दिन 40: क्या आप इस समय को जानते हैं ? [ रोमियों 13:11-14 पर मनन ] “ और तुम जानते हो कि समय आ गया है , कि तुम्हारे लिए नींद से जागने का समय आ गया है , क्योंकि अब हमारा उद्धार हमारे पहले विश्वास करने के समय से भी अधिक निकट है। रात बहुत बीत चुकी है , और दिन निकट है ; इसलिए आओ हम अंधकार के कामों को त्याग दें और प्रकाश का कवच पहन लें। आओ हम दिन के उजाले में उचित चाल चलें , न कि व्यभिचार और नशे में , न ही यौन अनैतिकता और वासना में , न ही झगड़े और ईर्ष्या में , बल्कि प्रभु यीशु मसीह को धारण करें , और शरीर की वासनाओं को पूरा करने का कोई अवसर न दें। ” ( रोमियों 13:11-14) वास्तव में , आपको क्या लगता है कि अभी क्या समय हो रहा है ? मेरी कोरियाई भाषा सीमित है , इसलिए मुझसे अक्सर गलतियाँ हो जाती हैं। ऐसा ही एक उदाहरण तब है जब मैं पाम संडे बुलेटिन बना रहा था ; कई बार मैंने “ पाम ” ...
과연 나는 고난의 주님을 귀히 여기고 있는 것인가 ?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 이사야 53 장 3 절 ). 고난의 주님은 멸시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싫어 버린바 되셨다 . 만일 내가 그 고난의 주님을 귀히 여기고 있다면 나 또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 당하고 ) 사람들에게 싫어 버린바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 고난의 주님은 간고를 많이 겪으셨다 . 그는 고난에 익숙하신 분이셨다 (family with suffering). 만일 내가 그 고난의 주님을 귀히 여기고 있다면 나 또한 주님을 위하여 간고를 많이 겪어야 하지 않는가 ? 그리고 나는 주님처럼 고난에 익숙해야 하지 않는가 ? 그런데 왜 나는 이토록 편안함에 익숙해 져 있는 것인가 ? 고난이 주님은 질고를 아는 자이셨다 . 그는 비애의 사람이셨다 (a man of sorrow). 만일 내가 그 고 난의 주님을 귀히 여기고 있다면 나 또한 비애의 사람이 되야 하지 않겠는가 ? 그런데 왜 나는 이토록 슬픔보다 기쁨이 더 좋은 것일까 ? 성경은 슬픔이 웃음보다 낮다 ( 전 7:3) 고 말씀하고 있는데 왜 나는 아직까지도 눈물을 흘리기보다 웃고 있는 것일까 ? 고난의 주님은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은 자 같으셨다 . 만일 내가 그 고난의 주님을 귀히 여기고 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