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الفصل الخامس: إخلاء “الطمع”

    الفصل الخامس : إخلاء “ الطمع ”         في الفصل السابق تأملنا، من خلال إخلاء “ الكبرياء ” ، في القلب الذي يريد أن يرفع نفسه فوق الله ويقدم إرادته على إرادة الله . والآن، في الفصل الخامس، سنتأمل في “ الطمع ” الذي، إلى جانب الكبرياء، يستولي على أعماق النفس، ويمنعنا من الاكتفاء بالله، ويدفعنا إلى التشبث المستمر بأشياء العالم . علينا أن نقف بأمانة أمام كلمة الله، ونواجه حقيقة الطمع الموجود في داخلنا، ونتعلم كيف نخلي قلوبنا منه . سبق للدكتور لي هي - ديه، الذي كان مديرًا لمركز السرطان في مستشفى عام كبير، أن قارن الخصائص الفسيولوجية للخلايا السرطانية بمبدأ روحي . فالخلايا الطبيعية تنمو وتموت بحسب نظام محدد، أما الخلايا السرطانية فتستمر في النمو بصورة غير طبيعية، وتستولي على العناصر الغذائية التي تحتاج إليها الخلايا السليمة . ومن الناحية الروحية تذكرنا هذه الصورة بالطمع الذي يريد المزيد باستمرار، ويدمر في طريقه أشياء أخر...

과연 나는 고난의 주님을 귀히 여기고 있는 것인가?

과연 나는 고난의 주님을 귀히 여기고 있는 것인가 ?   “그는 멸시를 받아서 사람에게 싫어 버린바 되었으며 간고를 많이 겪었으며 질고를 아는 자라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는 자 같아서 멸시를 당하였고 우리도 그를 귀히 여기지 아니하였도다” ( 이사야 53 장 3 절 ).   고난의 주님은 멸시를 받아서 사람들에게 싫어 버린바 되셨다 . 만일 내가 그 고난의 주님을 귀히 여기고 있다면 나 또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고 ( 당하고 ) 사람들에게 싫어 버린바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하지 않는가 ?   고난의 주님은 간고를 많이 겪으셨다 . 그는 고난에 익숙하신 분이셨다 (family with suffering). 만일 내가 그 고난의 주님을 귀히 여기고 있다면 나 또한 주님을 위하여 간고를 많이 겪어야 하지 않는가 ? 그리고 나는 주님처럼 고난에 익숙해야 하지 않는가 ? 그런데 왜 나는 이토록 편안함에 익숙해 져 있는 것인가 ?   고난이 주님은 질고를 아는 자이셨다 . 그는 비애의 사람이셨다 (a man of sorrow). 만일 내가 그  고 난의 주님을 귀히 여기고 있다면 나 또한 비애의 사람이 되야 하지 않겠는가 ? 그런데 왜 나는 이토록 슬픔보다 기쁨이 더 좋은 것일까 ? 성경은 슬픔이 웃음보다 낮다 ( 전 7:3) 고 말씀하고 있는데 왜 나는 아직까지도 눈물을 흘리기보다 웃고 있는 것일까 ?   고난의 주님은 마치 사람들에게 얼굴을 가리우고 보지 않음을 받은 자 같으셨다 . 만일 내가 그 고난의 주님을 귀히 여기고 있...