의 공급하심: 바울은 감옥이라는 절망 속에서도 고난이 결국[ποβήσεται(아포베세타이)(“이르게 ”)] 구원으로 이어질 것을 확신했습니다.   원동력은 바로 성도들의간구()’ 예수 그리스도의성령의 도우심(풍성한 공급)’이었습니다.

 

현장적 적용: 우리도 삶의 자리에 닥친무서운 박해 마주할 , 힘으로 버티는 것이 아닙니다.  공동체의 중보기도를 의지하고 성령님이 날마다 부어주시는 하늘의 지혜와 능력을 공급받을 , 비로소 우리의 고난은 무의미한 실패가 아닌 영광스러운증거의 자리 나아가게(ποβήσεται) 됩니다.

 

결국 구절은 "성도의 고난은 절대로 비극으로 끝나지 않으며, 성령의 도우심 속에서 반드시 승리로 마침표를 찍는다" 종말론적 확신을 우리에게 심어줍니다(인터넷).

 

(iii)              저는 누가복음 21 10-18 말씀을 묵상할 심지어 부모와 형제와 친척과 벗이 너희를 넘겨 주어 너희 중의 몇을 죽이게 하겠고”[ παραδοθήσεσθε δ κα π γονέων κα δελφν κα συγγενν κα φίλων, κα θανατώσουσιν ξ μν (파라도데세스데 카이 휘포 고네온 카이 아델폰 카이 슁게논 카이 필론, 카이 다나토수신 엑스 휘몬)](16) 말씀에도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유는 결국 외부적인 박해보다 내부적인 박해가 극심하고 매우 위협적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1.      관계의 붕괴가 주는 치명적인 위협

 

가장 친밀한 자들의 배신: 본문에 나열된 부모(γονέων), 형제(δελφν), 친척(συγγενν), (φίλων) 인간이 세상에서 얻을 있는 가장 안전한 감정적·사회적 보루입니다.

 

심리적 무장해제: 외부의 적은 경계하고 대비할 있지만, 내가 가장 사랑하고 신뢰했던 이들이 나를 배신하여 넘겨줄[παραδοθήσεσθε(파라도데세스데)(“넘겨 주어”)] , 성도가 느끼는 영적·심리적 충격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이는 신앙의 길에서 겪는 가장 고독하고 비참한 고난입니다.

 

2.      가치관의 충돌: 피보다 진한 예수의 이름

 

예수님은 종말의 때에 복음이 세상의 가장 강력한 육신적 유대 관계(가족)마저도 갈라놓는 기준이 것임을 미리 보여주십니다.  , 예수의 이름(12, 17) 선택하는 대가는 나의 가장 소중한 혈연과 관계를 잃어버리는 아픔, 심지어 그들로 인해 죽음[θανατώσουσιν(다나토수신)(“죽이게 하겠고”)](16) 이르는 대가까지 지불해야 있음을 경고하신 것입니다.

 

3.      미움의 본질: 인간이 아닌 영적 전쟁

 

가장 가까운 이들이 나를 미워하고 죽음에 넘겨줄 , 우리는 사람을 향해 분노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말씀은 배후에 역사의 마지막 발악을 하는 영적 어둠의 세력이 있음을 보게 합니다.

 

따라서 성도는 내부적 배신 앞에서도 인간적인 증오로 맞서지 않고, 오직 주님의 십자가 사랑과 인내로만 이겨낼 있습니다(인터넷).

 

·         이처럼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배신당하고 몇이 죽임을 당하는 비극(16) 속에서도, 이어지는 18절에서 "너희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아니하리라"[θρξ κ τς κεφαλς μν ο μ πόληται (카이 드릭스 에크 테스 케팔레스 휘몬 아폴레타이)] 하신 주님의 말씀은 어떻게 조화를 이룰 있을까요?

 

a.      육신의 죽음과 영원한 생명의 조화

 

16절의 상함: 세상 권력과 배신자들이 해할 있는 것은 성도의 '육신의 목숨(bios)'뿐입니다.

 

18절의 보존: 예수님이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신 영역은 누구도 빼앗을 없는 성도의 영원한 본질, '영원한 생명(zoe) 구원'입니다.  육신은 죽임을 당할지언정, 하나님의 소유 성도의 영혼과 그가 받을 하늘의 상급은 1%(머리털 하나도) 손상되지 않고 완벽하게 보존된다는 선포입니다.

 

b.     하나님의 완벽한 주권 아래 있는 고난

 

헬라어 문맥에서 "머리털 하나도 상하지 않는다" 표현은 당대 유대인들이 쓰던 관용구로,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어떤 작은 피해도 우연히 일어날 없다" 강력한 주권적 보호를 뜻합니다. 


, 성도가 겪는 순교나 박해는 세상이 이겨서 일어나는 비극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 안에서 엄격하게 통제되고 허락된 범위 안에서만 일어난다는 위로입니다.

 

결국 주님은 육신의 죽음을 뛰어넘는 영원한 안전보장을 약속하시며, 세상의 죽음 위협 앞에서도 담대하라고 제자들을 격려하신 것입니다(인터넷).

 

(c)   마지막 번째 부분은, 누가복음 21 19 말씀입니다: “너희의 인내로 너희 영혼을 얻으리라”[ν τ πομον μν κτήσασθε τς ψυχς μν ( 휘포모네 휘몬 크테사스데 타스 프쉬카스 휘몬)].  저는 19 말씀을 따로 묵상하고 싶었던 이유는 예수님의 말씀이 핵심구절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i)                  말씀의 주제는종말론적 인내를 통한 영혼의 최종적 구원’ (또는환난을 이기는 성도의 궁극적 승리’)입니다.  말씀은 앞서 언급된 모든 우주적 재난(10-11) 내외적인 극심한 박해(12-18) 돌파해 내는 핵심 열쇠이자 이번 환난 담론의 거대한 결론입니다.  원어의 깊은 의미를 통해 구절이 핵심이 되는지 인공지능이 가지로 정리한 것입니다.

 

1.      인내”[πομονή (휘포모네)]: 수동적 버팀이 아닌 능동적 전진

 

원어적 의미: '아래(πό)' '머물다(μένω)' 합쳐진 단어로, 단순히 고통을 묵묵히 참아내는 약자의 태도가 아닙니다.

 

구체적 의미: 하나님의 약속(18) 100% 신뢰하기 때문에, 거대한 파도가 덮쳐와도 자기가 지켜야 믿음의 자리를 끝까지 이탈하지 않고 굳건히 버텨내며 전진하는 영적 뚝심을 뜻합니다.

 

2.      얻으리라”[κτήσασθε (크테사스데)]: 이미 확보된 승리의 쟁취

 

원어적 의미: ‘크타오마이(κτάομαι)’ 명령법(또는 미래적 확신)으로, '사다, 획득하다, 자기 소유로 삼다'라는 뜻입니다.

 

구체적 의미: 인내는 막연한 도박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확보된 승리와 영원한 생명을, 끝까지 믿음으로 버팀으로써 삶에 실제적인 소유와 결과물로 확실하게 거두어들이는 과정을 의미합니다.

 

3.      영혼”[ψυχάς (프쉬카스)]: 흔들리지 않는 영원한 자아

 

세상은 우리의 육신과 환경을 흔들고 파괴할 있지만, 인내하는 성도의 가장 깊은 내면과 영원한 생명은 그리스도의 손안에서 완벽하게 완성됩니다.

 

결국 예수님은 구절을 통해, 종말의 시대를 살아가는 성도들에게 세상의 무서운 징조에 함몰되지 말고, '약속을 신뢰하는 인내'라는 무기를 지니고 영원한 생명의 승리자로서 당당히 서라고 선포하신 것입니다(인터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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